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 ‘시인/ 평론가‘라 할까? 장석원 ‘평론가/ 시인‘이라 할까?

김수영 문학관에서 진행된 장석원 님의 ‘김수영 시의 난해와 감동‘이란 강의를 듣기 전 내가 한 생각이다.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오늘 강의에서 시인과 평론가의 면모 가운데 어떤 점이 두드러지는가에 따라 ‘시인/ 평론가‘라 할 수도 있고 ‘평론가/ 시인‘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늘 강의는 강연자의 김수영 체험기를 시작으로 철학자들의 김수영 선호 등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강연자는 논자들이 김수영 시에서 자신의 논의를 뒷받침해주는 부분만을 토막내 이용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고 강신주 철학자가 국문학을 전공한 자신들도 간파하지 못한 부분을 캐치해냈다는 점을 지적하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는 진솔한 이야기도 했다.

결론은 강연자가 시인과 평론가의 면모를 조화롭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장석원 님이라 해야 옳다.

나는 ‘등나무‘란 시를 인접성의 관점으로 보라는 강연자의 말이 시를 환유적으로 보라는 것인가 물었고 김수영 시인이 읽었으리라 추정되는 논어나 주역을 참고하되 지적 재단이 아닌 감성을 활용한 공감의 시각으로 분석 대상인 김수영 시인의 시를 나누지 않고 전체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물었다.(두 물음 모두 긍정하는 답을 들었다.)

장석원 님의 평론집(‘김수영 시의 수사학‘)과 시집(‘역진화의 시작‘)을 읽어야겠다. 이 부분은 물론 미래 기약에 속하는 부분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강의 들은 두 분과 인사동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다.

이 두 분은 지난 1월에서 4월 사이 종로 50 플러스 센터에서 함께 한 분들이다.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은 약 네 시간이었다.

헤어지는 악수를 청하는 두 분에게 나는 오늘 즐거웠습니다란 인사를 드렸다.

아, 참 식사중 나는 두 분 중 한 분에게 ˝제가 선생님 좋아하잖아요......˝란 말을 드렸고 이에 그분은 웃음으로 답하신 것이 하이라이트라 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내가 한 즐거웠다는 말씀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니 심리상담사에게 하듯 깊은 내면의 말을 많이 한 날이었으니 의미 있는 날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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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1918 - 1993) 작가 자료를 정리하다가 작가가 스물 일곱에 교통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아들 용기(1944- 1970)씨를 애통해 하며 쓴 소설 ‘우리 사이 모든 것이‘를 읽었다.

의학도였던 용기씨는 바쁜 시간 틈틈이 최선을 다해 첼로도 연주하며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기도 한 분이다.

그는 보케리니의 곡을 자주 연주했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헨델의 수상 음악도 연주하곤 했다고 한다.

작가는 그래서 보케리니 곡도, 바흐 무반주 모음곡도 아프고 용기씨가 형에게 원거리 전화를 걸어 수화기에 대고 연주했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더욱 아프다고 말한다.

작가는 시인 폴 발레리의 ‘풍부한 부재‘를 이즈음처럼 절감한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너는 가고 없지만 너의 추억은 충만해 있˝고 ˝너는 무가 아니고 부재˝한다는 의미이다.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아들을 살리는 약을 찾아다닌 끝에 그것이 허망한 꿈임을 알아차린 야윈 고타미의 깨달음이 극적이고 은유적이라면 한무숙 작가의 것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너 까닭에 이 괴로움, 이 아픔을 갖지만 너는 태어나야 했고 많은 추억을 남겨주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슬픔과 아픔도 남겨야 했다.

그것은 섭리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신의 섭리에 간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우리 사이 모든 것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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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마천의 마음으로 읽는 사기‘란 신간에서 역사의 숲에 난 문학의 길 즉 사림문로(史林文路)란 말을 만났다.

저자는 자신을 역사의 숲에 난 문학의 길을 걷는 산책자라 소개했다.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보니 이 단어는 이미 2006년 발간된 ‘거문고 줄 꽂아 놓고‘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 단어를 그간 나만 몰랐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우정들을 소개한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김상헌과 최명길의 우정이다.

주화파였던 최명길이 척화파였던 김상헌에게 끓는 물(척화)과 얼음(주화)은 결국 하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책을 읽어 그 불편함의 진실을 더 알아보아야겠다.

사림문로도 그렇고 오늘 (페북에서) 접한 literary historian란 말도 그렇고 쉬운 것은 없는 듯 하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 공자가 240년 간의 역사를 간추려서 ‘춘추‘라 하였으나 이 240년 동안 일어난 군사, 외교 등의 사적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과 같은 잠깐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미숙, 길진숙, 김풍기 등 엮고 옮긴 2008년 출간 그린비 버전 상권 226 페이지)

연암은 이 말을 하며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스쳐가는 것들을 기록하노라니 하나의 옛날이나 오늘은 크게 눈 한 번 깜박하고 크게 숨 한 번 쉬는 사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 잠깐 사이의 일을 기록한 책에서마저 길을 잃곤 한다. 간추림의 미덕을 발휘하는 역사가들처럼 나는 훑어봄의 미덕을 발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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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서재를 볼 기회를 얻게 되면 꼭 눈여겨 보려는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 책입니다.

한 두권 갖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전시(?)하기가 꺼려지는 장르가 글쓰기 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럼에도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펴보는 책이 글쓰기 책일 것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글쓰기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서재를 뒤져 보니 열 권이 넘는 책이 꽂혀 있고 그 가운데 서너 권은 정독을 했고 서평도 썼습니다.

자신이 던지는 주무기가 난타당하고 나면 다른 종류의 볼을 연마해 장착했다는 한 프로야구 투수처럼 저도 글이 잘 안 써질 때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때 한 권 한 권 관련 책들을 사두었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읽은 글쓰기 책은 최옥정 작가의 ‘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이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임정섭 강사의 ‘글쓰기 훈련소‘란 책입니다.

두 권 모두 추천할 책입니다. 최옥정 작가의 책은 글쓰기의 의지와 마음 가짐, 글쓰기와 관련해 갖추어야 할 루틴(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 등을 2라운드 인생(50 플러스)에 맞춰 집약시킨 책입니다.

임정섭 작가의 책은 ‘일곱 유형의 실패한 글에서 배운다‘란 첫 챕터부터 눈길을 끄는 명쾌한 책입니다.

특히 ‘어른이의 에세이‘란 글에서 언급된 어린이의 글쓰기 유형이 눈여겨 볼 만합니다.(어른이란 아이 같은 어른 즉 아이처럼 글을 쓰는 어른을 말합니다.)

저자는 ‘나‘라는 주어의 남용, ‘그리고‘나 ‘그래서‘ 등의 접속어의 남용, 적절한 곳에서 끊지 않고 길게 이어가기, 생각한다란 표현의 남용 등을 유치한 글쓰기의 대표 사례들로 꼽습니다.

글이란 생각의 체계적인 표현이니 글을 쓰며 생각한다란 표현을 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은 잘 쓴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글쓰기 책을 읽으며 얻는 성과이자 진실일 터입니다.

김애리 작가의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란 책 제목을 글쓰기 책이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사실은 박찬영 작가의 ‘글쓰기 비결 꼬리물기에 있다‘란 책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점입니다.

조정래, 박경리, 이외수, 공지영, 유홍준, 유시민, 이문열, 강원국, 혜민 스님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파워라이터들도 기초적인 오류를 자주 범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쓴 글을 소리내어 읽으면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 ‘그리고‘나 ‘그래서‘ 같은 접속사의 남용, 중언부언, 불필요하게 길게 쓰기 등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아르헨티나의 거장 작가 보르헤스가 한 단언입니다.

글쓰기 책이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는 제 말을 뒷받침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옥정 작가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지침서만 보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글쓰기다.˝(‘2라운드 인생을 위한 글쓰기 수업‘ 151 페이지)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고치는 것 말고 다른 글쓰기의 비결은 없습니다. 단 바르고 체계적인 방식에 바탕을 두고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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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께 강의를 들은 분 가운데 30대 초반쯤의 한 여자분이 있었다.

왜 책을 쓰려 하느냐는 강사의 질문에 그 분은 도서관 사서로서 유명세에 비해 또는 유명하지도 않으면서 내용이 부실해 실망스러운 책이 너무 많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고 운을 뗐다.

결국 직접 좋은 책을 써서 이용자들에게 읽히게 하고 싶어서라는 것이 그 분의 답이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책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고 출간 과정에 대한 노하우도 전할 수 있으리라는 답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잘 읽지 않는다는 그 분은 차별성이 별로 없는데 제목 때문에 또는 광고의 힘으로 많이 읽히는 책의 출간 자체를 부도덕한 일로 치부했다.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피하다시피 하는 나에게 그 분의 베스트셀러관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의존하는 책은 베스트셀러이다. 이는 지금껏 줄곧 그래온 현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없거나 옥석을 가릴 안목이 없거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안목을 키우면 좋은 책들을 고르는 유연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은 물론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견해낼 수 있으리라.

그 과정에서 베스트셀러가 도움이 된다면 읽을 수 있다. 꺼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는 오래 함께 할 인연이 아니다.

전국의 도서관을 두루 찾아다니며 무료로 저자 특강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백만 부 이상의 대박을 기록한 이 **라는 작가가 있다.

적극적인 노력이 빛을 발한 경우이다. 책을 쓰기만 하고 홍보나 저자 특강 등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를 낳기만 하고 기르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사례로 꼽힐 만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내용이 참 좋은데 여러 이유로 선택되지 않는 아까운 책들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말하자면 책임은 적극적이지 않은 저자들에 있다. 책임 소재라는 말을 논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책임을 논하기 전에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유명 출판사 편집장들이 꽤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선택되지 않은 자신의 자식(책)을 하나씩 소개한 신문의 시리즈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유명 출판사들의 책들도 그러니 그렇지 않은 출판사의 책들은 그러한 정도가 더 하리라 생각된다.

그래도 살아남는 책들을 보면 어떻든 내실과 내공을 담보하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어제 내가 출판 과정 강의를 들으며 한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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