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사랑이어도 이러면 간통입니다. 그렇더라도 사형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불의 꽃>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리뷰도 한 번 썼지요. 그 때는 주인공인 조서로와 유녹주라는 불륜커플(?)을 중심으로 봤습니다만, 그 얘긴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나와도 약간 다른 이야길 써보고 싶네요.
조서로의 어머니와 그리고 유녹주의 남편은 이 책에서 그럭저럭 많이 나오죠. 그들에겐 각각 이경심과 이귀산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두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작용해서 결국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치죠. 물론 그 두 사람은 난 그렇게 시킨적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겠지만요. (당연히, 그 두사람은 절대, 이 일을 시킨 적이 없죠.)
불편한 감정이란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로부터 누군가에게 날아가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죠. 이 이야기도 조금 그래요. 그 사람이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어디론가 날아가서 퍼지고 자라고, 의외의 일들을 만들죠. 이 책에서 일어난 일도, 사실 그런 것이 없지 않았어요.
이경심여사는 질투와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경심이란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 미치는 사람이었죠. 그렇다고 뭐든지 다 맘대로 되는 건 아니었고, 그런 사람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게 평생의 원한으로 남아, 집요한 복수의 힘으로 삼았습니다. 녹주가 이여사로부터 미움을 받은 건 그 어머니 채심이 싫어서였고, 채심이 싫었던 건 자기 어머니 청화당이 언제나 채심만 좋다고 칭찬을 해댔기 때문입니다. 원인관계가 생각보다 간단하죠? 그래서 녹주를 굳이 암자로 보내놓고, 아들은 좋은 집안에 장가를 들였지만, 운명은 이여사보다 더욱 집요해서, 만날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줬지요. 죽을때까지 맘대로 살고 싶어 미치는 이여사는 죽고나서도 아들을 괴롭히더군요. 그렇지만 꿈에 나타나 말하는 것까지는 내 출연분량(!)이 아니다, 라고 한다면 뭐,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이렇게 된 데는 경심씨 어머니 청화당도 문제는 있어요. 아무리 옆집 아이가 좋다좋다 해도, 그래도 그 애가 자기 아인 아니잖아요. 경심씨가 어릴 때, 엄마로부터 지독하게 시달렸는지도 모르죠. 쟨 잘하는데, 넌 뭐냐. 라고. 그럼 괜한 옆집 아이 미워지고 그러죠. 그런 비교하는 말은 참 듣기 싫은 거거든요. 듣는 사람더러, 넌 쟤보다 모자란 사람이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말하는 사람은 그럴 의도 아니라고 해도 그런 말은 아무리 좋게 봐도 부담스러운 말인데, 경심씨의 어머닌 시시때때로 그런 말을 많이 했을거 같습니다. 청화당 할머니. 아무리 좋고 잘 해도, 옆집 부모나 옆집 아이는 내 부모나 내 아이가 되주지는 않는걸요.
유녹주의 남편은 또 어떤가요? 이 사람은 전 부인이 죽고나서 거의 반강제로 새 부인을 데려오죠. 아들보다 나이 적은 새 부인을 보면서, 같이 사는 아들 부부도 이 황당함에 기가 차지만, 읽는 저도 이 사람이 좋아보이진 않았어요. 어쩌면 갑자기 사랑에 빠져서 눈이 멀었나보죠? 하긴 그 새부인의 미모가 괜찮긴하다고 하더군요.
이경심여사가 대놓고 하고 싶은대로 사람 힘들게 한다면, 유녹주 남편, 그러니까 이귀산이란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를 숨막히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이귀산이란 사람의 입장에선, 전 부인이 죽고 얻은 새 부인에게 갖은 정성 다 쏟으면서 잘해주는데 그게 뭐 문제냐고 할 지도 모릅니다만. 그게 사랑이라면, 상대방이 사람인지 아님 안방의 새로운 장식인지, 읽는 사람으로서는 구분하기 힘들만큼의 지극한 사랑(?)이었다고 저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근데, 말하다보니 의외의 생각이 듭니다. 이경심과 이귀산, 하는 걸 보면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데요. 둘 다 자기 욕심에 충실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는데, 남은 신경쓰지 않잖아요. 남이야 어찌되는 간에 내맘대로 할테다, 하는 점에선 이 둘은 잘 맞는 걸요. 아마 나이도 그럭저럭 비슷할 것 같고. ^^
불륜이란 말이 듣는 사람에게 거슬릴 수도 있지만, 조서로와 유녹주의 사랑은 사회라는 제도 안에선 불륜 맞아요. 각자 기혼자인걸요. 그래서 그건 죄가 되고, 견딜수 없을 만큼의 비난과 형벌로 그들은 다시 찾은 사랑에 대한 대가를 치르죠. 이런 경우에 누구에겐 사랑이었겠지만, 좋게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되면 그 가족은 고통받기 때문이에요.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조서로의 처자식은 어떤 심정이겠어요. 유녹주의 남편도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끼겠죠. 그러니 그건 그토록 서로를 향해왔던 수십여년의 목숨같은 사랑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사정을 말한다고 해도, 이 일을 두고서는 몇 백년 뒤의 사람 입장에서도 뭐라 말하기 망설여집니다. 네, 그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랍니다.
그럴수록, 강제로 떼어놓고, 강제로 결혼시킨, 이경심과 이귀산이란 사람을 생각하게 되요. 그 두 사람이 이 사건을 추진한 건 절대 아니지만, 이 일이 생기는데 큰 역할을 한 건 맞거든요. 굳이 떼어놓지 않았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았다면, 으로 사람마다 내용이 조금 달라지긴 해도, 남의 인생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하다 생긴 일,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없을걸요. 널 위해서 하는 소리다, 너 좋으라고 그러지. 때로는 그거 강요와 다를 거 없어요. 결과적으로 그게 아무리 좋은 거라고 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 지 그런 걸 무시하면, 그건 좋은 일도 괜찮은 결과도 될 수 없어요. 여기 이 두 사람도 어쩌면 그런 말을 해가면서 이런 일을 했겠죠. 하지만, 속마음은 끝도없이 주체할 수 없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다 벌어진 일에 가까워요.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서 읽기 시작했어요. 과연 이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했었죠. 누군가에겐 또 누군가가 있군요. 어쩌면 이 사건은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들'과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부인'의 잘못 찾은 탈출구는 아니었을까요. 이런 결말을 맞을 바에야, 차라리 둘이 걸리기 전에 도망이라도 갔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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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Book] 불의 꽃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