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즉 심() = () = ()을 전제하는 아비달마 불교는 심()과 심소(心所)를 말한다. (마음)은 의식에 들어온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할 뿐이다. 심소는 마음에 반드시 부수(附隋)하는 것이다. 가령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면 심소는 그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느낌을 일으킨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마음인 사()는 업()을 만드는 근원이다. ()는 분석하는 마음이다. 촘촘한 분류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까?

 

삭혀야 할 것들이 있어서/ 속이 아플 때나/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갑자기/ 길눈이 어두워질 때/ 나는 홍예문으로/ 돌의 얼굴을 보러 갑니다..”(장석남 시 돌의 얼굴’ - 둘 중에서) 같은 구절, “..일체(一切)가 다 설움을 건너가는/ 길이다같은 구절..그간 장석남 시인의 시를 소홀히 했다. 초기 열광의 시기를 지나 소원(疎遠)했던 시기를 지난 것을 반성하며 분류 불가능(?)의 정서들을 찾아 다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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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제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朝鮮)’이란 강의를 들었습니다. 조선이 최초의 유토피아였다는 말은 그들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란 책에 기반해 유토피아를 실현하려 한 서양에 앞서 주()나라를 이상 국가로 한 유토피아를 실현하려 했다는 의미입니다.

 

시종 인상적인 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ppt 대신 판서(板書)를 하며 펼친 자칭 중구난방의 강의였는데 이는 그만큼 강의가 자유롭게 진행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기 이론이 확실하고 동서양 철학에 기반해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로 꿰는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철학 전공자답게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자주 호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귀담아 들을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령 수신제가치국 평천하에서 제가(齊家)란 말은 가신을 거느린 사람들에 한하는 것이라는 말, 제사 역시 로열 패밀리(적당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적습니다.)들에 한한 일이라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가 정치적 의미를 갖듯 화이부동(和而不同)도 정치적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란 질문을 했습니다. 강사는 제 말에 동의하며 조화롭게 지내되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화이부동에 획일적이거나 폐쇄적 세계에 대한 지양(止揚)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강사가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 말의 출처를 제시하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가령 보르헤스가 천국은 도서관이라는 말을 했다고 분명히 한 반면 정조(正祖)를 조선 패망의 주역으로 본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그것이 누구의 견해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 제가 그 견해는 선생님 생각인가요, 학계 일반의 견해인가요?란 물음을 던졌습니다.(이런 식의 물음은 저 말고 다른 여자분에 의해서도 한 번 더 제기되었습니다.) 답은 자신의 견해라는 것입니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펼친 것이 조선이 멸망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 백승종의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어제 강의를 한 분의 견해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조는 성리학 중심의 구질서를 재확립함으로써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을 적절히 차단하고 자신의 정치적 동력을 키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멸망을 특정 인물로 환원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든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제 강의를 듣고 책 읽는 방식이나 책 선정 등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키워드 선정을 염두에 두고 넓고 큰 틀에서 책을 읽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제 진행된 첫 강의는 전체 제목과 같은 최초의 유토피아 조선이었고 다음 주는 공자, 신화가 되다입니다. 네 번째 주 강의인 종묘와 사직, 그리고 성균관이 가장 기대가 크게 되는데 일곱 번째 강의인 조선 회화에 담긴 600’, 마지막 여덟 번째 강의인 인사동 골동품 순례기는 유토피아란 주제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또는 연결지을지 궁금함이 큽니다.

 

푸코, 라캉 등의 사상에 기반해 조선을 분석할 것이라는 말도 궁금증을 키웁니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以老學難成)이란 말을 실감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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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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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건축에 큰 의미를 부여한 조선의 성리학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부제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이지만 책에 등장하는 성리학자들의 행동을 중독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중독되었다고 말하려면 타지마할을 지은 인도 무굴 제국의 황제 샤자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건축을 하다가 국고를 탕진해 보다 못한 아들에게 강제 폐위를 당하기까지 했다.(104 페이지) 책에 등장하는 성리학자들이란 회재(晦齋) 이언적, 남명(南冥) 조식, 퇴계(退溪) 이황, 고산(孤山) 윤선도, 다산(茶山) 정약용, 사계(沙溪) 김장생, 우암(尤庵) 송시열, 명재(明齋) 윤증 등이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성리학자들이 집을 뜻하는 재(), () 등의 글자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의 저자는 시인이자 건축가이다. 현역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안목이 작품 서술에 충분히 반영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등장 인물들의 사상과 건축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조선 유학을 정주계(程朱系: 정호, 정이 형제 및 주희의 학설을 따르는 학파) 성리학 일변도로 만든 원흉으로 꼽히는 이언적은 용()자 형태의 집을 지었다. 이는 자생풍수(지형풍수)를 변용한 결과이다.(61 페이지)

 

지형 풍수는 자생 풍수이고 가택 풍수는 중국 풍수이다.(27 페이지) 이언적이 자생 풍수를 변용해 지은 집이란 향단(香壇)을 말한다. 이언적은 독락당(獨樂堂)도 지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좋지 않은 시기에 지은 집이고 향단은 복원되어 경상감사를 제수받고 금의환향하여 지은 집이다.(53 페이지)

 

이상한 것은 불우한 시기에 지은 독락당은 너무도 여유롭고 완완(緩緩: 느릿느릿함)한데 화려한 시절의 집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우울하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향단은 전체적으로 용()자 형국의 집이다.(60 페이지) ()은 일()과 월()의 합성자이다. 그리고 둘을 나란히 쓰면 일() 풀러스 월() 즉 명당(明堂)의 그 명()자가 된다.(61 페이지)

 

()가 어떻고 기()가 어떻고 논하던 성리학자들이 아무리 정치 생명, 나아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풍수(風水)에 의존한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풍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풍수는 발복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바람과 물을 얻는 방법이고 그것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관건은 나무를 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가꾸고 보살핌으로써 좋은 수세(樹勢)를 얻듯 풍수지리의 의미도 단지 좋은 땅을 선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땅을 자자손손 지켜나가는 데 있다.(49 페이지) 명당은 없다.(22 페이지)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풍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술법(術法)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49 페이지) 저자는 술법 풍수도 반대하지만 지세를 의생물화하는 형국론(形局論)도 반대한다.(79 페이지) 저자는 얼마나 많은 조선의 학자들이 학문적 바탕을 숨겨왔는지 전공자들이 더 잘 알 것이라 말한다.(93 페이지)

 

사상과 집을 이야기했지만 사상과 권력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런 구절을 보라. “()의 움직임만을 인정하는 율곡의 입장으로 볼 때 그의 제자들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현실적 감각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 수양의 문제를 탐구하는 퇴계의 제자들이 산림에 근거하여 공부에 전념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선조 이후부터 율곡 문하의 서인은 거의 정국을 주도하는 집권 세력이 된다.”(173 페이지)

 

율곡은 기()의 움직임만을 인정하고 이황은 리()의 움직임만을 인정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에 의해서 이가 가려지는 것을 극복하고 리()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공유했다.(175 페이지) 서인(西人)은 이율곡의 기호학파에 학문적 기반을 둔 세력이고 남인(南人)은 이황의 영남학파에 학문적 기반을 둔 세력이다.(166 페이지)

 

그러면 남명 조식은 어떤가. 그는 지리산을 노장(老莊)적 세계를 상징하는 산으로 여겼다.(95 페이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유교와 불교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 , , 문왕, 무왕, 주공,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도통론은 부처로부터 이심전심의 비법으로 마지막 혜능에까지 이어진 법통론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27 페이지)

 

성리학은 선진(先秦) 유학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단점을 보완하며 이루어졌고 아무리 성리학이 불교를 배척하며 이루어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불교와 도교가 정리해놓은 형이상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25 페이지)

 

윤선도의 호 고산(孤山)은 서울 시절 별서(別墅)를 둔 남양주 수석동이 홍수로 인해 범람하면 사방이 물에 잠기고 퇴매재산만이 물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호방함이거나 철없음의 소산이다.(145 페이지) 해옹(海翁)이란 호는 윤선도가 후에(철들었을 때) 보길도 부용동에 살며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자위하기 위해 지은 또 다른 호다.(148 페이지)

 

지천명이라 했지만 퇴계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50이 넘어 주자(朱子)를 접했다.(115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에게 주자가 본격적으로 연구될 때 이미 중국에서는 비판받고 있을 때라는 사실이다.(115 페이지)

 

다산은 다산초당의 조경 원리를 주역(周易)‘에서 찾았다. 은자(隱者)의 길함을 표상하는 것이다.(201 페이지) 이괘(履卦)에 나오는 유인(幽人)이라야 정()하고 길()하다는 사()이다. 물론 다산초당은 다산이 직접 지은 집이 아니다. 다산의 외가 친척인 윤단이 초옥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인데 후에 다산에게 내준 것이다.(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의 묘가 윤단의 묘다.: 200 페이지)

 

철학으로 읽는 옛집은 사상과 집의 관계, 사상과 정치의 관계는 물론 사상 자체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가령 성리학이 가진 기본적 정치 입장은 왕권신수설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이 그렇다.(209 페이지)

 

조선은 치열하게 당쟁했지만 (왕을 바꾸기보다) 왕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 더 주효하다는 대전제에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 하다(209 페이지)는 말을 보라. 이런 모습은 여야(與野)가 치열하게, 아니 진흙탕의 개처럼 싸우다가도 세비(歲費) 인상에 대해서는 일치하는 현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영남학파는 퇴계의 학문에서 비롯되어 심경(心經)‘의례(儀禮)‘를 중시했고, 기호학파의 예학은 율곡과 구봉(송익필: 宋翼弼)에 의해 계도되었으며 소학(小學)‘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바탕으로 했다.(209, 212 페이지)

 

()란 신의 계시를 받고 신을 섬기는 제사 의례 즉 무격신앙(巫覡信仰)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나 이를 사상으로서 승화시킨 사람은 공자이다. 공자는 시시콜콜하게 예를 따진 사람이다.(216 페이지) 팔일무(八佾舞)란 것이 있다. 공자는 제후인 계손씨(季孫氏)가 천자의 춤인 팔일무를 춘 것을 질책했다. 공자는 계손씨를 보며 (천자가 아님에도 팔일무를 추었으니) 무엇을 차마 하지 못하겠느냐는 말을 했다.(조재모 지음 궁궐, 조선을 말하다‘ 33 페이지)

 

사계(沙溪) 김장생은 임이정(臨履亭)을 지었다. 이는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처럼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디 하라는 시경(詩經)‘의 여림종연(如臨淙淵) 여리박빙(如履薄氷)에서 따온 것이다.(230 페이지)

 

저자는 우암(尤庵)을 주자(朱子) 탈레반, 사계(沙溪) 예학의 사도(司徒) 바울이라 부른다.(233 페이지) 송시열이 어린 아이처럼 따랐던 스승은 오직 한 사람 주자(朱子)였다.(242, 243 페이지) 송시열은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으로부터 배웠다. 송시열은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공자와 주희의 말이 다를 경우 주자의 말을 따르겠다고 밝혔다.(249 페이지)

 

윤선도와 더불어 송시열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심한 건축 중독자 중 한 명이었다.(257 페이지) 저자는 이황이 툇간을 내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검박(儉薄)한 생활 양식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무너진 것은 왕권에 비해 신하들의 권력이 커진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본다.(257 페이지)

 

이언적이 회재(晦齋)를 주자(朱子)의 호인 회암(晦庵)에서 따온 것처럼 송시열은 주자의 호 회암에서 암()을 따와 우암(尤庵)이라 한 것은 유명하다.(271 페이지) 송시열(1607 1689)도 오래 살았지만 그의 정적인 윤증(尹拯: 1629 1724)도 오래 살았다. 윤증은 조선 후기 노론과 소론의 분립과정에서 소론의 영수로 활동했던 조선의 문인이다. 파격적이게도 윤증은 81세에 집을 지었다.(295 페이지)

 

송시열의 주자근본주의에 대항했던 젊은 학자들의 학문적 입장은 양명학(陽明學)이다. 이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다.(299 페이지) 성리학에서 쓰이는 사문난적이란 교리를 어지럽히고 그 사상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을 가장 적극적으로 쓴 최초의 인물이 맹자이다. 그는 공자의 도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모든 학설을 이단으로 여겨 철저하게 배격했고 공자와 다른 설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단호히 붓을 들어 탄핵했다.(300 페이지)

 

윤증의 사랑채의 당호는 리은시사(離隱時舍)이다.(318 페이지) ()나 당()이 아니라 사()를 쓴 것이다. 주역 중천건괘(重天乾卦) 구이(九二: 두번째 양효)는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다. 리은 즉 숨어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현룡이고 땅 위에 있으므로 밭에 있다고 한 것이다.

 

()는 집이라는 의미, ()의 의미가 있는 글자이다. 깊이 생각하고 지은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리은시사는 용이 숨어 있다가 세상에 나올 때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서 나온다는 의미이다.(322 페이지)

 

실사구시의 학풍과 양명학자들을 송시열의 칼날에서 비호한 절대 공로자는 윤증이다. 그는 주자학이나 양명학,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서인이나 남인 할 것 없이 두루 교류하며 주자근본주의 시대에 다각적 추론의 장을 열어놓았던 윤증의 집은 비단 학문이나 정치에서뿐 아니라 민중의 삶에서도 그러했다.

 

흉년이 들면 마을에 공사를 일으켜 그 노임으로 쌀을 지급하고 추수 때는 나락을 길가에 두어 배고픈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모른 체했다. 그런 윤씨 가문의 가풍 때문에 이 집안은 동학혁명 때도 한국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322, 323 페이지) 다 읽고 나니 통쾌한 느낌이 든다. 주자 탈레반 송시열이란 표현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윤증의 학문과 삶이 보여준 모범적인 일치 때문일 것이다.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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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미뤘던 청소(淸掃)를 했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삼동(三冬)을 참아온과제를 전격 감행한 것이다. 먼지 쌓인 불필(不必)의 잡동산이(雜同散異)들을 증거인멸(證據湮滅)하듯 없앴다. 복사 해놓고 읽지 않은 자료들과 유효 기간을 넘긴 건강보조 식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자료들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비싼 돈 주고 산 식품들을 버리려니 마음이 아팠다. 청소는 정리(整理)를 포함한다. 정리(整理)는 정리(定離) 즉 헤어짐이기도 하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책들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정리(定離)의 결과이다.

 

이런 저런 짐들로 빼곡했던 책장 꼭대기를 치워 공간을 만들고 바닥에 쌓아 두었던 책들을 그 자리에 올렸다. 지난 겨울부터 이번 봄 사이에 필요해 찾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다시 산 책이 두 권이나 된다. 청소(淸掃)라는 글자는 쓸어 없앤다는 뜻의 소()이다. 그러니 비로 쓸고 물을 뿌림을 의미하는 소쇄(瀟灑)라 해도 좋다.

 

마음에 쌓인 먼지 같은 것들을 불사르는 것이니 다비(茶毘)라 해도 좋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서 바람과 물을 얻고 지키는 것이 풍수(風水)라면 신외(身外)의 물()들을 청소해 표류하던 마음의 바람과 물을 바로 흐르도록 한 오늘의 청소는 마음의 풍수라 할 수 있다.

 

예전 나는 책상을 정리하지 않으면 책을 읽지 못할 정도였으나 그런 강박은 어느새 무신경으로 변했다. 그 무신경을 딛고 정리를 하게 된 것은 어제 들은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강의 덕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일을 한다는, 아니 그런 존재가 사람이라는, 아니 미물(微物)도 노동한다는.

 

신영복 선생님은 달팽이도 공부한다는 말을 했다. “지난 여름 폭풍 속에서 세찬 비바람 견디며 열심히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에 의하면 공부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이다.(‘담론’ 18 페이지)

 

그렇다. 공부와 노동이다. 덧붙일 것이 있을까?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사랑한다는 말이리라. 공부와 노동, 그리고 사랑이 하나로 수렴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아니 그런 삶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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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 때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게 된다. 두 곡 모두 좋지만 특히 1번의 경우 전곡을 들으면 슬픔마저 감미롭게 느껴진다. 함석헌 기념관에서 ‘간디와의 대화‘의 저자인 김진 목사님의 ‘함석헌과 간디‘ 강의(14시 - 16시)를 듣고 틈을 내 교보에 들러 바르텔로미 마돌의 ‘처음 읽는 베르그송‘을 샀다.

이 책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일 때 또는 황량하고 스산할 때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던 책이다. 그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할 상황도 아니다.

난감함이 같은 레벨이어서는 아니고 다산은 유배지에서 어떤 음악과 시에 심취했을까, 란 궁금증이 든다. 음악은 모르겠고 시에 관해서라면 다산은 다른 사람의 것에 의존할 필요 없이 자신의 것을 음미하지 않았을까?

다산은 주역의 괘사로 다산초당에서 산림에 묻혀 사는 기쁨을 이야기했다. 탄탄대로를 걸어가는 상으로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사는 사람의 정(貞)함을 지니면 길(吉)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궁여지책이지만 아니 궁여지책이었던 다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자고 나면 컨디션도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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