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을, 특정 시간 동안 짧은 음과 긴 음이 서로 어우러지는 유형으로 정의한 존 파웰 (물리학/ 음악학자)은 다른 무엇이 아닌 춤에서는 리듬보다 박자와 템포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파웰에 의하면 템포는 얼마나 빨리 춤을 추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박자는 어떤 유형의 춤을 추어야 하는지 알려준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244, 262 페이지)

 

요즘 나는 춤 일반(의 특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몸치도 몸 고수도 아닌 내가 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춤을 삶의 메타포로 읽기 때문이다. 춤추듯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으리란 바람이 내 안에 있다.

 

당신이 걷는 동안 떠오른 생각만이 가치 있다고 말한 니체는 뜻 밖으로 즐거운 지식이란 책에서 춤을 철학자의 이상, 예술,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신앙이자 신에 대한 봉사로 정의했다.

 

니체가 말한 춤이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춤 그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걸그룹 '오로라'의 드라마틱한 춤(엄정화의 포이즌) 동작을 유심히 지켜 보며 어떻게 저 춤을 따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영문학자 김종갑 교수는 가장 많은 생각의 노력이 요구되는 듯 보이는 대화도 사실은 흐르는 물처럼 저절로 행해진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드는 비유는 망치의 비유이다. 생각을 하고 망치질을 하면 자연스런 행동의 흐름이 덜컥 끊기면서 못 대신 손가락에 망치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생각, 의식의 소음’ 133 페이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삶에서도 만남에서도. 누군가 내게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는, 새로운 시간의 문이 열리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춤에서 동작들을 자기 의지의 지배 아래 두려고 해서는 안 되듯 만남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의미이다. ,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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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의 여행 유럽을 걷다 시간으로의 여행
정병호 지음 / 성안당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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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이 함께 떠난 유럽 여행을 기록한 책이 특이하게 유럽 역사서의 형태로 다가왔다. 유럽 곳곳에 대한 촘촘한 정보 아니 지식을 대화 속에 담았다. 제목이 특이하다. ‘시간으로의 여행 유럽을 걷다

 

이 책에는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다. 가령 저자는 유럽의 어원이 저녁을 뜻하는 에레브(EREB)에서 유래했다는 것, 그래서 유럽이 해가 지는 곳으로 명명된다는 사실 등을 이야기하고 그에 상대되는 태양이 솟아오른다는 의미의 아나톨리아, 레반트 등의 말을 제시한다.

 

대화는 구체적이고 리얼하다. 가령 아들이 이집트는 지명이나 인명이 쉽게 외워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이집트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말하자 아빠는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아빠는 아들이 빨리 알아차리자 눈치가 빠른데란 말을 한다. 또한 아빠는 아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푹 빠져 있어 신들의 이름을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빠는 아들이 로마 신화에 대해 묻자 단군 신화를 아는지 묻는다. 저자는 로마의 일곱 개 언덕 가운데 하나인 팔라티노 즉 팰리스의 어원을 이야기한다. 아빠는 유럽사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스타일로 상세하고 길게 이야기한다. 물론 지루하지 않다. 더구나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자연스럽다.

 

아빠는 생소한 칸나에 전투 이야기, 자마 전투 이야기도 한다. 아빠는 아들의 반응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말을 한다.(95 페이지) 이를 보며 해설을 생각하게 된다. 반응을 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는 순간이다. 아들은 아빠 곁에 바짝 다가가기도 한다. 우파니샤드 생각을 하게 한다. 힌두의 스승 곁에 앉다란 뜻이다.

 

아들은 흥미진진한데요란 말을 한다.(117 페이지) 추임새이다. 아빠는 훈족이 우리 조상인 한민족과도 연계가 있다는 주장에 근거가 있음을 언급한다.(129 페이지) 아빠는 합스부르크의 이름이 합스부르크 성 또는 매의 성이란 말에서 유래했음을 이야기한다.(145 페이지)

 

저자는 니케아 공의회를 거쳐 가톨릭과 정교회까지 언급한다. 중요한 언급 가운데 하나는 정교회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가톨릭은 철저히 신봉한다는 이야기이다.(177 페이지) 본문 중 이런 글이 있다. “아들에게 바티칸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15세기 상황을 이야기해줘야만 했다.”(162 페이지)

 

이뿐 아니라 책은 전편에서 긴밀히 얽힌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며 쉽게 설명하는 미덕을 보인다. 아빠는 아들이 어느 나라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변함없이 좋아하는 나라는 터키라고 말한다.(248 페이지)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의 개인적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에 의하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터키 여행을 꿈꾼다. 그런 저자는 터키의 이곳 저곳을 이야기한다. 콘스탄티노플, 보스포러스, 가파도키아 등..

 

이는 책이 여행 안내이기도 하고 인류학 또는 유럽사 안내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본문에는 이스탄불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도시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257 페이지) 이는 그리스 자연철학 이야기할 때 나오는 이오니아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이오니아는 동방과 서방이 만나는 지점이다.(23 페이지) 연결성을 중시하는 처음과 끝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셍겐 조약과 축구 이야기까지 최신 성과까지 담겨 있는 책이 시간으로의 여행 유럽을 걷다이다. 셍겐 조약은 유럽 연합 비가입국인 노르웨이, 스위스 등이 가입했다. 이 조약은 공통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해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국가간 통행을 제한 없이 하는 내용을 담았다.(288 페이지) 올 컬러에 충실한 내용까지 역작인 시간으로의 여행 유럽을 걷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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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의 ‘아득하면 되리라‘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 시는 건강하고 단순하고 맑다.

나는 이 시의 마지막 연(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을 읽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는 부작용인지 내가 문제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이야기 즉 문제 거리를 찾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냥 그쳐야 하는가? 나를 돕기 위해 애쓰는 심리상담사는 어느덧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

상담사는 기법을 갈고 다듬을 뿐 아니라 인성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하다.

물론 좋은 인성이 좋은 기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굳이 양자 택일을 하라면 나는 인성을 고르겠다. 점집행의 대안인 나의 내담은 언제까지 가야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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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십 분 정도의 한옥 해설을 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간다는 의미의 신혼체백(神魂體魄) 사상에 따라 지하실을 짓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조상들에게 지하는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의 공간이었다.

어제는 집을 짓는 꿈을 꾸었다. 새로 지은 것인지 고친 것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꿈을 잘 꾸지 않는데 더구나 집에 대한 꿈이라니.. 한옥 시나리오를 짜느라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

우리 전통 건물 중 높은 것이 없는 것도 그래서일까? 이는 아마도 기술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지하실을 어두운 집의 존재로 보았다.

그는 지하실의 몽상을 통해 우리들은 심연의 비현실감을 허용한다는 말을 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한옥 시나리오를 짜며 느낀 점이 있다. 화려하고 멋진 공간만 찾아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온 나도 그간 궁, 능, 묘(廟), 한옥 마을 등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김시덕의 신간 ‘서울선언‘은 그런 점에서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줄 책이다.

저자는 경복궁 근처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고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도 극소수인데 우리는 왜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란 질문을 던진다.

대학때 문화 연구 답사 모임에 속해 사찰과 고택 등을 찾아다니다가 그것이 영 마뜩지 않아 늘 일행과 떨어져 사찰 대신 사하촌, 고택 대신 농가를 찾아다녔다는 인병선(짚풀 생활사 박물관 초대 관장) 님이 생각난다.

최근 내가 확인한 것은 한옥으로 유명한 종로의 한 문화센터를 찾는 사람들과 담당자의 인식 차이이다.

인식 차이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옥이나 역사가 아닌 맛집 정보나 관광 정보를 알고자 하는데 담당자는 해설사에게 30분 정도의 해설을 할 것을 주문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나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설사로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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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시집 '기억의 집'이 전혀 구태의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30년 가까운 세월의 풍화를 이겨낼 만큼 시인의 문제의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일 수 있고 첨예한 관심으로 들춰보던 책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의 시로부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의식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령 "어떤 아침에는, 이 세계가/ 치유할 수 없이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또 어떤 아침에는, 내가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어떤 아침에는' 중 일부) 같은 구절이 그렇다.

 

시인은 '이제 가야만 한다'에서 이런 말을 한다. "때로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지만 괴테의 작품 세계를 생각했다.

 

강렬한 자의식과 주관주의로 채색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회와 소통함으로써 주관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을 그린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인류 역사에 대한 거시적 문제의식을 보인 '파우스트' 등으로의 변화가 내 관심사이다.

 

물론 나는 성장 소설이기도 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같은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너무 주관적이고 '파우스트'는 너무 스케일이 크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

 

오늘 내게 어느 분께서 새로운 삶의 시간이 열리는 듯 하니 문 열리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분의 말이 맞다면 어느 책으로 내게 열리는 새로운 시간을 자축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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