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32) 종묘 해설을 들은 뒤 서촌 대오서점을 찾았다. 평소와 다르게 그날은 서점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조대식, 권오남 부부의 따님(사장님)과 손녀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일을 했다. 들어가려니 기념품을 사거나 차를 마셔야 한다고 해 기념품을 샀다.

 

사장님은 인터뷰를 위해 오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처럼 기념품을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우리를 환대하셨다.

 

자연스럽게 덕담 같은 말들을 주고 받은 인터뷰가 되었다. 인터뷰를 위해 오는 사람들은 기념품을 사거나 차를 마셔야 한다고 하면 저 집은 돈을 받고 사람을 들여보낸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곱게 할 수는 없을까? 책으로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얻는데 몇 천원 하는 기념품이나 커피 값은 아까운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저 집이 교보문고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원형을 유지한 채 수리를 하면 돈이 많이 들고 지난 겨울 기름 보일러가 파열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이제 곧 가게를 처분할 것이라고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차 마시러 오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227일 종묘에서 지킴이 김** 님의 해설을 듣다가 일정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며 32일 다시 오겠노라고 했었다. 그런 뒤 실제로 나타나자 해설사님은 반색을 하셨다. 빈말로 하는 인사가 너무 남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는 나는 차 마시러 갈 것이다. 그날은 밥 먹고 차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시지 못했다.안에 오래 된 촬영 도구가 있어 여쭈었더니 사장님은 할아버지가 우미관의 영사 기사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가게가 팔리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서점이 북카페 형식의 카페로 변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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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21년이 된 장 뒤비뇨의 축제와 문명을 다시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종묘 해설 준비 때문이다. 역자(譯者) 류정아 님은 이 책을 번역한 이후 축제 이론‘, ‘축제인류학’, ‘축제의 원칙등의 책을 냈다.(반갑다.)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축제 이론이다. 이 책에는 아널드 반 제넵: 통과의례, ’마르셀 모스: 증여론‘,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 로저 카유아: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 바흐친: ()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장 뒤비뇨: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등의 챕터가 있다.

 

뒤비뇨가 말하는 축제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의식(儀式)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하신 말씀들 중 잔치를 축제(祝祭)’라 부르지 말라는 내용이 생각난다.(축제라는 말 자체를 쓰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식 용어인 축제는 축하의 제사라는 말이다. 축하의 제사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은 무축(巫祝)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샤먼과 장의업자 등과 관련된 말이다. 그런데 축하의 제사라는 말에 그럴 듯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제례를 길할 길자를 써서 길례(吉禮)로 분류한 우리 선조들의 예와 통하는 바가 있다.

 

종교적 휴일(religious holiday)을 의미했던 페스티벌과도 의미가 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지만 페스티벌과 동아시아권의 축제(祝祭)라는 말이 바로 맞대응하지는 않는다. 페스티벌에는 혼미(昏迷), 일탈(逸脫), 희열(喜悅) 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나는 배경 지식을 먼저 공부하고 본론(本論)에 들어가곤 한다. 경우에 따라 종묘와 축제와 문명처럼 무리하게 보이는 연결도 시도한다. 때로 배경 지식에 빠져 본론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공부가 즐겁고 재미 있다.

 

인상적인 것은 축제와 문명이 사회과학 서적이면서도 다분히 문학적 문체로 쓰여 있어 지적 희열감을 느꼈다는 번역자인 류정아 님의 말이다. 참고할 바이다. 통과제의에 대한 책도 읽고 싶고 기노시타 데쓰야의 주자학(朱子學)’ 같은 책도 읽고 싶다. , 책책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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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 행보는 만족스러웠다. 서촌에서 옥인동 민씨가옥과 기린교 등을 둘러본 데 이어 '백석, 흰당나귀'(문학 카페)도 찾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저녁 여섯 시 이전이어서 발길을 돌렸다.

 

교보에서는 좋지 않았다. 지난 2013년 나도 읽고 서평을 쓴 '국화꽃의 비밀'(2001년 출간)의 저자인 김환희 님의 새 책 출간 소식을 접하고서다.

 

새 책 출간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깃든 향() 아니 경() 일본적 경향을 빈틈 없이 지적해낸 논객이 '옛 이야기 공부법'이란 새로운 책을 냈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사람들 옆에서 정체된 채 지지부진한 나를 보고 불편했다고 해야 정확하다. 물론 그 분과 나를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경향을 고수하기를 바라거나 그러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2001년 당시 이 분은 비교문학을 전공한 박사였다. '옛 이야기 공부법'은 흥미로운 주제이거니와 본문 곳곳에 공부에 유용한 사이트 소개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아동문학 평론가란 직함 또한 놀라웠다. 축하 할 일이다. “시가 네루다에게로 왔듯이, 옛이야기가 내게로 와 준 덕분이라 말하는 이 분은 옛이야기 공부를 위해서는 다수의 각편을 찾고 도표도 만들고, 유형과 모티프, 상징 따위를 알아야 하지만 옛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고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지혜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말을 했다.

 

이 분이 앞으로 어떤 책을 낼지 궁금하다. 우선 '옛 이야기 공부법'부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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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독교도가 아닌 내가 과거 신앙 경험에 기대 인용하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고린도 전서 1312)란 구절이다.

 

놀랍게도(?) 이 구절은 바울의 말이다. 놀랍다고 한 것은 바울은 기독 청년 시절 내가 가장 싫어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 유명한 고린도 전서 사랑 장()의 하이라이트인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란 말 바로 앞 구절이기 때문이다.

 

12절과 13절 사이는 연결의 당위가 희박해 보인다. 지금과 달리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고 온전히 알 것이라는 구절 다음에 바로 그런즉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고 온전히 알 것이기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각설하고 지금 나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고 부분적으로 알고 있어 답답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오래, 열심히 해오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조차 나는 희미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는 말을 좋아하지만 실천도 잘 못하고 지금껏 몇 수레의 책들을 읽었다기보다 힘들여 끌고 온 것만 같다. 오늘 산 한 중고책에서 저자가 누군가를 좀 더 알고 싶을 때 종종 그 사람이 기억하는 생애 첫 장면이 무엇인지 묻는다는 글을 읽었다.

 

저자는 자신의 첫 기억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가? 불확실하다. 그러니 현재도 희미하고 과거도 희미한 것이다.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때 삼국지의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구절을 맞춰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기억은 편하면 아무곳에나 드러눕는 개 같다는 말이 있고 인간은 편집된 기억의 산물이라는 말도 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자. ‘를 충실히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첫 기억이 늦다는 것은 기억의 총량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독서로 양질의 기억거리를 많이 만들기이다.

 

그런 생각에 오늘 책 다섯 권을 샀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란 믿음에 근거해. 지금은 서재 한편을 차지할 뿐이지만 언젠가 정식으로 그 책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지금은 부분적으로 펼쳐보나 언젠가 온전히 펼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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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두번째로 칠궁(七宮) 해설을 들었다. 처음 해설을 들었던 지난 해 6월에 비해 한결 쉽게 다가왔다. 그간 내가 공부한 배경 지식 때문일 것이다. 공부할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는 날들이다. 지난 227일 문화가 있는 수요일에 무료(평소 1000)로 종묘 해설을 들을 때 특히 그런 생각을 했다.

 

17년 경력의 자원봉사 해설사인 김**님의 해설은 내가 그간 알고 있었던 종묘 지식은 참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했다. 다만 부단하게 업그레이드 하고 있는 새로운 내용들을 쉽게 설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참 모르는 것이 많다. 슬픈 일이지만 이는 새로 알게 될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공부는 어렴풋하게 알던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해주고 모르는 것은 새로 알게 해준다.

 

오늘 모티모 J. 애들러의 '평생 공부 가이드'를 주문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책만큼 가성비가 좋은 것은 없다. 어쩌면 저자가 평생 공부해 얻었을지도 모를 지식을 1만원에서 2만원 사이의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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