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수요 락(樂) 읽기’(매월 마지막 수요일 18시 30분 – 20시. 함석헌 기념관)에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 주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에 걸쳐 묵묵히 나무를 심어 황무지를 옥토로 일구어낸 주인공을 보며 나는 조에 부스케를 떠올렸다는 말을 했다.
조에 부스케(Joë Bousquet: 1897 - 1950)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한 전투에서 척추에 총탄 관통상을 입고 불구가 된 채 남은 생을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보낸 프랑스의 시인이다.
부스케는 “실추된 빛이지만 다행히도 잘 잊어버리는 빛인 사물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나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했다.(‘달몰이’ 참고) 내가 부스케의 에세이집인 ‘달몰이’를 읽은 것은 7년 전인 2011년으로 당시 나는 인용한 그의 글이 목적론적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리뷰를 썼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생각이 변했다.
최근 김월회, 안재원의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를 읽었다.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공자를 성인으로 치켜세우다 보니 그가 제자를 교육할 때 즐겨 활용한 ‘시(詩)’, ‘서(書)’, ‘예(禮)’도 중시되었고 그가 죽간을 이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질 정도로 봤다던 ‘역(易)’과 손수 편찬한 ‘춘추(春秋)’도 더불어 추숭되었다는 것이다.
'역(易)' 즉 '주역(周易)'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어서 흥미롭거니와 이후 유가(儒家)들은 경(經)에 지고지순의 가치가 담긴 책이라는 의미의 전(典)자를 결합시켰고 한무제 때 공자의 학설을 제국 유일의 최고 이념으로 정립하는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경은 귀하고 신성한 책으로 거듭났다.
경(經)이 처음부터 섬김의 대상이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바 주역(周易) 역시 불변의 경전으로 신성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어떻든 경전 신성화 작업으로 인해 “내 삶은 육경(六經)의 주석.”이라는 언설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경전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저자들이 말한 대로 “나는 경전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사유와 많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실추된 빛이지만 다행히도 잘 잊어버리는 빛인 사물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 나는 상처받았다.”는 부스케의 말은 어떤가? 유가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의 경우 도그마와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기에 부정적이었다면 조에 부스케의 경우는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기에 긍정적이다.
기승전공자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이런 가운데 예(藝)에서 노닐고 논어(論語)에서 노닌다는 공자의 말은 얼마나 혁명적인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관건은 어떻게 고전들과 더불어 잘 놀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호모 루덴스(homo ludens)적 삶을 사는 한 방편을 체화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