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란 책에 흥미로운 단어들이 꽤 있다. tl: dr이란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too long: didn’t read의 약자로 너무 길어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헤밍웨이가 여섯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를 받고 쓴 다음의 문장은 시린 감동을 준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사용한 적 없는 아기 신발 팝니다란 문장이다.

 

읽기 연구가인 저자는 아들 벤 이야기를 한다. 창의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지능이 높은 그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쉬운 읽기 스킬에서 문제를 지닌 아이 즉 난독증 아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좋은 사회의 세 가지 삶에 대해 말한다.

 

세 가지 삶의 첫 번째는 지식과 생산의 삶이고 두 번째는 즐기는 삶, 세 번째는 관조의 삶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관조의 삶이다. 독서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바다. 좋은 독자의 세 번째 삶은 읽기의 절정이자 두 삶의 종착지인 관조적 독서의 삶이다. 우리 안의 관조적 차원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의와 시간을 들여 유지해야 한다.

 

저자는 읽기의 기쁨이 삶을 바꿀 만큼 중요함을 보여준 예로 히틀러를 타도하려는 계획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어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를 든다. 저자는 본회퍼가 나치 수용소에서 쓴 옥중서신에는 곤경에 처해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이 그려져 있다고 말한다. 본회퍼는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서 순수한 행복을 얻은 사람이다. 안중근 의사를 연상하게 하는 사람이다. 깊은 비교를 수행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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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흥선대원군 : 운현궁의 봄 평생 소장 소설
김동인 지음 / 부크크(book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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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석파(石坡)라는 호 외에 유극옹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나막신을 신는 노인이란 뜻을 가진 유극옹이란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호다. 흥선대원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운현궁이다. 고종이 즉위한 후 대대적으로 확장, 정비된 궁이다.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嘉禮)가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가장 핵심적인 설명은 금동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을 통해 알 수 있듯 흥선대원군이 보인 능숙하고 탁월한 처세(處世)와 보신(補身)의 근거지라는 말이다. ’운현궁의 봄은 안동 김씨가 위세를 부리던 철종 재위시 흥선대원군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흥선대원군은 상갓집 개로 묘사되었다.

 

본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옳은 말이로다... 상갓집 개지. 옛터를 잃고 굶주려 다니는 석파나, 주인을 잃고 구석을 찾아다니는 상갓집 개나. 다를 것이 뭐냐? 이제부터는 석파라는 호를 버리고 상가구(喪家狗)라는 호를 쓸까 보다.” 총애하는 계월로부터 김병기(순원왕후 김씨의 동생이자 영의정 김좌근의 양아들)가 자신을 상갓집 개 같이 헤헤 하며 다니는 사람이라 말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흥선대원군이 계월에게 건넨 말이다.

 

김동인은 흥선대원군을 주책없는 인물, 가난한 주정뱅이라 설명한다. 흥선대원군은 김병기로부터 놀림과 무시를 당한다. 그런 그에게도 자기 편이 있었다. 대제학 김병학, 훈련대장 김병국 형제, 왕실의 최고 어른인 신정왕후 조대비의 조카인 조성하, 그리고 그의 장인 이호준 등이다.

 

흥선대원군은 조성하를 통해 신정왕후와 접촉하려고 한다. 조성하는 백악(白嶽)에서 흥선대원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홀로 숭례문까지 간다. 거기서 그는 양녕대군이 쓴 숭례문 현판에 눈길을 보낸다. “양녕대군은 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님 왕의 마음이 자기에게 계시지 않고 자기의 셋째 동생 충녕대군에게 있음을 알고 양녕은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미친 체하고 치인(痴人)의 흉내를 내었다.” 흥선대원군도 그렇다는 의미다.

 

흥선대원군은 그렇게 속 없는 사람으로 처신하면서도 아들 이재황(훗날 고종이 되는)에게는 은밀히 왕자(王者)의 길을 가르쳤다. 서민을 긍휼히 여길 것, 편중편애를 삼갈 것, 처권(妻權)에 눌리지 말 것, 처세에 밝을 것 등이다. 흥선대원군은 헌종의 7촌 아저씨이자 철종의 6촌형이었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아들(덕흥군)의 아들이었다. 철종이 왕이 된 것은 안동 김씨들에 의한 것이었다. 세도정치를 계속 펼 수 있는 데 문제가 없을 인물이 강화도령 철종이었던 것이다. 수렴청정은 임금의 보령(寶齡) 15세까지 하지만 철종은 19세에 즉위했음에도 아는 것이 없어 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했다.

 

건강했던 철종은 너무도 편한 궁중 생활에 나날이 쇠약해져갔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의 손자였다. 은언군은 아들 상계군이 역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철종은 바로 그 강화에서 태어난 초동(梢童)이었다. 철종의 아들들이 죽자 후계자가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왕족인 이하전과 이하응이 물망에 올랐다. 도정 이하전(李夏銓)은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정통 후계자였다. 이 상황에서 안동 김씨 세력이 이하전 역모사건을 꾸몄다. 이하전은 강인하고 직설적인 사람이었다. 헌종 승하시 신왕의 후보자로 꼽혔던 사람이었다. 권돈인이 강추했으나 순원왕후 김씨가 철종을 선택한 것이다.

 

흥선군은 그간의 행실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하전은 왕의 물망에 올랐던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벌써 12년 전에 당했을 일이라 생각한다. 부인에게는 "12년을 더 살았으니 넉넉하지 않소?"라고 말한다. 흥선군은 이하전이 사사된 이후 더욱 어지럽고 거친 생활을 하는 한편 조대비가 자신을 부를 날을 기다렸다.

 

조대비의 부름을 받은 흥선은 자신의 아들 재황을 거론했다. 조성하는 흥선이 겉보기와 달리 대군, 왕자에게 지지 않는 단아한 귀인이라고 판단한다. 조성하는 서원 문제를 비롯 나라의 잘못을 바로 잡을 사람은 흥선군 밖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는 운현궁의 천하장안이라 불렸다. 흥선은 천하장안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불렀다. 원형이정은 주역의 용어다.

 

김병국 역시 흥선군의 처신에 숨은 뜻을 알았다. 그리고 조대비와 결탁해 큰 일을 도모하고 있음도 알았다. 김병국은 흥선의 정체를 호소할 경우 오히려 비웃음을 살 것이라 판단하고 눈감고 흥선에게 미래를 맡기기로 결심한다. 흥선군과 조대비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이재황을 익종의 대를 이어 26대 조선 국왕으로 만들자는 밀약을 한다. 헌종이 위중할 때 순원왕후 김씨와 동생 김좌근이 헌종 승하시 강화도령을 모셔다가 순조의 대를 이어 25대 조선 국왕을 만들자고 한 것처럼.

 

조대비는 조씨 일문의 세도를 생각했지만 흥선군은 외척을 제거해 강한 왕권을 확립하는 데에 생각이 가 있었다. 철종이 승하하고 대리를 하게 된 조대비에게 흥선군은 김씨들이 신을 모욕했을망정 무서워하지는 않는다며 종실의 다른 분을 추대하는 것보다 자신을 오히려 쉽게 볼 테니 극력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김씨 일족은 몰락을 지각하고 있었다. 왕으로 내세울 마땅한 자기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순조 대왕 대로부터 지금까지 삼대째 보름달과 같이 빛나는 영화에 취해 있었던 그들이다. 조대비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이재황을 익성군으로 봉해 이미 절사된 익종 대왕(효명세자)의 대통을 부활하게 하라고 명한다.

 

흥선대원군은 생존해 대원군이 된 유일한 존재였다. 인조 부친 정원대원군, 선조 부친 덕흥대원군, 철종 부친 전계대원군 등은 사후 추존된 경우다. 영의정 하옥 김좌근은 흥선의 계략을 뒤늦고 알고 치를 떨었다. 특히 흥선군은 김좌근을 찾아가 이하전 사건 며칠 전 전하가 돌아가시면 아마 대개 이하전이 보위에 오르겠지요?란 말을 했다. 김좌근 입장으로서는 그 말에 부담을 느끼고 부랴부랴 역모사건을 꾸며낸 것이었다.

 

이재황의 나이는 열 살에 불과했다.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다. 왕의 생친이 섭정을 하게 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조대비에게 자신이 힘든 시절에 병국, 병학 헝제에게 신세를 적지 않게 졌으니 자신의 얼굴을 보아서 두 형제는 그냥 머물게 하고 김좌근은 아무리 순원 왕후 마마의 동기로되 무능한 노물에 지나지 않고 그 위에 독부 양씨가 있으니 실직을 깎을 것을 제안했다.

 

조대비의 조카이자 큰 역할을 한 조성하는 흥선대원군의 제안으로 정3품 통정대부 우승지가 되었다. 운현궁은 붐비는 곳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노론 외의 소론, 북인, 남인 가운데서 추려내 요직에 앉히기로 결정한다. 김동인은 이렇게 소설을 마무리 짓는다.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전에는 비루먹은 개 한 마리 찾지 않던 흥선 댁이나 지금은 팔도 강산에서 매일 찾아드는 수없는 시민의 무리 때문에 수십 명의 궁리도 그 응대를 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이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 오랫동안 쓸쓸하였던 만큰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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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 1363 - 1452)는 언언시시(言言是是) 정승으로 불렸다. 다툼을 벌인 두 여종에게 모두 옳다고 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아내에게 부인의 말도 옳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다. ‘탈무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랍비가 경전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두 학생에게 모두 정답이라 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에게도 정답이라 한 것이다.(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 지음 구멍투성이 과학‘ 273 페이지)

 

파이어스타인은 이사야 벌린의 다원주의를 설명한다. 벌린은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진실을 안다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의 말을 응용해 여러 작가와 사상가, 예술가들을 분류한 사상가였다. 파이어스톤은 벌린의 다원주의를 주관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닌 여러 가지가 괜찮다는 것에 가깝고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라 설명한다. 나는 벌린의 생각에 공감한다.

 

지질 용어인 인류세(anthropocene)란 말도 벌린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류세란 과거 1만년에서 12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온난한 신세(홀로세)를 대체하는,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학적 시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뉘앙스가 담긴 말이다.

 

지구가 환경, 기후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 없이 인간이라는 종만이 홀로 살아가는 고독한 시대라는 의미에서 에레모세(Eremocene)란 개념을 제안했고 도나 해러웨이는 인류세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터무니 없이 과대평가하는 개념이라는 이유로 가이아, 메두사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을 통칭하는 쑬루세란 개념을 제안했다.

 

윌슨의 말을 수용하는 데는 생각해볼 점도 있다. 윌슨의 말은 무언가를 파괴하고 망치는 데 인류(대부분 선진국, 자본에 의한 것이지만)는 독존(獨存)인 듯 행동하지만 인류는 사실 수많은 동식물, 미생물, 지구 환경, 태양 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나는 인류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크지만 긍정적인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가난한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과소비적인 유럽의 책임이 크다는 의미에서 유럽세란 개념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고 자본이 결정적인 문제의 근원이기에 자본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름으로 다 설득력이 있는 한편 모두 결정적이지도 못하다. 물론 문제는 용어가 아니리라.

 

가이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은 원자력 발전소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는 말을 했다. 이에 한 논자는 그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어떤 대가와 희생을 치르더라도 현재의 풍요와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안달하는 우리의 욕망을 안타까워 한다는 말을 했다.(‘인류세와 에코바디참고)

 

인도양의 작은 섬 두 곳에서 매년 57만 마리의 소라게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석유와 천연가스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탄화수소 분자들로 만들어진다.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발표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859년 에드윈 드레이크가 세계 최초로 기계식 석유 시추에 성공한 이래 본격적으로 석유시대가 열렸다.

 

만일 그때 석유 시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고래를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고래는 등불을 밝히는 기름과 윤활유의 원천이었고 페인트, 가죽제품, 방직품, 비누, 양초, 여성들의 코르셋, 양산, , 향수 제조에 필요했다. 한마디로 19세기의 포경(捕鯨)산업은 정유산업이자 석유화학산업이었다.

 

인간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미국에서만 해도 매년 8천 마리 가까운 고래를 잡았다. 19세기의 반세기 동안 약 40만 마리의 고래가 희생되었다. 멜빌의 모비 딕은 커피 브랜드 스타벅(‘모비 딕에 나오는 고래잡이 배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가 스타벅이다.)과 사이렌을 말하게 하지만 고래에 대한 충격적 진실을 알리는 매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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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구원 - 혐오.배제.탐욕.공포를 넘어 사랑의 종교로 나아가기
조슈아 W. 지프 지음, 송일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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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歡待)란 말을 들으면 공동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 가운데 특별히 초대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그 교회가 공동 소유와 나눔, 이방인들과의 교제와 만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환대란 말을 통해 접하게 되는 만찬이란 말은 나로 하여금 밥이 하늘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말은 기독교의 말은 아니다. 불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대와 구원의 본문에서 밥이 하늘이라는 말에 필적할 말이 눈에 띈다.

 

예수가 죄인과 소외된 자들에게 베푸는 신적 환영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해오고 있는데,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식탁 교제를 통한 제자들의 사역 가운데 지속적으로 임재할 것이라고 선언한다.”(60 페이지)

 

저자는 사도행전 242절에서 47, 432절에서 35절을 예로 든다. 이 구절들에 의하면 공동체는 음식과 환대를 통해 주님이 임재하고 기억되는 장소다.(63 페이지) 저자는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식탁에서 섬기는 자로 요약했으며 자신의 열두 제자들을 “.내 상에서 먹고 마심을 통해 다스리도록 위임했다고 지적한다.

 

책의 구성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할 말은 신적 환대가 인간의 환대를 이끌어낸다는 말이다.(73 페이지) 그 이유는 저자가 책을 신적 환대(1)와 인간의 환대(2)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적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노출된 사람들과 동맹이 되기를 거부하고, 무관심에서든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귀기울이지 못해서든 구조적인 인종차별주의, 성별 또는 성에 대한 비인간적인 고정관념의 영속화, 그리고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교회의 사명도 이와 유사하게 저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81 페이지)

 

누가 - 행전에서 신적 환대를 받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가장 낙인찍히고 소외된 사람들인 죄인, 세리(稅吏), 가난하고 굶주린 자, 죄많은 여인, 사마리아인, 신체 장애인, 비유대인, 내시, 야만인들이다.

 

누가복음의 예수와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지속적으로 종교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사회에서 낙인찍힌 자들과 거절된 자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80 페이지) 차이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라 말하는 저자는 교회를 분열과 분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냉대로 이끌지 않으면서 교회 내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 묻는다.(100 페이지)

 

교회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울의 과제였다. 바울의 전략은 하나님의 환대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들을 위한 공통의 정체성 즉 적들과 외인들을 친구와 가족으로 변화시킨 환영을 만들어냈는지 분명히 설명하는 것이었다.(130 페이지)

 

13요한복음에 묘사된 인간 존재의 의미와 교회의 사명에서 저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환대를 매개하는 하늘에서 온 외인이라는 요한의 묘사는 예수가 유월절 전날 밤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데서 정점에 달한다고 말한다.(156 페이지)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식사와 환대의 만남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환대를 얻은 우리의 삶을 나누도록 초대하고, 다른 사람들이 구원하는 하나님의 환대를 만나는 기회로서의 빵, 포도주, , 집과 섬김의 참된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방식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한다.(167, 168 페이지) 하나님의 환대가 인간의 환대로 연결되어야 함을 당위로서 밝히고 있는 규정이라 하겠다.

 

2부는 각 장들이 주목을 끈다. 환대와 세상(4), 환대와 이민자(5), 환대와 경제(6)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 행전(11), 바울 서신(2), 요한 복음(3) 등을 통해 본 환대도 의미가 크지만 2부에 소개되는 내용들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2부는 제목부터 인간이란 말이 들어간 인간의 환대다. 물론 2부는 각 장에 과제가 부여되었다. 4장은 종족주의 극복하기이고, 5장은 외국인 혐오 극복하기이고, 6장은 탐욕 극복하기이다. 과제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2부의 극복하기 등은 모두 어려운 것들이다.

 

물론 2부도 성경 구절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4장의 주요 이야기 거리는 바울과 예수의 관계다. 중요 단서 중 하나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는 바울의 주장이 바울이 여성, 바리새인, 죄인, 세리와 함께 식사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의 환대 관행을 기억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194 페이지)

 

저자는 현대의 복음 전도 및 선교에 있어서 자신을 내어주고 힘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의 자세를 구현하는 바울의 선교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204 페이지) 5장에서 저자는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성적 일탈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지만 아는 사실 아브라함의 환대와 대칭을 이루는 이야기로서 하나님이 취약한 외인을 학대하는 사회와 개인을 심판한다는 단순한 요점을 말한다고 설명한다.(227 페이지)

 

창세기에서 롯은 천사들을 환대했기에 구원받고 불친절한 소돔은 멸망당했다.(230 페이지) 저자는 창세기 19장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두 남자의 형태로 저녁에 소돔을 방문했는데 소돔 사람들 중 누구도 누가 봐도 취약한 두 외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롯은 자기 삼촌 아브라함처럼 두 외인을 초대해 쉬게 했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저자는 사사기 19장을 이야기한다. 레위인과 그의 첩 이야기로 극악한 냉대의 남용과 환대 관례의 타락이 그 첩을 어떻게 섬뜩하고 폭력적인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보여주는 장이다. 레위인의 장인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위를 계속 붙잡는다. 저자는 이 무리한 행동을 설명하기를 환대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소돔보다 나은 점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인다.(233, 234 페이지)

 

레위인 일행은 집으로 가는 길에 끔찍한 일을 당한다. 해가 질 때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기브아 성읍에 도달하지만 초대(환대)받지 못한다.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 그들을 집으로 불러 환대하지만 한 무리의 남성들이 이 노인의 집을 둘러싸고 에브라임 출신 거류민에게 자기들이 외인들(레위인들)과 성교하려 하니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내라고 요구한다.

 

이 노인은 자신의 처녀 딸과 자기 손님의 첩을 군중에게 내어준다. 밤새 능욕당한 여자는 죽은 채 발견된다. 이스라엘은 사악한 소돔보다 나은 것이 없는 형편이 되었다. 충격적이다. 저자에 의하면 모세 오경을 피상적으로만 읽어도 이스라엘이 이민 백성임이 드러난다.(243 페이지)

 

저자는 외인들에 대한 환대는 성서의 핵심이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6장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외국인 혐오와 종족주의에서 환대로 옮겨갈 때 재정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소비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와 용역은 가지기 또는 모으기라는 의미에서의 소유라기보다 언제나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획득하고 시장의 눈,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을 획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259 페이지)

 

저자는 자본주의 소비자 경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무비판적으로 참여하면 환대를 베풀기 위해 우리의 자원, 소유,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데 중대한 장애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한다.(262 페이지)

 

저자는 로마서 122절을 예시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자에 의하면 성경은 악에 대한 경고들로 가득 차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고(6),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10)고 말했다.

 

예수는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자신에게 놀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잔의 겉은 꼼꼼하게 닦지만 속은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했다.(270 페이지) 바울, 누가, 예수의 공통된 가르침은 하나님의 경제에 있어 첫 단계는 탐욕에서 자비로 옮겨가는 것이다.

 

나는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관념화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탐욕을 주제로 돈에 대해 언급한 바울의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임을 알았다. 탐욕을 우상숭배라 말하는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고 이에 수반하여 동정심을 보이라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어떤 인간 경제도 신성화하지 말고 그 경제의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경제에 참여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우리의 경제 제도가 어떻게 구속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갈망,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향하여 정렬될 수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은 빈곤한 중에도 자원을 나누도록 요구된다.

 

최근 기독교에 입문하라는 요구를 몇 차례 받았다. 저자가 언급한 부분들을 지키기 어렵다는 우려가 든다. 궁금하다. 이 책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답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할지. 저자의 책은 명료하고 (내가 성경과 기독교를 잘 모르지만) 성경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조금씩이나마 환대의 의미를 염두에 두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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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과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주교 신앙을 위해 단식 14일만에 31세로 세상을 떠난 이벽(李檗; 1754-1785)은 가족들 사이에서 고집이 센 사람으로 통했다.(벽은 황벽나무 벽이다.) 그가 천주교를 알게 된 것은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인질로 갔다가 귀국할 때 아담 샬에게서 받은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온 6대조 이경상 덕이다.

 

임제선사를 깨우치게 이끈 황벽선사도 황벽나무 벽자를 썼다. 황벽은 마인드가 상당히 유연하여 노파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려 했던 선사다. 세살짜리 아이도 자신보다 나으면 배울 것이고 백살 노인이라도 자신보다 못하면 가르쳐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던 '뜰 앞의 잣나무'의 스님 조주선사를 닮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럼 이벽은 고집이 세고 황벽선사는 유연한 것인가? 아니다. 자신이 진리라 믿은 천주교를 끝까지 믿은 이벽이나 노파에게서까지 배우려 할 정도로 유연했던 황벽선사나 모두 진리에 철두철미했던 것이다.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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