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이주, 생존 -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한다
소니아 샤 지음, 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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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류 이야기를 다룬 소니아 샤(Sonia Shah)의 ‘인류, 이주, 생존’은 자연과학적 성찰을 반영한 사회과학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일상적인 것은 정주(定住)가 아니라 이주(移住)이고 이동(移動)이라고 강조한다.

 

문장이 빠르고 메시지에 힘이 있어 읽는 재미가 크다. 가령 “산비탈에 매달린 히말라야 소나무들이 바위 투성이 정상의 상층부에서 갑자기 작아지더니 수목한계선으로 알려진 천연 경계를 만들어냈다. 그 선 위로 가는 폭포가 물길을 남겨놓은 민얼굴의 벼랑이 솟아 있다"(24 페이지) 같은 표현은 문학적으로도 돋보이는 문장이다.

 

사람들은 홍수, 폭풍, 지진 등의 이유 때문에 이동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겪는 폭력과 박해 때문에 나라를 탈출(27 페이지)하고 사막이 확장되고 삼림이 줄어들면서 겪게 된 자포자기의 가난 때문에 이주한다.(53 페이지) 아랍의 봄 역시 유럽으로의 대이동을 촉발했다.(56 페이지) 값싼 농지, 공장 일자리, 사금 광산, 유혈 혁명도 이주를 촉발했다.(123 페이지)

 

저자는 이주가 혼란을 초래한다는 일반적 믿음에 의혹을 품고 전 세계의 이주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생명은 늘 움직인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도 서해안 구자라트 주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그의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은 1965년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1965년 사회보장법을 통해 마련된 노인 및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시행으로 극심한 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미국 정부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유럽, 동유럽 출신자들에 대한 입국 금지를 되돌린 결과다.(저자는 196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은 우생학의 논리를 근거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유럽, 동유럽 출신자들에게 정신적 결함과 생물학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주자들로 인해 범죄가 늘었다고 할 근거가 없음을 찬찬히 언급한다. 저자는 자연은 변화하지 않고 경직된 질서를 따른다고 본 칼 폴 린네와 자연은 변이 가능하고 역동적이라고 본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의 차이를 논한다.

 

린네가 세분파였다면 뷔퐁은 병합파였다. 뷔퐁의 자연관은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고대적 사상을 부활시켰다. 암석의 견고함, 물질의 윤곽, 살아 있는 피조물들의 습관은 근원적으로 변치 않는 물질적 자연을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전혀 없는, 흐름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영속성은 환상이고 실재하는 것은 변화였다.(98, 99 페이지)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했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없다고 말했다. 파르메니데스는 무(無)는 없고 존재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뷔퐁은 자신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은 어디에 살든, 피부색이 어떻든 같은 혈통에서 비롯된 한 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린네와 뷔퐁은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생명이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존재의 거대한 사슬론)을 공유했다.

 

책 중간쯤에 적소(適所) 이야기가 나온다. niche의 번역어인 적소는 야생의 생명이 사는 장소를 말한다.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의미의 중기 프랑스 단어인 niche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원래 조각상을 넣어두기 위해 움푹 파낸 벽 안의 우묵한 장소(‘벽감; 壁龕’)를 가리켰다. 동물학자들은 야생동물 각각의 적소는 이와 비슷하게 고유하고 독특한 곳 즉 그 장소를 점유한 그 한 종에게 맞춰진 장소일 것이라 생각했다. 각각의 종은 자기만의 자연 공간 속에서 살고 그 주위에는 생물학적 경계가 그어졌다고 본 것이다. 적소는 한 종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갖춰진 폐쇄된 장소다.(162, 163 페이지)

 

20세기 동물학자들은 생태계와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생물학적 문화적 다양성의 매개체인 이주를 죽음의 매개체라 생각했다.(169 페이지) 책에는 찰스 엘턴 이야기가 나온다. 1924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던 그는 떼를 지어 북극의 벼랑을 향해 돌진한 뒤 바다로 뛰어들어 죽은 레밍이라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자연은 언제나 정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지리는 영구불변의 것으로 보았다.

 

전쟁 이전 엘턴은 대부분의 종이 각자의 자리에서 지낸다고 생각해 이주자들이 일으키는 생태적 위협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았으나 군부대가 새로운 수송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유럽을 가로지르자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엘턴은 이동하는 생물을 침략자로,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재난이라고 묘사하기 위해 새로 유입된 종의 가장 파괴적인 면만을 취했고 새로운 종 때문에 발생한 비용만 고려했을뿐 그들을 통해 얻게 된 이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181 페이지)

 

엘턴은 동물생태학의 창시자이자 생물학의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레밍이 바다로 이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184 페이지) 레밍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 것은 생물학자들이 레밍의 영토에서 눈 아래를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알고 보니 레밍은 얼음장 같은 북극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굴을 파고 눈 밑으로 들어가 눈이 녹은 따뜻한 지면과 그 위의 눈이 만들어낸 작은 틈(‘서브니비언 공간; subnivean space’)에서 이끼를 먹고 새끼들을 돌보았다.

 

자살 성향이 있는 레밍의 이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일련의 오해(다른 사람의 편파적인 책을 보고 주장)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대중화된 것은 한 방송국의 의도적 사기(연출, 조작)의 결과였다.(185 페이지) 책에는 앨리효과도 나온다. 클라이드 앨리가 제안한 개념으로 개체가 함께 모여 있을 때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협력이 빚어지고 이는 개체의 생존과 번영에 이익이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효과다.(217 페이지)

 

다윈은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고 말했지만 이주 자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거대한 허허벌판으로의 확산이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고대의 DNA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새로 이주한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멸종한 고대인들이 약 180만년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이주해서 우리보다 먼저 거기에 와 있었던 것이다.(253, 254 페이지)

 

우리는 꾸준히 이주자로 살았다.(257 페이지) 대륙별 인구집단을 상징하는 독립적인 가지가 달린 나무 이미지는 대륙별 인구집단이 갈라져서 점점 거리가 생기면서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를 거쳤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유전학자들은 이런 분기(分岐)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오늘날 대륙별 인구집단이 동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오랫동안 계보가 이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주, 차별화, 다시 뒤섞임이라는 지속적 과정의 일시적 결과일뿐이다.(257 페이지) 인류의 조상은 이주했고 만났고 뒤섞였다가 다시 이주했다.

 

린네는 슬기로운 사람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가지고 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은 호모 미그라티오인지도 모른다. 20세기 대부분 린네의 정착설과 다윈의 장거리 확산 이론이 충돌했지만 갈등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1970년대에 이 충돌을 해소한 생물지리학 이론인 분단분포론이 나왔다.

 

드 케이로스에 의하면 이 이론은 생물학 버전의 관성을 회복시켰다.(273 페이지) 야생의 생명체는 자기 힘으로 대양이나 산맥, 사막 같은 지리적 경계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생 생명체가 이동한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조판이 움직인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이주를 부정하는 이론이다.

 

분단분포론에 의하면 원숭이가 신세계 종과 구세계 종으로 나뉜 것은 대서양이 열림에 따라 타의에 의해 갈라진 결과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숱한 장거리 이동이 있었다.(286, 287 페이지) 야생생물은 과학자들이 규정한 경계를 상습적으로 넘어서 돌아다닌다.(289 페이지) 그간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생리적으로 얼마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과소평가했다.

 

위치 이동은 침략생물학자들이 예측한 규모로 일어나지 않으며 새로운 종의 유입은 생물다양성을 향상시킨다. 변화가 진행될 때마다 움직이는 종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이런 기회가 도래했을 때 이주자들이 왔다. 자연이 언제나 경계를 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300 페이지) 엘턴을 비롯한 생물학자들은 이주자를 자살 성향이 있는 좀비이자 가차 없는 침략자로 일축했으나 이주자의 행동을 제대로 검토해본 적도 없고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깊이 들여다본 적도 없다.

 

이주자들은 태어난 서식지의 익숙한 편안함을 뒤로하고 미지의 장소로 떠난다. 눈 덮인 산을 돌아디니는 늑대에게 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수는 없지만 인간의 이주 열망을 간접적으로 탐구할 수는 있다.(314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는 이주자의 왕이다. 고고학자 데스몬드 클락은 최초의 이주는 인간이 야생동물을 따라가다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317 페이지)

 

저자는 이주 패턴을 구직의 산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318 페이지) 기후 변화가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동을 추동했을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 저자는 이주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의 시기에 강력해지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319 페이지) 저자는 사막이었다가 거주 가능한 녹색 회랑으로 바뀐 곳을 찾아 이주하는 것을 예로 든다.

 

하와이대학교의 컴퓨터 모델 전문가들이 지구 궤도 변화에 따른 기후 변화가 아프리카를 떠나는 인간 이동의 파동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주목할 일이다.(320 페이지) 야생의 생명이 그렇듯 이주가 인간의 몸 안에 암호화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인간의 몸도 주위 환경에 따라 발달방식이 바뀐다. 자궁 안에서의 흔들림과 뒤척임 패턴이 우리의 지문의 고랑과 이랑을 결정한다.(325 페이지)

 

인간의 몸은 고정성보다 유동성이 더 크다. 정적이고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동성이 없는 생명체에게는 환경에 따른 변형 가능성이 진화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변형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329 페이지) 인간의 역사라는 폭넓은 관점에 의하면 우리는 각자가 사는 모든 장소에서 아프리카를 떠나온 이주자다.

 

몇 세대에 걸쳐 꾸준히 그곳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토착민과 이주자를 가르는 것은 자의적이다.(335 페이지) 과거에는 한 장소에 붙박힌 채 살았다는 신화가 증발하자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질문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어째서 이주하는가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주가 어째서 공포를 촉발하는가 묻는 것이다.(363 페이지)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주는 위기가 아니라 해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늘 이동을 꿈꾼다.

 

책을 쓰기 위해 생물지리학, 유전학, 인류학, 과학사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전문지식을 빌려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서 반이주 과학의 증거를 발굴하려면 깊이 파고들어야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주를 반대하는 수사(修辭)와 정책이 전면으로 솟구쳐 오르면서 필요했던 증거가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함으로써 기대가 어긋나 기술적으로는 쓰기가 한결 쉬워졌지만 심리적으로는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383 페이지)

 

실존적 문제, 인류사회학적 성과, 자연과학적 지식들을 적절히 어우러진 '인류, 이주, 생존'은 강한 의지가 반영된 역작이다. 재독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총해 식물의 천이(遷移)에 대해 공부할 동인을 제공받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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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09-11 15:1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2021-09-11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09-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nosce te ipsum는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의 라틴어라고 한다. 식물학자인 린네는 까다로운 문제를 논할 때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성경’에서 말하듯 모든 사람의 기원이 같다면 유럽인들이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며 생물학적으로 이질적이라 생각하는“ 이민족들과 친족 관계임을 인정해야 했고, 별개의 혈통임을 주장할 경우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어서 난처해진 린네가 사람들에게 각자 알아서 생각하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소니아 샤의 ‘인류, 이주, 생존’에 나오는 이야기다. 린네는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없다. 자연은 변화하지 않고 경직된 질서를 따른다고 본 린네는 자연은 변이 가능하고 역동적이라고 본 조르주 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을 미워해 냄새가 고약한 잡초에 뷔포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성경과 자연학적 지식 사이에서 취한 엉거주춤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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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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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쉼없이 발전하는 학문 분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과학적이고 유려하게, 어느 면에서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존 학설과 다른 부분을 많이 주장한다. 가령 인간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점차 크게 진화하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던 몇 개의 세포가 점점 더 복잡해져 뇌로 진화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신체 예산이라 하고 영어로는 allostasis라 한다. 

 

이는 항상성 즉 homeostasis를 더욱 발전시킨 개념이다. 항상성이 국소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특정 피드백 사이클 내에서의 음성(陰性) 또는 양성(陽性) 피드백에 의한 균형 회복만을 의미했다면 알로스타시스는 자극에 대해 자율신경계, 시상하부 뇌하수체 부신 축, 심혈관계, 신진대사, 면역계 등을 포함한 전신의 모든 체계가 협응하여 자극에 대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조절과정을 말한다.

 

정리하면 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思考)는 커진 몸의 결과물이다.(31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베르그송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커진 육체는 영혼의 보충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어떻든 동물들의 몸이 커지기 시작한 것은 사냥 즉 포식 행위가 등장한 캄브리아기다. 이전에도 동물들은 서로 먹었지만 캄브리아기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먹게 된 것이다. 기존 학설과 다른 또 하나의 주장은 뇌는 생존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류의 뇌 즉 변연계, 이성(理性) 활동을 담당하는 신피질 등 삼위일체 구조가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저자는 신피질은 사실 말이 신(新)자가 들어갈뿐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초신성; 超新星’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이 아니라 폭발해 소멸하는 별이듯.) 뇌의 3 구조설은 20세기 중반 내과 의사 폴 매클린이 공식화했는데 이는 다윈의 진화에 대한 생각과도 일맥상통한 생각으로 후에 칼 세이건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플라톤은 인간 마음을 파충류의 뇌, 변연계, 대뇌피질이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로 비유했다.)

 

과학자들은 최근 모든 포유류의 뇌가 단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파충류와 다른 척추동물들도 같은 계획대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46 페이지) 인간 뇌에 새로운 부분은 없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다른 포유류의 뇌에도 들어 있고 다른 척추동물들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신피질은 없다는 의미다.(49 페이지)

 

저자의 서술을 통해 감정은 비합리적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관념임을 알게 된다. 인간 뇌는 복잡성이 높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뇌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와 소용돌이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이라 부르지만 사실 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매번 다른 신경세포 덩어리들이 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이를 축중(縮重; degeneracy)이라 한다. 이는 타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다른 요소들이 같은 기능을 하거나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뇌는 고도로 복잡하지만 진화의 정점은 아니다. 우리 뇌는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75 페이지)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바윗덩어리를 집어들고 거기서 미래의 손도끼를 상상해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뇌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과학자들이 뇌와 그 상호작용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낼수록 우리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뇌를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해하면 이성적인 특대형 신피질 같은 것 없이도 우리 뇌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지 숙고할 수 있다.

 

저자는 유전자와 환경은 격렬하게 탱고를 추는 연인처럼 서로 너무 깊게 얽혀 있어 본성이나 양육 같은 별개의 이름으로 불러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아기에게는 세심하게 돕는 양육자와 충분히 풍족한 환경이 필요하다. 시각에 가장 중요하게 관여하는 뇌 영역은 아기의 망막이 정기적으로 빛에 노출될 때만 정상적으로 발달한다.

 

어린 뇌에게 역경과 빈곤은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다. 아기에게는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설정해주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양육자들로 채워진 적소(適所; niche)가 필요하다. 우리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몸을 제어해 잘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뇌는 모호한 감각 데이터 조각들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서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억은 뇌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추가 정보원이다.

 

마르셀 뒤상은 예술가는 창작의 절반만 수행할뿐이라 말했다. 절반은 보는 사람의 뇌 안에 있다. 우리가 보는 것(듣는 것, 다른 감각, 신체 내부의 현상)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란 외부 세계와 우리의 신체가 주는 제약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뇌가 구성하는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저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소리에 반응해 침을 흘린 것이 아니라 개들의 뇌가 먹이를 먹은 경험을 예측(자신과 대화)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미리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뇌는 정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배선되었다. 뇌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뇌는 예측기관이다.

 

신의 행동은 당신의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저자는 자유의지 논쟁을 이야기하며 당신은 생각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행동을 개시하게 하는 예측들은 난데 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콤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트위즐리를 그렇게 먹어치우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금 당장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오래전부터 자유의지가 없다는 논의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저자의 설명을 들으니 참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크다고 느끼게 된다. 뇌는 스스로 신경세포를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한다. 우리는 무엇에 자신을 노출시킬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뇌가 단순히 세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세상을 예측하고 배선까지 바꿀 수 있다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책임 당사자는 당신이다.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기에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당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이렇게 과학적이고도 문학적으로, 종교 차원의 무진 연기를 가르치는 수행자처럼 뇌과학을 유려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고 놀라게 하는 책이다. 가령 이런 구절. “뇌의 안무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춤을 추면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우리 중 하나는 이끌고 다른 사람은 따라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역할이 바뀐다. 반대로 좋아하지 않거나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리 뇌는 상대방의 발을 밟는 댄스 파트너와 같다.”

 

인간의 말은 물리적 힘이 되어 몸에 영향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자극을 받을 경우.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많은 영역이 몸 내부도 제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는 좋든 나쁘든 타인의 행동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상적인 말을 들어보자.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뇌와 몸 간의 거래로부터 생겨난다. 그리고 당신의 뇌와 몸은 물리적 세계에 몰두하는 동시에 사회적 세계를 구축하는 다른 몸에든 뇌들에 들러싸여 있다."(149 페이지) 저자는 정동(情動) 이야기를 한다. 이는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알아차리든 아니든 항상 정동을 만들어낸다. 정동은 당신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다. 정동은 어떤 것을 심오하게 또는 신성하게 만들고 또 어떤 것들은 사소하거나 사악한 것으로 만든다. 당신이 종교적인 사람이라면 정동은 당신이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당신의 뇌가 매 순간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요약하는 것을 당신은 정동으로 느낀다.

 

신체 신호가 정신적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은 의식의 위대한 미스테리다. 어떤 마음도 그 자체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매우 복잡한 두뇌뿐이다. 저자의 시각은 넓고 유연하다. 가령 다섯 개의 C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그 중 하나인 copying 즉 모방에 대해 저자가 모든 사람이 모방 없이 스스로 알아내야만 했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이미 멸종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라.

 

저자가 드는 마지막 C는 압축(Compressing)이다. 이는 다른 동물 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복잡한 능력이다. 압축이란 중복되는 것을 줄이고 요약하는 능력을 말한다. 언급 안된 세 개의 C는 창의성(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operation) 등이다.

 

저자가 2장에서 말한 복잡한 두뇌와 함께 필요한 것은 추상화 능력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난생처음 보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다. 대뇌피질의 배선은 압축을 가능하게 한다. 압축은 감각통합을 가능하게 한다. 감각통합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한다. 추상화는 유연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창의성이다.

 

저자의 결론은 5C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설정해놓고 자연적인 것으로 착각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하는 저자의 시선은 참 바람직하고 따뜻하다. 우리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상생의 현실을 만드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앞에서 뇌과학은 쉼 없이 발전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이는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은 분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뇌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너무 많지만 최소한 우리 뇌의 환상적인 진화 여정의 개요를 설명하고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중심적이고 도전적인 측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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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비화림(秘花林)’에 이어 또 하나의 종로의 동네 서점을 알게 되었다. ‘초소(哨所) 책방(冊房)’이 그 주인공이다. 2020년 늦은 가을 문을 연 인왕산 자락의 서점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세워진 인왕산 경찰 초소를 리모델링해 태어난 이 서점은 수성동 계곡에서 200여미터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수원화성길과 올해 7월 인사동 화랑길에 동행한 이 선생님께 시간 내 그 서점에 같이 가자는 톡을 보냈다.(이 선생님과 5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처음이다.) 동네 서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올해 3월 연천 전곡에서 오픈한 달달(달리는 달팽이) 서점으로 인해서다.

 

대형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입장에서 작은 서점을 들르는 일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 내가 관심 두지 않는 분야의 책들에 대한 독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이 그 하나다. 지난 2018년 혜화동의 송석복지재단을 통해 들은 강의의 진행자가 운영하는 성남의 작은 책방(블로그)에 들어가서 알게 된 바는 내가 너무 인문 독서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지질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 역사, 서울 문화 답사 등에 비중을 둔 결과 인문이나 고전 등에 소홀한 것이다. 올해 어제까지 모두 88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중요한 점은 이런 정도의 추세라면 주역(周易)과 고전 또는 동양 철학 공부는 물론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 등 서양 철학 공부에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철학과 인문학은 다르기에 그 차이에도 주의해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모든 학문은 하나로 통하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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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 '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
이철우 외 지음, 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기획 / 푸른역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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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는 사학자들 다수와 몇몇 의사학(醫史學), 법학(法學) 전공자 등 18명의 필자들이 참여해 뉴라이트의 논리적 모순을 논파한 책이다. 사실에 입각하되 체계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대중적인 글‘을 집필 원칙으로 삼아 쓴 책이다. 출판사의 편집부에서는 책이 너무 차분하고 객관적이다 못해 냉정하게 비치기도 해 더욱 호소력이 있다고 평한다.

 

이철우는 한국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일본의 일부가 된, 승전국도 식민지도 아닌 나라였었기에 일본에 대해 어떤 배상 청구의 근거도 가지지 못한다는 논리의 모순을 제기한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수탈하고 억압했다는 주장은 과장되었거나 터무니없으며 일제는 법치와 자본주의 교환관계에 의해 경제활동을 전개했을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써야 할 말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수출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출(移出)이 늘었다는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우리가 이룬 증산분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어 우리가 식량 부족을 겪었다는 점이다. 산미증산계획과 일본으로의 쌀 이출로 이익을 본 것은 일본인 대지주와 소수의 조선인 지주에 불과했다.

 

당시 우리에게 경제 발전은 혜택없는 개발에 지나지 않았다. 박한용은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제정하자는 사람들의 주장에 숨은 의도를 밝힌다. 그들의 주장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나 임시정부의 공로와 무관하게 세워진 것이 되고 해방 후 3년간 피어린 반공투쟁에 나선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덕술, 김성수 같은 특급 친일파들은 건국의 공로자가 되고 민족주의자로서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조차 반국가 사범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의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49 페이지)

 

끝없이 확장되는 민주주의라는 영역에 굳이 자유라는 접두어를 고집하는 저의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전재호가 말했듯 뉴라이트 진영에서 우리를 종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를 미개한 부족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다. 반일종족주의는 야만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야만으로 몰아붙이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한국 병합은 합법적이었고 따라서 국가총동원법이나 국민징용령을 일본 국민이었던 한국인에게 적용한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명확하게 차별받았고 권리보다 의무가 앞선 예속민이었다. 당시 한국인에게 보통 선거든 제한 선거든 국정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황상익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이라는 사이트가 제시하는 의사 수 그래프만 보면 일제와 그 추종자들이 식민지 통치의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는 보건의료 분야의 근대적 발전을 사실인 양 오인할 수 있지만 그 그래프가 감추고 있는 이면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반일 종족주의자들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우리의 주장을 공격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제기된 구체적 피해 사실에 대해 반증하지 못한 채 그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만을 하고 있다. 의아한 것은 일본 기업과 재판소가 인정한 가해 사실을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냥 식민지가 된 게 아니다. 밖으로부터의 침략만으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반일종족주의'는 또다시 식민지적 상황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매우 유용한 책이다"(106 페이지) 김창록의 인상적인 말이다.

 

정태헌은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거둬갈 파이를 키우기 위해 무자비한 약탈과 더불어 수탈의 원천인 잉여가치 규모를 키우는 개발을 병행함을 지적함과 아울러 방임된 시장경제만으로 또는 국가의 뒷받침 없이 기업가만의 힘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전개된 경우는 없었음을 논한다. 조선인은 1인당 미곡 소비량에서 공출이 자행된 전시체제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인 1911~1934년에조차 격감(0. 786석에서 0. 379석으로)했다. 단순 노무직에 집중된 고용구조 때문에 기술 이전 효과도 논하기 어려웠다.

 

황상익은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의원을 세운 배경을 논한다. 일제가, 대한제국이 1899년 자주적으로 설립해 운영한 의학교(국립의과대학)와 광제원(국립병원)을 1907년 강제통합해 세운 병원이 대한의원이다.(81 페이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서유럽 식민지들과 달리 일본은 한반도를 많은 일본인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 즉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일본인들을 위한 병원을 세웠다.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 정부가 거액의 일본 차관을 들여와 최상급 의료기관을 짓게 했다. 물론 일제는 대한제국의 의료 발달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전염병에 대한 통계조차 세우지 않았다. 일반 병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강성현은 역사적 사실을 인멸한 자들이 엄격한 실증주의자를 자처하는 현실을 개탄한다.(166, 167 페이지) 두더지 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논박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다른 이론이나 사실을 들고 나와 반박해보라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30 페이지) 강제 연행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강성현에 의하면 그것은 증거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다.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증거로 인정하지 않거나 일부분에 대해 인정하더라도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든지 예외에 해당한다고 하든지 남들도 그랬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이지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피해자에게 무한 입증을 요구한다.

 

그간 역사부정론자들은 일본군이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하기 위해 강제연행한 사실을 마치 시각이나 관점에 따라 다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 싸움으로 몰고 갔다. 공창제 하에서 소개업은 필연적으로 인신매매가 조장되었다. 이를 자유 계약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극복해야 할 것은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탈진실 현상이다.

 

변은진은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차이를 언급한다. 전자는 팩트의 문제고 후자는 팩트이면서 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제다. 수많은 사실(事實) 가운데 무엇이 사실(史實)이 되어 기록되고 교육될 것인가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역사인식의 문제다.(181 페이지) 변은진은 역사는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노력이 어우러져 변화, 발전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비록 한계가 있었지만 3.1 운동 이래 국내외 항일 운동 특히 일제 말 전시체제기에 국외의 항일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 미국, 소련 등 연합국 측에 합류하여 끝까지 일제의 침략전쟁에 맞서지 않았다면 한국 현대사의 방향은 더 어렵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항일독립운동이 있었기에, 그리고 3.1 운동을 통해 전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분출시켰기에 카이로 회담 이래 연합국의 전후 처리 논의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을 당연히 독립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도출되었을 것이다.(184 페이지) 변은진은 항일운동사는 과잉 평가된 게 아니라 여전히 덜 밝혀지고 미평가된 역사라 말한다.

 

김정인은 역사 교과서의 의미를 짚었다. 그에 의하면 보수 우익에게 교과서는 정권의 명운을 건 만큼 반드시 전유해야 하는 이념적 무기였다. ’반일종족주의‘는 식민지 수탈론 비판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김헌주는 ’반일종족주의‘는 학술서적인 측면이 있지만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자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고 말한다. 김헌주에 의하면 이 책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반일 민족주의라는 개념 대신 굳이 종족주의라는 1차원적이면서 인종주의적인 개념을 내세웠다.

 

김헌주는 '반일종족주의의 자가당착의 논리적 모순을 제기한다. 그 주의가 기획된 것은 이승만학당의 유튜브 강의에서였다. 해방 이후 1997년 정권교체 이전까지 50년 동안 이승만 정권을 계승한 정당이 권력을 잡았고 '반일종족주의'는 그때 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들이 극찬하는 국부 이승만도 반일 민족주의자였다.(233 페이지)

 

이승만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이루기 위한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반일정책을 펼쳤다. '반일종족주의'는 한국의 문명수준을 원시적 단계로 설정했다. 그런데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적 인간형을 구축하며 북한과의 체제 대결을 시도한 것이 그들이 예찬하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정권 이래 반세기 동안 지속된 자유주의 근대문명이 십수년에 불과한 좌파정권에 의해 원시회귀했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서승은 맥아더가 천황을 죽이는 대신 인간선언을 하게 하고 왜소한 천황의 사진을 각 신문의 1면에 보도하게 해 신격을 박탈한 상징 천황을 미군 점령 정책의 수족으로 활용했고 일본은 냉전으로 인해 생긴 장벽을 기화로 이웃 나라들에 끼친 침략 및 식민지 지배 책임을 모른 체 하며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서승에 의하면 일본과 일체가 된 친일파는 세계적 구조 변화 속에서도 냉전시기의 떡고물을 잊지 못하고 냉전의 지속을 바라는 세력이다. 개별적인 능력이나 외모에서도 일본인과 유사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조선을 지배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철저하게 열등한 존재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반공과 북한 적대를 내세워 한국 정부를 구태의연한 한미일 군사동맹의 틀 안에 묶어놓으려고 끊임없이 싸웠다. 이는 일본 중심의 반공, 반중국의 동아시아 세계를 복구하려는 의도의 결과다. 서승은 일제 잔재라는 용어보다 친일 레짐(regi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레짐이란 용어를 써야 정치, 군사, 경제적 패악과 제도적 의미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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