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책도 발효 과정을 거쳐야 읽게 된다는 말을 최근 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 기간이 1, 2년 또는 한 두 달이려니 생각하겠지만 내게 7년 넘게 발효하고 있는 책이 있다. 건국대 몸문화 연구소장 김종갑 교수의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이란 책이다.
전혀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1/ 4 정도를 읽은 책이다. 어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입할 때와 다르게 읽다 보니 관심 밖의 영역을 다룬 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이유를 알아보고 있다.
필자의 책들 중 지난 4월 ‘혐오, 감정의 정치학’을 읽었고 서평을 쓰지는 않았지만 6월에는 ‘생각, 의식의 소음’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 필자들과 함께 쓴 ‘감정 있습니까?’를 읽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감정 있습니까?’에 실린 김종갑 교수의 글은 충격적이다. 내가 모르는 많은 부분을 새롭게 알았기 때문이고 그런 부분에 대해 다른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부분적으로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라 해야 맞겠다. 혐오를 다룬 부분에서 필자는 지금까지의 서양 역사를 남성이 문화를 독점하면서 여성을 자연으로 비하했던 가부장의 역사로 규정했다.
혐오가 발생하는 지점은 달리 있다. 문명의 주인공으로서 여성을 고상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변형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거나 그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설명이다.
또한 여성 혐오는 관념으로서의 인간은 신처럼 위대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하늘이면서 동시에 땅이고, 멋있으면서 비루한 존재라는 이중성 또는 양가성을 피하기 위해 긍정적인 부분은 남성이 챙기면서 부정적인 부분은 여성에게 투사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필자의 결론은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남성이 스스로를 혐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부분이 있다. 생명의 기원인 여성의 몸은 동시에 죽음의 종착점이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이다. 이를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 식으로는 “탄생이야말로 죽음의 원인“(‘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 47 페이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여성의 신비로운 능력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오로지 여성으로부터서만 기원하는가? 여성이 큰 역할을 하고 남성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부분은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생식(生殖)하는 것은 여성의 것이었고 문화적 변형의 작업은 남성이 독차지했다는 부분과 함께 읽을 부분이다.
생명의 기원이 남성의 역할에도 힘입듯 문화적 변형 작업 역시 부분적으로 여성들에 힘입은 바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 설령 없다 해도 이는 가부장적인(문화 독점적인,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여성 배제적인) 문화의 산물이 아니겠는지? 물론 모든 책임을 가부장적 제도와 교육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나는 여성 혐오적 역사와 현실 그리고 철학적 배경에 대해 다른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충격적이고 무의식 차원의 그늘과 얼룩을 감지하게 한다.
더욱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는 남성일수록, 불행한 남성일수록 여성을 혐오한다는 사실(135 페이지)은 사회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고 정신분석의 대상이기도 하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남성이 스스로를 혐오하기 때문이라는 필자의 말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많은 부분을 누리다가 이제 그 몫을 챙기지 못하게 된 평균 이하의 남성들이 사태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적대감을 여성에게 투사하거나 여성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제 나의 심리상담은 다음 주 월요일 16회를 대단원으로 끝이 난다. 감사하게도 내 개인적 불행을 남감히 여긴 여성 심리상담사의 은덕으로 한 주가 무료 연장되었지만 끝은 끝이다.
어떻든 여성 혐오는 민감한 문제여서 이를 상담의 대상으로 삼을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정신분석적 문제여서 심리상담과 어울리지 않지만 내담자들로 하여금 옵션으로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답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여성 혐오감에 괴로워 내담하는 남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상하다는 반응 또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듣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