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게 뭐 대단한 거겠냐, 라면서 일축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 일을 겪는 당사자도 아닌데,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하겠냐. 남이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남이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누가 남의 일을 그렇게 맡아서 해 줄 리도 없는 게, 조금만 살아도 알 수 있는 일이고 보면, 어려움 앞에서 사람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서른 넘어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진실, 평생 의심하지 않았던 내 부모가 실은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어렵게 찾아간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던 것.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 정신과 의사임에도 큰아들이 자살해버리는 아픔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가 백혈병으로 떠나기까지. 듣고 있기에도 한 사람이 겪기에는 많은 일들을 겪은 저자 개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그러한 슬픔이 오직 현재를 채워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말과 생각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바뀌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는 의사로서의 경험과, 또한 자신의 노력과 강한 의지만이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이겨낼 수 있기에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면에서 설득력과 호소력 있는 글로 표현한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시절에 읽었을 때는 저자가 가졌을 아픔에 주목했었지만,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며칠 전 다시 읽었을 때에는 과거의 문제를 현재로 가져와서 그러한 삶의 이유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더 생각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전같지 않다. 부정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왔던 만화가 부인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열심히 일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한 가정을 갑자기 바꿔버릴 만한 큰 문제가 된다. 늘 뭐든지 잘 할 것만 같았고 열심히 살아왔던 남편의 병은 우울증. 심약한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독소라 할 수 있는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었던 것. 남편의 병으로 인해 이전처럼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 생각하게 되었고, 우울증이 의지의 문제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닌 병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많은 부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사람이 변화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내용은 만화가와 그 가족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짤막한 만화로 이어지는데, 읽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그래도 상당히 유쾌해지려 애쓰는 부인의 입장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후기를 읽어보면 많은 부분 병의 호전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이기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듯 하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므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검색하실 수 있겠다.
누군가 말한다. 신은 넘어갈 만한 시련을 주신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된다. 누군가의 앞에 시련이 놓인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넘어가거나, 아니면 넘지 못하거나. 넘어가고 나서는 그 상황에서 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찾고, 반대로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는 시련 앞에서 어쩔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를 찾아 헤맬 수도 있다. 결국 사람은 이유를 통해서, 자기 앞에 떨어진 날벼락이라는 존재를 수용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이유라고 표현한 그것, 적어도 나라면 '변명'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다. 납득이 가지 않는 내게 닥친 어떤 일을 두고,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나가다 그냥 어쩌다 일어난 어느 일로 치부하기에는, 내가 겪은 그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겠나. 더구나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끝도없이 생각했을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것을 시련이라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냥 어렵긴 했지만 해결되고 나면 잊어버릴 일을 두고 시련이라고 거창하게 이름붙일 필요가 뭐 있을까. 그것이 힘에 부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고, 남은 쉽다고 해도 남이 겪는 일이 아닌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인데 쉽지 않으니 힘이 드는, 어찌보면 간단해서 더욱 막막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도 보고, 또는 저렇게도 보겠지만, 그것이 정확한 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참고하여 보다 좋은 것을 선택할 수만 있으면 된다. 누군가 선택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르는 것이기에 더욱 망설여지고 애매한 것도 있다. 남의 일이면 명쾌하게 보일 일이라 해도, 내 일이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보면, 살아가는 건 분명 쉬울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을 포기하거나 남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 그래도 후회를 덜 하게 된다는 그런 것.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몇 번째 수정본 : 2012-11-21 오후 10:05:00 저장된 글입니다.
그다음 수정본 : 2012-11-23 12:08
그렇지만 쓰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아 고쳐볼까 싶었지만, 잘 안되어서 그냥 올리려구요.
이후 마지막 수정은 2012년 11월 29일에 읽어보고 제목만 생각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