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9, 10) 해설 때문에 바쁘고 행복했다. 당시 세 차례에 걸쳐 정동(貞洞)을 소재로 삼아 해설했고 올 1월에서 4월 초 사이에 경복궁 서쪽 마을, 도봉, 혜화, 성북동 등을 돌며 새롭게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해설 때마다 시를 외웠는데 특별히 나무가 나오는 시를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무보다 꽃을 의식한 시를 외웠다고 해야 옳다. 해설에 적극 반영하지는 않았지만 경복궁 서쪽 마을도 나무를 주제로 해설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소나무가 intensive하게 나와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청송당(聽松堂)과 간송(澗松), 송강(宋江), 송석원(松石園), 세한도(歲寒圖)의 화가인 '추사'의 집이었던 창의궁(彰義宮)터와 통의동 백송(白松) 등에서 공통으로 관계된 나무가 소나무이다.

 

세한도는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라는 논어의 구절을 통해 잣나무와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 그림이다.

 

덧붙여 청운초등학교 앞의 송강 정철의 시비(詩碑) 중 하나인 산사야음(山寺夜吟)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낙엽 지는 소리를 비 내리는 소리로 오인했다는 부분에서 송풍회우(松風檜雨)를 이야기할 수 있다.

 

찻물 끓이는 소리가 소나무에 바람이 스치고 전나무에 비가 내리는 소리 같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천자(天子)의 소나무, 제후(諸侯)의 측백(側柏), 선비의 회화나무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정치(권력)적 의미를 갖는 나무와, 딸이 태어나면 가구를 짜주기 위해 심었다는 오동나무는 다른가 물을 수 있다.

 

오동(梧桐)은 봉황이 깃든다고 알려진 나무이다. 그러니 최고 권력을 염원하며 심은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권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난 해에는 나무가 나오는 시들을 정리해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게을러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나무를 잘 모른다.

 

페터 볼레벤의 나무 수업이란 책이 화제이다. 나무에 대한 미시(微示)적 앎과 거시(巨視)적 앎이 잘 조화를 이루는 책이라 생각된다.(최근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숲 해설은 너무 미시적인 내용들이 주종을 이루는 것 같다.)

 

박연준 시인의 증발 후에 남은 것이란 시를 읽는다. “봄의 식물들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자기 순서를// 날아가는 새의 힘 뺀 발들/ 그 작게 뻗은 만세,/ 아래로/날들이 미끄러진다// 소복이 쌓이는 새봄”.. 이 시를 통해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배운다.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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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충분히 미륜(彌綸)의 역할을 한 존재였을까?(미륜이란 두루 잇고 꿴다는 의미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순(舜)이란 이름이 선양(禪讓)의 대상이기도 했고 주체이기도 했던 순(舜) 임금으로부터 비롯된 이름이기 때문이다.

잘 알듯 중국 역사에서 몇 차례 선양(禪讓: 왕의 자리를 평화적으로 물려줌)의 기록이 있다.(신화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신화라 해도 그런 인식을 중국 사람들이 공유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요(堯)는 순(舜)에게, 순(舜)은 우(禹)에게 선양(禪讓)했다.

이를 순(舜)을 기준으로 말하면 ‘순(舜)은 요(堯)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고 우(禹)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순이 요로부터 받은 왕위를 우에게 물려주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순은 단지 전달자 역할을 한 것으로 느껴진다.

어떻든 순(舜) 임금은 여러 신하 가운데 우(禹)를 지적하며 오직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 사실로부터 너로 인해서라야 세상이 화평케 된다는 의미의 여해(汝諧)란 말이 생겼다.

이순신은 순(舜)과 우(禹)의 사례에 맞게 자(字)를 여해로 지었다. 문득 삶과 이름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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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633]번째 책이야기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 김희영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 김희영
먹과 붓으로 쓴 캘리그래피가 ‘감성 글씨’라면 수묵 일러스트는 ‘감성 그림’이다. 먹물 하나로 진하게 또는 여리게 농도를 조절하며 먹과 물감이 화선지에 번져가는 수묵 일러스트가 주는 따스한 감성과 특별한 노하우를 담았다. 여러 번 덧칠하기보다 한 번의 우연함으로 깊이를 더하는 수묵 일러스트만의 그윽하고 활달한 필선과 색채로 내 안의 감성을 깨워준다.

처음 수묵을 접하는 분들과 그림을 처음 그리는 분들, 또 캘리그래피만 쓰셨던 분들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 긋기에서부터 붓을 다루는 방법, 먹과 물감을 어떻게 담아서 그리는지 등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담았다. 기본기를 익힌 후 상큼한 과일, 아름다운 꽃과 우직한 나무, 일상의 작은 소품,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 사계절의 풍경 등 아름다운 수묵 일러스트를 하나하나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먹과 붓 그리고 내가 서로 교감하여 몰입한 순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 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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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듣기 위해 탄 만원 전철. 나는 1호선 최북단 역인 소요산에서 탑승하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앉아 간다.

한 역 지나 한 여성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샴푸 향인지 향수 향인지를 나누어 주며 그녀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십분 넘게 그리고 바르고 두드리는 정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전철을 그녀는 만들고 있다.

옆에서 밑줄을 치며 책을 읽는 나는 순간 나도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붉은 색, 검정 색, 파랑 색 등의 펜으로. 때로 메모도 하는 내 읽기는 아니 밑줄 치기는 책을 다시 볼 때 긴밀한 힘을 발휘한다.

중요한 부분만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무 많은 곳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중요한 곳이 그 만큼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모르는 부분에는 다시 읽기 위해 붉은 색 줄을 치고 알고 있는 부분은 반가워 검정색 줄을 치고 감동한 부분에는 파랑 색 줄을 친다.

잘못된 주장이다 싶은 곳에는 체크를 하고 글쓰기에 활용할 부분에는 동그라미를 친다.

그러니 내 책은 낙서장 같다. 화장에서 눈, 볼, 입술, 이마, 턱 등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듯 밑줄치기인 내 독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내가 펜을 바꿔가며 책을 읽듯 옆의 그녀는 거울, 펜슬, 립스틱, 화운데이션 등을 바꿔가며 화장을 한다.

우리(!)는 랩탑 컴퓨터처럼 백팩을 활용하는 것도 닮았다. 내 백팩 위에는 책, 펜, 폰 등이 놓여 있고 그녀의 백팩에는 화장품과 도구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그녀의 몰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화장을 마친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나와의 차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나는 메모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책을 읽지만 그녀는 화장 후 스마트폰을 찾는 것이다.

그녀는 화장을 마친 뒤 곧바로 전철에서 내렸다. 화장하기 위해 전철을 탄 것이 아닐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 순전히 전철을 탔던 내 과거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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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 시가 있는 역사문화 에세이
배국환 지음, 나우린 그림 / 나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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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료 출신의 배국환이 쓴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屛山)에 가라는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생긴 시적 감흥을 글로 옮긴 자료집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비극의 역사 현장’, ‘예술혼’, ‘자연, 사랑, 그리고..’ 등이다.

 

저자는 명성황후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경복궁에 갈 때는 늘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부터 간다고 한다. 역사의 수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반영이다. 저자는 청령포라는 비극의 현장을 언급하며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진 적장자(嫡長子) 승계원칙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고 지적한다.(37 페이지)

 

문종이 아들을 살리고 싶었으면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하고 어린 아들의 훗날을 보장받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강화의 광성보(廣城堡)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쇄국정책은 당시 국제정세에 어두운 지배층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라 결론짓는다.(45 페이지)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해 목조 건축물기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이다.(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은 모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이다.)

 

저자는 수덕사 대웅전을 말하며 수덕여관을 소개한다. 많은 여성들이 수덕사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머물렀던 사연 많은(슬픈) 곳이다. 100여년 전 많은 여성들이 해방구로 여기며 새 세상을 꿈꾸던 곳이 수덕여관이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경복궁 영추문 앞 보안여관이 생각난다.)

 

저자는 예술혼편의 첫 순서로 세한도(歲寒圖)를 꼽는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즉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시들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을 출처로 한다.

 

저자는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과 제주도 대정마을의 추사 적거지(謫居地)를 가끔 들른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2017614일 서울신문)

 

조선시대 영조가 등극하기 전에 기거했던 창의궁 터이기도 한 백송 터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후 월성위의 봉사손(奉祀孫: 조상의 제사를 맡아 올리는 자손)으로 입양돼 4살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에 봉해졌고, 영조는 백송이 있던 이곳에 월성위궁을 내려줬다. 예전에는 인근 대로에 이곳이 창의궁 터였고 추사 김정희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통의동 백송은 수명이 300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백송 터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白松) 중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樹形)이 가장 아름다워 1962123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717일 태풍으로 넘어진 이후 고사돼 1993324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고 같은 해 513일 벌목돼 지금은 밑동만 남아있다.(2017814M이코노미)

 

2015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기 소르망은 모나리자에 견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80, 81 페이지) 수화(樹話) 김환기는 달항아리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고유섭 선생은 무기교의 기교라 했고 최순우 선생은 잘 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간다고 했다.(83 페이지)

 

나는 달항아리를 보며 아볼리 비블로 디나니떼 소노르(Aboli bibelot d'inanite sonore)란 말을 떠올린다. 울림이 없는 사라진 골동품이란 말이다.

 

저자는 경주에 가면 거의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들른다고 한다. 한적한 멋 때문이다.(85 페이지) 우리나라 탑파(塔婆) 역사의 최고봉이었던 우현 고유섭(1905 1944) 선생은 탑이 목탑에서 전탑(塼塔: 벽돌 전), 석탑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감은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원(始原)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포일과 창제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을 소개한다.(예술혼편 훈민정음해례본’)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새미골 막사발의 일본식 표기이다.(116 페이지)

 

간송(澗松)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4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1조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매년 기와집 150채에 해당하는 쌀을 소작료로 받아들였다.(138 페이지)

 

저자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 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에 이르는 강진과 해남의 답사길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부른다는 내용이다.(147 페이지)

 

저자는 병산서원을 가장 한국적인 풍광으로 소개한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의 산골짜기에 백사장을 앞뜰로 병산을 안산으로 삼아 자리잡은 풍산 류씨의 학당이다.(151 페이지) 임진왜란 시기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배움터인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서원이다.(155 페이지)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초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보니 눈이로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의 만폭동을 묘사한 부분이다.(221 페이지) 겸재(謙齋) 정선(鄭敾)도 금강산을 그렸음은 물론이다. 시대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더 찾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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