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현학적일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은 탓에 좌암우장(左巖右長)이란 말을 쓰지 못했다. 연천 지질공원의 핵심이라 할 좌상바위가 마을 좌측에, 장승(長丞)이 우측에 있는 것을 보고 좌묘우사(左廟右社)에 견주어 표현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이다.(좌암우장이란 내가 만든 말이다.)

 

자살바위라고도 불렸고 풀무산이라고도 불렸던 좌상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바위다. 풀무산은 바위 모양이 풀무 같거나 그곳에서 풀무질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용암을 분출한 화산을 풀무산이라 부른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풀무는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는 기구고 화산에서 나오는 것은 불이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는 풀무산이란 이름이 더 좋다.

 

이곳의 기반암은 고생대 데본기에 형성된 미산암이다.(연천군 미산면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 미산암이다.) 미산암은 아우라지 베개용암과 함께 한탄강 지질공원이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되는데 중요한 몫을 했다.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 활동의 결과물이라니 생각나는 것은 공룡이다. 당시 연천에도 공룡이 살았을까? 알 수 없다.(연구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말이다.)

 

로마의 화산의 신인 불카누스(Vulcanus)란 말에서 화산(volcano)이란 말이 나왔다. 용암이 묽을수록 분화 기둥은 분수처럼 흩어진다. 이런 용암은 평범한 강물처럼 움직인다. 차이가 있다면 피처럼 붉을 뿐이란 점이다. 지질 공부를 하니 현무암의 어두움을 많이 접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붉음도 그에 못지 않게 자주 생각하게 된다. 적벽(赤壁)이란 말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붉음이 대표적이다. 자색(紫色)이 붉은색을 훼손하는 것을 미워했던 공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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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철원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철원 평화 여행 진행을 위한 사전 답사 차원의 여행이었습니다. 전곡에서 경원선 전철 연장공사로 인해 운행하는 대체 버스를 타고 백마고지역에 내려 마중 나오신 철원 자연환경해설사 김선생님과 함께 노동당사를 거쳐 지뢰꽃길을 통해 소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지뢰꽃길을 통해 우회한 것은 이야기거리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라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수국이 인상적이었고 지뢰 지대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쳐놓은 울타리가 군데 군데 뚫려 있는 것을 보며 살기 위해 치러야 했을 들짐승들의 고난을 제 일인 듯 여기는 이입(移入)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오리산, 검불랑, 평강고원, 오성산 등 상대적으로 먼 북의 땅과 경원선, 옛 한탄강, 백마고지, 고암산, 아이스크림 고지, 철원평야, 노동당사, 그리고 지뢰꽃길을 내려다 보며 김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철원 평화 여행 해설을 준비하기 위해 부탁한 노동당사와 소이산 뿐 아니라 직탕폭포, 고석정, 승일교, 송대소, 도피안사(여행 후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 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등으로 저를 안내하시며 친절히 해설해주셨습니다.

 

점심은 동송에서 순대국으로 해결하고 포천 관인으로 향했습니다. 지장산 도연암이 목적지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도피안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찰문화해설사 2기생들이 수업을 받다가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대적광전이 있어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웅보전은 없고 대적광전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라고요.

 

그러자 한 교육생이 대적광전이 대웅보전이라고 답해 저는 뜻하지 않게 얕은 불교 지식을 늘어놓는 파계(破戒)를 했습니다.(얕은 지식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듯 늘어놓지 말자는 제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다는 의미입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殿閣)이고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인데 대웅보전의 경우 협시(夾侍)가 모두 부처일 때 해당하고 협시가 보살이면 대웅전이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부처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참 힘드네...” ,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을 동정(同定; 생물의 ; ; 을 결정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분류의 의미로 동정이란 말을 썼습니다.)하고 나무를 동정하고 새를 동정하고 꽃을 동정하고 곤충을 동정하는 것에 비하면 부처를 분류해 아는 것은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지요? 미안함이 컸습니다.

 

어제 철원 일정의 마지막으로 간 도연암(度淵庵)의 생태 해설사 스님은 , 나무 이름 하나 더 안다고 의미가 있지 않다, 그 지식을 생태철학적으로 연결해 메시지를 전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김선생님은 제가 스님과 이야기가 통할 것이라 생각하시고 저를 그곳으로 데려가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와 도()는 다르지만 도()는 법도를 의미하는 한편 건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승려가 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승려가 되다라는 말은 도첩제(度牒制)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도첩제는 고려조선 시대에 백성이 출가(出家)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승려가 되려는 자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고 허가장을 내주던 제도를 말합니다.

 

철원의 옛 지명이 태봉(泰封)이었다는 김선생님의 말에 저는 태()는 주역의 지천태(地天泰)괘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궁예의 상대자였던 왕건이 주역의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이름을 얻어와 이천(利川)이라는 지명을 만들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섭대천이란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의미죠.

 

그러고 보니 어제 우리의 여행은 주제가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도피안사(到彼岸寺)의 도는 당도하다는 의미이지만 건너는 수고로움을 감내한 결과지요. 도연암(度淵庵)의 도()는 법도이기도 하고 건넘이기도 하지요. 고석정(孤石亭) 앞에서도, 도연암에서도 두루미를 보았습니다. 물론 모형이었습니다.

 

()이 두루미를 의미하지만 학()도 두루미를 의미합니다.(은 두루미 뿐 아니라 고상할 각, 오를 흑, 높이날 확 등도 의미합니다.) 언어 유희를 하자면 철원은 태봉이었고 태봉국을 세운 궁예는 미륵(彌勒)을 자처했지요. ()는 두루 미란 글자이지요. 두루미와 두루 미.. ()은 새 추()에 덮을 멱()을 추가한 것이지요.

 

묘갈(墓碣)과 묘비(墓碑)가 있지요. 묘갈은 비석이되 민머리 형태고 묘비는 지붕을 얹은 것이지요. 비유하자면 새는 묘갈, 학은 묘비이지요. ()든 도()든 스스로 해내야 도()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에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등의 의미가 있지요.) 어제 제 여행은 한탄강을 나누어 가진 철원에서 시작해 포천을 거쳐 연천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 철원과 연천은 이도(李祹)라는 이름을 가졌던 세종(世宗)의 강무(講武; 사냥을 겸한 무예 훈련)지였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은 평강(平康)으로 강무를 가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애민 군주였지만 강무에 대해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성과 군사들의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강무를 강행한 것입니다. 추위에 얼고 굶주린 군사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세종의 아들 수양(首陽)은 부왕 세종의 강무 강행은 건국과 창업기의 어수선함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다고 말했지요.

 

어제 소이산에서 느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May peace prevail on earth’란 문구에 대해서입니다. prevail이 만연하다, 이기다 등의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평화를 허락하소서란 의미의 라틴어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이 어떨까요? 김선생님께 특별히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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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해설 교육을 받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니 받는 내내 그렇다. 내가 하는 문화해설보다 지질 해설이 어렵고, 지질해설보다 숲/ 생태 해설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질과 숲 모두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을 다룬다. 그래서 두 분야 모두 어려운 것이리라. 지질은 돌만 알면(그것도 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는데 숲은 새, 나무, , , 곤충 등을 두루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숲 해설 교육 기관이 교육생들로 하여금 그런 것들을 두루 알게 할 정도로 충분하고 강도 높은 일정을 택하지는 않는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부가 중요하다. 나는 숲해설 자격증을 취득하더라도 상당 기간 아이들에게는 해설하지 못할 것 같다. / 생태에 정통하지 못하고 세부적인 면보다 전체적인 구조를 이야기하며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리는 것과 관련된 호소를 하면 어른들에게는 그나마 통용될 것 같다.

 

오늘 곤충 전문가 강사는 우리나라는 자연과학 후진국이라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선진국들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자연과학 커리큘럼이 잘 구성되어 있다. 탐욕 또는 개발 만능주의가 그런 기초 지식을 소용없게 하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배워야 한다.

 

강사의 말 가운데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는 역사 교육 그리고 역사 담론에 너무 치중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인문과학 구체적으로 말해 자연과학을 배제하거나 자연과학에 기초하지 않고 인문과학만을 이야기하고 배우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로 고쳐야 한다. 그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숲 이야기에서 고생대, 중생대 이야기도 역사다. 자연과학사()인 것이다.

 

뒤숭숭하다. 18일 수원화성 해설을 11월로 미루고(또는 1011일로 한 주 앞당기고) 노동당사 소이산 평화전망대 해설을 하기로 수락했다. 덜컥 하겠다고 했다. 걱정스럽다. 열심히 준비할 생각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문제다. 공부 열심히 할 기회라 생각한다. 시간이 있으니 책도 찾고 동영상도 보고 준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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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총애하던 정조 사후 6년이 지난 1806년부터 1824년까지 정치적 위험을 피해 18년의 자발적 유배 시간을 보낸 풍석(楓石) 서유구는 자신을 다섯 가지를 낭비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오비거사(五費居士)라 칭했다.

 

그가 낭비했다고 말한 다섯 가지는 1. 젊어서 공부한 시간, 2. 출사해 규장각 각신으로 보낸 시간, 3. 집안이 몰락해 향촌에서 농사와 농학에 매진한 시간, 4. 조정에 다시 불려가 벼슬한 시간, 5. 임원경제지를 편찬한 시간 등이다.

 

겸양의 말이 아니라 후학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기 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 이전에 치열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았던 서유구에게도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겠다고 생각할 단서가 아닐까 싶다.

 

정약용보다 두 살 어린 서유구는 정조가 초계문신들에게 시경(詩經)에서 문제를 내 답을 제출하게 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579 문제에서 서유구가 제시한 답은 181개가 채택되었고 정약용이 제시한 답은 117개가 채택되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의 요리편의 이름을 정조지(鼎俎志)로 정했다. 서유구는 정(; )과 조(; 도마)가 요리 도구이지만 고대부터 희생(犧牲) 제물을 담던 제기였다는 점에 착안을 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여러 한자에 제사의 의미가 있다. ()는 제사상을 풍성하게 차린 것을 의미하고 특()은 특별하다는 뜻 외에 제사에 바치는 희생(犧牲; 제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재상을 뜻하는 재()에는 저민 고기의 의미가 있다.

 

봉선(封禪)에서 봉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하고 선은 땅에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약체상증(礿禘嘗烝)에서 약은 봄 제사, 체는 여름 제사, 상은 가을 제사, 증은 겨울 제사를 이른다.

 

제사가 참 세분화, 전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유구는 정조(鼎俎)와 제기(祭器)를 연결지어 무슨 말을 하려한 것일까? 향을 피워 혼()을 부르고 울창주(鬱鬯酒)를 부어 백()을 부르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끽할 수 없을 고대 제사의 세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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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내용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교우투분 절마잠규(交友投分 切磨箴規)란 구절이다. 벗을 사귀어 마음을 나누고 지식을 연마하며 서로 경계하고 바로잡는다는 뜻이다()는 의탁하다, 의지하다, 편이 되다 등을 뜻한다.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나간다는 의미로 증자(曾子)가 언급한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란 구절과 어울리는 말이다천자문은 이런 도리도 가르치고 뜻 밖의 의미도 알려준다


가령 엄택곡부 미단숙영(奄宅曲阜 微旦孰營)이란 구절을 보라. 노나라 곡부를 어루만져 다스리니 주공 단()이 아니면 누가() 경영하겠는가란 뜻의 말에서 엄()은 문득이란 뜻 외에 어루만지다는 뜻으로 쓰였고 미()는 작다는 뜻 외에 아니다란 뜻으로 쓰였고 숙()은 익힐 숙 외에 누구의 의미로 쓰였다. 공자가 꿈에서도 뵙지 못해 안타까워 한 주공 단을 천자문에서 만나는 기쁨이 있다.(곡부는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곡부현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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