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때로 생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영혼은 반드시 혼돈의 용암(熔岩)을 필요로 한다." 나다공동체 대표 김화영 교수의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에 나오는 말이다.(172 페이지)

 

나는 이 빛나는 상상력의 글을 보며 재미 없는 과학 이야기를 생각한다. 융해(融解; fusion, melting)는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녹는) 것이고, 용해(熔解; dissolution)는 물질이 액체 속에서 균일하게 녹아 용액이 만들어지는 일(물에 소금이 녹는 것)이라는.

 

응고(凝固; coagulation, clotting)는 액체가 고체가 되는 것이고, 액화(液化: liquefaction)는 기체가 액체가 되는 것이라는. 기화(氣化; evaporation)는 액체가 기체가 되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은 융()과 용()이 모두 녹는다는 뜻이란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체에서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가 되는 것뿐 아니라 기체가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체가 되는 것도 승화(昇華)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고체에서 기체가 되는 것만을 승화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을 긍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욕망으로 바꾸는 것을 승화라 생각한다. 긍정적이거나 이타적인 욕망에서 부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으로 돌아서는 것을 승화라고 하는 것은 어의상 그 반대의 경우도 승화이기에 문제가 있다.

 

승화라는 말 대신 마음을 돌이키는 순간, 번쩍 혹은 아하 하는 초월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 메타노이아란 말을 쓰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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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 금요일에 반납함의 책을 수거하는 것을 화, 목요일에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어제(27일 수요일) 저녁 반납함에 열 권 중 여섯 권을 넣고 오늘(28일 목요일) 도서관에 가 네 권은 다시 빌리고 여섯 권은 새로운 것들로 빌리려 했다. 직원이 여섯 권이 반납 처리되지 않아 네 권만 빌리실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빌리려던 네 권 가운데 한 권만을 다시 빌리고 세 권은 새로 빌렸다. 이렇게 수습했지만 야구로 치자면 베이스를 적절하게 앞둔 거리에서 슬라이딩을 한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슬라이딩을 해 어정쩡한 곳에서 아웃 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열 권을 빌리려다가 여섯 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손가락을 잘라내는 것 같았다고 하면 지나칠까? 하지만 오늘 일이 꼭 나쁜 상황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내가 정말 원하는 책 또는 필요로 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나 잘 했지?”라고 묻자 친구는 호응하며 열 권 다 들고 오려면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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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힘들면 회사 그만두지 그래"가 안 되는 이유란 책이 있지요. 시오마치 코나란 이름을 가진 일본 만화가의 책입니다. 디자이너 시절 과로자살할 뻔한 본인의 경험담을 그린 만화로 유명인이 된 사람의 책이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선택한 일이니까 열심히 하고, 장시간 일하고 어느 정도 참는 것도 당연하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치지 않고 한계를 넘었어도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기를 바라고 쓴 책이지요. 오늘 20대의 소방관이 근무가 힘들다는 하소연을 남기고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자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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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을 반복하고 기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아이가 귀엽다고 말하면 어김 없이 결혼과 연결짓고, 결혼 말이 나오면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게 되니 하라고 말하고, 게시판의 숫자가 실제와 많이 달라서 지적하면 원래 그러는 것이라 말한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니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들은 내용적으로 소박하고 인식론적으로 거칠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실천도 실천 나름이 아니겠는가? 실천과 무관한 지식도 있지 않은가? 진공 상태에서 빛의 속도가 초속 30km라는 말을 안 사람이 할 실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론과 실천을 나누지 말고 실천이 필요한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자기것 화 하자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를 환대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최근 김형경 작가의 말에서 한 수 배웠다. 정신분석을 받기 전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자신이 책에서 세상을 배웠기 때문에 세상살이에서 자주 삑사리를 낸다고 여긴 것이라는 말,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범할 때마다 자신이 책에서 세상을 배워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 것이라는 말(‘좋은 이별’ 228 페이지)이다.

 

이진경 교수의 책에서도 한 수 배웠다. 세상이 아무리 명료하고 뚜렷이 규정하더라도 존재자는 단지 하나의 규정된 대상이 아니라는 말(‘예술, 존재에 휘말리다’ 216 페이지)이다. “낯선 시간의 세계, 낯선 자전의 세계를 말하는 저자는 베테랑이란 어쩌면 영원히 실패를 반복할 줄 아는 자를 뜻하는 것 아닐까”(같은 책 248 페이지)란 말을 더한다.

 

나는 이 말로부터 전문가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을 떠올린다. 하이젠베르크가 청소년기에 원자론이 수록되어 있는 플라톤의 저서 티마이오스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뮌헨대학교의 그리스어문학과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자가 육면체이거나 피라미드형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은 헛소리라 간파했지만 물질의 최소단위를 모르고서는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는 플라톤의 기본 사상에 매료되어 입자 탐구에 평생을 바쳤다.(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지음 신의 입자‘ 308 페이지)

 

불합리한 생각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 역시 전문가다. 상투적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사무엘 베케트의 말)는 말을 생각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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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11월 이래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 글을 써서 모두 100 차례 이상 적립금을 탔다.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란 작품이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적립금 수상자가 되게 한 책이었다.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플래닛 워커란 개념이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행성을 걷는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개념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존 프란시스는 의도에 따른 전면적 걷기를 수행한 사람이고 나는 필요 차원에서 아주 제한적인 걷기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플래닛이란 말의 어원이다. 지오가 지각, 지질 등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구를 의미하는 반면 플래닛은 방랑자를 의미하는 천문학적 개념인 행성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공전도 하고 자전도 하는 방랑하는 구체(球體)로 본 것이 플래닛이란 개념이다. 다만 지오는 지구(Geo)를 그림으로 표현(graph: write)하는 학문인 지리학과 지구에 대한 학문인 지질학으로 나뉜다. 지리학이 지질학보다 매력적인 어원을 가진 학문임을 알 수 있다.

 

각설하고 상기한 책의 저자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원유 유출 사건에 자신도 무관할 수 없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침묵하게 되었고 마침내 세계 평화와 환경 캠페인을 호소하는 지구 순례에 나서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긴 서두로 글을 시작한 것은 그제(519) 재인폭포로 가는 길에 느낀 감회를 말하기 위해서다. 고문리에 한탄강댐이 생기기 전까지 재인폭포까지 운행하던 버스를 이제는 마을이 있는 곳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차가 없는 나는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을에서 재인폭포까지 빠른 걸음으로 22분 정도가 걸린다.

 

엉겅퀴와 메타세콰이어를 볼 수 있고 새 소리나 맹꽁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길이다. 그제는 어둡게 내려 앉은 하늘을 보며 걷다가 목적지를 반쯤 남겨두었을 무렵 결국 비를 만났다. 책을 빌리기 위해서나 답사를 위해서나 걷곤 하지만 해설 지점에 가기 위해 걷는 것은 처음이어서 아직 감회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묘한 기분이 든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다지난 56일 이후 몇 번 걸은 결과 꽤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몇 차례 더 걸으면 걷기 명상을 수행하는 것 같을 수 있고 지질해설에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근무 시작 시각인 10시 안에 도착하려면 전곡 버스 터미널에서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전곡에서 같은 군내의 지점에 가기 위해 두 시간 전에 버스를 타는가, 란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겠지만 사정이 있다. 이 버스를 타고 가야 근무 시작 시각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나는 더 천천히 걸어도 되는 이 시간대의 길을 빨리 걷고 있다. 굳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8시 다음 버스는 925분에 출발하는 버스인데 이 차를 타면 마을이 있는 곳에 950분쯤에 도착하고 근무지에는 시작 시각인 10시를 넘긴 1015분 쯤에 도착하게 된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의 차를 타고 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정도일 뿐 아니라 나는 여유가 되면 백의리층과 신답리 키푸카, 아우라지 베개용암, 좌상바위 등을 볼 수 있는 길을 천천히 음미하며 걷고 싶다.

 

베개용암이나 좌상바위에 지질 해설 포스트가 생기면 전곡에서 청산이나 포천 가는 버스를 타고 우체국 앞에서 내려 지금 재인폭포를 가기 위해 마을에서 25분 정도 걸어야 하듯 가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에게 베개용암이나 좌상바위는 지난 해 말까지도 연천의 다른 자연 풍광들과 차이가 없었던 곳들이다.

 

내게는 뚜벅이는 멋진 개성이고 가장 환경에 보탬이 되는 길, 지속가능하고 자랑스러운 삶의 방식이잖아요?”란 말을 해준 동기(同期)도 있다. 나는 앞에서 말한 존 프란시스는 물론 교통 개혁 운동을 벌이며 남편과 함께 차 이용을 줄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케이티 앨버드와도 다른 걷기 동기(動機)를 가졌다. 예컨대 존 프란시스와 케이티 앨버드는 나와 다른 동기(動機)를 가진 걷기 동지(同志)인 셈이다. 마종기 시인이 의대 본과 3학년 시절 수업을 받은 산과(産科) 강의실 옆의 인체해부실습장의 사체들을 내 미래의 친구들이라 표현한 것이 생각난다.

 

1946년생의 존과 2000(원서 출간 년도) 현재 15년 넘게 교통 개혁 운동을 수행한 케이티는 어쩌면 내가 걷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시절에 이미 걷기를 마친, 나와 동시대에 같이 걸은 적이 없는 내 과거의 친구들인지도 모른다.

 

앨버드는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Divorce Your Car!)'란 책에서 보너르펀(Woonerven) 이야기를 했다. 보너르펀은 보행자에게 통행 우선권이 있고 자동차는 낮은 속도로만 다녀야 하는 거리를 말한다. 앨버드는 자동차가 거리를 점령하고 보행자를 겁주어 쫓아버리는 과정이 악순환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차가 너무 많아 의욕을 상실한 보행자들이 차를 몰기 시작하면 불어난 차에 더욱 많은 보행자들이 겁을 먹고 달아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불어난 차들을 수용하기 위해 나무들을 베고 보도를 없애고 가로를 확장한다면 길은 더욱 위험하고 걷기 어려운 곳이 될 것이다.(209, 210 페이지그럼 바로 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보행 환경을 만드는 차들은 어떤 패턴으로 도로를 움직일까? 당연히 질주와 정체(停滯)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구체화해서 말하면 차의 속도는 상황마다 다르다. 이진경 교수의 수학의 몽상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메피스토가 마차가 고개를 오를 때와 내릴 때, 넓은 길을 갈 때와 붐비는 좁은 길을 갈 때 모두 그 속도로 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라고 말하자 캘큘러스는 그래. 사실 속도는 매순간 달라지겠지. 문제는 평균속도가 아니라 바로 순간순간의 속도를 구하는 거란 말야.”라고 답하는 대화다.(90 페이지)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도 이야기할 부분이기도 하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관성(慣性)계에 적용되는데, 관성계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 개념입니다. 우주라는 것은 일단 물질이 있어야 성립되는 개념이며, 물질이 존재하는 한 중력(重力)이 필연적으로 생성되고, 중력이 생성되면 어떤 불질이나 크건 작건 그에 의한 가속(加速)을 받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등속(等速)운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일반상대성 이론은 애초부터 가속계와 중력장을 적용 대상으로 출발한 이론이므로 현실적인 계에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만일 중력의 영향이 극히 작아 무시할 수 있다거나 하는 특수한 경우에는 특수상대성 이론을 적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특수상대성 이론은 그 적용범위가 특수한 경우로 한정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고중숙 지음 내 머리로 이해하는 E = mc²’ 235, 236 페이지)

 

무리한 연결인지 모르지만 나는 차들이 움직이는 패턴을 보며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이론(斷續平衡理論)을 생각한다. 이는 굴드가 지구가 탄생한 45억년 전부터 꾸준하게 같은 방식과 같은 속도로 작용한 지질학적 과정이 지구의 일반적인 특징을 만들었다는 동일과정설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단속평형이론은 변화란 충분한 동안 급속히 진행된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잠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는 화석 기록에서 중간 형태가 부족한 것을 설명해준다.

 

천재들의 과학노트 지구과학편의 저자인 분자생물학 박사 캐서린 쿨렌은 지구과학, 고생물학, 생물학 및 진화에 대한 현대적 교과서들이 모두 단속평형설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240 페이지)

 

굴드가 풀하우스에서 인용한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세계는 늘 변화로 가득하다. 몸은 자라 죽고, 종은 출현하고 사라지고, 우리의 고향인 지구의 모든 특징들은 서서히 변하거나 격변을 통해 한순간에 바뀌곤 한다.”는 말을 했다.(‘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28 페이지) 닐 슈빈에 의하면 인류는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패턴을 찾도록 진화한 시각적 동물이다.(같은 책 228 페이지생명체의 본질을, 차이들을 수용하면서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설명한 이정우 교수의 논의(‘탐독’ 253 페이지)에 기대어 공부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란 기존 지식들을 재배치해 자기 이론을 만드는 것이고 타자(他者)들의 논의를 수용해 이전보다 더 복잡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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