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21년이 된 장 뒤비뇨의 ‘축제와 문명’을 다시 읽고 있다.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종묘 해설 준비 때문이다. 역자(譯者) 류정아 님은 이 책을 번역한 이후 ‘축제 이론‘, ‘축제인류학’, ‘축제의 원칙’ 등의 책을 냈다.(반갑다.)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축제 이론’이다. 이 책에는 ‘아널드 반 제넵: 통과의례, ’마르셀 모스: 증여론‘, ’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 로저 카유아: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 바흐친: 반(反)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장 뒤비뇨: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 등의 챕터가 있다.
뒤비뇨가 말하는 축제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의식(儀式)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하신 말씀들 중 잔치를 ‘축제(祝祭)’라 부르지 말라는 내용이 생각난다.(축제라는 말 자체를 쓰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식 용어인 축제는 축하의 제사라는 말이다. 축하의 제사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축(祝)은 무축(巫祝)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샤먼과 장의업자 등과 관련된 말이다. 그런데 축하의 제사라는 말에 그럴 듯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제례를 길할 길자를 써서 길례(吉禮)로 분류한 우리 선조들의 예와 통하는 바가 있다.
종교적 휴일(religious holiday)을 의미했던 페스티벌과도 의미가 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라는 의미가 있지만 페스티벌과 동아시아권의 축제(祝祭)라는 말이 바로 맞대응하지는 않는다. 페스티벌에는 혼미(昏迷), 일탈(逸脫), 희열(喜悅) 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나는 배경 지식을 먼저 공부하고 본론(本論)에 들어가곤 한다. 경우에 따라 종묘와 ‘축제와 문명‘처럼 무리하게 보이는 연결도 시도한다. 때로 배경 지식에 빠져 본론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공부가 즐겁고 재미 있다.
인상적인 것은 ‘축제와 문명’이 사회과학 서적이면서도 다분히 문학적 문체로 쓰여 있어 지적 희열감을 느꼈다는 번역자인 류정아 님의 말이다. 참고할 바이다. 통과제의에 대한 책도 읽고 싶고 기노시타 데쓰야의 ‘주자학(朱子學)’ 같은 책도 읽고 싶다. 아, 책책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