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1632 - 1677)에게 데카르트와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 스승 반 덴 엔덴이었을 것이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29 페이지) 클라라 마리아 반 덴 엔덴은 스피노자가 사랑했던, 스승 반 덴 엔덴의 딸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되풀이하자면 스피노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예속으로 간주해 거부하고 렌즈 세공 장인이 되어 독립한 사람이고 유산을 가로챈 동생과 소송을 벌여 승리한 뒤 동생에게 재산을 다 돌려준 사람이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제의한 교수직도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자신이 싫어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가르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사람이다.

 

스피노자가 그 대학으로부터 받은 제안은 기존 종교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었다.(손기태 지음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25 페이지) 자유인인 그는 그러나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하고 렌즈 깎는 일을 하다 폐질환으로 죽는데 그것은 세공 때 나온 유리 먼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피노자 전문가 스티븐 내들러는 스피노자가 클라라 마리아 반 덴 엔덴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종종 말했으며 비록 그녀의 몸이 연약하고 기형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날카로운 정신과 뛰어난 학식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썼다.(‘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223 페이지)

 

하지만 스피노자의 사랑은 그녀가 동료 학생인 테오도르 케르크링크(케르크링)와 결혼함으로써 슬프게 끝났다. ‘평생 독신을 유지한 그의 삶이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어떻든 한 연구자는 스피노자를 원한도 가책도 없는 삶, 서로에게 죽음이 되지 않는 삶, 오직 긍정으로만 가득한 삶, 그런 삶만을 실천하고자 했던사람으로 소개한다.(이수영 지음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16 페이지)

 

철학자 시인 서동욱은 스피노자를 “...모두가 증오했던 책의 저자/ 탐낼 것 없는 이 지위는/ 어이없이 덧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목적 없이 살아야 한다...”(시집 곡면의 힘수록 시 스피노자’: 109 페이지)란 말로 표현했다.

 

철학자 신승철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무의식, 욕망, 정동(情動) 등을 처음으로 다룬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이한 점은 성적 사랑에서 느끼는 질투에 대해서 언급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85, 86 페이지)

 

스피노자 철학에서 감정과 정동을 날카롭게 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감정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 및 고립된 상태의 기분을 의미하고 정동(情動; affect)은 움직임과 관련된 생각, 삶과 관련된 것. 돌봄, 살림, 보살핌, 섬김 등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정동은 나눌수록 더 커지고 풍부해지기 때문에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는 스피노자의 주저 에티카’(부제: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를 자로 재고 칼로 자른 듯한 논리적 형식 속에 가장 비논리적인 영역의 정서, 사랑, 욕망의 자기 과정을 그려낸 책으로 정의한다. 물론 내 주된 관심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니 질투는 당연히 아니다. 내가 관심 두는 것은 그의 삶과 무관할 수 없는 할머니의 삶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분이다. 중요한 사실은 중세 유럽에서 종자, 발효, 요리, 식생 등에 관한 지혜를 갖고 있던 산파, 할머니, 寡婦 등이 마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가 태어나기 몇 해 전인 1629년 독일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을 전한 한 책에 의하면 무고한 사람으로부터 마녀라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심지어 머리에 알코올을 붓고 불을 붙이는 식의 잔혹한 고문도 빚어졌다.(박지형 지음 스피노자의 거미’ 67 페이지)

 

여담이지만 전기한 이수영의 고백이 내게는 흥미롭다. 대학 2학년 때 에티카를 사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으나 참담하게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는 말로 유명한(물론 이 말은 종교개혁과 독일어 성서번역으로 이름 난 루터의 말이다.)

 

그의 철학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는 충실한 해설서들에 힘입어 꽤 전문적으로 에티카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여담이지만 내 아이디 벤투의 스케치북3년 전 90세로 타계한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존 버거의 책 제목이다.

 

벤투는 베네딕트의 줄임말로,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스피노자가 유대식 이름인 바루흐를 버리고 택한 라틴어 이름이다. 바루흐, 베네딕트 모두 축복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스피노자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것은 24세 때였다. 그가 파문당한 이유는 신()을 연장(延長; extension)을 가진 존재로, 신을 자연(自然)으로 보았기 때문이다.(스티븐 내들러 지음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33, 34 페이지)

 

신승철 교수는 연결망의 지혜, 정동(情動) 속에서 싹튼 지혜 즉 생태적 지혜, 살림의 지혜, 정동의 지혜를 여성성의 지혜로 보았다.(‘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33 페이지) 최근 내가 주목하는 책은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이란 부제를 가진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 1953 - )향모(香茅)를 땋으며(Braiding Sweetgrass)’란 책이다.

 

언어 유희가 가능하다면 나는 향모(香茅)라는 말에서 향모(向慕)라는 말 즉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리워한다는 말을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내 주된 관심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과 모순되는가?)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월 키머러는 속속들이 신비로우면서도 과학적이고, 성스러우면서도 역사적이고, 기발하면서도 슬기로운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여성이란 평을 들었다.

 

김윤희, 송샘, 양명운, 한만형 등의 평등은 미래진행형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철학도 읽어야겠다. 여성이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왜곡되는 과정과 그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 칸트, 니체, 데리다, 아렌트 등의 철학자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 속의 억압되고 소외된 여성을 말한 책이다.

 

너무 형이상학적인지 모르지만 이 책들이 생태, 숲은 물론 역사, 지질, 철학, 문학 공부에까지 두루 효과를 발하기를 바란다. 내가 알기로 형이상학이란 원리, 실재, 실체, 원인 등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이정우 지음 접힘과 펼쳐짐’ 223 페이지)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는 의미의 일모도원(日暮途遠)의 심정이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나를 속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이다. 10년 전 처음 읽은 이래 가끔 다시 읽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책이다.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역자(이정우 교수) 서문에 의하면 우연과 필연은 미시세계의 우연성과 거시세계의 필연성이 맺는 관계,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치 문제를 논한 책이다.

 

어떻든 모노는 모든 종교와 거의 대부분의 철학, 심지어 과학의 일부까지도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노력의 증거로 규정(궁리 출판사 번역본 71 페이지)한 데 이어 운명이란 진행되어 나가면서 쓰이는 것이지 결코 먼저 쓰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205 페이지)

 

'우연과 필연이후 10년만에 읽은 책이 에드윈 풀러 토리의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이다. 토리는 죽음은 맞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상세히 언급했다. “사람이 죽으면 몇 시간 내에 피가 고인 피부에는 시반(屍斑)이 생기고 나머지 부위는 잿빛이 된다. 며칠 동안 사후경직으로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부패가 시작된다.

 

최초로 부패하는 장기인 뇌는 아미노산과 지질로 분해되며, 회색의 점액이 되어 시신의 귀, , 입으로 흘러나온다... 신체 면역계에 의해 억제되어 있던 수천 수백만 마리의 장내 세균이 창자와 기타 장기를 분해하며 그 과정에서 가스를 배출하여 몸이 부풀어 오르는데 그로 인해...몸 바깥에서는 눈, , 생식기 주변에 maggot이 꼬여 피하지방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1주일이 경과할 무렵 잔뜩 부풀어오른 체내 장기들이 파열된다. 피부가 녹색이 되고 곳곳이 떨어져나간다. 이때쯤에는 몸 전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maggot 무리 외에 근육조직을 선호하는 딱정벌레들이 합세한다. 2주일이 경과할 무렵의 시신은 사실상 용해된다. 허물어지고 푹 꺼져서 결국에는 땅으로 스며든다. 시체 썩는 냄새는 멀리서도 맡을 수 있으며 과일 썩는 냄새와 고기 썩는 냄새의 중간 정도로 강렬하고 역하다....”

 

이 리얼한 글 이후 토리는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과 공명(共鳴)할 글을 소개한다. 영국의 의사이자 철학자 레이먼드 탤리스의 글이다. “한편 당신의 두개골은 지금 당신이 maggot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을 품어주듯 그 maggot들 또한 품어준다. 지금 당신에게 느껴지는 두개골의 말 없는 단단함은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신의 머리는 누구의 편도 아니며 하물며 당신 편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의 머리는 언젠가 자신을 둥지로 삼을 새의 울음에 무심하듯 당신의 슬픔, 두려움, 기쁨에도 무심하며,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상을 맺게 해주는 빛을 환대하듯 당신의 눈구멍 틈새로 스르르 기어들어오는 뱀 또한 환대한다.

 

당신의 썩은 머리를 갉아먹고 그 위에서 폴짝거리며 자라는 생물체들은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독창적이었는지, 음란했는지 따위를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187, 188 페이지) 모노가 말한 '무관심'과 탤리스가 말한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공명하는 것이다.

 

토리는 다른 사람의 일이었던 죽음이 자신에게도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을 미래에 온전히 이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투사(投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전적 기억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 역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은 뇌가 진화함에 따라 신이 소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알았던 죽음을 자신의 일로 상상하려면 자신을 미래로 투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을 책이다. 물론 다른 부분도 꼼꼼히 음미하면 더욱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실새내에 가서 모셔온 여성학 연구자 김미선 님의 2012년 출간 책 명동 아가씨’. 일부를 읽었는데 벌써 이 분의 후속작이 있는지 검색을 한다. 아직 없다. 아쉽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할지라도 누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석되고 쓰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의 역사는 달라진다는 말을 하는 책.

 

어머니께 딸이, 딸에게 엄마가란 조주연 교수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 신선함을 느꼈다. 차이가 있다면 김미선 님의 글은 책 전체와 관련이 있는, 공간에 관한 공적 담론이고 조주연 교수의 글은 책 전체와 특별히 관계가 있지는 않은, 사적인 글이라는 점이다. 김미선 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신여성들의 삶과 행보에 매혹되었으며,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안타까워했다는 말을 한다.

 

신여성, 하면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정도를 아는 나에게는 이름 없는 신여성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명동 아가씨책 날개에 이런 글이 있다. 2012년 가을부터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역사학과 박사 과정에 진학하여 한국 여성사와 동아시아사를 공부할 예정이라는. 그의 신간 출간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연천 지질해설사 이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임금을 좋아하느냐, 효종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았다. 나는 중종과 광해군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답했고 효종은 사도세자처럼 무인(武人) 기질의 왕이었다는 말 정도를 했다.

 

조선은 마제석기(벼락도끼)를 기()가 굳어 생긴 것으로 인식했다. 최근 알게 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나 이익의 성호사설등은 중국의 것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어서 과학적 측면에서 오류가 많다. 벼락도끼를 기가 굳어 생긴 것으로 본 것은 주자(朱子) 등의 송나라 학자들로부터 비롯된 생각이다.

 

오늘 지구과학 공부를 하다가 지구인도 모르는 지구란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 가운데 명종대왕을 반성케 한 지진이란 챕터는 꼭 읽어보고 싶게 하는 글이다. 명종의 아버지 중종의 경우 지진 공포에도 한밤중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16세기 전반에 최다 지진 발생 기록이 남았다. 1년에 8.7건이었다고 한다.

 

중종 재위 기간은 1506 1544, 인종 재위 기간은 1544 1545, 명종 재위 기간은 1545 1567년이다. 광해군(재위; 1608 - 1623)의 경우 궁궐 신축 공사 중 벼락을 맞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장소에서 드러난 벼락도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어떻든 어제 이야기한 중종과 광해군과 관련된 지구과학 또는 고고학적 자료가 있어 다행이다.

 

고고학자 이선복 교수는 우리는 예부터 인쇄술이나 측우기 등등의 높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음에도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과학 발달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조셉 니덤의 견해가 생각난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제기된 바에 따르면 중국이 근대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과학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적 관료제에 있다.

 

사물이 아닌 관계를 다루며 함수로 표현할 수 있는 양적 관계를 다루는 과학적 사고의 미비를 들 수 있겠다. 내가 공부한 것이 과학이라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된다. 물론 이해에 바탕한 암기도 많이 지향했다. 그럼에도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는 부족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반성 거리들은 이렇게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문주의의 세례를 넘치도록 받은 지식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런 지성들과 비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인문주의의 물 몇 방울에 노출된 물 부족인(不足人)이다. 더구나 체계적이지 않은 독서로 양으로 상징되는 중요한 일상을 잃어버린 독서망양(讀書亡羊)이란 말이 맞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충분히 읽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겉도는 이야기를 경계하고 단편적 이야기를 지양(止揚)하고 자연과학으로부터 소스를 얻어 인문적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렇게 애쓰는 것 이상으로 인간적 품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계속 공부와 인성이 함께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단정하고 예의 바른 표현이 바람직한 인성을 확증하지 않지만 거친 표현을 하는 사람이 바람직한 인성을 지니기는 어렵다. 단정과 예의는 신중함으로부터 싹트고 배려의 형태로 표출된다. 어제 인사로부터 논쟁을 걸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논쟁을 하려한 것이 아니라 과학 이야기를 한 그 인사에게 그가 한 이야기와 관련 있는 사실을 그가 아는가 물었을 뿐이다. 그것을 과시욕에 기반한 논쟁심의 표출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평소에 내가 어제처럼 그로 하여금 논쟁 운운하는 말을 할 여지를 주었는지 돌아보고 있다.

 

어제 그는 그가 전한 메시지와 무관한 과학 이야기를 퀴즈 형태로 꽤 여러 개 제시했고 내가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란 말을 했음에도 어떤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듣지 않고 논쟁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이다.

 

어제 그는 내가 지구 지름을12, 800km라 하자 12, 760km라 정정했다. 물론 그가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겠지만 그런 정확함은 엄밀한 논문 작성이 필요한 상황에서나 필요할 뿐이다. 내가 말하려 한 것은 태양 지름은 지구 지름의 대략 100(1,280,000km)로 태양 중심에서 헬륨 원자핵과 함께 생성된 빛 입자 즉 광자(光子)가 표면까지의 거리인 640,000km를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진공 상태가 아니기에 2초 정도가 아닌 무려 100만년이라는 사실이다.

 

태양 내부에서 광자가 1cm를 움직일 때마다 원자 또는 전자와 부딪히기에 100만년이라는 놀라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또는 객관적 수치 이상으로 그런 것들에 기반한 사실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스토리텔링 형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밀한 수치를 논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어제 이야기에서는 엄밀함이 필요 없었다. 100만년 이야기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원자나 전자의 방해를 받는 태양 내부의 광자처럼 진공이 아닌 지구라는 무대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얽히고 설킨 관계가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의 지질(地質) 이야기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삶이란 퀴즈처럼 단편적 사실을 전하거나 맞히는 무대가 아님을 그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