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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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루이스 세풀베다는 환경 문제의 각성이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으로 ​전하는 작가로 알려졌다. 생애 마지막 작품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는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전해내려오는 신비로운 고래 이야기다.

'나, 달빛 고래로 말하면 피오르 해안과 섬 앞바다 태생의 향유고래종 수컷이다. (p. 26)'
고래잡이배 선원들은 모차섬 근처에서 처음 만난 이 고래를 '모차 딕'이라 부른다.


죽은 향유고래가 칠레 남단 해변에 떠밀려 왔다. 고래 앞에서 '바다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프켄체 부족 아이가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는 그 아이와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건네준 조개껍질을 귀에 대자 달빛 향유고래, 모차 딕이 '고래의 기억에 담긴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차 딕'은 할아버지 향유고래한테 '트렘풀카웨' 할머니 고래 넷을 보살피라는 부탁을 받는다. 해변에서 필요한 양식만 얻고, 항상 베풀어주는 바다의 고마움을 아는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부족 라프켄체. 이들 가운데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 영혼을 '트렘풀카웨' 고래가 섬으로 데려다준다.

'나는 인간들의 배에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들의 용기를 존중했고, 그들 또한 바다에서 사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 22)'

'모차 딕'은 인간을 존중했기에 처음엔 다가오는 고래잡이배를 멀리 쫓아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컷 고래와 새끼 고래를 잡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다. 그 고래잡이들은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라프켄체 사람들과 달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인간이었다. 그 이후 고래잡이배를 공격해 작살내고 고래잡이들과 생존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그들은 우리가 무서워서 우리를 죽인 것이 아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우리 고래의 몸속에 빛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둠에서 해방되기 위해 우리를 죽이는 것이다. (p. 51)'

1820년 11월 20일 칠레 태평양 연안 모차섬 앞에서 거대한 몸집의 향유고래가 고래잡이배 한 척을 침몰시켰다는 이야기 전해져온다. 그 뒤 20년이 지나 죽은 향유고래의 몸에는 작살이 백여 개나 박혀 있었다고 한다.


'작은 정어리도 다른 정어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느림보 거북이도 다른 거북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상어도 다른 상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공격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 (p. 36, 37)'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인간이 보는 흰고래 '모비 딕'은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피쿼드는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백인들에 맞서 최초를 전멸한 부족이었다. 이 부족과 같은 이름의 피쿼드라는 포경선의 입장에서 흰고래는 백인을 암시할 수도 있다. 반면 스타벅의 입장에서 '모비 딕'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화합과 조화롭게 지내야 할 자연일 뿐이다.

하지만 향유고래 '모차 딕'의 입장에서 본 인간은 그저 악일뿐이다. 서로 죽이는 이해할 수 없는 종, 인간. 자기보다 덩치가 커 두려움의 대상임에도 쓸모가 있다면 가차 없이 떼로 몰려가 죽여 원하는 것을 얻고야 마는 종, 인간.

그래서 평화로운 자연을 지켜나가는 일에 인간은 기대할 만한 종이 아니다. 설사 자연의 무서움을 안다고 해도 바로 눈앞에 취할 이익이 있다면 환경을 파괴할 종이다.

왜 우리는 인간과 싸우는 '모비 딕' 또는 '모차 딕' 편에 서서 응원하게 될까? 그건 그 고래들이 자연의 힘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갈 환경을 지켜낼 존재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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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스트레칭 365 퀴즈 일력 (스프링) - 집중력 순발력이 좋아지는 1분 습관
최은경 외 지음 / 어썸그레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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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있지만, 예를 들어 독서라든지 걷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 더 생활에 밀착된 것으로 씻기, 밥 먹기 따위의 것들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과는 따로 몸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면? 두렵다.

또 하나 생각마저 할 수 없다면, 치매 말이다. 내가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내가 간직해온 추억마저 지워져버렸다면, 이 역시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치매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비극이라 여겨지는 건, 생을 마감하는 이를테면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결정조차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65세에 이르면 또는 그 이전이라도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치매를 얻기 쉽다. 치매는 아직까지 완치가 어려워 그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뇌혈관질환이 치매의 주요 위험요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음주와 흡연도 피해야 하고 꾸준히 걷기와 골고루 챙겨 먹는 식습관도 치매에 예방에 도움이 된다. 글쓰기, 독서, 연극 또는 영화관람과 같은 문화 취미활동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뇌를 골고루 자극할 필요가 있는데, 초성퀴즈, 단어 추리, 연산, 끝말잇기 등 다양한 퀴즈가 뇌를 고루 발달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두뇌 스트레칭 365 퀴즈 일력>은 매일 즐겁게 뇌를 자극하기 위해 세 명의 방송 작가들이 만든 일력이다.

'예를 들어 초성을 이용한 속담 퀴즈는 언어적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어 좌측 전두엽 발달에 도움이 되고, 그림이나 빙고판을 이용한 퀴즈는 시각적 구성 능력과 함께 두정엽과 후두엽을 자극시킬 수 있습니다. 단어 연상 퀴즈는 상상력과 기억력, 그리고 실행 능력을 동원해야 하니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겠고요. ('추천의 말' 중에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온 가족이 놀이 삼아 즐길 수 있는 퀴즈가 일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에 들어온다. 일력을 받자마자 아내와 1월 한 달을 재밌게 풀었다. 쉬운 것도 있지만 힌트를 보며 약간 뜸을 들여야 생각나는 퀴즈도 있다.

뇌를 스트레칭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1일 1퀴즈 습관'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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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 - 오늘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
김태수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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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같은 시간에 살게 됐을까?

1884년 그리니치 표준시가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후 모든 곳에서 그리니치 표준시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철도가 깔리고 기차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불편을 느꼈다. 마을마다 시간이 달라 기차를 놓치는 일이 자주 벌어지면서부터 통일된 시간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통일된 시간이 없었을 때 불편하지 않았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준으로 답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촌에 살았고 기차 탈 일이 없었다. 게다가 시간을 억지로 통일시키는 것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의 역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19세기를 '비동시성의 동시성'라고 표현했다.
'이는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나 양상이 동시대에 벌어진다는 말이다. (p. 25)'


가난은 언제부터 불행이 되었을까?

중세 유럽에서는 가난이 지금처럼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구걸하는 사람을 만다면 복받은 날로 여겼을 정도였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일종의 거래 행위이기도 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고, 농촌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도시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거지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제 더 이상 거지는 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점에서 가난에 대한 인식 변화는 시대의 변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근본적 인식을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p. 171)'


호주는 영국인 범죄자들이 만든 나라다?

그렇게 단정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영국 내에서 범죄자를 전부 처리할 수 없어 호주로 보내버린 건 맞지만, 이들 모두 오이나 책, 담배를 도둑질하다 붙잡힌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여성, 어린아이와 노인 등 거친 땅을 일구고 버틸정도로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살인이나 성폭행 또는 반역과 같은 중범죄자는 없었다.

1793년 자발적인 이주민들이 영국을 떠나 호주에 도착했고, 1840년부터는 자의로 이주한 사람들이 반대해 영국 정부는 범죄자들을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저자 김태수는 <함께하는 세계사>를 운영하는 곧 26만 역사학 박사 유튜버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은 유튜브에서 다룬 내용을 보완하여 만들었다. 앞서 소개한 내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질문을 통해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 외운 것들을 잊는다 해도 역사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p. 6, 프롤로그)'

1부에서는 근대적 일상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2부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언제부터 왜 하게 됐는지를, 3부에서는 근대 국가들이 어떻게 역사에 등장했는지를 질문한다.


브라질에 이어 월드컵 우승 횟수 2위를 자랑하는 독일 사람들이 축구를 싫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설마? 산업혁명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동물원의 동물처럼 인간이 전시 대상이었다고 하고. 스위스가 중립국가가 된 역사까지 흥미로운 질문과 함께 그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에 흠뻑 빠지게 되는 책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마련인 역사에서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길. 유튜브 <함께하는 세계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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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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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에게는 이젠 커서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연년생 남매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두 아이의 육아를 아내가 도맡아 했다.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집은 전쟁터 같았다. 산발이 된 아내와 딸아이가 날 쳐다봤고 바닥은 장난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내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이 서둘러 집안을 치우고 아이 둘을 달래놓고는 저녁상을 차렸다. 돈 벌어오는 남편의 심기를 살피다가 괜찮다 싶은 내 표정을 확인하고서야 오늘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것도 이해를 구하는 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너무 힘든 날은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음식점에서 밥을 먹기도 했던 모양인데 말을 들어보면 보채는 아이 둘과 식사는 더 고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아내의 일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노동을 위한 일이었다. 노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나는 쉼을 얻는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아이들을 보면서 기쁨을 얻고 아내가 청소해 놓은 방에서 편히 잔다. 그다음 날 아내가 빨래해 다려놓은 옷을 입고 충전해 놓은 힘을 쓰러 출근한다.


'이 책은 재생산 reproduction 노동의 정치에 관해 말한다. (p. 13, 시작하며)'

재생산 노동의 정치 관점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노동 인구를 유지하고 교체하는 일이다. 음식 만들기, 청소, 빨래, 부모를 돌보는 일 등은 노동하는 사람의 안녕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사회적 재생산'이라고 부른다. 이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감정 재생산'도 재생산 노동에 포함된다. 이 모든 일을 대부분 여성이 도맡아 한다.

특히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슬픔을 달래며 남편이 직장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지내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등 정서적 지원을 하는 감정 재생산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하게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돌려받지도 못하고 사랑으로 포장돼 노동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노동을 했는데 대가가 뒤따르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를 '착취'라고 한다. 사랑해서 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친밀한 착취'가 된다.


이렇게 돌봄노동이 친밀한 착취로 탈바꿈하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저자인 알바 갓비는 자본주의, 가족, 젠더 이 세 가지를 폐지할 것을 제시한다.

돌봄노동을 인정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순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자본주의는 갖고 있다. 이를테면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품을 판다면 그 가격을 비쌀 수밖에 없다. 팔리지 않아서 가격을 낮추면 이익은 쪼그라든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임금 유무와 상관없이 재생산 노동에 의존한다. (...) 페데리치가 쓴 것처럼 '우리가 집에서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공장, 광산, 학교, 병원이 운영될 수 없으며 그들의 이윤도 전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p. 96)'

그래서 자본주의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돌봄노동을 미화하고 사적 영역으로 몰아가는 것뿐이다. 사랑이란 끈으로 엮여있는 가족이야말로 아름다운 돌봄을 해낼 수 있는 사적인 곳이다.

'자본주의 권력이 노동을 명령하는 권력이듯, 젠더는 친밀성의 노동을 명령하는 권력이다. (p. 191)'

가족 안에서 돌봄은 주로 여성이 한다. 퇴직하고 나서야 집안일을 도왔다. 아내 손목이 고장 나 못하는 일 가운데 설거지가 대표적으로 내 담당이다. '도와줄 일 없을까?' 집안일을 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언제부터 집안일이 아내의 일이고 내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역할 분담됐을까. 여성에게 어울리는 일이라서? 저자는 이를 젠더화라고 일컫는다.

자본주의, 가족, 젠더 이 세 가지가 폐지되지 않는 한 돌봄을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닌 노동이라고 여기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게 알바 갓비의 주장이다.


전업주부로 지낸 아내가 지나온 날은 돌아보며 '이제껏 난 뭘 하고 살았나. 한 일 없어.'라는 말을 쓸쓸한 표정으로 자주 한다. 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할까. 보이는 대가, 다시 말해 자신이 한 노동으로 번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으면 연금조차 줄어드니 남편이 오래 살기를 바라야 한다.

노동이라도 안 했으면 덜 억울하지. 남편을 뒷바라지하고(노동의 안녕), 아이 둘을 키우고(노동 인구 유지 교체),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감정 노동)까지 갖은 재생산 노동에 시달렸다. 친밀한 착취를 당했다. 젠더화하는 세상에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OECD 국가의 미혼모 아이 평균 비율이 41.5퍼센트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급격히 늘어 4퍼센트 남짓 된다.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는 추세다. 세계적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젠더화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걸 뜻한다.

더 이상 사랑의 유대에 기대어 돌봄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돌봄을 노동으로 간주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인식의 혁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감정노동이 사적 영역에 국한되는 일이 훨씬 적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노동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 일을 덜어 줄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덜 어려워질 테고요.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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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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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패트릭 브링리의 결혼식이 있어야 했던 날, 형이 세상을 떠났다. 브링리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었다. 그래서 그 찾은 곳은 그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는 곳,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10년을 지냈다.

메트Met에서 브링리는 두려움 없는 예술가들의 위대한 걸작품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조용한 시간 내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작품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작품이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형을 잃어 비탄에 빠졌을 때 생긴 삶의 커다란 구멍을 이곳에서 하나하나 메꿔나갔다.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p. 122)'

메트의 고요한 공간에서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 (p. 319)', 경비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시간과 차원이 달랐다. 그 시간은 소비하고 낭비하고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마치 여름날 포치에 앉아 바람이 부는 걸 바라보는듯한 시간이었다.

이 같은 메트에서 브링리의 삶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20층, 잡지사 뉴요커 사무실에서 펼쳐질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해 브링리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이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p. 308)'

이 책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브링리는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그리고 꿈도 제각각인 그래서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메트를 택한 600여 명 동료 경비원들의 삶과 대화했다. 예술품을 바라보며 낯설고 먼 곳은 물론 과거를 다녀온 여행자가 되기도 했다. 메트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p. 149)'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브링리를 삶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장 아름답고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떠날 때가 됐다. 형의 죽음으로 도망쳤던 그곳으로 다시 가서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p. 331)' 삶을 살아야 했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 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p. 330)'


내게도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형님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인 40대 중반에 형수와 어린 조카 둘을 남겨놓고 세상을 등졌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오열했다. 큰 딸을 잃어 참척의 고통을 겪은 어머니는 큰 아들이 죽기 전에 돌아가셔서 두 번째 참척의 고통은 피했다.

형님의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있을 곳이 없어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방을 하나 더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했다. 이사를 했고 서둘러서 방 한 칸 더 있는 집을 구하려다 빚을 지고 말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 서두를 것이 아니라 브링리처럼 아픔을 보듬을 장소와 시간을 가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후회된다. 그랬으면 살아오면서 의미 없이 지나쳤던 것들에게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어, 브링리가 메트에서 이탈리아 수사 안젤리토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인생 그림을 찾았듯이 내 인생에서도 걸작품을 하나 얻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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