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곁에 머물기 - 지구 끝에서 찾은 내일
신진화 지음 / 글항아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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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학(glaciology)은 1960년대에 시작된 젊은 학문이다. 빙하 곁에 머물기의 저자 신진화 박사는 빙하(glacier) 코어로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빙하학자다. 저자는 빙하는 기후 유언장(遺言狀) 같다고 말한다. 빙하는 눈이 내리는 당시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빙하학(glaciology)에서 눈(snow)은 떨어진 이후 변하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펀(firn)은 눈과 얼음의 중간 단계(눈도 얼음도 아닌 단계)의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사하라 사막의 먼지, 화산 폭발로 분출한 화산재가 지구 대기를 떠돌다 빙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빙하로 46억년의 지구 역사를 모두 해명할 수는 없다.


저자에 의하면 남극에서 시추한 빙하 코어로 80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연속적으로 복원했고 그린란드 빙하 코어로 12만년 동안의 기후와 환경을 복원했다. 저자는 지구의 비밀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쥐게 되는 빙하학자로 평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46억년이라는 긴 기간을 살아낸 우리 지구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환점을 겪으며 오늘날의 지구가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인류 활동의 영향이 없더라도 자연적으로 농도가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이산화탄소 실측 자료는 이미 인류 활동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이산화탄소가 자연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 기후 자료를 활용하면 자연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로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갈 수는 없다. 다만 46억년 동안 지구가 남긴 화석, 해양 퇴적물, 빙하, 퇴적암 같은 흔적을 활용하면 46억년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과거 기후나 환경 데이터를 프록시(proxy)라 한다. 눈은 대기 중을 떠도는 에어로졸과 함께 땅에 쌓여 단단해지기를 거듭하면 빙하가 된다. 빙하 최상단 눈송이들 사이로 대기가 자유롭게 대류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많은 눈이 쌓이면 눈송이 간격이 좁아지고 대기가 확산의 원리에 따라 이동한다. 


빙하는 과거 대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냉동 타임캡슐이다. 빙하를 이용해 측정한 이산화탄소 데이터는 과거 대기를 직접 측정한 데이터이므로 프록시가 아니다. 극 지역 빙하를 활용하면 연속적으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과거 기후에 대한 해석에는 명료한 단 하나의 원인보다 다양한 가설이 난무한다. 한국에는 빙하가 없다. 따라서 빙하 코어도 없다. 빙상(땅 위를 넓게 덮고 있는 얼음 덩어리)이 대륙이나 높은 산에 형성되면 중력에 의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얼음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이를 빙하라고 한다. 빙하는 얼음의 강이라는 뜻이다. 


남극에서는 빙상이 바다 위까지 흘러내려 얼어 있다. 이를 빙붕(氷棚)이라 한다. 강처럼 흐른다고 하지만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빙상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빙하 조각을 빙산(iceberg)이라 한다. 이렇게 움직이고 깨지면서 빙하의 두께는 무한정 늘지 않고 특정 기후 조건 하에 일정하게 유지된다. 눈이 녹지 않고 쌓일 수 있는 최소의 높이를 설선(雪線; snow line)이라 한다.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는 설선의 높이가 0미터로 눈이 육지에서 쌓이면 거대한 대륙빙하를 형성한다. 그래서 남극과 그린란드를 옆에서 보면 프라이팬 뚜껑으로 덮어둔 것처럼 육지 전체가 오목하게 빙하로 덮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빙하가 없지만 오히려 날씨가 뜨거운 적도에는 빙하가 있다. 고도가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100미터 높아질 때마다 0.6도씨 정도 기온이 낮아진다. 온대 지역은 해발 고도 1000~5000미터에서 눈이 쌓인다. 노출된 빙하는 푸른빛이 돈다고 해서 청빙(靑氷; blue ice)이라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최남단은 남극 대륙의 장보고 과학기지다. 극 지방은 위도 66.5도 이상 지역이다.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공전하면 극 지역은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현상이, 겨울에는 극야(極夜) 현상이 나타난다. 해가 지지 않거나 뜨지 않는 곳이 연중 하루라도 있다면 그것은 극지다. 


구체적으로는 북극은 7월 평균 기온이 섭씨 10도 이하인 지역을 말한다. 실질적인 남극은 남극 수렴대 이남을 말한다. 남극 수렴대는 연중 평균 온도가 영하 4.0~영하 1.8도인 남극의 차가운 해수와 연중 평균온도가 4~10도의 북극의 따뜻한 물이 만나는 경계를 말한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 남극에는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 사하라 사막보다 건조하다. 남극은 사막이다.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 한다. 남극의 빙상이 다 녹는다면 해수면이 60미터나 상승한다. 이 빙상이 빛을 거의 다 반사하기에 남극은 세상에서 가장 춥다. 


극지에서 빙하를 얻으려면 세상에서 가장 극한 환경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도가 높고 세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그린란드와 남극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되돌려 확인할 수 없는 과거 기후와 환경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빙하를 얻기 위해서 빙하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극지역으로 들어간다. 대기중으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 사라지는 데 수백~수천년이 걸린다.(61 페이지) 미국의 지질학자 마샤 비요르네루드는 물 한 방울이 대기에 머무는 기간인 9일은 이해 가능하지만 이산화탄소가 사라지는 데 걸리는 기간인 수백년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24 시간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자연적으로 등락(騰落)한다. 식물의 광합성 때문이다. 광합성이 활발한 낮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낮고, 광합성이 줄고 호흡이 늘어나는 저녁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가장 높아진다. 계절별로도 차이가 난다. 여름에는 광합성이 활발해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고, 겨울에는 광합성이 줄어(이산화탄소 소비가 줄어)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북반구는 남반구와 계절이 반대여서 이산화탄소 농도 패턴도 반대다.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은 대기권, 해양권, 육상생물권, 암석권이다. 이를 이산화탄소 저장소라 한다. 가장 큰 이산화탄소 저장소는 암석권이다. 반응 속도가 매우 느려 기후 연구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해양권을 든다. 이산화탄소가 다양한 저장소를 오가는 현상을 탄소 순환이라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기와 해양, 육상생물권 사이의 반응 결과다. 1000년 이상의 규모로 보면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는 곳은 심해다. 그르노블 연구소의 클로드 로리우스 박사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추한 빙하에서 떼어낸 얼음 조각을 위스키에 넣자 샴페인을 따른 것 같이 얼음 조각에서 방울이 톡톡 터져 나왔다. 이를 보고 그는 과거의 기체가 빙하 속에 담겨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극 지역 빙하에는 불순물이 가득 박힌 것처럼 작은 공기 방울이 보인다. 이 방울들을 다 터뜨려 포집한 공기를 빼내고 농도를 측정하면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할 수 있다. 


빙하는 남극과 그린란드에서 얻을 수 있지만 정확한 이산화탄소 농도 복원을 위해서는 남극 빙하만 사용한다. 그린란드 빙하에는 먼지가 많아 그 안에 있던 탄산칼슘 빙하의 산(酸)이 반응해 인공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10만년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태양 복사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기후는 지구의 세차운동,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 이심률의 변화 같은 천문학적인 요인에 의해 주기적으로 변동했다. 이산화탄소는 수온이 낮으면 바다에 잘 녹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 세계 해양은 표층을 흐르는 표층수와 해양 깊은 곳을 흐르는 심층수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되어 돌아다닌다.(86 페이지) 


이 해양 순환은 밀도의 영향을 받는다. 밀도는 온도와 염분의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낮고 염분이 높으면 밀도가 높고, 온도가 높고 염분이 낮으면 밀도가 낮다. 밀도가 높은 물은 바다 깊숙이 천천히 순환하고, 밀도가 낮은 물은 표층에서 순환한다. 지구가 따뜻했다가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겨울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와 추운 시기가 있듯 빙하기에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해류 컨베이어 벨트가 중요하다. 적도의 따뜻한 물을 북쪽으로, 북극의 찬물을 남쪽으로 보내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 순환류(AMOC; 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를 말한다. 이 벨트가 멈추는 것을 AMOC 붕괴라 한다. 


그린란드와 남극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한쪽 온도가 하강하면 반대쪽 온도는 상승한다. 이를 양극성 시소 반응(bipolar seasaw) 반응이라 한다. 지구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 지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면 기후 패턴도 달라지고 결국 우리는 지구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그린란드의 빙하기 도래는 갑작스럽다고 표현했지만 수백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빙하 시대를 살고 있다. 46억 년 역사를 통해 보면 지구는 다섯 번째 빙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지구 입장에서 지구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말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수백 수천년 이상 눈이 연속적으로 쌓여 형성된 얼음은 빙하 자체의 압력, 지구 중력, 지형 등의 영향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린란드 빙하는 일반적으로 내륙에서 해안을 따라 흐르다 가장자리에서 녹고 깨져 없어진다. 그래서 빙하가 무한히 자라지는 않고 기후 조건만 일정하다면 일정한 수준으로 두께를 유지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지구 내에서 물이 순환하는 과정을 물순환이라 한다. 태양으로 데워진 바닷물의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한다. 수증기가 계속 상승하여 고도가 높은 곳에 이르면 낮은 온도로 인해 구름으로 응축된다. 구름은 지구를 떠돌다 비나 눈의 형태로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구름 중 일부는 극 지역이나 고산 지역까지 넘어가 눈의 형태로 땅으로 떨어져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퇴적되어 빙하를 형성한다. 이렇듯 전 지구적으로 물은 순환한다. 저위도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극 지역까지 이동한다. 


이동하는 동안 수증기는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으로 내린다. 무거운 원소가 가벼운 원소보다 더 쉽게 강수로 내리고 가벼운 원소는 극 지역까지 간 뒤 눈으로 내려 빙하를 만든다. 빙하에 남아 있는 무거운 원소의 비율은 수증기가 거쳐온 지점들의 온도를 반영한다. 빙하의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비를 분석하면 당시 눈이 내린 지역의 온도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낮았던 시기에 내린 눈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적고, 평균 기온이 높았던 시기에 내린 눈이나 비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수소와 산소 동위원소의 양이 많다. 


단스고르-외슈거 순환이란 빙하기에도 단기간의 온난화 경향이 있음을 뜻한다. 긴 시간 스케일에서 안정적으로 보이는 간빙기도 자세히 1000년 단위로 관찰하면 기후 변동을 관찰할 수 있다. 9~13세기에 해당하는 중세 온난기, 14~18세기 사이의 400년에 걸쳐 북반구 평균 기온이 섭씨 0.6도 정도 하강한 소빙기가 대표적이다. 지구는 현재 비정상적으로 긴 간빙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11,700년전에 시작된 홀로세 간빙기(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동한 시기)를 살고 있다. 간빙기는 1만년 정도 지속되다가 끝나기에 이제는 빙하기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간빙기가 계속되고 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빙하기가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홀로세 후기에 인류 활동으로 인한 온실 기체 농도 상승과 지구의 낮은 궤도 이심률 때문에 빙하기가 시작되지 않는 듯 하다. 온도가 상승하면 물이 더 강하게 증발한다. 그러면 가뭄이 발생하고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산불 빈도가 증가한다. 증발한 수증기가 어느 지역에서는 강수로 내리니 특정 지역에 홍수가 발생한다. 지구는 지금보다 3도 이상 온도가 올라도 버텨낼 수 있다. 문제는 인류다. 


저자는 대학원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논문을 쓰기 위해 다른 논문을 읽고 조각난 지식을 모아 퍼즐을 맞추듯 지식을 늘려가기에 자신이 작성한 논문의 내용은 깊이 알지만 연구 주제가 속한 상위 분야인 고기후나 빙하학의 내용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연구를 할수록 모르는 지식이 너무 많으니 자신의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선택적으로 소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에 절대적인 사실은 거의 없다. 무한한 가설이 난무할 뿐”(195 페이지)이라 말한다. 


저자는 "뚜렷한 목적 없이 논문 편 수만 채우려고 참여한 연구는 잔인하리만큼 힘들었다. 연구라는 게 매 순간 실패와 고뇌를 마주하는 작업인데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주제를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199 페이지)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습니다‘란 챕터를 보자. 이 챕터에 이런 말이 있다. ”R&D 예산 삭감은 내게 일종의 사형선고 같았다.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토록 삶에 열정적이었을까. 원하는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주도적으로 살아온 내가 무척 미웠다.“(249 페이지) 


저자는 "논문을 마무리해야 함에도 완벽한 연구 결과를 세상에 보이고 싶다는 욕심에 한없이 붙들고 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세상엔 중요한 연구가 많으니 어느 순간이 되면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걸 박사과정을 마치며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읽은 당신이 책을 덮고 대부분은 잊더라도 빙하학이 빙하로 미래 기후 예측을 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구과학에서는 수학의 1+1은 2처럼 100퍼센트 사실 또는 거짓은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적 사실 대부분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다양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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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첫 문장 -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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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영문학, 종교사 등을 공부한 인문학자인 미국 작가 수잔 와이즈 바우어(Susan Wise Bauer)가 쓴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이란 부제의 책이다. 책은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책 36권’이란 이름으로 과학 명저들을 소개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위대한 과학 저술의 발달사를 따라가며 과학이 수행되는 양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일으켰던 저술을 짚어보는 책으로 과학에 관심 있는 비전공자를 염두에 둔 작품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세부 내용에 빠져 과학 자체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책들(의 범람)이다. 


저자는 자신이 제시한 저술을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시작하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말한다. 책은 세상의 시초(를 열다), 과학적 방법론(이 탄생하다), 지구(를 읽다), 생명을 설명하다, 우주로 향하다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언급한 퓌시스(phusis)는 자연으로 번역되지만 질서 잡힌 우주, 자연의 영역 전체를 의미한다. 그리스인들은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섞인 지적 환경에서 살았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큰 그림으로 과학 이론을 쓰려고 한 첫 의식적 시도였고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을 만들려고 한 첫 시도였다. 


플라톤은 철학은 이데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과학은 이데아의 타락한 그림자로 보았다. 플라톤에게 변화는 진보가 아닌 타락이었다. 그에 의하면 자연세계는 의도된 것보다 언제나 모자라다. 그리고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데아로부터 멀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다룬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변화는 운동의 원리였고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화는 진화와 유사하다. 단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변화는 목적론적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변화의 과정을 이끄는 외부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배태된 잠재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계층적 체계)는 중세의 존재의 대연쇄 개념으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가장 아래에는 무생물인 암석이, 가장 위에는 신(神)이 존재한다. 암석을 공부하며, 신을 공부(한다기보다 신에 적응하고자)하는 나는 그런 점에서 독특한 것인가? 의미 있는 일탈인지 모르지만 나는 암석보다 암석을 포함한 지판(地板)을 들어올리는(가령 수천만년전 테티스라는 바다가 있었으나 그 아래의 판이 들어올려져 에베레스트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자연의 메커니즘(판구조 이론)에 더 관심을 갖는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 플라톤이 시궁창에 내던진 ‘변화’를 구해내 자연의 중심 원리로 승격시킴으로써 과학 연구를 가차 없이 진전시키는 동력이 되게 했다고 말한다.(31 페이지) 오랜만에 양적 증감, 질적 변화, 위치 이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운동을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위치 이동에만 특권적 위치를 부여한 데카르트 이야기가 포함된 책(이정우 교수 지음 2000년 출간 거름 출판사 버전 ’접힘과 펼쳐짐‘ 37 페이지)을 읽어야겠다. 이 책에 이런 내용(질의응답)이 있다. 데카르트는 기계론을 펼치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중적이라(어떤 의미에서 비겁하다)고 말하자 저자가 “신의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계론을 택하면 신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말한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와 플라톤주의자가 모두 과학 저술에 수학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 이유는 정반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 자체를 알고 싶어 했지 그것의 측정치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산술과 기하를 ’모방본에 만족하는 데서 이데아를 이해하게 하는 데 유용‘하다고 인정했지만 추상을 다룰 때만 수가 유용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에게 기하학은 이데아의 형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어야 했다. 에우클레이데스와 이집트 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 이런 말은 어떤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기하학 공부에는 지름길도, 신성한 계시나 희생 의례도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특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신의 평정은 결코 감각적 쾌락이 아니었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만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두 눈으로 볼 때에만 그것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음을 지적하며 하지만 인간의 맨 눈으로는 두 눈을 다 뜨고 본다고 해도 태양 중심 체계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68 페이지)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허공을 가르는 지구의 움직임을 그 표면에 사는 우리가 왜 느낄 수 없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은 연역 추론에 크게 의존한다. 일반적인 전제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가령 모든 무거운 물질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대전제), 지구는 무거운 물질로 되어 있다.(소전제), 지구는 떨어지지 않는다(소전제), 지구는 이미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결론) 식이다.(73 페이지) 베이컨은 연역법이 증거들을 왜곡하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마음대로 질문을 먼저 설정하고는 경험을 자기 편한 대로 구부려 자신의 결론에 찬성표를 던지게 만듦으로써 줄줄이 묶인 죄수를 끌고 가듯 경험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원자론으로 미신과의 끈을 끊었듯 베이컨은 실험 방법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의 끈을 끊으려 했다.(77 페이지) 도구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도구를 물화(物化)된 이론이라 본 학자가 있지만 본문에는 세포라는 말을 처음 쓴 훅(로버트 훅)이 한 ’도구는 더 이상 감각의 확장이 아닌 지식의 열매이자 완벽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 나온다.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뷔퐁; 1707-1788) 백작과 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광범위한 관심이 좁혀졌다는 것이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뷔퐁은 수학, 물리학, 화학, 현미경학, 식물학 등 광범위한 관심사를 공부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며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조사하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책을 냈던 인물이다. 이런 종류의 광범위한 관심사와 생계를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는 부유함의 결합은 당시 지구과학 연구자의 필수 요건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전환의 길에 들어선 것은 30대에 프랑스 왕실의 눈에 띄어 평생 왕실 정원의 큐레이터 직(職)을 수행하면서부터다. 이 일을 계기로 뷔퐁의 광범위한 관심사는 지구와 지구 생물, 체계 등으로 좁혀졌다. 수동태로 뷔퐁을 수식한 것은 왕실 정원의 큐레이터 직을 맡은 것은 그의 자의이지만 일에 충실하다 보니 몸의 범위와 지적 관심사가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결과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2025년 현재 6년째 지질해설사 일을 하는 나는 지구과학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역사와 철학에도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분야의 책을 읽던 비효율이 많이 극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 허턴(1726-1797)은 우리 주변의 지구는 과거에 발생한 격변적 사건, 이례적인 신성의 개입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는 밀물과 썰물, 물살의 치고 빠짐, 퇴적과 침식작용을 통해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인물(뷔퐁 백작, 제임스 허턴)로 인해 지질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턴이 말한 과정은 매우 느리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허턴은 뷔풍이 암시만 했던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지질학적 시간인 심원한 시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너무 달라서 몇 년을 최소 단위로 삼더라도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조르주 퀴비에(1769-1832)는 지구가 여섯 번의 격변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파리 지층의 구성물은 불연속적으로 갑자기 변화한 것이며 허튼의 동일과정설과 달리 점진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었다. 퀴비에는 동일한 방법론을 따랐지만 허턴과 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허턴은 대대적인 변화 없이 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경로로 지구의 역사를 해석했고, 퀴비에는 여러 차례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단절되며 진행되는 경로로 지구의 역사를 해석했다. 격변설을 제안한 퀴비에의 제자였다가 동일과정설로 돌아선 찰스 라이엘은 과거에 있었던 한 차례의 사건이 현재 지구 형태의 원인이라면 지질학자가 이성적으로 현재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에 있던 모든 원인은 현재에도 여전히 작용하며 관찰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그에 의하면 그 원인들은 결코 오늘날과 다른 강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엘이 말한 원리는 세 가지다. 1) 활동성; 과거의 작용했던 모든 힘은 현재에도 작용하며 관찰 가능하다. 2) 반격변설; 이 힘들은 과거에도 강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힘의 정도는 변하지 않는다. 3) 평형 상태 시스템으로서의 지구; 지구의 역사는 방향성이나 진보성을 갖지 않는다. 모든 시대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1960년대 미국의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 역시 동일과정설이 여전히 지구과학 분야의 정설이며 과학계는 지구의 과거에 정말로 극단적인 사건이나 격변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라이엘의 원리에 동일과정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자연 철학자이자 성직자인 윌리엄 휴얼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 동일과정설을 엄격하게 따르면 지질학이 대답하지 못한 가장 큰 질문 하나가 영영 미제로 남겨진다는 점이었다. 바로 기원에 대한 질문이다. 


저자는 '지구는 매우 복잡한 연구 대상이다. 물리법칙이나 화학 원리와 달리 지구는 장소이고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동일과정설은 아무런 발전이 없는 정적인 평형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서 홈스는 '동일과정설이 큰 진보를 이루긴 했지만 그것을 너무 교조적으로 적응할 경우에는 우리를 옆길로 오도할 수 있다고, 동일과정설은 여전히 지질학의 기본 전제이지만 지구의 역사를 시작과 방향과 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쪽으로 완화되었다'고 썼다. 


방사성 원소의 붕괴는 라이엘의 엄격한 동일과정설에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재도입했다. 지구의 시간에 시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이제 불가능해 보였다. 독일의 천문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지구가 사실은 완전한 고체가 아니라고 보았다. 유체인 핵이 가운데에 있고 그 곁을 밀도가 다른 여러 개의 층이 감싸고 있다고 보았다. 해리 헤스는 맨틀이 해령의 꼭대기로 올라왔다가 다시 수평으로 서로 멀어지는 운동을 함에 따라 대륙이 그 흐름을 타고 이동한다고 썼다. 


할렌 브레츠는 깊게 패인 현무암 굴과 기둥들로 이루어진 컬럼비아 고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느리고 점진적인 침식 과정으로는 그 지형을 설명할 수 없다. 지질학에서 오랫동안 설명 요인에서 배제되었던 격변설이 다시 등장했다. 이탈리아 암석층에서 뜬금없이 이리듐 원소가 다량 발견되었다. 월터 알바레즈 부자는 이리듐이 지구보다 혜성과 소행성에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자는 이리듐이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 데서 온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앨버레즈는 충돌로 생긴 분화구를 찾는 데 집중했다. 1991년 10년간의 수색이 끝났다. 구덩이는 유카탄 해안에 수천 년 동안 쌓인 더께 밑에 숨어 있었다. 폭이 무려 200킬로미터가 되었다. 


과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약하다. 라이엘이 말한 길고 점진적인 역사는 딱히 마음을 사로잡울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라마르크는 혈액이 없는 동물은 척추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현대 용어인 무척추동물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화석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부록에서 라마르크는 화석이 지구의 표면이 여러 시절에 겪은 혁명적 변화 그리고 그에 따라 지구상의 생물들 또한 겪었을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언급했다. 뷔퐁 이래로 지구가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이제 그리 놀라운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물이 변화를 겪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라마르크는 생물의 역사를 지구의 역사와 결합했다. 지구가 달라지면서 지구에 사는 생물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구의 변화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은 별도의 학문 분야다. 지질학과 달리 생물학은 시작과 끝의 문제를 제쳐두는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움직임은 변화다. 태어나는 것도 변화다. 죽는 것도 변화다. 생물학자는 단순히 이를 묘사만 해서는 안 되고 변화의 존재와 목적을 설명해야 했다. 에르스트 헤켈은 라마르크에 대해 '생물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파생했다는 진화 이론을 주류 과학 이론이자 생물학 전체의 철학적 기반으로 정립한 영예가 영원히 그에게 있기를'이라고 썼다. 


종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동안 다윈은 다른 자연학자들의 책도 읽었다. 다른 이들의 논의해서 일부는 빌려오고 일부는 거부했다. 찰스 라이엘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준비하던 때에 지질학 원리를 펴냈다. 다윈은 그 책을 항해에 가지고 가서 꼼꼼히 읽었다. 다윈은 인류가 스스로에 대해 가져온 가장 소중한 개념인 인류의 고유성이라는 개념과 생물학이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저자는 줄리안 헉슬리는 다윈 구출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206 페이지) 


그의 할아버지 토마스 헉슬리는 '종의 기원' 원고를 처음 읽은 사람 축에 속한다. 그는 그것을 읽고 다윈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친구가 되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십여 년 뒤에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의 기원은 '프린 키피아'가 천문학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혁명적인 영향을 생물학에 미칠 책이라고 언급했다. 평생에 걸쳐 비판자들에 맞서 다윈주의 이론을 강력하게 옹호한 토마스 헉슬리는 스스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까지 지었다. 줄리안 헉슬리는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였다. 1942년에 나온 헉슬리의 '진화; 현대적 종합'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른 책들과 달랐다. 우선 헉슬리는 의도적으로 과학자 뿐 아니라 관심 있는 비전문가까지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최초로 종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H.G 웰스에게 받은 글쓰기 훈련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문체의 명료성과 구체성, 어려운 전문 용어 없이 전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능력 덕분에 이 책은 즉시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나일스 엘드리지와 함께 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단속 평형설을 제안해 진화생물학계에서 유명한 학자다. 단속평형설은 생물 종이 본질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중간중간 상대적으로 빠른 굵직한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는 이론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 대한 반론인 '인간에 대한 오해'는 윌슨의 책처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윌슨처럼 굴드도 글 솜씨가 좋았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인 '자연사'에 정기적으로 기고했고 여러 전문 저술을 집필했으며 두 권의 매우 인기 있는 대중과학서를 쓰기도 했다.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굴드가 펼친 논리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가지 특정 사례에 대한 집중적이고 강력한 반박이었다. 21세기에도 적어도 미국에서 우리는 진화 과학자들과 창조론자들의 싸움을 접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결정론자들과 결정론을 거부하는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의 싸움은 범위가 훨씬 넓고 더 복잡하다. 


1997년 굴드는 그가 다윈주의적 근본주의라고 부른 것을 통렬히 비난했다. 다윈주의적 근본주의란 생명의 모든 것을 자연선택을 통해 설명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굴드는 인간을 단지 성공적인 재생산을 위해 분투하는 유전자들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다윈주의적인 개념으로 다윈의 독창적 이론이 가진 급진적 의도를 우스꽝스럽게 뒤튼 것이며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굴드와 지지자들은 그 외에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고 믿었다. 신성한 개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중층적인 요인들,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히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인간 지능의 생물학적 진화도 분명히 그런 요인 중 하나일 테지만 그 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여전히 작용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유기체의 디자인이나 다양성과 관련해 막대한 복잡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암으로 사망하기 얼마 전인 2002년 굴드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유기체의 어떤 특징들은 자연선택의 알고리즘에 의해 진화하고, 어떤 특징들은 자연선택이 아닌 종 중립성에 기반해서, 하지만 자연선택만큼이나 알고리즘적인 작용으로 진화하며 어떤 특징들은 역사의 우연이 일으키는 변덕에 의해 진화하고, 어떤 특징들은 다른 과정들의 부산물로서 진화한다.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가 좁게 설정된 하나의 원인에 항복해야 하는가? 더 중요하고 일반적인 것들 그리고 더 특수한 것들을 모두 생각해보자.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과학적 이해에 종속되고 모든 것은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뉴턴은 태양계에서 작용하는 온갖 중력의 힘들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무한히 갈 수 없기에 가끔 한 번씩 신이 개입해서 천체들을 섬세한 균형 상태로 되돌리는 초기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체계라면 적어도 최초에 출발시킬 때라도 신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폴레옹 황제가 라플라스에게 ’천체 역학‘이란 저술에 신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자 라플라스가 여기에는 신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은 무신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라는 말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라플라스의 해명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고 하지 않고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무신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과 차원이 같다. 라플라스는 시작 시점에도 신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우스는 무한한 우주가 삼차원 존재인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에 따라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우스는 지구 자기장을 관측한 결과와 수학적 도구를 결합해 지구 자기장이 지구 심부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밝힌 인물(지구에 관한 작은 책 참고)이기도 해 놀라움을 안긴다. 에우클레이데스 기하학을 뒤흔드는 가우스의 과제는 제자인 리만에게 넘겨졌다. 리만이 제시한 개념이 4차원이다. 양자 이론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슈뢰딩거가 (우리가) 파동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물리학은 현실과, 전기 역학의 법칙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경험과의 접점을 찾을 수 없게 된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양자란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말한다. 보어는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지 않았다. 보어에게 양자 도약과 일상의 경험을 규율하는 물리학은 별개였다. 양자 도약은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덜 실재인 것은 아니었다.(266 페이지) 보어의 조교가 하이젠베르크였다. 하이젠베르크는 분자보다 큰 물체에 대해서는 불확정성이 극히 작다는 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성성 자체가 실재한다고 보았고 슈뢰딩거, 플랑크, 아인슈타인은 측정 방법이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이 우리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실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면 허블은 우리 은하가 우주의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무한해 보이는 것은 시공간의 곡률이 일으킨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이 견해를 바꾼 것은 마운트 윌슨 관측소에서 직접 관찰을 하고나서였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모든 물질이 한 점으로 응축되어 있었던 제로 지점이 있어야 한다.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특이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설명의 부재였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은유에 강했다. 그는 만일 거인이 있어 태양을 앞뒤로 흔든다면 지구의 우리는 8분 뒤에야 그 효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최초의 3분‘을 읽도록 하자.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악마란 사악한 영혼이 아니라 가설적 존재라는 의미다. 


이론적으로 라플라스의 악마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앙리 푸앵카레가 반론을 폈다. 수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는 예측불가능성을 말한다. 조건부적이고 실용적 의미에서의 그것이다. 우리가 복잡계에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예측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영향을 미치는 구성 요소들을 우리가 아직 충분히 깊이 알지 못해서다. 뉴턴적임을 알 수 있다. 카오스 이론의 바닥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약속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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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과학의 첫 문장‘을 읽고 있다. 깊이와 재치를 함께 실감할 수 있는 책이다. “과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약하다. 라이엘이 말한 길고 점진적인 역사는 딱히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같은 표현이 특히 그렇다.


’과학은 재미 있는 이야기에 약하다‘는 문장은 ’대중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진실을 알려고 한다’고 읽어도 될 듯 하다. 라이엘은 제임스 허턴과 같은 주장(동일과정설)을 한 사람이다. 다윈이 비글호를 탔을 때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가지고 간 것은 유명하다. 다윈은 지질학자이기도 했다.


본문에 “(제임스 허턴의) 동일 과정설과 (조르주 퀴비에의) 격변설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나일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이란 말이 나온다. 중간이란 말이 마음에 걸린다.


단속평형설은 생물 종이 본질적으로는 오랜 기간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중간중간 상대적으로 빠른 굵직한 변화의 시기를 거친다는 이론이다. 단속평형설은 두 이론(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을 포괄하는 이론이라고 해야 옳다. 중간이 아닌 포괄 이론이라는 의미다.


punctuated equilibrium, geology 등으로 검색을 할 필요를 느낀다. 중요한 점은 포괄하는 이론이냐 중간 이론이냐가 아니라 지구 생명체의 역사가 단속평형설로 잘 해명되느냐는 사실이다.


본문에 ’지구의 변화와 지구에 사는 생물의 변화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은 별도의 학문 분야다.‘란 말이 나온다. 지구에 사는 생물뿐 아니라 지구도 단속평형설로 해명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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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협지에는 무술인들 또는 검객들이 무술 또는 검술 비서(秘書)에 큰 관심을 보여 그 책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러니까. 단 차이가 있다면 나는 과학책 특히 지구과학 책에 그런다는 점이다. 오늘 플룸 구조론의 명저를 알았다. 신간이라면 당장 주문하면 되지만 문제는 그 책이 절판된 책이라는 데 있다.

     

    연천 도서관, 양주 도서관, 파주 도서관, 서울 도서관, 종로도서관, 남산 도서관 등 비치 가능성이 낮은 도서관부터 검색했는데 예상과 달리 어느 곳에도 없는 책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의 책바다 서비스에서 검색해 몇몇 도서관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신청을 앞두고 있다. 제본(製本)해 소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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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웅배 교수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저자가 '무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라고 힌트를 준 이 곳은 달(moon)이다. ’지구 입장에서 가장 먼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이 있다고 하고 바로 무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 걸려 있다고 했으니 뜬금 없지는 않다. 다만 처음부터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가족 사진의 위치는 어디인가?’라고 묻지 않은 것은 짐작할까봐 였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먼 곳의 가족 사진은 1972년 아폴로 16호 미션을 통해 달에 착륙한 찰스 듀크가 남긴 가족 사진이다.

     

    달은 낭만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달은 대기권도 없고 자기장 보호막도 없는 혹독한 곳임을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별이 반짝거린다고 느끼는 것은 지구 대기권 때문이니 대기권이 없는 달에서는 어떨까? 전혀 반짝거리지 않는다. 지구에서 보는 달은 낭만적이지만 별이 반짝거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달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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