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꽃으로 살다 -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간 위대한 예술가 30인의 삶과 작품 이야기
케이트 브라이언 지음, 김성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6월
평점 :
키스 해링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한 말이다. 고작 31세에 사망했다.
"후회는 없다. 내가 죽음을 직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유는 죽음이 한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죽음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만일 이런 관점에 따라 살아간다면 죽음은 그 무게를 상실하게 된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은 정확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다." (p. 27)'
케이트 브라이언의 <불꽃으로 살다>는 찬란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짧지만 불꽃같은 예술혼을 보여주고 젊은 나이에 죽음에 이른 예술가 30인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젊은 나이의 기준을 40세 전후로 잡았다.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예술가로서의 삶은 20년 남짓이다. 수십 년간 재능을 연마해야 하는 예술가의 속성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기간에 놀라운 업적을 이룬 이들은 천재들임에 틀림없다.
30인의 예술가들을 다섯 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불꽃의 삶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찬란하고 빠르게 타오른 요절한 예술가들이다. 예술을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긴 키스 해링, 회화의 규칙을 다시 쓴 장미셸 바스키아, 예술 역사상 최대의 악동인 카라바조, 뉴욕의 진정한 보헤미안 대시 스노. 이들은 요절했지만 삶이 짧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때 이른 죽음으로 죽음이 '신화화'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예술가들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해 받지 못한 천재 빈센트 반 고흐, 처참한 사건들이 신화가 된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흐릿한 형체와 유령 같은 형상을 활용한 프란체스카 우드먼,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작품을 찍어낸 아나 멘티에 타,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타고난 미술 민주주의자 필릭스 곤잘레즈토레스, 신화가 확고한 명성이 된 라파엘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청난 존경과 찬사를 받은 이들이다.
세 번째 그룹은 시대를 너무 앞선 선구자들이다. 미니멀리즘과 개념 미술, 행위 예술, 그리고 마음챙김 명상의 대유행 등을 미리 예견한 이브 클랭, 미국식 가정집을 둘로 쪼개는 식으로 공간과 형태를 전복시킨 고든 마타클라크, 기존의 사진을 순수 예술로 만든 로버트 메이플소프, 인간의 형상을 끊임없이 탐색한 에곤 실레, 현대 예술 최초의 임신 자화상을 작품으로 남긴 파울라 모더존베커, 유럽과 인도 두 문화 간의 연결 고리를 제공한 암리타 셔길, 빛의 마술사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자연과 직접 교감한 로버트 스미스슨. 이들의 작품은 가치를 인정받고 수용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 번째는 질병과 여러 갈등에 시달리며 창작 활동을 한 이들이다. 시달린 병고를 예술에 엄청난 평안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와 오브리 비어즐리,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였던 노아 데이비스, 불안정하고 비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한 에바 헤세, 비극적인 그래픽 노블과도 같은 삶을 산 샤를로테 살로몬, 전쟁을 진보의 기반이 되는 정화의 과정으로 이상화한 움베르토 보초니, 전쟁터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전쟁 사진작가 게르다 타로. 이들에게 예술은 구원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자 하나의 은신처였다.
마지막으로 죽음으로 잊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예술가들이다. 전문적인 여성 예술가를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죄책감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던 조애나 메리 보이스, 명성과 아름다움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팝 아트의 디바 폴린 보티, 정치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신체와 작품 창작 활동, 사회적 기대 등과 씨름을 벌인 헬렌 채드윅, 배타적인 예술계를 단숨에 사로잡은 흑인 여성 카디자 사예, 문학과 음악을 그림에 끌어들인 바살러뮤 빌. 이들의 유산은 찬사 받고 소중히 여겨져야 할 가치가 있기에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아프리카에는 삶과 시간에 관한 독특한 관념이 있다. 사람이 죽어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한 그는 '현재와 그 가까운 전후'를 뜻하는 '사샤sasha'에 살아 있다. 그를 기억하던 이들이 더 이상 없을 때 그는 '먼 과거'를 뜻하는 '자마니zamani'에 잠기게 된다. (p. 9)'
불꽃으로 살다가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예술가들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먼 과거를 뜻하는 '자마니'에 잠긴 예술가들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불멸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그들을 찾아내어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야 우리와 가까이 '사샤'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