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때문에 한국 수녀원에서 제명되기도 했던 박정은 수녀/ 영성학 교수의 ‘사려 깊은 수다‘를 읽었습니다. ‘여성은 어떻게 이야기를 통해 성장하는가‘란 부제를 가진, 영성(spurituality) 특히 여성의 영성을 주제로 한 책이지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인간학, 심리학, 종교, 정치,경제 등 여러 영역을 두루 통합하여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포괄적 개념이라는 영성에 대한 관심 때문에 책을 읽은 셈인데요 저자의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영성과 사회성 또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아 아쉬움이 듭니다.

여성의 몸과 성이 통제의 대상이 된 것을 사유재산제도가 실시된 후 토지나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차원으로 설명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성과 사회성을 두루 고려해 통합하는 상상력과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구체적 대안은 다른 책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려 깊은 수다‘가 의도한 바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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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에게 묻는 심리학
김태형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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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심리학자의'거장에게 묻는 심리학'은 프로이트(정신분석학), 융(분석심리학), 프롬(사회심리학), 매슬로(인본주의심리학) 등 심리학의 네 거장을 대표하는 저서들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선정된 책들은 대표작이기보다 개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세계관에 대하여'(프로이트), '무의식에 대한 접근'(융), '인간의 마음'(프롬),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매슬로) 등이 해당 책들이다.

정신분석은 주류 심리학의 비판을 받지만 옳건 틀리건 간에 사람의 정신과 행동 모두를 포괄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보수 세력의 비과학적 세계관이 지적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프로이트는 세계관을 과학적 세계관, 종교적 세계관, 철학적 세계관으로 나누었다.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은 오직 과학적 세계관만을 받아들여아 한다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세계관의 가장 큰 적을 종교적 세계관으로 보았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종교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투사된 것이다. 저자는 천국에 대한 영상은 개인들의 아버지 관계가 아니라 지배와 착취가 없는 이상사회에 대한 인류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긴 세월 동안 서구인들의 정신을 지배해온 종교가 그들이 과학적 세겨관을 가질 수 없도록 방해하며 유아기의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27 페이지)

저자는 상대적이라 해서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33 페이지) 프로이트는 무정부주의 철학을 우선 문제삼았다. 저자는 철학적 상대주의가 불가지론에 잇닿아 있다고 말하며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본 칸트도 불가지론자로 분류한다.(37 페이지)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주의에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43 페이지)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경제적인 동기 하나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문제삼은 것은 서유럽에서 동일한 경제 발전 단계에서 어떤 나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어떤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연산군과 정조의 차이를 생각할 수 있다.

연산군과 정조 모두 비극적으로 부모(연산군은 어머니인 폐비 윤씨,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었지만 임금이 되어 너무 다른 길을 걸었다.

프로이트는 경제적 요인들의 힘보다 본능의 힘이 더 크다고 믿었다.(43 페이지) 저자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에 경제적 동기의 중요성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것을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주의가 원래는 과학과 기술의 토대 위에 세워졌던 학문이었으나 러시아혁명에 적용되면서부터 종교처럼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47 페이지) 분명한 것은 사회경제적 조건만으로 인간심리를 올바로 설명할 수 없으며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개인심리나 집단심리가 그에 비례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48 페이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제도가 확립되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적인 심리를 가지게 될 거라 암묵적으로 믿었다.(47, 48 페이지)

러시아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사회적 동기를 원만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사람들을 건강한 사회적 동기를 가진 존재로 바꾸지 못했다.(49 페이지) 프로이트는 세계관 그 자체의 무용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비과학적인 세계관을 배격하려 했다.(51 페이지)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한 것은 프로이트의 성욕설을 정면 부정했기 때문이다.(55 페이지) 융은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분석심리학을 정립했다.(55 페이지)

융은 꿈은 검열 때문에 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솔직한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사람은 무의식의 원시 심성을 이용해 꿈을 꾼다고 보았다. 또한 원시 심성은 현대인의 언어나 의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난해하다고 주장했다.

융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마주치는 용어나 이름이나 한 장의 그림 따위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명백한 의미 외에도 특정 함의를 지니고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상징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63 페이지)

융은 상징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무의식이 별다른 조작이나 변형을 가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도 해석자에게는 (해석해야 할) 상징이 된다는 의미이다.(64 페이지)

융은 집단 표상 또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67 페이지) 융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원형이 있다. 이는 개인적 상징과 대비되는 집단적 상징이다.(70 페이지)

저자는 집단적 상징에 불과한 원형 그 자체가 어떤 집단적 모티프나 본능적 경향을 담고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71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집단적 상징이나 심상에 불과한 원형은 자체 내에 모티프나 본능적 경향성을 담을 수는 없으며 단지 어떤 모티프나 본능적 충동을 유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71 페이지)

"가장 문명화된 사회라고 자부하던 서구유럽에서 어떻게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왜 수많은 대중이 파시스트에게 열광하고 그들이 내리는 부도덕한 명령에 복종했던 것일까?","사람에게는 악마적 본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프롬은 이런 문제들과 씨름했다.(107 페이지)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을 접목시켜 사회현상을 설명하려 한 특이한 심리학자이다.(108 페이지)

프롬은 인간은 늑대인가, 양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프롬은 성악설을 주장한 사상가들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라 비판했다.(111 페이지) 프롬은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악하게 행동하지 않고, 악한 행위임이 분명할 때 동조하지 않고 사람들이 악한 행위를 하면 정신건강이 나빠진다는 점 등을 들어 성악설은 오류라고 보았다.

성악설이 맞다면 즉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면 악행을 할 경우 정신건강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성악설은 오류라는 것이다. 프롬은 그럼에도 서양의 도덕적 파산과 심리적 무력감 때문에 성악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113 페이지)

프롬은 전쟁은 사람이 악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 방어 목적, 집단의 명성과 영광 등 다양한 사회적 원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데 심리주의는 이런 주요 원인들을 무시하고 공격성 또는 폭력 행위의 원인을 모두 인간심리로 환원시키므로 오류라고 보았다.(113 페이지)

물론 프롬은 성선설도 수용하지 않았다. 프롬은 성악설과 성선설을 모두 반대하며 인간은 늑대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롬에게 선은 삶을 사랑하는 것, 악은 죽음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프롬은 순수하게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고 순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보았다.

프롬은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랑이 프로이트의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을 살짝 바꾼 것이 아니라 말했다. 관련이 있지만 명백히 다르다는 것이다.(116 페이지) 프롬은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 이론을 비판했다.

프롬은 인생이 삶의 본능과 죽음 본능이 싸우는 전쟁터라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반대해 인생은 삶의 본능이 지배하는 과정인데 다만 삶의 본능이 다하면 죽게 되는 것으로 보았다. 프롬은 죽음 본능은 사람의 근본 본능이 아니라 삶의 본능이 좌절된 결과로 보았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을 죽음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 아닌 경향성이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나르시시즘의 모든 형태에 공통된 점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는 프롬의 말은 유명하다.

프로이트가 나르시시즘을 성욕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 본 반면 프롬은 심리적 에너지가 자신을 향햐는 것이라 보았다. 프롬의 견해가 타당해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 비판에 대한 비정상적 과민반응, 자아도취와 부풀려진 자기상, 자기중심성과 합리적 판단의 왜곡 등을 특징으로 한다.

나르시시즘은 명백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이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은 저주이며 그 극단적인 형태는 자기파멸이란 말을 했다. 프롬은 나르시시즘적 동기나 감정이 성 본능이나 생존 본능에 비견될 만큼 강력하다고 주장했다.(129 페이지)

저자는 병적인 집단을 형성하는 데 작용하는 집단심리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대중의 나르시시즘적 경향이 아니라 프롬이 근친상간적 고착과 관련해 질타한 의존심인 것 같다고 말한다.(133, 134 페이지)

저자는 프롬이 나르시시즘을 정상적인 자기애와 혼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프롬이 나르시시즘을 성욕에 비견될 만큼 중요하고 강력한 것으로 본 것은 그가 프로이트의 이론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심리적 에너지의 방향이 자기를 향하기 때문에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욕구 때문에 에너지가 밖으로 향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 말한다.(135 페이지)

모든 사람이 주체할 수 없는 나르시시즘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은 오류이다. 프롬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가 어머니에 대한 고착을 낳는 것(프로이트의 주장)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고착이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를 낳는다고 지적했다.(137 페이지)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간의 보편적 동기가 아니라 부모관계에 문제가 있는 일부 사람들이 갖는 어머니에 대한 비정상적 욕망이라 설명한다. 유아는 성을 모르므로 어머니에 대한 성욕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생애 초기에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집착에 후에 눈뜨게 된 성욕을 덧씌울 경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되는 것이다.(137 페이지)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머니 또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대상에 의존하려 한다. 그런데 그 집단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인종과 민족, 종파와 정당이 사랑을 보증해주는 어머니들이 된다.(139 페이지)

프롬에 의하면 전 성기적 의미에서의 근친상간적 충동은 남성과 여성의 기본적 격정 가운데 하나이다.(138 페이지)

근친상간적 욕망은 타인 또는 다른 사회집단을 사랑하는능력을 손상시킨다. 저자는 생애 초기의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성인의 근친상간적 소망은 같은 것이라는 프롬의 이론은 오류라고 말한다.

저자는 근친상간적 경향은 모든 사람의 기본 경향이 아니며 설령 아이 시절에 그런 소망이 있다 해도 그것은 어른의 근친상간적 욕망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143 페이지)

매슬로가 심리학 연구에 발을 들여 놓을 무렵 심리학계는 정신분석학과 행동주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다.(169 페이지)

매슬로는 정신분석학이 기본적으로 신경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기초해 만들어진 심리학이어서 사람의 어두운 면, 병리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폐단이 있다고 생각했다.(169 페이지)

매슬로는 정신분석학의 우울하고 비괸적인 인생관을 거부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행동을 외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보고 사람은 이러한 일련의 자극 - 반응들의 연합을 학습하는 존재라고 보는 학습이론을 주장했다.(170 페이지)

매슬로는 사악한 인간보다 선한 인간, 병자보다 건강한 인간, 소극적인 사람보다 적극적인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71 페이지) 매슬로가 사망하기 2년 전 출간된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는 제3의 심리학 이론이 갖는 성과만이 아니라 한계까지도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정신분석학은 정신병을 서로 반대되는 동기나 감정 사이의 심리적 갈등의 결과로 보고 행동주의는 부적절한 학습 결과로 본다. 반면 매슬로의 인본주의 심리학은 욕구 결핍 또는 좌절의 결과로 본다.(172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의 기본 동기를 성 본능과 즉음 본능이 아니라 사회적 욕구를 포함하는 5가지 욕구로 보았다.(173 페이지) 매슬로는 식욕과 성욕과 같은 생물학적 동기 외에 사회적 동기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사회적 동기를 더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175 페이지)

매슬로의 5가지 욕구는 다음과 같다. 생리적 욕구, 안정 및 안전 욕구(이상 생물학적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 욕구/ 심미적 욕구/ 인식 욕구(이상 사회적 욕구) 저자는 기존 심리학은 사람이 결핍 동기만이 아니라 성장 동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간과해왔다.

결핍 동기는 한 번 충족되면 더 이상 동기로 작용하지 않는다. 반면 자아실현 욕구 같은 성장 동기는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된다. 동물과는 달리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성장동기이다.(181 페이지)

매슬로는 각각의 욕구들은 독립적이어서 따로 또는 동시병행적으로 추구될 수 있다고 보았다.(183 페이지) 결론적으로 하위 욕구를 원만하게 충족시킨 사람일수록 상위 욕구로 나아가기가 훨씬 쉽다고 할 수 있다.(184 페이지)

저자는 생물학적 동기는 결핍동기, 사회적 동기는 성장동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185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이 성장 동기 뿐 아니라 방어 및 퇴행 경향도 가지고 있음도 인정했다. 매슬로는 사람은 안전한 상황에서는 성장을 추구하지만 위험과 위협, 실패와 좌절 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후퇴하거나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188 페이지)

매슬로는 사람에게는 앎을 추구하는 경향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경항도 있다고 보았다. 주의할 것은 앎을 두려워하는 경향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부모가 자식의 성적 호기심을 불편해 하는 것, 착취자나 폭군이 피지배자들이 지식을 쌓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무지나 거짓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등이다.

물론 세번째는 자신에 대한 것이다. 매슬로는 자아실현 욕구를 최상의 욕구이자 유일한 성장 동기로 보았다.(220 페이지) 자아실현이란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건강한 사람은 심리적 병에서 자유로운 사람, 사회와의 관계맺기에 성공한 사람,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사람 등으로 본다.

저자가 말했듯 자아실현은 함께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다. 홀로 살면 자아실현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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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의 최** 기자가 새로 나온 ‘이효석 전집‘(서울대 출판문화원 발간, 2016년 11월)에 대해 교감(交感)은 있지만 교감(校勘)은 없다고 평했네요.(1월 26일)

원본과 이본을 함께 수록하고 이본 대조표를 제시하는 작업을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네요.

교감(校勘)은 조선 시대 중국과 왕래하며 외교 문서를 만들거나 정리하던 승문원(承文院)의 종4품 벼슬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같은 종류의 여러 책을 비교하여 차이나는 것들을 바로잡는 것을 뜻하네요.(勘: 헤아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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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심리학자의 책들을 많이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최근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이 책은 내가 읽은 김태형 님의 첫 책이다.)를 읽고서 하게 된 생각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거장에게 배우는 심리학‘이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는 사도세자의 정상성을 재확인하게 해준 책이기에 의미가 크다.
이 책이 주목되는 것은 산(蒜: 후에 왕위에 등극해 사후 정조라는 ‘묘호; 廟號‘를 얻는)의 정상성을 입증한 뒤 아이가 아버지(또는 어머니)와 갖는 관계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론에 근거해 아버지 사도세자의 정상성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등이 조선왕조실록 등에 근거를 두고 사도세자의 정상성을 증거한 바 있지만 ‘아버지 - 아들‘ 관계에 초점을 두고 아들은 물론 아버지의 정상성을 한꺼번에 입증한 방식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덕일 소장의 경우 역사의 음지(陰地)에 묻힌 인물들을 발굴해내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덕일 소장이 역사적 인물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준은 그들이 묻힌 이유이다. 이덕일 소장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이렇다.

왕권까지 위협하는 거대 정당에 맞서 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김일경, 증오의 시대에 사랑의 정치를 역설한 윤증, 폐쇄된 사회에서 개방된 사회를 지향하다가 사형당한 이가환 등등...

김태형 님은 사람들이 정조를 다혈질이라 말하지만 정조는 감정기복이 크지 않았고 분노도 매우 잘 통제했기에 다혈질이 아니라 설명한다.

김태형 님의 책은 다른 독자에게도 인상적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 같다.

오늘 아침 누군가 내가 쓴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리뷰를 보고 책을 구매해 리뷰 작성자인 내게 판매가의 1%인 140원이 적립되도록 했다.

그러니 발간 8년이 지난 책을 일부러 찾아 읽고 리뷰를 써 관심있는 학인으로 하여금 책을 구매하게 한 나도 진실을 알리는데 일조한 셈이 된다. 하지만 나는 저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흐 사후 200년이나 묻혀 있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고서점에서 발견하고 오랜 세월 연습을 하고 또 한 뒤 완벽하게 연주해 세상에 알린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생각을 하게 된다.

바흐 사후 잊혀진 마태수난곡 악보를 발견, 재조명해 무대에 다시 올린 멘델스존도 카잘스와 함께 음악의 지층을 탐험한 고고학자라 할 수 있다.
이덕일 소장과 김태형 심리학자는 역사의 지층을 탐험하는 고고학자이다.

녹음 기술 발달 이전의 음악은 작곡가가 생존했을 경우 여러 차례 연주되지만 세상을 떠나면 잊혀졌다.

이는 카잘스나 멘델스존의 일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사전 지식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왜곡, 조작의 대상이 되곤 한다.

국문학을 전공한 뒤 시를 쓰다가 낯선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독일로 간 허수경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말 그대로의 고고학자와 비유적 의미의 고고학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해주는 말이다.
˝내가 무덤을 건드리는 것을 저어하는 까닭은 다만 죽은 자의 휴식을 정말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이 있는 곳에는 무덤도 있다. 꽃이나 음식이나 술을 들고 무덤을 방문하는 일은 죽은 자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하는

일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무덤을 방문하는 이는 도굴꾼이거나 고고학자들이다.˝(‘모래도시를 찾아서‘ 1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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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름다울 가(佳)자와 빚을 온(醞)자를 넣어 만든 시가온(詩佳醞)이란 시 창작 동호회에 참여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를 빚는다는 표현은 참 아름다운데 도자기에 대해서도 쓰이는 다의적인 빚는다란 단어를 잘 택했다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보았듯 시를 빚는다는 말을 풀면 어떤 단어가 적당할까? 제작, 창조, 생산 가운데 어떤 것에 해당할까? 제작이나 생산에 비해 창조는 의미가 참 거창해 보인다.

물론 시를 제작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시를 거듭되는 수정과 퇴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조란 말에는 종교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

순간적 감흥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낭만적 의미와 함께. 시가온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보고 책을 찾다가 유종호 교수의 ‘시란 무엇인가‘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눈에 띈 부분은 산문작가도 문체에 주력하는 한 창조적 구사를 수행하게 마련이기에 문체는 산문의 시라고도 할 수 있고 언어예술가라는 점에서 모든 문인은 시인이라 할 수 있다는 글(263 페이지)이다.

유종호 교수가 그렇게 볼 수 있는 글로 든 것이 최윤 작가의 ‘회색 눈사람‘이란 소설이다. 유종호 교수는 이 소설 속 한 문장을 제시한다.

˝우리를 만들어준 것은 알렉세이 아스타체프의 ‘폭력의 시학; 무명 아나키스트의 전기‘였다˝

유종호 교수는 이어 이 우리라는 말이 소설 속 인물들인 그들만이 아닌 글을 읽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효과를 낸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물론 덧붙여 우리에게는 다정하고 세심한 반폭력의 시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지었다.(275 페이지)

어떻든 나에게 흥미를 주는 점은 필요한 것은 폭력의 시학인가 반폭력의 시학인가가 아니다. 소설의 내용이 내 관심거리이다.

유신시대를 배경으로 한 ‘회색 눈사람‘은 당시의 고난마저 낭만과 서정으로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발단은 이렇다. 강하원이라는 가난한 여자 대학생이 학기가 끝나면 교재를 내다 팔고 다음 학기 교재를 구입하는데 청계천의 한 헌책방에서 바로 그 아스타체프의 책을 구입하게 된다.

금서를 산 것인데 강하원은 이 반복되는 일을 하며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 다시 팔아야 했기에 그것은 저금의 의미를 띤 행위였다.

몇달이 지난 어느 날 강하원은 그 책을 누군가 찾는다는 헌책방 주인의 말을 듣고 그들과 접촉을 시도해 문화혁명회라는 지하운동 단체와 관계하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 상처와도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마음을 흔든다.

이는 문화혁명회와 관계한 지 20년 정도가 지난 당시를 회고하며 강하원이 남긴 말이다.

소설에 나오는 단체이지만 내력을 밝히면 문화혁명회는 발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된다. 상처와도 같은 빛 운운하는 문장은 내가 몇 차례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 관심사는 아스타체프의 책이 계기가 되어 강하원과 문화혁명회가 만나게 된 것에 닿아 있다.

오후에 군 도서관 기증 도서(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코너에서 봉화 정씨 문헌공종회가 펴낸 삼봉학 국제 학술대회 기록물인 ‘정도전과 동아시아 신질서 구축‘이란 책자를 보고 집으로 가져왔다.

4개월 전 발간된 것인데 우리 군 도서관에서 그 자료를 보게된 것은 순수한 기증의 결과일까, 아니면 차마 쓰레기처럼 처리할 수 없어 투기(投棄)하듯 던진 결과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있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자료집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원론적이지만 모든 책은 소중한 인용 가치를 지닌다.

나는 다만 내 인연이 ‘회색 눈사람‘에서와 같은 식으로 펼쳐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사람이기에 ‘아픈 바로 그 곳‘을 뜻하는 한의학의 아시혈저럼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기야 그런 미련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들도 사온 것이다. 한소식 하기를 기다리는 선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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