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침묵하세요.
(밀란 쿤데라)
사랑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말아요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난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있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난 알아요
당신의 심장이 다른 여인의 곱슬머리로
친친 감겨 있음을
그것이 나의 머리카락이라고 거짓말하지 말아요
믿지 않아요 당신의 말은
항상 갈대 숲과도 수풀과도 같아
당신은 모자를 눌러쓰고
코트에 얼굴을 파묻은 채
서둘러 그 뒤로 숨어 버리곤 하지요
하지만 난 당신을 보고 있어요
당신의 그럴싸한 말 뒤에 숨어 있는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난 알아요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난 알고 있어요 그 문을
문 위에 새겨진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어요
당신의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그 열정의 온도를 난 느낄 수 있어요
두리번거리는 당신의 두 눈
부끄러움에 가득 찬 그 겁먹은 두 눈을
난 보고 있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난 모든 것을 알아요
오, 차라리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않는다면
차라리 그냥 침묵해 버린다면
그때처럼
처음처럼...
그래요 처음 언젠가 그땐
당신은 벙어리였죠
마치 한 마리 작은 아기 곰처럼
사랑에 대해선 입도 뻥끗 않았지요
그때의 당신은
사랑 그 자체였어요
오, 나의 연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여
뭐라고요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제발 이젠 침묵하세요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