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 수학으로 밝혀낸 빅데이터의 진실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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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알고리즘에 데이비드 섬프터는 '잠깐만요? 그게 사실인가요?'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오해나 억측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한다. 정확도가 60% 밖에 안되는 걸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라고 어려운 설득을 시도한다. 무조건 신뢰는 곤란하다고 사실을 따져보자고 한다.

데이비드 섬프터의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은 알고리즘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세계적인 응용수학 박사답게 수학적으로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알고리즘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보도록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 알아내려고 수학에 의지할 때마다, 수학은 다음과 같은 똑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논리만 가지고 공정을 이뤄낼 수는 없다.' (p. 104)'

우리는 알고리즘이 공정하다고 여기지만, 알고리즘이 공정한 결과를 내놓을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도 공정을 정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알고리즘은 더욱더 모른다.


'우리의 행동을 분석하는 능력에 관한 한, 우리가 이제껏 살펴 본 알고리즘들은 기껏해야 인간들과 대등하다. (p. 135)'

알고리즘이 확률을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처리 속도는 인간을 능가한다.


''필터' 알고리즘은 초기의 작은 차이를 포착하고 부풀려 약간 열등했던 한쪽 진영이 결국 사라지게 만든다. 사용자는 자기 확증적 생각과 소규모 친구들과의 상호작용 안에 갇힌다. (p. 207)'

미세한 초깃값의 차이로 조작이 가능하고 그 조작이 악용될 소지(예를 들면 가짜뉴스)가 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 영향이 미치는 힘은 약하다.


'그 불평등의 부분적인 원인은 우리의 평가가 편파적인 것에 있다. 우리는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우리와 유사한 특징들을 지닌 경향이 있다. (p. 261)'

알고리즘의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연상도 결국 우리의 암묵적인 선입견을 학습한 결과다. 현실에서 우리의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해결하지 못하면 알고리즘의 불평등도 해소할 길은 없다.


데이비드 섬프터는 알고리즘의 한계와 위험성, 그리고 미래의 모습도 이야기한다.

알고리즘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다. 인간의 하찮은 일들을 줄여줄지언정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만 우리가 알고리즘의 영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때 과학적 허구에 휘둘리거나 소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만 사용될 때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알고리즘과 협업은 우리의 미래에 가능성을 부여한다.


'기술자들과 수학자들 중 일부는 10년 정도만 지나면 우리가 참된 인공지능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나머지는 참된 인공지능이 몇백 년 뒤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본다. (p. 331)'

저자는 알고리즘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주장한다. 인간의 두뇌 정도 수준의 인공지능 실현이 아직은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알고리즘 통제는 지금처럼 한동안 계속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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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22.3 - No 74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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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ag, 74호>의 테마는 '엄마'다. '엄마'라는 존재로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편집장의 의도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단어로 꼽은 'Mother(어머니)'.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엄마를 마음속에 품고 살며, 제각각 간직하는 엄마의 스토리가 있기에 엄마에 대해 풀어놓는 풍성한 이야기가 <Cheag, 74호>에 담겼다. 엄마를 주제로 감동을 전해준 책, 그리고 사진과 함께.


'이런 굴절된 사랑 탓에 우리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고, 엄마가 없으면 안 되지만 함께 살기는 싫은 존재가 됩니다. (p. 19)'

배우 봉태규의 엄마, 패션 디자이너 박지원의 엄마, 방송인 김제동의 엄마, 작가 전혜진의 엄마, 이토록 엄마라는 존재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기억되었다. 뭉뚱그려진 기억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엄마는 우리에게 다가섰기 때문이다. 미웠고, 불쌍했고, 측은했고, 귀여웠고, 사랑스러웠고, 무식했고, 현명했고, 선견지명이 있었고, 힘이 셌고, 연약했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가 하면 때론 겁 없이 행동하는... 정리가 안되어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엄마의 모습이다.


'"엉킨 엄마와 딸이 살 길은 서로 조금은 떨어져 독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엄마 쪽에서 먼저 시도하기 쉽지 않다. 딸이 슬슬 서로의 독립을 준비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 그런데 이 지점에서 많은 딸들이 주춤한다. 엄마를 소비하는 일을 멈추자면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딸들은 엄마의 회생 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워왔다. 엄마의 시간, 엄마의 체력, 엄마의 도가니, 엄마의 정서, 엄마의 돈, 엄마의 미래, 엄마의 인생... 엄마에게 도움을 받는 차원을 넘어 엄마를 과소비하며 살아온 딸이 꽤 많다." - 김지윤, <모녀의 세계>중 (p. 69)'

가끔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하면서 기분 좋게 웃기도 하고, 심하게 말다툼하는 소리를 들으면 엄마와 딸의 관계란 참 어렵다. 엄마가 사는 모습이 싫은 딸, 그러면서 필요할 때 엄마를 찾는 딸이다. 딸만은 자신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는, 그런 욕심에 딸의 삶을 간섭하는 엄마다. 엄마의 삶이 측은해서, 딸의 삶이 가여워서 서로 짜증 내는 엄마와 딸, 같은 이유로 서로 위로하는 관계의 엄마와 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나서 나는 그런 생각을 고쳐먹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 된 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슬픔과 함께 멍에를 벗은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불효한 것일까. 그러나 솔직한 심정이 그러했다. 더는 모순된 이중의 고향, 두 개의 허상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 -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 (나를 닮은 목소리로) 중 (p. 85)'

박완서 작가의 글에 나의 마음이 들통난 느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살아 계실 때 그렇게 이용해먹고는 고작 한다는 생각이 이런 거라니... 아무리 솔직한 심정이라도 드러내면 안 되지 않나? 나란 인간도 참...

모성을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엄살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엄마이니 그 정도는 견뎌한다고... 정작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 하나 알지 못하는 자식인 주제에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의 모든 시선은 아기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같은 시간, 엄마로 새로 태어난 이도 있다. (p. 99)'

이 글귀를 아내에게 읽어주었다. 무슨 생각이 드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내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 "너무 떠오르는 게 많아... 대답을 못하겠어..." 첫아이가 태어난 날 자신도 엄마로 태어났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을 엄마로 정의할 겨를도 없이 이제까지 살아온듯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3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읽은, 엄마를 테마로 한 <Cheag, 74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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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오자와 다케토시 지음, 김향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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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는 25년 동안 3,500명의 환자를 돌본 호스피스 의사 오자와 다케토시가 한 사람이라도 좋은 삶을 살았다는 마음을 갖고 죽음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은 이제껏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으로 시작한다.

만약 앞으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여행을 떠나고 싶으신가요?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일을 더 하고 싶으신가요?
취미의 시간을 쏟고 싶으신가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신가요?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싶으신가요?


만약 내 삶이 1년 후 끝난다면?
앞으로 남은 1년은 지나온 삶에 비해 그 밀도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니 꽉 채운 삶을 살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닥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듯싶다. 스스로 질문하고 무엇을 할지 구체화해서 대답할 때, 오자와 다케토시의 질문은 많은 도움을 준다. 1년 남짓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 못한 일과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남고 그 아쉬움은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과연 지금까지 매달려 온 일이 내가 다 해야만 했던 일이었을까? 자책하느라 자신에 대한 배려도 없었고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않았다면, 이제 1년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일에 집중하고 선택해야 한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며 지내야 한다.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
이제까지의 나의 선택과 노력에 인색하기보다는 잘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내 삶이 위대해진다. 행복해진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평범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지금까지 힘든 삶을 살았나? 괴로움뿐인 인생이었나? 그렇더라도 우리는 항상 옳다고 여기는 선택을 해왔다. 마지막을 1년 앞두고 생각해 보니 나의 선택으로 쌓인 인생은 내가 원하는 삶이었고, 앞으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될 테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고 살게 될 소중한 삶.


우리 삶의 마지막은 이렇게 온다.

'우선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짧아지고 이불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다음으로 식사량이 줄고 낮에도 자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그리고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면 호흡이 얕아지고 횟수도 줄어들며 의식이 없는 상태가 오래 이어진 후, 고요히 숨을 거두게 됩니다. (p. 70)'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의 마지막 삶이 이렇지는 않다. 뜻밖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준비할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마주한다. 그러니 1년 뒤를 마지막 날로 정해놓고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매듭지을 준비를 미리 해 두어야 한다. <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는 많은 위로를 건네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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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만나는 시간 - 오래된 책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다
앨런 제이콥스 지음, 김성환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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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고 처음 떠오른 글귀, 김영하 작가의 책 <읽다>에서 밝힌 고전에 대한 정의다.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 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처음 읽는데도 어쩐지 '다시'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 읽다 (김영하, 문학동네) p. 11'


오래전에 낯선 시대의 이상한 언어로 쓰여 잘 이해도 안 되는 고전, 그 고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책, 그래서 고전보다 더 읽기 힘들었던 책 <고전을 만나는 시간>이다.

우선 앨런 제이콥스는 우리가 고전을 통해 과거와 소통해야 하는 이유를 '인격의 밀도 personal density'를 높이는 데서 찾는다. 사회적 가속화와 정보의 과부하로 현재를 살기에도 힘이 부쳐 지금 이외에 것에 생각할 여유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현재의 고민에 답을 찾기 위해서도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은 읽는다는 건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고전에서 만나는 이들의 환경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고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지만 그 다름에서 우리가 현재 고민하는 문제의 답을 찾게 된다.

고전을 통해 과거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태도보다는 그때의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와 정의의 방향으로 나간 그들의 삶과 이상에 지지를 보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전이라는 도구로 우리는 과거로부터 칼비노의 말처럼 교훈을 얻기도 한다.
'"당신만의 고전 작가 란 당신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와의 관계에서 당신 자신을 정의하거나. 심지어는 그와 논쟁을 벌이도록 당신을 자극해 주는 그런 작가들을 말한다." 한마디로 이 말은, 어떤 책이 당신 스스로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은 물론, 믿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면, 그 책이 당신에게는 고전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말이다. (p. 119)'

리스와 르 권이 선배 작가들의 작품 <아이네이스>와 <제인 에어>를 향해 베풀었던 너그러움 (generous)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는 고전에서 '이상적 순간'과 인간성의 '진짜 알맹이'까지 함께 추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외에도 고전 독서는 '타닥거림 crackling'이라는 교감이 선사하는 진정한 가치를 주고,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정함으로써 인격의 밀도를 높이게 해 준다. 이러한 인격의 밀도 증대는 약속하는 능력을 증대시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연결한다.


김영하 작가의 <읽다>에서 앨런 제이콥스 주장과 부합하는 또 하나의 문장을 인용하면,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 읽다 (김영하, 문학동네) p.15'

​지금 우리가 여전히 찾게 되는 고전이 살아남은 이유는 당대의 진부함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을, 고전을 열렬히 사랑함으로 우리의 관심의 피를 제공하여 오늘을 사는 지혜와 강건함을 획득, 미래와 의미 있는 약속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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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박물지 - 인문학과 미학을 넘나드는 이어령의 시선 63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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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을 알기 위해서 도서관은 물론이고 굳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 놓은 생활용품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 시선의 멈춤을 통해서 나는 언제나 한국의 참모습들을 만나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친숙한 도구들을 낯설게 하는 방식을 통해서 때로는 한국인의 혼과 마음을 꺼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우주적인 질서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p. 264)'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 이야기꾼임을 자청하셨던 이어령의 마지막 도서, 인문학과 미학을 넘나드는 <우리 문화 박물지>. 이 책에서 이어령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보게 된다.

일상 속 63가지 사물에서 이어령은 한국인이 어디에 마음을 두는지,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를, 그리고 그 사물에 스며든 한국인의 마음, 지혜, 심성, 아름다움, 독특한 발상을 찾아내 알려준다. 생활용품과 도구에서 느끼는 우리들의 어쭙잖은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이어령의 상상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야기꾼 이어령의 사물을 보는 시선에 감탄한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보면,


낫과 호미: 자기로 향한 칼날
'낫이나 호미의 아름다움은 밖으로 내밀어도 그 경고의 칼날이 언제나 자기를 향해 있다는 점일 것이다. (p. 39)'

순식간에 무기로 바뀌는 서양의 농기구와 다르게 우리의 농기구, 특히 낫과 호미는 남을 해치는 무기로서의 기능이 어렵다. 그날이 사용하는 이를 향하기 때문이다. 낫질이나 호미질을 잘못하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힌다. 낫과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호미의 날이 아무리 시퍼렇게 서 있어도 남을 해치기보다는 자신에게 더 위험하고 농사에 적합한 도구임을 농부들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바지: 치수 없는 옷
'살아있는 것의 몸을 잰다는 것은 흐르는 물에 표를 해놓고 떨어진 칼을 찾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생명체를 어떻게 자로 잴 수 있단 말인가. (p. 106)'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당하지 않은가? 너무 당연해서 웃음이 나오고 말문이 막힌다. 우리의 허리 치수는 밥을 먹었을 때와 굶었을 때 다르고, 건강할 때와 아플 때 다르니 말이다. 치수에 맞게 입는 양복바지는 몸이 조금만 불어나도 허리가 쪼여 불편하고, 몸이 축나면 흘러내린다. 그래서 못 입게 된다. 한복 바지는 허리춤이 넉넉해 몸이 불어나면 불어난 대로 축나면 축난 대로 그때그때 덜 조이고 더 조여 입으면 된다. 못 입게 될 일이 없다. 옷에 사람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정자: 에콜로지의 건축학
'그렇기 때문에 정자에는 건축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벽, 그러니까 안과 밖을 가르는 벽의 개념이란 것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p. 190)'

물과 기암절벽이 있는 아름다운 곳에 정자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정자는 건축이라기 보다 자연의 일부다. 그 이유는 건축물의 특성인 벽의 개념, 안과 밖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의 경치를 극대화한다. 팔각정의 여덟 면의 각은 기둥 사이에 여덟 장의 풍경을 품고 있다. 자연을 자기 뜰 안에 끌어들여 정원을 만든 일본인들이 있다면,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밖으로 나가 자연 그 자체를 풍경의 미학으로 하는 정자를 만들어냈다.


흥미로워서 이 책의 등장한 사물을 만나러 다시 오려 한다. 이번 만남에선 한꺼번에 여럿을 만나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만나고자 한다. 한참의 시간을 선뜻 내어 참모습을 보며 길게 이야기하고 웃음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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