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 자리한 라이너노트라는 음악 책 전문 서점을 티브이로 보았지요.(라이너노트; 음반 해설지) 대표는 박미리새라는 시크한 이름을 가진 여자 분이지요. 미리내(은하수)를 배경으로 해 새가 날아가는 태몽에서 비롯된 실재 이름이라네요.

 

오늘 조류학자(ornithologist)의 심정으로 사실상 첫 탐조(探鳥)길에 오르는, 그리고 서울 해설 코스를 구상하는 제게 영감으로 다가오는 동네고 서점이고 이름이네요. 어제 박씨 성을 가진 영민한 여자 영어 강사 분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꿈 작업에 속하는 응축과 치환을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오늘 아침 같은 박씨 성을 가진 세련되고 이지적인 분을 보게 되어 행복하네요. 참고로 피곤 탓인지 어제 저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꾸었는데 새가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꿈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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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급등 사유 없음 - 세력의 주가급등 패턴을 찾는 공시 매뉴얼
장지웅 지음 / (주)이상미디랩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주가급등 사유 없음’은 아주 전문적인 책이다. 저자 장지웅은 인수합병 분야의 전문가다. 저자는 이 책을 단순화시켜 접근한 책으로 소개한다. 어려운 용어를 알려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어려운 용어들이 대략 어떤 의미인지 알면 족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말한다. 불확실한 요소만 따라가는 투자는 단기적인 운에 편승한 위험한 습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리고 주가의 상승 이유는 찾기 쉽지만 주가가 왜 저점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머무는지, 어느 시점에 어떠한 이유로 저점에서 벗어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주가 상승의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상식적인 근거를 나열하거나, 검증이 어려워 모호한 영역인 세력이라는 용어를 아무 종목에나 갖다 붙이는 경우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주식과 투자를 대하는 요령을 귀띔한다. 비유도 적절히 한다. 밀푀유나베, 사랑 등등...어떤가? 저자의 말은 가슴 아프기도 할 것이다. 가령 차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나만큼은 잃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은 결국 쓰디쓴 투자 실패로 되돌아온다는 말...

 

주식도 심리에 좌우되고 더구나 맹목적이기 쉽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냉정해야 한다. 세력 이야기도 하자. 세력들은 사전 작업을 위해 1년 정도의 계획을 세워 입장(43 페이지)하고 세력주는 폭락장도 버틴다(48 페이지)는 말. 세력에게 있어 시너지나 경영은 아무 의미도 없고 누가 하든 상관 없고 오직 M&A를 수단으로 자본 차익을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69 페이지)

 

개인 투자자만 주가의 등락에 마음 졸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기는 길은 분명 있다.(71 페이지) 저자는 말한다. 과도한 망상과 자신감에 사로잡혀 복용법을 어기고 남용할 거라면 당장 이 책을 덮으라고. 그런 분은 평생 주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다른 용어는 모르더라도 메자닌 채권이란 말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메자닌 채권이란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메자닌)을 가진 채권이다. 메자닌이란 원래 이탈리아어로 건물 1층과 2층 사이의 라운지를 말한다.

 

이제 다시 세력 이야기를 하자. 세력이 종목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가총액의 규모다. 기준은 2천억이다.(89 페이지) CB(Convertible Bond; 전환사채)와 BW(Bond with Warrant;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한다고 해서 전부 세력주는 아니다. 핵심은 흐름 속에서 기회비용에 집착하는 세력의 통일성이 드러나는가에 있다.(103 페이지)

 

구체적인 예를 보자. 주당 1,000원에 거래되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고 하자. 그런데 주가가 폭락해 담보가치가 떨어지니 채권자가 반대매매로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채권자가 회수도 안 하고 느긋하면 십중팔구 꿍꿍이가 있는 세력주다.(119, 120 페이지)

 

일반적인 자금 출처는 회사 유보금, 증자, 담보대출, CB나 BW, 주주출자 등 다섯 가지인데 세력은 어떤 방식을 택할까? 예상과 다르게 세력은 다소 생소하게 신사업은 보통 주식교환이나 교환사채를 발행해 추진하고 신규투자는 보유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133 페이지) 저자는 실전에서 도움이 되는 내용을 먼저 소개한 뒤 독자들의 주식 투자에 대한 다양한 이해도를 고려하여 세력의 작전 시나리오를 큰 그림에서 포괄적으로 정리한다.

 

모두(冒頭)에서 전문적이라는 말을 했지만 단순화시켜 접근했다는 말처럼 설명을 쉽고 상세하게 해준 덕분에 스토리텔링을 대하는 듯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저자는 설명한 이야기를 큰 무리 없이 잘 따라오고 있다면 다시 탄탄한 스토리로 머릿속에 정리해보자고, 가치투자나 보수적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는 독자라면 주의하고 피해야 할 패턴을 확실히 숙지하는 기회로 삼길 권한다고 말한다.(189 페이지)

 

세력들은 금감원 앞에서도 당당할 만큼 진화한다.(195 페이지) 안심스럽게도(?) 저자는 세력이 실패하는 여섯 가지 사례를 제시한다. 전부 옮기기보다 두 가지를 든다면 그 하나는 기존 대표이사나 최대주주가 실권을 내놓지 않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표이사와 최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이 있을 때다.(202 페이지)

 

책 제목처럼 저자는 ‘아무도 모른다.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이란 말을 한다. 테마나 재료가 붙어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밖에서 바라보는 결과론적 해석일 뿐이다. 중요한 말을 보자. “주식시장이란 테마와 명분을 찾아 헤매는 욕망이 가격이라는 숫자로 바로 환원되는 신기한 곳이다”.(209 페이지)

 

저자는 처음 주식을 접했을 때 대표이사나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으면 욕심 없고 착한 사람이고, 그런 리더가 이끄는 회사라면 분명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하도록 해줄 것이고, 실수해도 눈감아주는 가족 같은 회사일 것 같았고, 당연히 충성스러운 직원들도 많아 실적 역시 아주 좋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하고 주식시장 무서운 줄 몰랐던 시절이라고 말한다.(223 페이지)

 

주식과 관련된 소문은 참으로 다양하다. 주식에 발을 담근 이라면 구구절절 사연이 많을 것이다. 주식 이야기 중 세력과 작전은 언제나 빠지지 않는 흥미로운 소재다. 영화 같은 배신 이야기를 사람들은 특히 재밌어 한다.(235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세력이란 부정적이고 불법적인 의미의 세력도 있지만 주로 합법적인 M&A 판을 만드는 세력이다.(236 페이지)

 

종결부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주식 관련 책을 몇 권 읽지 않은 가운데 ‘주가급등 사유 없음’은 가장 인상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잘못된 상식에 함몰되어 난처한 지경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준다는 의미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영화 이야기를 한다. ‘아수라‘, 절박하고 비루한 인간들의 삶이 모여들어 끝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스토리의 영화다.

 

“세력에 가담한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아수라의 한복판으로 말려 들어간다.”(293 페이지) “M&A와 세력에게 있어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시세차익을 만드는 건 번외편일 뿐이다. 오히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거래 담당자 등 수많은 관계에서의 수 싸움이 본편에 가깝다. 결국 세력도 별 수 없는 비루한 인간이기에 각개 전투로 몸부림치고, 하나는 죽어야 하는 혈투를 벌이며 살아간다.”(295 페이지)

 

참으로 드라마틱한 말이다. ’세력보다 지저분한 마귀라는 존재’라는 챕터를 보자. 세력은 최대한 자본시장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며 시장의 규칙을 따른다. 마귀는 법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어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대신 책임을 뒤집어씌울 바지사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귀가 조직폭력배 부류는 아니다. 마귀 중에는 사채업자가 많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마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마귀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실형을 받지 않도록 세팅을 해놓았다거나 형을 살더라도 그 이후를 책임져줄 만큼 큰 금액을 제시하는 등의 약속이다.

 

“검찰이 구형의 기준으로 삼는 자본시장법은 애매한 부분이 정말 많다. 그래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도 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미공개정보이용, 시세조종, 주가조작, 시장질서 교란, 자금유용, 횡령, 배임 등 자본시장법 관련 위반 사례가 현실에서 뚜렷하게 입증되는 경우는 드물다.(318 페이지)

 

저자는 다시 시작이니 모든 시장참여자가 같은 출발선에 섰다며 이제부터는 세력에 당하지 말고 당신이 돈을 위해 세력을 고용하는 투자자로 건승하길 응원한다고 말한다.(331 페이지) 참 독특한 책이고 교훈적인 책이다.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차근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야겠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주식 관련 전문가가 결코 아니지만 저자의 내공을 보니 나도 도 한 번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어림 없는 일이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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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길상사(吉祥寺), 종로 대각사(大覺寺), 파주 보광사(普光寺), 경주 불국사(佛國寺), 화성 용주사(龍珠寺), 영월 법흥사(法興寺)...지금껏 해설한 여섯 사찰이다. 종로 청룡사(靑龍寺)를 해보고 싶다. 허경(虛鏡) 스님이 수행하다 82세로 입적한 동망산 자락의 사찰이다. 시누이의 시댁(해주 정씨의 남양주 진전읍)에 묻힌 비운의 인물이다.

 

조카(시누이의 아들) 정미수(鄭眉壽)의 간청을 받아 그를 시양자(侍養子)로 삼은 것이 그나마 아름답고 마음 훈훈하게 다가온다. 허경 스님이 시누이의 시댁의 선산에 묻힌 것 역시 정미수의 덕이었다.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이 분이 궁에서 나올 때 따라나온 여인들 모두 스님이 되었다.

 

아버지 신수근(愼守勤)이 반정 세력편에 서지 않고 연산군편에 섰다는 이유로 왕비 자리에서 쫓겨난 중종 원비 단경왕후 신씨가 연산군의 비였기에 쫓겨난 고모 폐비 신씨를 친정에서 만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지난 번 영월 시간에는 청룡사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정순왕후가 궁에서 나올 때 따라나온 후궁 권씨는 허경(努鏡)이라는 법명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努’가 허로도 읽히는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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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엔 산사에 간다 - 막힌 일상을 확 풀어줄, 자연주의 도심 산사 20곳
여태동 글.사진 / 크리에디트(Creedit)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몇년째 서울 (중심의) 문화 해설을 하다 보니 몇 가지 예기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해설 포스트의 대부분은 종로구의 장소들이고 나머지는 중구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산사(山寺)라는 말에 걸맞게 대부분 산에 있는 사찰은 해설 포스트로 삼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성북을 하며 길상사를 포함시킨 적이 있고, 종로를 하며 대각사(大覺寺)를 포함시킨 적이 있다. 지방의 경우 파주 시간에 보광사를, 경주 시간에 불국사를, 화성 시간에 용주사를, 영월 시간에 법흥사를, 철원 시간에 도피안사를 포함시켰을 뿐이었다.

 

여태동 저자의 ’점심시간엔 산사에 간다‘는 내게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우이동 도선사에서 홍은동 옥천암까지 모두 서울의 사찰, 그 가운데서도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란 점이다. 책에서 다루어진 사찰은 모두 20곳으로 내 고충과 달리 종로나 중구 외의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찰 한 곳만을 해설할 수도 있지만 대개 두 시간을 하는 문화 해설에서 사찰 특집이 아닌 이상 책에서 소개된 사찰만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해당 사찰 주변의 문화 유산이나 유적지를 시간을 고려해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현대적인 건축물을 할 수도 있고 서울 미래유산을 포함시킬 수 있다.

 

스무 곳의 사찰 가운데 한 번이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은 견지동 조계사, 성북동 길상사, 정릉동 봉국사 등 세곳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 된 이래 사숙(私淑)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런 염(念)으로 존경했던 일지(一指) 스님이 지난 2004년 45세의 세수(歲首)로 입적(入寂)하신 갈현동 수국사는 특별히 관심이 간다.

 

책의 특징은 각 사찰의 시작 부분에 사찰의 개략적 정보와 길 안내가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점심 시간엔 산사에 간다‘는 출간된 지 13년이 넘었는데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다는 말은 저자가 종로 우정국로에 소재한 전법회관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었던 불교신문 기자로 있을 때 나온 말이니 종로 중심가에서 점심 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고 관건은 ’전철 또는 지하철에서 어디’라는 말이다.

 

강북구 우이동을 주소지로 한 도선사(道詵寺)는 북한산의 남쪽 지역에 자리한 사찰이다.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이어서 도선사다. 의아한 것은 삼각산 도선사라는 현판이 있음에도 북한산 도선사라 소개한 것이다.

 

두 번째 사찰은 견지동 조계사(曹溪寺)다. 너무 유명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곳이다. 주변에 우정국과 수송공원이 있다. 수송공원은 목은 이색 선생의 사당이 있는 곳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정국 건물 구석에 충정공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세 번째 사찰은 상도동 사자암(獅子庵)이다. 이 사찰은 광화문 양편에 불을 잡는 해태를 세우고 숭례문을 지어 불기운을 막고자 한 것처럼 비슷한 목적으로 지은 사찰로 경복궁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기운을 누르고자 사자 형상을 한 곳에 세웠다. 이를 비보(裨補)사찰이라 한다.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한 기운을 제하는 것도 비보다.

 

네 번째 사찰은 수유동 화계사(華溪寺)다. 숭산 스님이 주석했던 인연으로 외국인들이 찾아와 수행하는 국제적 선원이다. 화계사 앞에 한신대학원이 있다.

 

다섯 번째 사찰은 갈현동 수국사다.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의 수국사(守國寺)다. 세조가 일찍 죽은 아들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를 위해 지은 사찰로 정인사(正因寺)라 불리다가 경종이 아버지 숙종과 인현왕후의 명릉(明陵)의 사찰 이름을 가져와 수국사라 했다.(경종 1년) 본문에 내가 이야기한 일지 스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이 반승(半僧), 반속(半俗)의 모습으로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섯 번째 사찰은 진관외동 진관사(津寬寺)다. 비구니 스님들의 주석처다. 일곱 번째 사찰은 진관외동 삼천사(三千寺)다. 조선시대에 3000명이 수행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삼천사란 이름도 이로부터 유래했다. 임진전쟁 당시에는 스님들의 집결지였다. 서울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여덟 번째 사찰은 정릉동 심곡암(深谷庵)이다. 저자는 자신이 심곡암을 자주 찾는 이유는 주지 스님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했듯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큰 복이다.

 

아홉 번째 사찰은 정릉동 경국사(慶國寺)다. 고려 충숙왕 12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 청암사(靑巖寺)라 불리다가 조선 명종 5년 문정왕후가 나라에 경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경국사로 개명했다. 임진전쟁 당시 서산대사(휴정)와 사명대사(유정)가 머물며 승병을 지휘한 사찰이다. “경국사는 숲으로 둘러싸인 초록 요새다. 그래서 절에 들어서면 안온하다. 어지간한 구중심처보다 더 깊은 맛을 자아내는 사찰이다.”(125 페이지)

 

열 번째 사찰은 구기동 승가사(僧伽寺)다. 구기동(舊基洞)은 종로구에 속한 동이다. 구기동 이북 5도청이 있는 버스 종점에서 내려 아래로 10여미터를 내려오면 승가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열한 번째 사찰은 성북동 길상사(吉祥寺)다. 책에 소개된 사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김영한(자야, 길상화 보살) 신도와 백석 시인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법정 스님 사연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소유를 덜어내는 궤적으로 설명한다.(149 페이지) 경내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최종태씨가 화강암으로 만들어 봉안한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열두 번째 사찰은 신촌 봉원사(奉元寺)다. 전통 불교 의식인 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靈山齋)를 보존하고 있는 근본 도량이다. 신라말 도선 국사가 반야사라는 명칭으로 창건하였고 고려말 태고 보우가 중창하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삼존불을 조성하였다. 영조 때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봉원사라는 현판도 내렸다. 사람들은 이후 봉원사를 새 절이라 불렀다. 신촌(新村)이란 이름도 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열세 번째 사찰은 구기동 금선사(金仙寺)다. 승가사에 이어 다시 만나는 구기동의 사찰이다. 고려말 또는 조선초 무학대사가 지었다고 알려졌다. 이 절은 정조와 수빈 박씨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순조를 낳은 분이 수빈 박씨다. 농산 스님이 순조로 환생한 것을 알게 된 정조는 스님을 핍박하던 폐단을 없애고 내수사(內需司)에 명하여 목정굴 위에 절을 크게 중창하게 했다.

 

이 일로 매년 음력 6월 18일 순조의 탄신제가 열린다. 목정굴에서 정진하던 농산 스님이 앉은 채 열반에 들었고 굴 안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瑞氣)가 왕실에 닿아 산실을 휘감았다. 저자는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맞다고 말한다.(178 페이지.. 본문에는 세옹지마라 나온다.)

 

의빈 성씨가 사망한 후 수빈 박씨가 후궁이 되었는데 이는 홍수 때문이었다. 화평옹주(사도세자의 친 여동생)의 남편이자 정조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던 박명원(연암 박지원의 8촌 형)은 못생기고 철없는 자기 딸 대신 홍수 때문에 집을 잃고 자신의 집을 찾아온 먼 친척 박생원의 딸을 후궁 간택에 내보낸 것이다.(수빈 박씨; 순조 어머니. 의빈 성씨; 문효세자 어머니.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김씨)

 

열네 번째 사찰은 삼성동 봉은사(奉恩寺)다. 봉은사는 추사 김정희가 쓴 판전(板殿)이 있다. 저자는 판전을 보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한승원 작가의 소설 ‘추사’를 읽고 자세를 달리 했다고 말한다. “봉은사에 가면 꼭 봐야 할 나무가 있다.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지만 부도전 옆 경사면에 서 있는 산사나무다. 수령만해도 200년이 훨씬 넘은 이 나무는 가을이면 엄지 구슬만한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한자로는 산사목(山査木)이다.”(191 페이지)

 

열다섯 번째 사찰은 흑석동 달마사(達磨寺)다. 서달산의 사찰로 돌이 많아 서덜서덜 다녔다고 해서 서덜산이라 불리기도 했다.(서덜: 냇가나 강가 따위의 돌이 많은 곳,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 뼈, 대가리, 껍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열여섯 번째 사찰은 구의동 영화사(永華寺)다.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절이다. 신라 문무왕 1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해 화양사(華陽寺)라 불렀다. 아차산에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온달과 관련한 것이 하나, 조선 명종 때 홍계관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다.

 

열일곱 번째 사찰은 정릉동 봉국사(奉國寺)다. 한양으로 수도를 정한 후 무학대사가 비보사찰을 세웠다. 현종(숙종 아버지)이 태조의 두 번째 비 신덕왕후의 묘를 능묘로 정한 후 명복을 비는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하고 나라를 받는다는 의미의 봉국사라 불렀다.

 

사찰 중심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영락전(靈樂殿)이 있다. 봉국사의 중심 건물은 만월보전(滿月寶殿)으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어머니 품 같은 산사 분위기를 전해주는 건물은 광응전(光膺殿)이다.

 

열여덟 번째 사찰은 숭인동 청룡사(靑龍寺)다. 종로구 숭인동 17 - 1 번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단종과 비(妃) 정순왕후 송씨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사찰이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낙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곧바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청룡사가 나온다. 청룡사 한켠에 정업원구기가 있고 앞에 동망봉이 보인다.

 

청룡사를 끼고 왼쪽으로 오르면 원각사가 나온다. 그 옆 복원된 초가 뒤뜰에 자주동천이라는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왕대비에서 대역죄인이 된 정순왕후는 더는 수강궁에 머물 수 없어 삼각산 청룡사로 향했다. 정업원(淨業院)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하고 경전을 독송하며 죄업을 참회했던 정순왕후는 궁 밖으로 나서면서 출가를 결심했다.

 

정업원은 처음에는 내불당(內佛堂)이라 불렸으나 유생들이 항의를 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청정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정업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궁을 나선 정순왕후는 청룡사에 머물렀다. 청룡사에 하룻밤을 보낸 단종은 다음날 정순왕후와 헤어져 한맺힌 유배길을 갔다.

 

정순왕후는 단종을 마을 다리까지 배웅했다. 이 다리는 후세에 영원히 이별을 나눈 다리라 하여 영리교(永離橋)라 불렸다. 정순왕후는 청룡사 지진 스님으로부터 허경(虛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세조가 된 수양대군은 정순왕후에게 영빈전이란 작은 집을 짓고 식량을 내렸으나 허경 스님은 끝내 거부하고 청룡사에서 기거하며 82세까지 살았다.

 

정순왕후는 입적 후 단종의 누나인 경혜 공주의 시댁인 정씨 집안의 묘역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사능리에 묻혔다.(‘사릉; 思陵‘) 177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 11월 6일 단종 복위와 더불어 정순왕후로 복위되어 종묘에 신위가 모셔졌다.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안 정순왕후가 동망봉(東望峯)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 온 마을 여인네들이 땅 한 번 치고 가슴 한 번 치며 동정하는 곡을 했다.

 

열아홉 번째 사찰은 삼성암(三聖庵)이다. 150년 정도된 사찰이다.

 

스무 번째(마지막) 사찰은 홍은동 옥천암(玉川庵)이다. 자하문(紫霞門) 지나 세검정(洗劍亭) 지나 흰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이다. 1990년대만 해도 생활 폐수로 검은 물이 흘렀고 연희동으로 빠지는 홍제천(弘濟川)은 먼 옛날 옥처럼 맑은 물이 흘러 옥천이라 했다. 이 계곡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옥천암에는 하얀 관세음보살이 마애불(磨崖佛)로 새겨져 있다. 조선 태조도 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마애불 앞에서 기원했다고 한다.(2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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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 전기원은 극한 직업 중 하나다. 위험하고 힘들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직업인 까닭에 일당이 4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십 미터 높이의 송전탑에 올라 작업하는 송전 전기원들은 높이, 바람, 고전압(물론 '활선; 活線'을 '사선; 死線'으로 바꾸는 조치를 취하지만 잔여 전압도 작지 않다.) 등과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송전탑과 송전탑 사이에는 여러 겹의 전선이 이어져 있다. 선들 사이에 접촉이 생기면 화재 등의 사고가 나기에 그러지 못하도록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스페이셔 댐퍼(spacer damper)를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기에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스페이셔 댐퍼를 코로나 시대의 마스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교육방송의 극한직업 프로그램에 나온 한 송전 전기원은 자신에게 산타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없다. 그 분들은 PVC 재질의 안전장치로 손의 마찰을 방지해가며 하나의 송전탑에서 이웃 송전탑으로 이동해간다. 스페이셔 댐퍼가 선과 선의 접촉을 막는 장치라면 PVC 안전장치는 손과 선의 직접 접촉을 막는 장치다.

 

무거운 장비와 함께 가는 것이기에 요령 같은 것이 있냐는 취재팀에게 힘으로 할 뿐이라고 답하는 전기원을 보았다. 장인(匠人)에게서 나온 극히 상식적인 말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진 여건에서 일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본 교육방송 극한직업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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