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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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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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이동식)

친구야
길을 가다 지치면
하늘을 보아
하늘은 바라보라고 있는거야
사는 일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니까
살다보면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러더라도 그러더라도
체념해 고개를 떨구지 말라고
희망마저 포기해
웃음마저 잃지 말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 있는 거야

정녕 주저앉고 싶을 정도의
절망의 무게가
몸과 마음을 짓눌러 와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라고
신념을 잃지 말고 살라고
하늘은 저리 높은 곳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친구야
어느 때이고
삶이 힘듬을 느끼는 날엔
하늘을 보아
그리곤 씨익하고 한번웃어 보려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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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길 위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7번 국도를 다녀온뒤에도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여름은 지나갔다. 되돌아볼 때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 P37

인생의 모든 순간은 딱 한 번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영영멀어진다. 말하려다 그만두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그저 "아름다운 계절 중양절 또 돌아왔군요"라고 노래하는 이유는 지나간 순간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을이니까 그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또 나를 일깨우기도 한다.
나뭇잎이 또 저렇게 졌다가 봄이 되어 다시 돋는 동안, 사람들은 한 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자명한 사실 앞에 지금 단 하나의 가을이 놓여 있다. 그러니 이 가을 앞에서나 역시 말하려다 그만두고 말하려다 그만두고 "아, 서늘해서 좋은 가을이어라"라고 노래할 수밖에. - P62

내게는 바로 그런 게 겨울다운 겨울이다. 지난 한 해 나는정말 힘든 시기를 거쳐 왔다. 내가 힘들었다면,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겨울까지 우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려운 일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았다. 그 사실은 이 겨울이, 얼얼할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증명한다. 바람이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겨울다운 겨울에 우리는 우리다운 우리가 된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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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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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26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치환의 ‘행복‘, 제가 좋아한 시였습니다^^

루피닷 2024-10-26 16:58   좋아요 1 | URL
넵 좋아하시는 시라고 하셔서 한번 더 읽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