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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평점 :
'앞으로 소개할 수많은 전쟁이나 질병, 의약품, 인물은 관련 역사에서 미친 존재감을 자랑할 것이니 편하게 읽기를 바란다. 전쟁, 질병, 약, 이들이 펼친 기나긴 악연의 역사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p. 9)'
모르핀, 페치딘, 와파린, 헤로인, 펜타닐, 튜보큐라린, PTSD, 프로토실, 아트로핀, 페니실린, 퀴닌, 스페인독감, 괴혈병, 말라리아, 천연두, 페스트... 이 책에 등장하는 약과 질병들이다.
인기 강의 교수이자 약학자인 저자는 전쟁과 약의 관점에서 기나긴 악연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약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고, 전쟁이 약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역사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1940년 10월 일본군은 비행기로 중국 닝보시에 페스트균을 퍼뜨렸다. 페스트균은 직접 사람을 공격하는 생물학 무기로 전쟁에 사용됐다. 걸프전에서 미군은 이라크의 독가스 공격에 대비해 피리도스티그민 브로마이드라는 예방약으로 지급했다. 정작 이라크는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예방약을 꼬박꼬박 복용한 미군들은 '걸프전 증후군'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약은 여러 방식으로 전쟁에 사용됐다.
전쟁은 약을 만들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처음 가는 지역에서 군인들이 자주 설사를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은 정로환을 개발했다. 사람의 첫 번째 천적은 모기다. 매년 72만 명 이상이 모기에 물려 죽는다. 전쟁에서 열대우림의 말라리아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DDT를 만들었고 DDT를 살포하며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전쟁 공포로 한국전쟁에 가기 싫었던 22세의 미국 청년은 와파린이라는 쥐약을 먹고 자살하려 했다. 자살에 실패한 덕분에 쥐와는 달리 사람에게는 혈액응고 작용을 하는 비타민K가 다량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와파린은 심장 수술 등에 사용한다. 전쟁은 우리에게 와파린 같은 선물도 주었지만, PTSD라는 청구서도 남겼다.
저자는 모든 의약품이 전쟁과 같은 우연으로 개발됐다는 생각을 경계한다. 합리적인 개발 시스템으로 만드는 의약품이 훨씬 많다고 한다. 이제는 우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만들어 간다. 빠른 속도로 개발됐던 코로나 백신, mRNA 백신이라는 개념을 예로 들면서 사전에 많은 연구개발과 준비가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전쟁과 질병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세대에서 그런 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꾸준히 대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과 질병을 넘어... (p.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