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 마음을 지배하는 공간의 비밀
콜린 엘러드 지음, 문희경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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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엘러드(Colin Ellard)는 심리지리학을 이야기하는 인지신경과학자이다. 심리지리학은 신경과학, 건축, 환경을 접목시킨 학문이다. 엘러드의 주된 작업은 서로 다른 환경에 인간의 뇌와 몸이 반응하는 방식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 규명을 바탕으로 엘러드는 더 나은 생활 환경을 만드는 노하우를 제공하는 글을 쓴다.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공간 속의 자연, 사랑의 장소, 욕망의 장소, 지루한 장소, 불안한 장소, 경외(敬畏)의 장소, 공간과 기술 등을 다룬 책이다. 인간은 건축물을 지어 지각(知覺)을 바꾸고 사고와 감정에 영향을 끼치며 인간 행동을 조직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돈을 벌어들인다.(23 페이지)

우리가 어디를 가든 신경계와 마음은 우리의 경험에 의해 조작된다. 오늘날 인간의 경험은 그 어느 때보다 건축 환경에 의해 섬세하고 예술적으로 영향을 받는다.(25 페이지) 설계에 의해서든 우연에 의해서든 건축물은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따라 웃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를 행동하고 느끼게 만들어준다.(35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인간은 감각기관에 들어온 사실을 일관된 이야기로 엮어 지각된 세계를 존재하는 세계로 만드는 존재라는 말을 한다.(67 페이지) 사랑의 장소라는 챕터에서 콜린 엘러드는 건축물과 낭만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베를린 장벽을 사랑한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결혼식 비슷한 의식을 치르고 이름도 발(wall) 발터(독일어로 발은 성벽을 의미한다.)로 개명한 사람이 있다.

콜린 엘러드는 주거공간의 모양과 배치가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자기에게 꼭 맞는 집을 만나면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상호 작용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87 페이지) 가장 효과적인 실험 방법으로 콜린 엘러드가 소개한 것은 몰입형 가상 현실(immersive virtual reality)에 기초한 방법이다.

콜린 엘러드는 집의 미래를 논한다. 그에 의하면 건물에도 감각이 있어서 사방의 벽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적응하는 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 난방과 온도조절장치도 일종의 반응장치이다.(103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하이데거의 언어는 평생 태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검은 숲의 작은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연구에 몰두했던 그가 산책하던 오두막 주변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산길을 연상시키며, 그의 책 '숲길'은 독일어로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을 몹시 어렵게 만드는 숲 속의 복잡한 길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110 페이지)

환경의 영향력을 알게 하는 글이다. 콜린 엘러드는 어떻게 하면 박물관을 전율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란 물음을 던진다. 콜린 엘러드는 진품이 주는 매력이 정확도가 주는 매력으로 대체된 듯 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진품인지보다 진짜처럼 보이는지에 관심이 더 많다는 것이다.(128 페이지)

콜린 엘러드에 의하면 이런 변화는 장소와 시간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방식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다. 인간은 곡선에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길의 모양에 정서적 영향을 받는 동물이 인간만은 아니다. 자폐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이 직선으로 난 길보다는 곡선의 길을 따라갈 때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고 주장했다.(135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욕망과 결합된 장소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은 우리를 이성의 날카로운 경계를 넘어서 광기로까지 보이는 영역으로 끌고 간다고 말한다.(149 페이지) 장소를 향한 욕망어린 애착은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예측하고 이용하도록 수천 년 넘게 진화해온 적응 반응에서 나온다.(150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건축가이자 도시공학자인 얀 겔(Jan Gehl)의 말을 인용해 좋은 도시의 거리는 평범한 보행자가 시속 약 5km로 이동하면서 약 5초에 한 번 꼴로 흥미로운 새로운 장소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157 페이지)는 대니얼 벌린이란 심리학자를 언급한다. 벌린에 의해 권태 및 자극 상태에 관한 진지한 논의와 측정 방법이 시작되었다.

벌린은 식욕 및 성욕과 동등한 가장 원시적인 욕구로 정보를 얻으려는 욕구라 믿었다.(159 페이지) 벌린은 인간의 행동은 호기심 즉 새로운 것을 향한 끊임 없는 갈증을 해소하려는 욕구만으로도 동기를 얻는다고 보았다. 우리가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도록 이끌어주는 욕구도 이런 욕구이다.

벌린은 권태가 높은 각성 상태, 심지어 스트레스 상태를 유발할 수도 있음을 밝혔다.(163 페이지) 지루한 경험에 잠깐만 노출되어도 뇌와 신체의 화학반응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변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65 페이지)

저자는 지루한 건물에 잠시만 노출되어도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 극단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매일 갑갑하고 지루한 환경에 둘러싸인 효과가 누적된다면 어떻게 될까? 묻는다. 콜린 엘러드는 경제적 요인(비용 절감) 때문에 단조로운 건물을 짓는 바람에 지루한 환경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169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긴축재정으로 가장 먼저 미술과 디자인 과목을 없애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애초 건축 설계 관련 교과를 수업 과목에 넣으려고 진지하게 시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는 크게 불안을 품지 않는다고 지적한다.(173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특징 없는 도시 풍경이 조성되는 마지막 이유로 갈수록 디지털 기술과 정보에 의존하면서 건축 환경을 등한시하는 것은 꼽는다. 대중 교통 설계자 재닛 사딕칸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보행자가 다가오는 차에 부딪히지 않도록 뉴욕의 가장 번잡하고 위험한 교차로의 보도에 보행자의 시선을 끄는 거대한 그래픽을 그리도록 주문했다.(174 페이지)

이 사례는 건축 환경을 등한시 하는 현실을 증거한다. 콜린 엘러드는 감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타고난 욕구를 무시하도록 설계된 거리 풍경과 건물은 새로움과 감각을 추구하는 진화적 충동을 거스를 뿐 아니라 미래의 인간에게도 편안함이나 행복, 최적의 가능성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177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높은 수준의 위협이 느껴지는 불편한 장소에서 살면 신경계 반응과 내분비계 반응이 폭발해 정신병리를 앓거나 건강이 악화도기도 한다고 말한다.(182 페이지) 콜린 엘러드에 의하면 대도시에서 성장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불안을 촉발하는 사회적 요인에 뇌가 더 강하게 반응한다.(184 페이지)

심리학과 미학 분야의 오랜 연구 전통에서 인간은 거의 보편적으로 둥근 윤곽선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곡선을 부드럽고 유혹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삐죽빼죽한 테두리는 딱딱하고 혐오스럽고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여긴다.(193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장소와의 상호작용은 주로 우리가 거의 모든 동물과 공유하는 깊은 차원의 생물학적 원칙에서 나온다고 말한다.(221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오늘날의 많은 연구자들이 모든 경외(敬畏) 경험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광대함(vastness)과 순응(accommodation)이라는 두 가지 고유 속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222 페이지) 순응이란 경외감을 일으키는 자극에 반응하여 세계관을 조정할 필요를 느끼는 방식이다.(223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거대한 건물을 짓고 경외감은 일으키는 건축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권력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성향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말한다.(241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거대한 종교 건축물은 애초부터 우리가 저 높은 천국에 닿을 것처럼 보이는 건물의 꼭대기를 쳐다보도록 설계되었다고 말한다.(247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든 웅장한 대성당이든 인상적인 시청이나 법원 건물이든 거대한 공간을 지날 때 다들 눈을 위로 드는 보편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249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여는 글'에서 여섯 살이던 자신을 스톤헨지에 데리고 간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0년 전인 그때 콜린 엘러드는 순간의 느낌에 압도되었다고 한다. 콜린 엘러드에 의하면 그것은 어린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낯선 장소에 가서 느끼는 보통의 감정보다 훨씬 큰 경외감이자 누군가가 자신과 공유할 의도 없이 어떤 원대한 목적을 위해 쌓은 거대한 바위 사이로 들어간다는 자각에서 오는 숨막히는 불안감이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건축세계에 느끼는 단순한 경외감이나 정서반응과 이 분야를 연구하는 어른 과학자로서의 비판적 반응을 가르는 경계를 끊임 없이 넘나든다(18 페이지)는 콜린 엘러드는 '닫는 글'에서 마치 거대한 분수령에서 두 발을 벌리고 선 기분이라 덧붙인다.(315 페이지)

물론 콜린 엘러드는 우리 모두는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고 어찌 보면 이미 여기 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316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건축가의 창조적 비전을 소시지 기계에 억지로 밀어넣어 이미 시도되고 결함이 드러난 르코르뷔지에 아류의 설계만 찍어내는 과학적 설계로 가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가에게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현실을 외면한 채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도록 허용하는 것도 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고도 말한다.(317 페이지) 콜린 엘러드는 인간은 자기의식을 얻은 뒤로 세계를 감각과 생각과 감정의 자기성찰적 세계와 물리학과 물질의 외부세계로 영원히 구별하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난 풍요를 얻은 대신 삶에 끝이 있음을 모르는 동물들의 조용하고 무심한 행복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32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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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과 건축, 환경을 결합해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이란 학문을 개척하고 있는 인지신경과학자이자 도시현실연구소(Urban Realities Laboratory) 소장 콜린 앨러드(Colin Ellard)는 철학에서는 감각 영역과 궁극적으로 불가지(不可知)의 즉 알 수 없는 외부 현실을 구별하는 것이 새로운 관심사가 아니지만 지각심리학의 새로운 실험실 연구에서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개념 대신 지각(知覺)하는 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능동적인 관찰자라는 개념을 제시한다고 말합니다.(‘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67 페이지)

이 글과 연결지어 논할 것은 김일권 교수의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에 나오는 ‘하늘은 천문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유가 한껏 펼쳐지는 마당이기도 하다‘는 설명입니다.

모두 우주라 번역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는 스페이스(space)와 유니버스(universe), 그리고 코스모스(cosmos)를 구별해 설명할 필요가 있고 고구려의 천문체계를 콜린 앨러드의 설명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페이스는 우주를 공간으로 보는 개념이고 유니버스는 천문학의 대상으로서의 우주를 의미하고 코스모스는 유니버스에 인간의 주관적 요구사항이 더해진 우주를 의미합니다.

콜린 앨러드는˝인간은 감각기관에 들어온 사실을 일관된 이야기로 엮어 지각된 세계를 존재하는 세계로 만˝드는 존재(‘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67 페이지)라는 말을 합니다.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 천문체계를 세웠던 고구려인들에게 하늘은 코스모스였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고구려는 당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W자로 그렸고 고분벽화 속에 자신들만의 별자리와 신화도상을 그렸습니다.

저는 일관된 이야기라는 말에 가장 관심이 많이 갑니다. 문화유산을 공부하기 때문이겠지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난 고구려 별자리 신화가 많은 생각거리를 전해주는 것은 고무적이란 생각을 합니다. 인연을 가능하게 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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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심정을 대변해주는 적당한 말이 있어 공유합니다.

‘아무도 제 꿈을 실현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매일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목표로 하는 곳에 벌써 이르렀다는 상상을 하는 대신 제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즐길 것입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제 심리 검사 결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근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노력형으로 소극적이고 수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정열을 가집니다.

목표를 향해 끈질기고 신중하게 나아갑니다. 걸음은 느릴지 모르지만,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꿋꿋하게 대처합니다.]

일정 부분 맞는다 싶습니다...목표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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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권 교수의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를 통해 거듭 확인한 사실은 명나라의 제후의 나라를 자처한 조선의 실상이다.

조선은 과학 특히 천문에서도 그 주의(主義; 명나라의 제후국 자처)에 걸맞게 천자만이 하늘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이 얼마나 사대적이었는지는 이덕일 소장의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의 1부인 ’중화라는 이름의 감옥을 깨다‘라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은선 교수는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에서 경직되기 이전의 유교의 정수(精髓)를 살피자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유교의 정수를 오늘 우리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을까 싶다.

어떻든 조선 초기만 해도 유교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립되기 전이어서 조선 중기 이후처럼 과도한 교조성을 띠지 않았다.(이한우 지음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115 페이지)

김일권 교수의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한 점이 생긴다. 다재다능한 세종이 천문학에 어떤 정도의 관심과 지식을 가졌는가, 이다.

세종대의 천문학자들은 그들의 관측과 계산을 바탕으로 자주적 역법을 확립했다.(국립 문화재 연구소 엮음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59 페이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어떤가.

이는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천명(天命) 사상을 만들어 새 국가 건설의 명분을 퍼뜨리려던 중 고구려 성좌도 탁본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를 돌에 새길 것을 명해 만들어진 석각(石刻) 천문도이다.(박석재 지음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21 페이지)

물론 박석재 교수에 의하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별자리들은 4신(神)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일 뿐이다.

사신도는 하늘의 방향과 별자리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란 김일권 교수의 말(’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104 페이지)이 생각난다.

박석재 교수는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종대왕은 성군 중에서도 성군이었다고 말한다.(’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32 페이지)

박석재 교수에 의하면 세종대왕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중국 사신의 방문이었다고 한다.

사신 일행이 경복궁 안에 설치된 천문관측 기구를 보고 감히 중국 천자나 할 수 있는 일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어올까 염려해 실제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 기구들을 모두 숨겼다고 한다.(’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 35 페이지)

조선 중기 이후 유학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다.

하늘을 잊은 하늘의 자손은 지금 우리 이전에 조선 중기 이후 교조적이고 자폐적인 성리학 이데올로기를 고수한 성리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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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김일권 지음 / 사계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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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과 오리온 별자리만이 동양과 서양에서 동일한 모양을 이루는 별자리이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중국과 고구려에는 별자리가 다르다. 반면 중국과 조선은 큰 차이가 없었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우리나라든 중국이든 서양식 별자리 체계를 수용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별자리를 체계화시킨 문명은 이라크 일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이다. 저자는 역사천문학자이다. 역사천문학은 역사 유물로 남겨진 천문 자료를 비교하여 천문의 같고 다른 문제를 풀어가는 분과학문이다.

서양 별자리는 황도 12궁에 기초하고 동양 별자리는 적도 28수에 기초하고 있다. 황도 12궁은 태양의 길을 따라 나 있는 12개의 별자리이다. 적도 28수는 천구의 적도를 따라 나 있는 28개의 별자리이다.(22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사마천의 '사기'가 당시까지의 천문학을 집대성하여 표준화한 최초의 문헌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왕조의 역사서를 기록한 천문서에 천문학이 포함되는 것은 동양 천문학의 중요 특징이다.(24 페이지)

()나라의 초기 정치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던 공자는 하늘의 별과 지상의 정치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졌다. 28(宿)는 달이 천구상을 일주천(一周天)하는 동안 하루에 하나씩 별자리를 지나면서 머물며 되돌아오는데 소요되는 27.3일을 28일로 설정한 결과이다.

宿은 별자리 수자이다. 28수는 28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집 사()자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관념은 28수 별자리를 계절별로 형상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진시황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중원 지역에서 별자리 벽화가 쇠퇴 일로를 걷던 동안 고구려에서는 화려한 별자리 벽화가 꽃피었다.(33 페이지)

중원(中原)은 한족(漢族) 본래의 생활영역을 말한다. 고구려 벽화 무덤 속의 별자리 그림은 한 줄에서 석 줄까지 뚜렷한 연결선을 지닌 것들이어서 고대 동아시아 천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 때 고구려의 벽화천문도는 동아시아 천문도 연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36 페이지) 고구려 벽화고분의 천장부는 우주의 재현을 위한 주 무대이며 상단 천장 궁륭(穹蕯)부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궁륭은 활이나 무지개처럼 한 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이다.

특이한 것은 고구려의 별자리는 둥근 원반 모양이었다는 점이다. 각각의 별들에는 하나에서부터 둘 또는 세 가닥의 연결선이 그려졌다. 동서양의 별자리들 중 전혀 다른 모양을 취한 사례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반대편에 위치한 카시오페이아는 서양에서 W자로 그려진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중국은 W자 모양이 일체 없다. 그런데 고구려의 벽화무덤에서 오히려 서양 전통과 통하는 W자 모양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가 중국의 천문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되지만 독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고려로까지 이어진다.

동아시아 천문 전통에서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오직 고구려만이었다. 별자리는 신화와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별자리와 신화도상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벽화 속에서 별들이 연결된 각각의 별자리를 찾아내어 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별자리들이 어떻게 전체적인 체계를 이루고 하늘 세계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숱한 신화와 광대 제국을 건설했던 역사의 편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구려의 25기의 별자리 벽화무덤 중 가장 다채로운 것으로 덕흥리 무덤을 꼽는다. 덕흥리 무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은 천상의 수렵도(狩獵圖)이다. 저자는 지구가 자전축에 의해 회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고구려가 지축이란 용어를 사용한 사실을 언급한다. 더구나 그 것은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신화적인 모습을 취했으니 지축의 원리를 너무나 잘 구현한 천문학의 미스터리이다(58 페이지)

덕흥리의 북두칠성 별자리에서 실제 관측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점은 보성(輔星)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에서 일찍이 오행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2세기의 문헌 자료가 증거한다. 덕흥리의 토성 표현은 단순한 원반 형태가 아니라 공 모양의 입체적 구헝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중국 천문도에서는 '돈황성도 갑본' 등의 예에서 보듯 북극성좌가 5성인데 고구려는 3성이다.(64 페이지) 저자는 이 덕흥리 토성 표현을 천체가 공처럼 둥글다는 혼천설의 천체학 이론의 모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별자리는 아니지만 매우 주목할 도상이 북쪽 하늘에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의 머리 아래쪽에 몸이 하나로 볼 수 있으면서 사람 형상의 '머리가 둘이고 다리가 넷'인 반인반수상이 있다. 이 신화적 동물 옆에 지축일신양두(地軸一身兩頭)란 글자가 쓰여 있다. 하나의 몸통은 지축, 양두는 지축의 양끝 즉 북극과 남극을 나타내니 천문지식을 신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65 페이지) 언제나 북두칠성과 대칭을 이루며 남쪽 하늘에 등장하는 별자리가 남두육성이다. 서양에서는 궁수자리라 부른다. 25개의 천문벽화 중 남두육성이 그려진 벽화는 14기 정도이다. 대부분 북두칠성과 대칭으로 그려졌다. 북두는 사후세계를, 남두는 생전의 수명장수를 주관하는 도교적 신앙을 나타낸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는 북극성 주위에서 매우 뚜렷하게 빛나는 별자리이지만 놀랍게도 중국의 고천문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카시오페이아 부분의 별자리를 W자 모양으로 파악하지 않고 각도성과 왕량성, 책성이라는 세 가지 별자리로 분리 인식한 결과이다.(86 페이지)

전기했듯 고구려는 이 예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고구려의 자체적 천문 전통을 증거한다. 저자는 고려의 석관천문도가 고구려의 별자리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자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8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 유물 중 현대 서양 천문학이 도입되기 전 그려진 유일한 W자형의 5성 별자리이다.

또한 이 자료로 인해 고구려 덕흥리 벽화의 서쪽 W5성 별자리를 카시오페이로 비정(比定)할 수 있다. 고구려의 북극삼성 천문학 전통이 고려의 북극삼성으로 계승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덕흥리 서벽의 W자형 5성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로 해석하게 하는 결정적 자료이다. 저자는 400년간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였던 국내성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로 묘사한다.

수많은 무덤들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린 무덤 내부 공간도 생사일여의 공간이다. 덕흥리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별들은 자기 자리가 있다. 이는 큰 사건이다. 별을 보고 방위를 찾을 때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북극성 뿐이다. 언제나 북쪽 하늘에서 북극성 주위를 시계처럼 도는 북두칠성도 훌륭한 방위지표가 된다.

하늘 전체를 하나의 판 속에 그린 천문도를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 한다. 고구려는 전천천문도가 문헌에 나타나기 2세기 전에 고구려 고분벽화에 전천천문도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95 페이지) 고구려 고분벽화는 주제의 변화에 따라 보통 세 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인물 및 생활 풍속도 위주이고 2기는 생활풍속도와 장식무늬 및 사신도 주제가 병행되었다.

3기는 사신도가 벽화의 중심 주제로 그려진 시기이다. 이 분기법에 별자리 내용 변천을 결합해 구분한 시기는 다음과 같다. 1기는 4세기에서 5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2기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 체계와 중국식 28수 체계가 결합하는 시기이다.

3기는 6세기 중반에서 7세기까지 고구려식 우주관이 크게 확충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들을 아울러 말하면 벽화 고분 속의 방위 체계가 사방위 별자리 및 해와 달, 사신도 등이 중첩된 구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풍수를 일컬을 때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 때문에 사신도(四神圖)를 지상의 방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사신도는 하늘의 방향과 별자리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104 페이지)

저자는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하늘은 고려와 조선이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170 페이지) 조선의 하늘이 성리학 이념에 경도된 이법(理法)의 하늘만을 공인했다면 고려의 하늘은 다양함을 공존시키는 다원성을 지향했다고 말한다. 고려와 고구려의 하늘이 동질적이라면 고려와 조선의 하늘은 이질적이다. 조선이 들어서고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인간은 하늘과 유리되고 하늘의 천공 속을 자유롭게 노닌다는 사유체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171 페이지)

하늘은 천문학의 대상이지만 우리의 사유가 한껏 펼쳐지는 마당이기도 하다. 조선은 성리학적 중화 질서에 편입되면서 제천 의례를 혁파하여 하늘과 교통하던 통로를 스스로 봉쇄했다. 성리학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었다.

김일권 교수의 책은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 천문학의 대상인 만큼 상상력의 캔버스 같은 곳이기도 한 하늘을 고구려와 조선이 어떻게 다르게 보았는지를 알게 하는 책이다. 조선을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의 과학을 천문학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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