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과학 물화생지 문해력 기르기 1
노수연.오현경.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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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海洋), 대기(大氣), 지질(地質) 학자가 함께 쓴 책이다. 과학지식의 예술화를 위해서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예술가의 시선으로 은유하는 과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공감을 자아낸다. 내가 읽은 여러 지구과학책들 가운데 가장 실제적이고 유용한 책으로 추천한다. 해양, 대기, 지질, 천문으로 이루어진 지구과학 분야 중 해양, 대기, 지질을 다룬 책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책머리에란 부분에 저자(지질학자)의 지질 공부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가 나온다. 제목인 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과학은 그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만든 지구과학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복잡한 화학식과 난해한 결정구조란 말은 광물을 공부하려면 알아야 하는 화학의 위상을 알게 하는 말이다. 화학이란 말은 바다의 염분이 오랜 시간 다양한 지질학적, 화학적 과정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는 말에도 나온다. 생지화학 과정이란 말은 생태계에서 생물이나 지질 또는 화학의 상호작용을 통해 화학원소가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염분(鹽分)편에서 우리는 바닷물 속 염분이 물 분자 간 결합을 방해해 바닷물의 어는 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바닷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의 흐름인 해류(海流)는 표층순환과 심층순환을 만들어낸다. 표층순환은 풍성(風成)순환이자 수평방향의 순환이고, 심층(深層)순환은 열염(熱鹽)순환이자 수직방향의 순환이다. 바람<풍; 風>과 소금<염; 鹽>과 관계되는 것이다.


심층 순환은 초당 수 센티미터의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순환으로 한 바퀴를 순환하는 데 1000년이 걸린다. 해류는 단순한 바다의 흐름이 아니라 지구의 기후, 해양생태계, 나아가 인간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것은 해양심층수다. 저자의 결론에 의하면 해양심층수와 과학자들이 심층수라고 부르는 해수가 동일한 바닷물은 아니다. 본문에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anthropogenic CO₂란 표현이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 사용으로 방출된 이산화탄소를 의미한다. 인류기원 탄소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탄소는 대기, 해양, 육상, 생물 사이를 순환하며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해양은 암석 다음으로 큰 탄소 저장 수단이다. 대기보다 약 60배 많은 탄소를 저장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하고 수십년에서 수천 년 사이의 시간 규모를 가지고 전 지구 탄소 순환을 조절한다. 태양의 탄소 저장 능력은 기후변화 완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해양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함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조절한다. 해양이 없다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그 결과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어 인류에 큰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hiatus라는 단어도 재미 있다. 행동의 중단, 빈 틈을 의미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지구온난화 추세가 멈추거나 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Global warming hiatus)에서 쓰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는 바다를 오늘날의 시점에서 바라보지만 바다는 오랜 시간 지구의 기후변화를 기록해 온 거대한 타임캡슐이다. proxy란 말도 있다. 대리(代理)를 뜻한다. 과거의 기후변화는 우리가 관측장비로 직접 측정하고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과거의 온도, 강수 등을 추정할 수 있는 프록시를 사용해야 한다. 빙하 퇴적물, 퇴적물, 석순, 나무의 나이테, 암석 등이 프록시 자료로 기능한다. 고기후 연구를 통해 과거의 기후변화를 분석하면 기후 시스템의 자연적 변동성과 인위적 영향력을 구분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철분이 많은 먼지가 있는 시기에 대기의 탄소량이 좋고 기온이 낮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철 시비(施肥)는 해양 표면에 철을 인위적으로 공급해 해양 식물 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으로 제안되어왔다. 철은 해양 식물 플랑크톤의 주요 영양소로 일부 해양 지역에서는 철의 부족이 이들의 성장을 제한한다. 한계가 있는 철 시비보다 탄소 포집 저장 기술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대기편에서 만날 수 있는 정보는 대기 현상의 장기 자료를 가지고 통계분석을 거처 얻는 특성이 기후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모델의 불완전성, 초기조건의 불확실성, 대기 내부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예보는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22년 11호 태풍 힌남노는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를 연상하게 하는 급격한 방향 전환(전향)을 보인 진로 외에도 강도 또한 급격한 강화 및 약화를 보여준 태풍이었다. 태풍은 열대 저기압(tropical cyclone)의 한 종류다. 온실 기체는 미움의 대상이다. 폭염, 가뭄, 폭우, 산불 등의 피해를 입으면 그 원인을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로 돌린다. 하지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테인은 우주로 빠져나가는 지구 복사에너지를 흡수해서 다시 지표로 방출해 생명체가 살기 좋은 기온으로 유지해주는 고마운 존재다.(203, 204 페이지)


화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이긴 하지만 대기의 밀도가 지구의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아 온실효과가 매우 적다. 이로 인해 평균기온은 영하 63도이며 일교차도 아주 크다. 대표적인 온실 기체인 이산화탄소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중 배출량이 늘어났지만 그 자체로는 대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 수증기에 의한 온실효과가 훨씬 강력하다. 여름철 열대야는 낮에 상승한 기온이 밤이 되면서 복사냉각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대기 중의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일으켜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영향과 자연 변동성에 의한 영향이 어우러져 있으며 서로 비선형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둘의 영향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지구온난화는 공간적으로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양보다 육지에서, 위도별로는 적도보다 극에서 더 강하게 일어난다. climateflation(기후플레이션; 기후 변화로 인한 물가상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물가 회의에 기상청장이 처음으로 참석했다고 한다. 


지질편에서는 흙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흙은 암석이 풍화되어 만들어진다. 풍화에는 물리적 풍화와 화학적 풍화가 있다. 토양은 주로 화학적 풍화를 받는다. 토양 입자는 물리적으로 깨지기에 너무 작기 때문이다. 화학적 풍화를 받아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을 토양 생성작용이라 한다. 배수(排水; 물빠짐)가 불량한 습지 같은 습윤지역에서는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 분해 속도가 매우 느리다. 유기물 분해에는 산소가 필수적이다.(251 페이지) 우리나라는 인셉티솔(Inceptisols)과 엔티솔(Entisols)이 약 80%를 차지한다. 인셉티솔은 토양 발달이 어느 정도는 진행되었지만 특징적인 토양층이 나타나지 않는다. 


엔티솔 역시 토양층이 거의 발달되지 않아 발달이 불량한 표층과 토양 모재만이 나타나는 토양이다. 이렇게 인셉티솔과 엔티솔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의 토양이 지속적인 침식과 퇴적 등 지표 환경의 변화가 심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토양은 토양 내에 영양분이 부족하고 척박하다.(대한민국 국가지도집 참고) 지금까지 조사된 광물은 5000여종이다. 암석을 이루는 주요 조암광물은 8종이다.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 백운모, 사장석, 정장석, 석영 등이다. 광물들은 각기 다른 저마다의 용융점을 갖는다. 순서에 맞춰 결정으로 정출(晶出)된다는 의미다. 이를 분별정출이라 한다. 


알칼리 장석은 포타슘(칼륨)과 소듐(나트륨)이 풍부한 장석을 말한다. 알칼리 장석 중 정장석(正長石; orthoclase; K 장석)은 포타슘이 우세한 경우다. 사장석(斜長石; plagioclase)은 소듐과 칼슘이 풍부한 경우다. 조장석(曹長石; albite)은 소듐 비율이 큰 경우를 말한다. 회장석(灰長石; anorthite)은 칼슘 비중이 큰 경우다. 보웬의 반응계열은 연속반응계열과 불연속반응계열로 나뉜다. 연속반응계열은 광물의 결정구조가 유지되는 경우로 주요 성분의 비율이 변할뿐 정출되는 광물 자체는 사장석으로 일정하다. 가령 냉각 초기엔 칼슘 성분이 풍부한 Ca 사장석을 정출하다 점차 마그마 내 칼슘이 고갈되며 소듐 성분이 풍부한 Na 사장석이 정출된다. 


마그마는 지각 하부나 맨틀 상부가 녹아 만들어진 것이다. 불연속 계열은 냉각이 진행될수록 광물의 성분뿐 아니라 결정구조까지 변화한다. 성분뿐 아니라 결정구조까지 변한다는 말은 광물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대체로 금속원소가 비금속원소보다 용융점이 높기 때문에 마그마 냉각 초기에는 마그네슘과 철 등 금속원소가 풍부한 고철질 광물이 정출된다. 감람석, 휘석, 각섬석, 흑운모가 고철질 광물이며 금속원소 특성상 어두운 색을 띤다. 냉각 초기 고철질 광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마그마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한 감람석이다. 냉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철과 마그네슘에 이은 알루미늄과 규소, 산소가 차례로 용융점을 맞는다. 그리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마그마는 다른 형태의 광물인 휘석, 각섬석, 흑운모를 정출하기 시작한다.


휘석보다 각섬석이, 각섬석보다 흑운모가 금속원소 함량이 낮다. 냉각 후기 철과 마그네슘을 모두 소진한 저온의 마그마는 비금속원소인 규소와 산소 함량이 높은 광물들을 정출한다. 산소와 규소로 이루어진 분자인 이산화규소가 풍부한 광물을 규장질 광물이라 한다. 이산화규소 덩어리인 석영, 장석류인 정장석, Na 사장석, 백운모가 해당한다. 규장질 광물은 이산화규소의 특성상 대체로 무색 또는 밝은 색상을 띤다. 이산화규소를 포함하지만 비교적 알루미늄 함량이 많은 정장석이 먼저 정출되고 이후 알루미늄 비중이 줄어들며 백운모가 정출된다. 알루미늄이 모두 소진되면 비로소 순수 이산화규소 결정체인 석영이 만들어진다. 


화산쇄설암이 화산탄을 포함하면 화산각력암, 화산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화산력 응회암, 화산재로 이루어지면 응회암이라 한다. 화산재는 바다보다 육지에 퇴적될 때 더 천천히 냉각된다.(270 페이지) 화산재 입자들이 서로 융합되어 더욱 치밀한 구조가 된 것을 용결조직(welding texture)이라 한다. 바다에서는 화산재가 빠르게 식어 용결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 대륙지각은 규소와 산소 함량이 높다. 가볍다는 의미다. 해양지각은 고철질로 이루어졌다. 


광물동정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광물의 물리적 특징과 편광현미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광학적 특징을 종합하여 한다. 예를 들어 비현정질 조직으로 이루어져 분출암의 특징을 보이면서 편광 현미경 관찰시 조밀한 사장석과 단사 휘석, 감람석 반정과 유리질 석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 해당 암석은 현무암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관입암의 특징인 현정질 광물 구조와 다량의 석영 및 장석류 광물이 관찰되는 암석은 화강암이라 판단한다. 지구의 지각은 여러 판의 경계를 중심으로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에너지는 결국 지진이나 화산 폭발, 조산 운동 같은 지각변동을 통해 해소된다. 즉 수많은 단층과 습곡, 화산이나 산맥은 지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흔적이다. 


지질학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과학지식의 예술화를 위에서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예술가의 시선으로 은유하는 과학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성은 고체 상태에서의 암상 변화를 뜻한다. 고온, 고압 환경에서 다시 마그마로 녹아 재결정될 경우 암석은 변성암이 아닌 화성암이 된다. 변성은 지표 풍화작용에 의해 암석이 점차 유약해지는 변질과 확연히 다르다. 변성암은 암석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이 크게 변화하여 기존 광물 성분과 조성, 구조 등이 명확히 달라진 암석이다. 변성 작용을 받은 암석은 직관적으로 파동과 유사한 모습을 띤다. 변성 작용은 열에 의해 변성되는 접촉 변성 작용, 압력에 의해 변성되는 동력 변성 작용, 조산대나 섭입대 또는 큰 규모의 퇴적 분지에서 발생하는 광역 변성 작용 등으로 나뉜다.


현무암 같은 고철질의 해양지각이 섭입 초기 낮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되면 푸른 남섬석을 특징으로 하는 청색 편암이 만들어진다. 이후 맨틀 가까이 섭입이 더 진행되면 암석은 훨씬 높은 열과 압력을 받게 되는데 이때 청색 편암이 에클로자이트로 변성된다. 에클로자이트는 단사 휘석의 일종인 녹색의 옴파사이트에 검붉은 석류석이 알알이 박힌 독특한 외형을 특징으로 한다. 풍화는 암석이 점차 약해지고 부서지는 현상을 말하고, 침식은 풍화와 함께 퇴적물이 다른 장소로 옮겨지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낀 바는 그간 나는 암석을 화성암인지 퇴적암인지 변성암인지 가리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크기별로 나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입자 크기에 따른 분류는 자명한 명명법이다. 2mm 이상의 역질 퇴적물이 우세한 퇴적암은 역암(礫岩)이라 하고 0.063~2mm 이하의 사질 퇴적물이 우세한 퇴적암이면 사암(砂巖), 0.063mm 이하의 이질 퇴적암이 우세한 퇴적암이면 이암(泥巖)이라 한다. 이질 퇴적물로 이루어졌으며 암석 내 층리 및 박리 구조가 발달한 경우 별도로 셰일이라 한다. 


역암, 이암, 사암 등은 규산질쇄설성 퇴적암을 입자 크기나 구조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석회암 여부를 판단할 때 암석에 붉은 염산을 뿌리곤 한다. 칙 소리를 내며 거품이 일면 석회암일 확률이 높다. 석회암을 이루는 탄산염 퇴적물은 암석이 만들어진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왔다는 특성이 있다. 이는 지표 위 노출된 암석 풍화물이 낮은 지대로 구르고 굴러 이동해 굳어진 규산질쇄설성 퇴적암과 상반된 모습이다. 저자는 다양한 기후모델을 개발해 미래의 기후를 추정하고 그에 근거해 미래에 대비해 공학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러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이어서 시리즈의 예정편인 생물학, 물리학, 화학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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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03-14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지식들이 많아서 좋아요.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5-03-14 07:39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책이지요.. 감사합니다..
 

책 선물을 받으면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 좋은 점은 지식을 확장할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이고, 좋지 않은 점은 읽어야 할 것도 제대로 못 읽는 지경인데 피드백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읽어야 할 것도 충분히 읽지 못하면서 존 쉘비 스퐁의 ‘성경의 시대착오적인 폭력들’을 구입했다. 과제로 읽어야 할 것들 사이 사이에 읽을 생각이다. 요즘은 철학책들을 다시 읽으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도착한 ‘외우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과학’에 이런 내용이 있다. '책머리에‘란 제목의 글에서 나온 것으로 “지질학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엉킨 실타래 같습니다. 암석을 구성하는 단위인 광물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싶어 광물 단원을 펼쳐보면 복잡한 화학식과 난해한 결정구조, 수많은 광물 관련 용어가 빽빽하게 도배되어 있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구의 역사부터 들여다볼까 하면 지질시대는 너무나 길고 방대했으며 특히 누대와 대 이하 규모로 내려가면 이름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이는 대기과학자, 해앙학자, 지질학자 등 세 공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전공 지식을 밀도 높게 제공하기보다 다소 주관적이더라도 소소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큰 흐름 안에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지식을 담으려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책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이런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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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은 감리교신학대학 홍정수 교수께서 감리교단에서 출교(黜敎)당한 해다. 이 해는 내가 이 분의 베짜는 하나님을 읽은 해이기도 하다.(이 책은 처음 베짜는 하나님으로 출간되었다가 후에 베짜는 하느님으로 바뀌었다.) 홍정수 교수가 출교당한 것은 예수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제목인 베짜는 하나님은 호전적이고 진노하는 구약의 하나님과 대비되는 신약의 평화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변했을 리 없고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한자인 우리가 규정한 하나님론이 성경에 기록된 것인가? 라는 의문이 가능하다. 어떻든 만일 이(시각 변화)에 동의할 수 없다면 어째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누가 해명해주길 바란다.


얼마 전 이 분의 유튜브를 알게 되었다. 1992년 읽은 베짜는 하나님을 비롯 이런 저런 이야기를 댓글로 달았다. 이 분은 대속론(代贖論)이 없는 기독교도 변함없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분이 주장하는 바울 및 어거스틴과 다른 예수론에 공감한다.


나는 가끔 제도 교회 및 그들의 신학을 통하지 않고 또는 우회하여 직접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없을까?란 생각을 한다. 문제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물리칠 수 없다는 점이다. 과정신학(過程神學)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이 신학은 신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장하고 형성되는 영원한 과정에 있다고 가르치는 신학이다.


얼마 전 함께 신앙생활 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아야 할 만큼 결핍된 존재가 아니기에 예배를 받을 필요는 없으나 예배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기에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베르그손의 과정사상을 읽을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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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이토록 지적인 산책에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스타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지질학자는 타이포그라퍼, 일러스트레이터, 곤충 박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의사, 음향 엔지니어 등 책에 나오는 여러 전문가 가운데 하나다. 시드니를 소개한 지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암석은 싸늘하지만 자연에서 온 것이고 거의 살아 있다. 물을 흡수하고, 햇빛을 받으면 따뜻해지고, 비를 맞으면 허물을 벗는다. 우리처럼 암석도 시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해 세월이 지나면 바깥층이 부드럽게 마모되고 핏줄처럼 얽힌 결도 더욱 두드러진다.“


호렌스타인은 우리는 지질학, 하면 발밑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질학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만 알고 있어도 화제를 따라가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말한다. 그 최소한의 사실이 점차 발전해서 지식의 호수를 이루게 되면 우리는 전문가를 자처하며 그 사실을 지적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전문성을 얻음과 동시에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변화가 생기고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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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존재들 -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는 혁명적 환경 철학
에릭 잠파 앤더슨 지음, 김성환 옮김 / 한문화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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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잠파 앤더슨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세상의 중심이 되는 존재라는 신념인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인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구에 살아가는 동안 모든 존재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이야기다. 티베트 의학을 공부하고 불교를 수행한 역사학자이자 교육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식물을 사용 대상이 아닌 관계 자체를 위한 고유한 생명체로 바라보게 된 전환이 자리한다. 


저자는 2017년 캘리포니아 토팡가의 티베트 의학 클리닉으로 시작해 2019년 런던으로 이전한 후 신체적, 정신적, 생태적 회복에 전념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한 Shrimala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초자연적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외면해 온 수많은 존재들을 이르는 말이다. 저자는 모든 생명이 본질적으로 인식 능력이 있고 모든 존재가 자신의 진화론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인식 과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에는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태도가 오늘날 무수한 사회적, 생태적 위기를 불렀다. 


저자는 인류세란 용어는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권력을 행사한 수천 년의 기간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수동적인 사물이나 배경이 아닌 밀접하게 연결된 작용 요인들의 광대한 집합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라 말한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모든 인류가 기후 위기에 같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곧 자연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인간 아닌 존재들을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법을 매우 효율적으로 학습한 결과다. 


저자는 동물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 아닌 생명체를 생물학적 기계로 간주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인간중심주의의 뿌리로 규정한다. 인간중심주의의 시작은 그리스였지만 그것을 전 세계로 이어지게 한 세력은 기독교다. 물론 저자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생기는 문제들을 모두 플라톤의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남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자연의 배경화를 옹호하는 사상들의 뿌리가 대부분 그리스 철학의 이 위대한 거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한다.(111 페이지) 


기독교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로마 지역의 종교 운동인 만큼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발달한 다양한 철학사상을 이어받은 상속자나 다름없다.(117 페이지) 성체성사와 같은 기독교 의례는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았을뿐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를 지배했던 신비주의적 제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도들은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깊은 친밀감을 나타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실상 불멸의 창조신 관념에 반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톨릭 교회의 권위자들은 말썽이 생길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욱 확고하게 융합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혼(理性魂) 개념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인간의 존재적 우위는 물론 인간적인 탐색의 과정을 통해 신성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개념 모두를 입증하려 했다. 이 두 전통을 하나로 합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인간 중심주의라는 공통의 기반 덕분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입증하기 위해 개와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인 생체 해부 실험을 벌여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20세기 초가 될 때까지 뉴턴과 다윈주의는 우주의 작용에 신성이 관여한다는 모든 가설을 완전히 몰아냈다.(122 페이지) 


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관건은 인간중심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인간의 번영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36 페이지) 탄소발자국이란 용어는 과학자나 정책입안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석유와 가스 산업에 쏠리는 부정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브리티시 페트롤륨이란 석유 & 가스 회사가 고용한 홍보 전문 기업이 만든 용어다. 민간 부문 사업자들은 산업 규제의 기미만 보이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반발했고 인간이 자연의 제약을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위해 지구를 창조했다면 인류의 번영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식의 인간중심주의적 신화를 즐겨 인용했다. 


저자는 가장 설득력 있는 과학 이론이라 해도 이야기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스마트폰이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신을 제품 하나만 보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신화적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경험과 정체성을 고려해 구매하는 것을 보라. 저자는 갈릴레오나 뉴턴, 마리 퀴리 같은 혁신적인 연구자들도 하나같이 과학적인 과정에 냉철하게 몰두하면서도 마술적인 기법과 초자연적인 신념에도 진지한 관심을 보였음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식물의 뿌리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Merlin Sheldrake 참고) 뿌리는 진화론적으로 뒤늦게 추가된 부분이다. 식물이 독자적으로 성장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들은 5000만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뿌리의 역할을 대신하는 균류에게 의존해 왔다. 마치 실처럼 생긴 이 균사체는 식물군이 땅속으로 수 킬로미터까지 뻗어나가면서 화학 신호와 영양분 치료용 화합물 등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균류가 없었더라면 초기의 식물은 5억 년 전에 절대 물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균근균은 수천만년 동안 식물의 뿌리 역할을 했고 식물이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법을 배운 후에도 계속해서 식물군을 돕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오늘날에도 균사체는 식물 공동체 내에 민감한 미생물 군집을 보호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번영을 돕는다. 


하지만 균류가 그저 식물의 보디가드겸 광대역 통신망을 제공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태양빛을 활용해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유기체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유형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환경을 유지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존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균류는 사실 유전학적으로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 특수성 덕에 그들은 생명체계 속에서 그들 자신만의 특별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균류가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균류는 우리의 내부와 주변부에 두루 퍼진 채 자연환경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인간 아닌 존재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이 주조(鑄造)한 하나의 공동 산물과도 같다.(101 페이지) 신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143 페이지) 신성의 개념은 우리 발아래에 있는 땅을 향한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고 우리를 생태학적인 해리(解離) 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옥, 악마 등의 개념이 유대 계시 신앙과 조로아스터교의 상호작용으로 뒤늦게 추가된 개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기후 변화의 결과들과 직면하겠지만 그 결과가 균형 잡히거나 균등한 방식으로 배분되지는 않을 것이다.(152 페이지) 


티베트 의학에서는 정신 질환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 때문에 시작된 병으로 보기도 한다.(172 페이지) 티베트 의학의 패러다임에 따르면 인류의 건강은 우리 주변 존재들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개인의 몸과 에너지, 마음의 균형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내부의 균형까지 함께 유지해야 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신화라는 말을 넓게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한다. 자연 세계와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평범한 바위조차 무한한 경외감의 원천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과학 소설가 어슬러 르 귄은 일반적인 현실주의 소설들과 달리 공상 소설은 인간이 아닌 개체들을 핵심적인 존재로 포용한다고 말했다. 르 귄에 의하면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과 대등한 가치를 지닌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강박과도 같은 현실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214 페이지) 저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 존 로널드 루엘 톨킨(반지의 제왕의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공상은 인간의 자연스런 활동이다. 이것은 이성을 파괴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 게다가 공상은 과학적 진실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지도 진실에 대한 취향을 무디게 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이성이 더 예리하고 명료할수록 창작할 수 있는 공상의 질 역시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이를 종교와 과학의 관계로 바꾸어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과학적 이성에 능할수록 종교적 마인드가 더 높아진다고. 저자는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모두를 자연 자체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242 페이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붓다의 8정도이다. 저자의 글을 통해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메시지에 공감할지 모르겠다. 아니 공감은 많은 사람들이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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