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다시 심우장(尋牛莊)에 간다. 성북 순례의 한 지점으로. 그곳에 가기 전에 최순우 집을 가야 한다. 오수(午睡)노인(老人)이라 자칭했던 최순우 집을 지나 만해(萬海)1933년부터 1944년 타계시까지 거했던 심우장을 가는 것이다.

 

만해는 삶의 태도와 시가 상당히 달랐던 시인이다. 그는 다혈질적이고 직선적이고 괴팍(乖愎)했지만 그의 시는 더 없이 다소곳하고 순종적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심약하기까지 했다.

 

심우장은 그의 그런 강직함과 비타협성이 잘 드러난 곳이다. 집을 남향(南向)이 아닌 북향(北向)으로 한 이유가 조선총독부를 향하지 않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을 5일장으로 장사지낸 점도 그렇다. 어제 경성에서 보낸 하루의 저자 김향금 님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김동삼 선생을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는 말을 했다.(마포평생학습관 강의에서..)

 

마저절위(磨杵絶葦)라는 만해의 신념 또는 당부는 어떤가? 마저는 절구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 절위는 가죽으로 묶은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공자의 위편삼절에서 유래한 말로 대나무 책의 가죽 끈이 끊어질 정도로 책을 읽으라는 의미이다.

 

임소안(林小安)이란 학자가 위편삼절의 위란 가죽이 아닌 가로(로 묶은 끈)를 의미하는 위()라고 했지만 그렇다 해도 공자의 끈질김과 만해의 당부가 빛바래는 것은 아니다. 꾸준히 만해를 읽어 만해백일장에 나갈 생각이다.

 

달인들의 틈새에서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내일 심우장 방문은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연습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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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seuk 2018-09-1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해 백일당에서 장원하세요.

벤투의스케치북 2018-09-17 08:33   좋아요 1 | URL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406번 버스를 타야겠다. 지난 8월 말 양재 시민의 숲역 인근에서 인사동까지 탔던 140번 버스와 비슷한 듯 다른 코스를 가는 406번 버스를 타면 4대문 안, 명동, 용산, 강남을 모두 지날 수 있다.

‘서울 선언‘은 이 코스의 주요 지점들인 4대문 안을 조선의 도심으로, 명동을 식민지 시대의 신도시로, 용산을 일본군과 미군이 주둔했던 서울 속의 외국으로, 강남을 현대 한국의 신도시로 설명했다.
‘서울 선언‘을 읽음으로써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궁, 능, 묘(廟) 만큼 골목과 전통 시장 등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박물관보다 규모면에서 대체로 작은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점도 그렇다.

한옥을 기와집으로 등식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그렇다. 고택 대신 민가를, 사찰 대신 사하촌을 좋아했었다는 인병선(짚풀 생활사 박물관 초대 관장) 님의 강의를 듣고 싶다.

9월 13일 마포평생학습관에서 ‘경성에서 보낸 하루‘의 저자 김향금 저자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경성역에서 출발, 북촌과 종로, 청계천변과 서대문 형무소, 선은전 광장과 남산을 거쳐 본정(本町) 거리를 지나 다시 경성역으로 돌아오는 만 하루의 여정을 강의를 통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저자는 경성이 공간적, 시간적으로 과거의 한양과 현재의 서울 사이에 놓인 다리라는 말을 한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특히 식민지 시대 다른 말로 경성에 대해 더 알아야 필요가 다분하다.

‘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박태원 작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들으면 좋을 강의이다.

지난 5월 초 청계천 박물관에서 들은 ‘천변 풍경‘의 강연자 노지승 교수의 근대 시리즈(‘유혹자와 희생양‘, ‘영화관의 타자들‘)도 필요하다.

‘유혹자와 희생양‘은 한국 근대 소설의 여성 표상을 부제로 하고 ‘영화관의 타자들‘은 조선 영화의 출발에서 한국 영화 황금기까지 영화 보기의 역사를 부제로 한다.

그러니 저자가 경성과 서울을 주제로 한 책을 쓴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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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안국동 사옥에서 열린 한자경 교수의 신간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강의를 들은 지 50여일이 지났다. 여러 내용들 중 내게도 시사점이 되는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교수님은 가장 앞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내게 가까이 오시더니 얇은 책을 내 눈에 완전히 밀착시키셨다가 거두어 가셨다.

 

누구든 대상(이 경우는 얇은 책)이 눈과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대상을 볼 수 있다. 그 책이 눈에서 너무 멀리 있을 때는 물론 눈과 밀착되어도 분별은 불가능하다.

 

교수님은 그렇게 당신 앞으로 책을 거두어 가시면서 자신이 눈에서 대상을 치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물으셨다.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답변은 1차원적이다. 그러니 그 답변을 학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라고 다른 말로 사물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서울을 제대로 알기 위해 서울의 동서남북 경계를 두루 탐험한 한 문헌학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거듭 방만(放漫)해지기만 하는 공부는 지양(止揚)하고 적정 선에서 마름질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마름질이란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을 말한다. 마름질이 안 된 옷감은 입을 수 없고 눈에 밀착된 대상 즉 경계가 지어지지 않은 대상은 가시의 사물이 아니고 적정 선에서 마름질 되지 않고 방만하기만 한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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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언 -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2002~2018 서울 선언 1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도 서울이다, 나의 서울 답사 40, 서울 걷기 실전편, 서울,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등으로 이루어진 김시덕 교수의 서울 선언은 찬란한 우리 문화 유산을 찬미하려고 쓴 책이거나 아픈 근대의 흔적을 반추하려고 쓴 책이 아니라 역사성과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건물이나 공간의 그늘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건물과 공간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쓴 책이다.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게 할 정도의 트라우마(직장에서의), 한 군데에 정착하지 못하고 서울 4대문 밖을 계속 이사를 다닌 이력, 몇십 년 전부터의 서울 걷기, 전공(문헌학) 및 관심사(전쟁),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와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손정목의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 황두진의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를 비롯한 많은 책들.. 이 요인들이 서울 선언의 탄생에 역할을 했다.

 

그런 한편 제행무상(諸行無常), 여실지견(如實知見), 무차별(無差別) 등은 저자의 논의를 이해하게 하는 주요 용어들이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 서울은 고대, 근대, 현대가, ()과 부(), 4대문 안과 밖의 차별적 위상이 공존하는 대도시, 변화가 상존하는 역동적 공간이다.

 

위의 문장이 알게 하는 현실에 즉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제국(帝國)이 아닌 공화국(共和國)인 한국의 수도 서울은 그 정체성에 걸맞은 의식과 제도 등이 필요하고 모든 동네, 모든 건물이 그 모습 그대로 전부 뜻깊고 전부 읽어낼 거리가 무궁무진하다(33 페이지)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 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의 산물이라 말한다.

 

문헌학의 의미를 궁구(窮究)해야 할 부분이 여기이다. “저 같은 문헌학자는 어떤 문헌의 사료적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 문학적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하기 전에 눈 앞에 있는 문헌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31, 33 페이지)란 문장을 보라.

 

저자가 인용한 인상적인 논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앤더슨은 하나의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지역은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서로 간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한 이유에서 특정 국가에 편입된 뒤에야 그 특정 국가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지역들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는 말을 했다.

 

1963년에야 오늘날의 서울이 갖추어진 것처럼 현재 서울의 역사라는 것도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진다(28 페이지)는 말을 하는 저자에 의하면 현대 서울의 대부분은 1936년과 1963년 이후 서울이 된 지역들(50 페이지)이며 현대 한국 시민들의 대부분은 평민과 노비의 후손(51 페이지)이다.

 

백제 시대의 서울을 증언하는 삼성동 토성이 1970 1980년대 강남 개발 와중에 무참히 파괴된 사실을 지적(65 페이지)하는 저자에 의하면 서울의 백제(서울에 존재한 최초의 국가)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이다.(69 페이지)

 

'서울 선언'에서 인상적인 또다른 부분은 저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부터 꽤 체계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서울이 자가용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121 페이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듯 조선 시대의 구도심 사대문 안, 식민지 시대의 신도시인 명동, 일본군과 미군이 주둔한 서울 속의 외국 용산, 현대 한국의 신도시인 강남을 관통하는 406번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종로 2가가 저자가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답사한 서울이라는 말(124 페이지)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

 

서울을 이야기한다면서 19세기 4대문 안팎의 한양만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의 어릴 적 이야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148 페이지)라고 말하는 저자가 세 번째 장에서 첫 번째 순서로 언급한 곳은 청계천이다. 이 하천은 오늘날의 서울이 시작된 곳으로 19세기 말 그 남쪽에는 일본인들의 신도시가 만들어졌고 북쪽에는 오늘날 북촌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어떤 특정 지역이 대규모로 재개발되지 않는 한 도시 공간은 금세 바뀌는 듯 하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법(161 페이지)이라는 말, 도시는 이렇게 길고 질기게 흔적을 남긴다(163 페이지)는 말 등은 인상적이다. 한편 조선 신궁은 헐릴 만하지만 현대 한국에 세워져서 수많은 서울 사람들이 들른 남산 식물원을 헐고 조선 시대의 성곽을 복원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177 페이지)은 어떤가.

 

평양에서 미션 스쿨 계통의 숭의 여학교로 개교했다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한 학교(181 페이지)인 숭의여자대학은 1953년에 서울에서 다시 개교할 때 정부로부터 일본이 남긴 경성 신사 터를 학교 부지(敷地)로 제공받았다.(183 페이지) 신사 참배 거부로 폐교한 학교가 신사 터에 세워져서 식민지 시대에 대해 정신적인 복수를 완수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케이스라고 저자는 말한다.(183 페이지)

 

이 부분을 보며 생각한 것은 1905년 을사 늑약, 1907년 고종 퇴위, 1910년 한일강제병합 등이 논의되었고 후에 이완용 별장으로 사용된 태화관(泰和館)에서 3.1 독립 운동 선언을 한 사례이다.

 

현지인이 언제나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어떤 경우는 그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찬찬히 조사한 외부인이 현지인보다 더 잘 알 수 있다(255, 257 페이지)는 말은 또 어떤가. 저자는 서울과 그 주변의 경기도 일부 지역까지를 대서울이라 부른다.(311 페이지)

 

대한민국 정부와 서울특별시는 빈민과 노동자들을 서울의 끝으로 밀어내서 그들과 그 밖의 서울 시민들을 분리하려 했지만 서울의 끝에서 봉기한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현대 한국의 역사를 크게 전진시켰다. 현대 한국의 변화는 언제나 서울의 땅끝에서 시작되었다.(313 페이지)

 

4장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문제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묻는다.(363 페이지)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의해 바뀌기 전의 서울은 자연스럽고 그 후의 서울은 인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묻는다.(371 페이지)

 

서울 선언의 놓칠 수 없는 미덕 중 하나로 불편한 말들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의 기와집만 한옥입니까? 초가집은 한옥이 아닌가요? 20세기에 만들어진 북촌의 개량 한옥은? 뗏집은? 너와집은? 또는 가난한 한국 시민들이 만든 토막집은? 하코방은?”(373 페이지) 같은 말이 우선 그렇다.

 

또한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 성 노예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추모 시설을 서대문 형무소에 함께 건설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녀들의 희생을 기리면 우리 민족이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한 민족이기보다 일제에 의해 수난당한 민족이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관람객들에게 주게 된다면서 남성 위주의 독립 운동 관련 단체들이 반대 움직임을 전개한 적도 있다는 말(384 페이지)도 그렇다.

 

저자가 중점 비판하는 부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은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일을 태연히 하는 사람들의 행태이다.(383 페이지) 근대 한반도 주민들의 한옥 집단 거주지였던 북촌 한옥들을 조선 시대 양반들의 거주지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도 그 하나이다.

 

마지막 장(4)의 마지막 부분(3. 역사 왜곡에서 서울을 지켜라)은 지금이 마치 조선시대인 것처럼 현대 한국을 잠식하는 사례들이 나열된다. 조선 왕릉 자체도 아닌 그 주변 묘역을 확장, 복원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만들어진(1966년 설립) 태릉 선수촌을 철거한 사례, 조선 왕조의 의례 공간인 사직단을 확장, 복원하기 위해 1968년부터 운영해온 종로 도서관을 철거하려 한 사례 등이다.

 

서울 선언은 서울을 다룬 책들 가운데 단연 독특한 책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설득력이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책이다. 아니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뛰어난 책이다. ‘전쟁의 문헌학같은 저자의 다른 책 등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앞서 가는 사람들 뒤에서 서울을 걷고 걸으며 기록하는 일을 하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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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金時德) 교수의 서울 선언을 읽고 있다. 지난 96일 옥인동 시범아파트터에서 시작해 윤동주 하숙집, 박노수 미술관, 통인 시장, 이완용 집으로 추정되는 상촌재 앞의 건축물, 세스팔다스 게옴마루(세계정교 유지재단) 등을 둘러본 서촌 답사를 함께 하고 역사책방에서의 강연 수강 후 산 책이다. 내 역사상 이렇게 강의도 듣고 책도 산 경우는 처음이다.

 

6일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거침 없이 빠른 말에 실린 독특한 시각의 반골(?) 기질이었다. 가령 이런 글을 보자. "유명 건물이나 사건 현장만 보고 다니는 것은 서울 답사의 초보 단계이고 유명한 지역을 걸어 다니며 그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중급 단계이고 전혀 특별할 것 없이 보이는 도시 구획을 걸어다니며 서울 사람이 살아온 모습과 감춰진 재미를 발견해내는 것이 고급 단계의 서울 답사이다."

 

리뷰를 통해 체계적으로 거론하겠지만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것은 문헌학에 대해 깊이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자신 같은 문헌학자는 어떤 문헌의 사료적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 문학적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하기 전에 눈 앞에 있는 문헌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저자의 말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니 이해할 수 없는 해설 지침을 내리는 모 해설단체의 장이 생각난다. 그는 창덕궁 인정전의 오얏 문양이 조선을 폄하하려는(조선이 이씨 즉 오얏 이씨의 나라였기에) 일본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설과 그 문양을 조선의 상징으로 대외에 알리려는 고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란 설 가운데 부정적인 전자는 해설에서 거론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의 의도가 궁금하다. 정설이 있으면 그 정설을 이야기하면 되고 속설들이 있으면 차별하지 않고 다 이야기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궁궐 관람 신청 수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이 역사를 좋아하기보다 이데올로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조선 문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 같다.

 

돋보이는 것은 서울 역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과 연관되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란 책을 인용한 저자의 포석(布石)이다. 앤더슨에 의하면 하나의 나라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지역은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서로 간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한 이유에서 특정 국가에 편입된 뒤에야 그 특정 국가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지역들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이 내용을 보며 생각한 것은 지난 해 정동(貞洞) 해설에서 내가 한 말이다. 당시 나는 아름답고 멋진 건축물들이 정동에 모인 것은 그곳이 명당(明堂)이어서도 아니고 그곳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모임으로써 정동을 명당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하며 한 조각 꽃잎이 떨어져도 봄볕이 줄어든다는 두보의 시를 인용했다. 두보의 한 조각 꽃잎처럼 정동의 건축물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정동을 그 만큼 빛바라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서울 선언에는 불편한 말들이 많다. 이 점이 책의 장점이다. 기와집만 지어져 있는 은평 한옥마을을 예로 들며 저자가 지적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의 기와집만 한옥입니까? 초가집은 한옥이 아닌가요? 20세기에 만들어진 북촌의 개량 한옥은? 뗏집은? 너와집은? 또는 가난한 한국 시민들이 만든 토막집은? 하코방은?” 같은 말,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 성 노예로 희생당한 여성들의 추모 시설을 이곳(서대문 형무소)에 함께 건설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녀들의 희생을 이곳에서 기리면 우리 민족이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한 민족이기보다 일제에 의해 수난당한 민족이라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관람객들에게 주게 된다면서 남성 위주의 독립 운동 관련 단체들이 반대 움직임을 전개한 적도 있다는 말...

 

지나간 사실이지만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만 그 자체가 이미 외세로부터 수난을 당함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 아니다. 저자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이란 불교 용어를 거론했으니 하는 말이지만 저자가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거론하는 의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 즉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여실지견(如實知見)하자는 데에 있다.

 

니체가 문헌학을 전공했다는 사소할 수 있는 사실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서울 선언을 통독(通讀)/ 정독(精讀)하자.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이 예전과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35 페이지)란 저자의 말을 확인하자.

 

어제 나는 한용운 시인 강의에서 일제 시대를 살았던 만해 선사가 지금 우리와 함께 한다면 조선 그것도 왕조(王朝)와 관련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의 편중(偏重)된 문화 소비, 1970 1980년대의 강남 개발의 와중에 백제 시대의 서울을 증언하는 삼성동 토성 같은 유적들이 무참히 파괴된 사실(65 페이지) 등을 보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란 물음을 던졌다. 비판 정신이 인문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 없는 인문학은 예능 또는 오락 이상은 아님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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