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
건국대학교 생태기반사회연구소 엮음 / 소명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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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필자들이 생태를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 책이다. 편집은 건국대학교 생태기반 사회연구소가 맡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생태라는 개념이 독일에서 탄생(20페이지)했으며 거기에 상호연관성, 순환성, 지속성, 역동성 등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건국대학교 생태기반 연구소 소장 사지원은 생태사회를 위한 독일 작가들의 활동과 생태문학을 다룬 글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으로 불린 베티나 폰 아르님의 사고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태학적 세계관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논했다.

 

크리스타 볼프는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끝까지 평화를 추구하는 학문은 오로지 문학이라는 말을 했다. 사지원은 우리나라에서 생태와 환경이라는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으며 생태라는 개념이 남발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말은 생태소설은 고발과 비판을 넘어서는 '실천하고자 하는 강력한 희망'이 담긴 에코토피아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해림은 생태학과 경제학이 집을 의미하는 eco에서 공히 기원했다고 언급하며 살림살이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며 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고귀한 생명 살리기라는 말을 했다. 생태학이란 명칭이 구체적으로 명명된 것은 1866년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에 의해서다. 현대 생태학은 자연계는 질서정연한 체계를 이루고, 개체는 독립적으로 살 수 없으며 인간중심주의는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다는 관점을 갖는다.

 

양해림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의 입장에서 사고할 것을 요구하는 역설적 궁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의 대립 속에서 설정되는 특권적인 자리를 제거하는 것이며 인간을 포함하는 순환계의 입장에서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병민은 스페인 동북부의 작은 탄광도시이자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테러도시로 악명이 높았던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로 스페인의 핵심 문화창의 도시가 되었지만 전 세계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양산됨으로써 예술계의 맥도널드라는 오명을 썼음을 지적한다. 이병민은 도시의 공공성을 지향하고 지역의 기존자산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문화자산을 문화적 재생산의 오브제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편리와 풍요의 미래가 보장된다 해도 기후환경 위기를 방치한다면 안전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시점에 처했다.(136 페이지)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으로 묶어두는 목표를 이루려면 온실가스를 대폭 줄여야 하고 비용면에서도 3~4배의 노력이 요구된다.(147 페이지)

 

현재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도가 상승했다. 그렇기에 산업화 이전 대비 이미 1도가 상승한 현재 상승폭을 1.5도 ~ 2도로 묶어두기 위해 필요한 여유치는 0.5도에서 1도에 불과하다. 미국 스텐포드 대학교 마크 제이콥슨 연구팀은 2050년 미국이 화석에너지와 핵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만으로 100%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발표했다.(153 페이지)

 

정수정은 지속 가능한 삶과 관계에 대한 관심에 따라 통상적으로 과학교육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온 지구사와 우주 관련 주제를 인간과 인간생활, 생명의 근원과 소중함, 공생과 상호관계, 우주 안에서의 인간 등 관계를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주장한다.(178 페이지)

 

허순영은 미국의 인류학자인 엘라자베스 미셜 토머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을 언급한다. 2만년전 시베리아 남부의 중기구석기인들이 사냥 대상인 순록, 곰, 매머드 등의 이동경로를 따라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여행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이 소설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이후 1만년이 지난 1만년전 농경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인류에게는 발전이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훼손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허순영의 말대로 인류의 후손들이 지구라는 별에서 더 오래 삶을 누리려면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유미연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생물권보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만들기에 대해 논한다. 현재 124개국에 701개의 생물권보전지역이 지정되었고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은 21개에 달한다.(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 MAB(Man and Biosphere)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설악산(1982년), 제주도(2002년), 신안 다도해(2009년), 광릉숲(2010년), 고창군(2013년), 순천시(2018년), 강원생태평화(2019년), 연천 임진강(2019년) 등 8개 지역이 지정되었다.

 

북한도 백두산, 금강산 등 5개 지역이 지정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핵심구역, 완충구역, 협력구역으로 나뉘고 보전, 발전, 지원을 기능으로 한다. 생물권보전지역은 법적 규제가 없는 국제적 규약에 의한 지역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시의적절한 책이다. 책이 나온 시점은 2020년 9월로 파리협정이 발효되는 2021년 1월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바람직하고 시의적절한 이런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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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한밤은 물론 새벽까지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숨막히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합리의 극한은 섭씨 36, 37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기온이다. 섭씨 37도 즉 화씨 99도 상황에서 유행하는 코로나 19는 임계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든 24일 알라딘 분당 서현점에 다녀온 지 사흘만인 어제(27일) 다시 알라딘 강남점에 다녀왔다.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쾌적한 환경을 보고 낮에 20여분 걸어 도서관에 가기는 하지만 에어컨을 마음껏 틀 수 없는 집으로 다시 걸어 갈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 시원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전철을 타고 책을 사러간 것이다.

 

전철로 주요 방문지인 종로까지 오고 가는데 3시간이 걸린다. 잘 활용하면 얇은 책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물론 에어컨이 만들어주는 상쾌함은 스마트폰에 빠지게 하는 빌미도 된다. 그 무의미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어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김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책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최고의 존재다. 에어컨 플러스 책이라는 점에서는 대형서점도 전철이나 도서관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문화라는 복합의 고급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감사거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매번 한 권 이상의 책을 사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하고 있다. 어제도 사고 싶은 책이 눈에 띄었지만 그러지 않고 김 선생님 가게(달리는 달팽이)에 주문했다. 급한 책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은 이렇듯 놀라운 여유의 산물이다.

 

나로 하여금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전철에서 쾌적함을 누리게 하는 에어컨 자체가 책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책은 이 만큼 감사한 존재다. 책은 내용으로 나를 채워주고 마음까지 다독여주는데다가 에어컨으로 숨까지 잘 쉬게 해주는 평생의 친구다. 에어컨은 고온과 다습 때문에 종이가 변형되고 인쇄 품질이 나빠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캐리어라는 사람이 발명한 이기(利器)다.

 

서평단에 뽑혀 읽고 있는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을 낸 출판사의 한** 편집위원은 이 사실을 전하며 이 역사적 사실 때문만으로도 인류는 영혼을 끌어모아 책을 사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영혼은 모르겠고 내 경제 사정에 비해 적지 않은 몫의 책을 지속적으로 사니 충분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책이 선사하는 혜택은 나무가 선사하는 혜택으로부터 비롯된다.

 

최근 발레리 트루에의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중세 시대의 고온이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추월당했다고 진단하는 연륜연대학자인 저자는 지구 날씨가 정신 나간 것처럼 요상하게 행동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워밍(warming)이 아니라 글로벌 위어딩(weirding)이 정확한 말이라는 말을 했다.

 

이 책에 혹독한 환경하의 나무들은 성장에 심한 제약을 받아 천천히 자람으로써 나이테가 아주 좁고 목질은 치밀한데다가 상대적으로 온화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들에 비해 아주 오래 산다는 내용이 나온다. 궁금한 것이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든 종이는 그렇지 않은 나무로 만든 종이에 비해 고온과 습기에 얼마나 강할까?란 궁금증이다.

 

폭풍이나 태풍이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잎을 뜯어내면 나무는 광합성 능력을 잃는다. 나이테 기록은 가뭄이나 극단적인 기온 변화뿐 아니라 홍수나 폭풍 같은 다른 극한 기후를 재구성하는 데도 활용된다. 폭풍 또는 태풍이 광합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처럼 책과 에어컨(의 발명) 역시 관련이 있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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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풍경 - 역사가는 과거를 어떻게 그리는가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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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현대사가 중 한 사람인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 1941 - )의 ‘역사의 풍경’은 역사와 역사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스피르 다비드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를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 저자는 인문과 자연과학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바탕으로 논의를 플어나갔다. 이 그림을 풍경에 대한 지배와 한 개인의 하찮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한 저자는 역사의식의 성숙함도 자신의 중요함과 하찮음을 동시에 남겨준다고 주장한다.(24 페이지)

 

역사가는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모든 것을 화폭에 담을 수 없음을, 또는 과거의 특정 시기조차 일어난 모든 것을 책에 담거나 강의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역사가는 진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도 성장 과정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스스로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역사가는 너무 적은 정보와 너무 많은 정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묘사와 추상적 묘사 사이의 균형 인식을 의미한다.(29 페이지)

 

역사가는 선별성과 동시성, 스케일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갖는다. 역사가가 시간 여행에서 스스로 과거에 의미를 부과하는 것, 과거를 탐구하지만 현재에 머뭄으로써 주도권을 쥐는 것을 선별성이라 한다. 선별성보다 더 대단한 것은 동시성으로 이는 한 공간이나 시간보다 더 많은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스케일이란 거시에서 미시로, 미시에서 거시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저자는 에드워드 핼릿 카를 인용한다. 카는 분류와 관련한 문제들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고 역사가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근심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65 페이지) 카는 지질학에서 찰스 라이엘이나 생물학에서 찰스 다윈이 이룬 업적은 과학이 정적이고 시간적 제한이 없는 대상을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다루게 된 것이라 말했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 또는 진화생물학과 같은 학문은 도저히 연구실 안에서 그 학문적 대상을 다룰 수 없고 평생을 지켜봐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학문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s)을 이용한다. 이들이 역사를 재실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상력에 기대는 것이지만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69 페이지) 지질학자나 고생물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들은 과거에 있었던 것 중 대부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거의 모든 일상사는 아예 적당한 기록조차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생물학자나 천문학자들처럼 그들은 애매하거나 때로 상충하기까지 하는 증거들과 씨름해야 한다. 역사에서의 상상력이란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료와 관련되고 자료에 의해 한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지질학자도 몇 킬로미터 이상 몸소 지표면을 뚫고 들어가본 적이 없지만 땅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지상에서 어떻게 대륙을 움직이고 지진을 일어나게 하는지 자신 있게 설명한다. 어떤 화석학자도 실제로 공룡을 본 적이 없지만 공룡이 어떻게 살았고 죽었는지를 어린이는 물론 동료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재구성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어떤 천문학자도 지구 궤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지만 그 제한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도 우주의 지도를 그려낸다.(74 페이지) 합치라고 번역한 consilience는 통섭이라고 많이 쓰는 단어다. 19세기 케임브리지의 한 과학철학자인 윌리엄 웨웰(William Whewell)이 처음 쓴 이 단어는 한 주제에 대한 동떨어진 부분들로부터 도출된 결과가 예기치 않게 일치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쓴 개념이다.(83 페이지) 이 개념을 부활시킨 사람이 에드워드 윌슨이다.

 

‘변수의 상호종속성‘이란 장에서는 환원주의와 생태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 수 있다. 환원주의는 현실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주의에서는 중요도 순으로 원인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독립변수라는 것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다. 물론 생명체의 진화과정이나 대륙의 이동, 은하의 형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경우 너무 많은 것들이 다른 것들에 종속되어 있기에 설명 대상을 함부로 하위 영역으로 쪼갤 수 없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과 같은 과학은 현실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기능한다.(조지 존슨은 환원주의가 소립자물리학에서조차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생태학적 접근법은 단순한 요소들의 상술(詳述)을 중시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각 요소들이 전체 시스템(구조)이 되기까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고려하며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동등하게 본질적인 우주 내에 그 요소들을 위치시키려 한다. 환원주의적 관점이 배타적이라면 생태주의적 관점은 포용적이다.

 

저자는 원인의 다양성이나 시간의 흐름, 문화적/ 개인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과학자들과 기꺼이 계속 확산되는 변수들을 받아들이는 역사가를 구분한다. 역사가에게 특정 변수를 신성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 연결성이다.(103 페이지) 저자는 역사가 헨리 애덤스와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이야기를 한다. 애덤스는 "사람들의 탐구 수단이 점점 궁극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복잡한 환경 속에 내재하는 단순함을 찾고 그 후에는 단순함 밑에 깔린 복잡성을 찾아야 한다. 궁극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푸앵카레의 말을 인용했다.(11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푸앵카레의 위대함은 그가 선형적 관계와 비선형적 관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동일한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서 단순성과 복잡성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을 통찰한 데 있다.(120 페이지) 저자는 과학은 역사와 대단히 닮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어떤 것은 예측 가능하지만 또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며 규칙성이 있긴 하나 확연한 불규칙성과 함께 존재하고 단순성과 복잡성이 공존한다는 것이 푸앵카레의 견해다.(123 페이지)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주장한 굴드는 적자생존이라는 낡은 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명의 역사에서 우연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주장했다. 그가 말한 우연성이란 각 생명체가 호의적인 진화상의 활동 범위에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는 의미다. 굴드가 말한 것을 경로종속성(path dependency)이라 한다. 동작 과정의 초기에 일어난 사소한 사건이 궁극에 가서는 거대한 차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 역사가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를 논한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회과학자가 또한 대부분의 역사가조차 인정했던 것보다 더 세련된 연구 도구로서 새로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128 페이지) 역사가는 한쪽은 자연과학을, 또 다른 쪽은 사회과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역사가는 방법론적 열등감으로 고뇌할 이유가 없는데 그것은 물리학에 대한 동경이란 것은 역사가의 문제일 수 없고 적어도 은유적 측면에서 역사가는 이미 일종의 물리학을 잘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39 페이지)

 

역사 속에서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이 원인이 발생한 순간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을까? 물리학에서는 상전이(相轉移)를 규명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와 같은 문제 풀이가 이루어진다. 상전이란 안정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는 임계적 상황을 말한다. 물이 끓거나 어는 상황이라든지 모래더미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상황, 단층선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상황 등이다. 시스템이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과 규모와 상관 없는 자기유사성을 가질 경우 임계성(臨界性)이라 한다.(135 페이지)

 

역사 속에 상전이 같은 것이 있을까? 역사가 클레이튼 로버츠는 상전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것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로버츠는 “역사가가 궁극의 원인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 본능적으로 추적을 멈추는 경계점이 있다. 이 경계점이란 역사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사태의 변동이 막 넘쳐나는 지점을 이른다.”는 말을 했다. 저자는 이 말을 단속평형의 역사학적 버전이라 말한다.(151, 152 페이지)

 

단속평형이란 생물 진화가 지속적으로 매끈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고 불안정한 변동과 구두점 찍듯이(punctuated) 나타나는 긴 안정기가 불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역사가는 결코 역사를 실제로 재현할 수 없다.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 진화생물학 등이 시간을 재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사실적 사유는 매우 엄격한 훈련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반사실적 가정을 한꺼번에 냄비 속에 넣으면 안 된다. 그래봤자 어느 한 가지 효과도 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단일변수를 잡을 때 시대에 상응하는 기술과 문화의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과거에서 새로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해도 현대의 변화된 시각을 바탕으로 과거를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과거가 무척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역사가는 최선을 다할 뿐이며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역사 연구의 결과물도 언제나 수정될 수밖에 없다.(160 페이지)

 

묘사와 사실 사이에는 경계가 존재한다. 이 점을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 원인이 아니라 결과의 간결성을 선호해야 한다. 역사가는 결과의 간결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원인을 적시하는데 간결성을 중시하는 사회과학자와 구별된다. 사회과학자는 과잉결정된 사건 즉 다수의 원인을 갖는 사건은 설명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본다. 역사가도 일반화를 한다. 하지만 일반화를 이야기 속에 포용하지 이야기를 일반화 속에 포용하지 않는다.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시간과 공간과 문화적인 면에서의 거리 때문에 상식처럼 보이지 않는 상식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가 지적 습득의 방법적 순수성보다 늘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167 페이지) 역사를 도덕의 언어로 사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이다. 피해 가서도 안 된다. 저자는 역사가는 묘사와 사실에 동등한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18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글이 자신에게 영감을 준 블로크나 카의 시각에서 꽤 많이 벗어나 헤매고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저자의 도덕적 당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에게서 도덕의식의 작용을 배제하려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그러려면 차라리 물고기, 새, 사슴의 역사를 쓰지 인간의 역사는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한 저자와 달리 카는 소비에트 역사 전문가인 자신은 스탈린이 두 번째 부인에게 잔인하고 냉담했던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블로크나 카의 말에는 시대가 개인의 삶을 강제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역사의식이란 하나의 성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성질들 간의 긴장으로 구성된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러면 역사 연구는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역사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고 역사가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203 페이지) 저자는 역사가는 과거를 명료하게 만들지만 그럼으로써 과거를 도망이나 배상, 항소도 불가능한 감옥에 감금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실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접근 가능하지만 변형된 과거를 구성하는 것 즉 과거를 억압하고 그 자발성을 제약하고 그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라 말한다.(207 페이지) 물론 저자는 과거를 억압하는 역사가는 그와 동시에 과거를 해방시키기도 한다는 말도 했다. 저자가 대부분의 역사가보다 역사를 잘 이해했다고 표현한 굴드가 “우리의 선조들이 당연히 가질 수 없었던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그들을 판단하는 오만”을 역사가는 삼간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가의 사유 목적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사회 내에서, 억압과 해방이란 양극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억압과 해방이란 성장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 돌볼 수 있고 독립적이 되지만 동시에 경험과 교훈, 의무와 책임의 망에 점점 얽매인다는 설명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건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종속이 필요하며 이는 곧 앞에서 말한 생태주의적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완전한 억압과 완전한 해방 모두 노예 상태로 이어진다는 말과 이어진다.

 

저자는 논문을 쓰라는 압력 즉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억압이 학생들에게 미래의 성장의 조건이 되고 교수들이 학생들로부터 받는 미숙하고 성가신 부담은 학생들을 가르침으로써 젊게 사는 미덕으로 인해 상쇄된다고 말한다. 질문 없이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결국 우리를 가르친다.(224 페이지) 저자는 앞에서 말한 카스피르 다비드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의 남자가 보는 것은 앞(미래)인가, 뒤(과거)인가를 굳이 하나의 답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둘 다라고 말한다.

 

‘역사의 풍경’은 독특한 책이다. 수미일관한 책, 억압과 해방의 적절한 긴장을 역설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내게는 굴드를 인상적으로 인용한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 한 영역에 자리한 방문자센터에 그려진 그림 가운데 밤나무에 올라 이곳(현재)을 바라보는 구석기인의 모습이 있다. 이를 저자의 해석에 힘입어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보는 것으로 설명하고 싶다. 언제 재독할 기회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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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 백의리층(白蟻里層)은 옛 한탄강의 모래, 진흙, 자갈이 아직 암석이 되지 않은 채로 있고 그 위에 현무암이 자리하는 보기 드문 지질공원이지요. 그 백의리층의 백(白)이 100(百)에서 하나를 뺀 것이니 99라는 숫자가 나오네요. 오늘도 화씨 99도(섭씨 37. 2도)의 폭염이네요. 3정(鼎)처럼 세 개의 지지대에 의해 지탱되는 가로수들을, 목(木)의 가로 바를 내려 두 개의 지지대에 합류시킨 것이라 보는 저의 계산법이지요. 더위에 책 여덟 권 챙겨 도서관에 가려고 해요. '오공 - 사오 - 사오' 작전을 위해서지요. '손오공 - 사오정 - 사오정' 작전이 아니라 3일 간 14, 000자(첫날 5, 000자, 둘째날 4, 500자, 셋째날 4, 500자)를 쓰는 작전이지요. 벼락치기로 글 쓰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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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이진용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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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용 교수의 '지질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는 고타마 싯달타를 연상시키는 실존 상태(우울증, 죽음 강박)에 빠졌던 무신론 지질학자가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이야기다. 과학에 대한 극단적 상대주의(과학도 하나의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도 과학 맹신주의도 모두 문제가 있음을 주장하는 저자는 그만큼 균형적인 사람이다.

 

말씀은 목사님께, 과학은 전공 과학자에게 배우자고 제안하는 저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지질학도 층서학, 퇴적학, 암석학, 고생물(화석)학, 수리지질학, 지구과학, 광물학, 광상학, 행성우주지질학 등 수많은 세부 전공이 있어서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법칙을 이야기한다. 우주가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질서정연한 법칙이 있을 이유가 없는데 자연과 우주에 간단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처럼 시간, 공간 및 물질로부터 규제를 받는 존재가 우주에 법칙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관심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닿아 있다. 사실 조금 쉬려고 택한 책인데 유익하고 재미 있어 의외의 발견(serendipity)이라 해도 좋다. 저자는 진화론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학문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다윈 진화론을 길게 다룬다. 다윈은 중간 형태를 띄는 생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경쟁 때문에 중간 형태가 멸종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또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로부터 화석화는 매우 드문 과정이어서 지질학 기록은 불완전하다고 보았다. 다윈은 종들은 천천히(모두 다른 속도로) 변한다고 보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특정 조건에서 유리한 변이가 보존된다는 뜻이다.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뜻이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이 아니다. 적자생존은 약육강식이 아니며 어떠한 주의나 사상(사회진화론)을 옹호학지 않는다. 다윈은 생명의 근원에 대해 화답하지 못했다. 진화론을 근거로 무신론을 주장한다면 진화주의가 된다. 잘못된 비약이다. 저자는 진화란 어떤 방향성에 대한 중립적 성격을 가지는 변화라고 정의한다.

 

다윈은 제한된 동물종 및 식물종의 변이를 설명했을뿐 그들 상호간을 넘나드는 진화는 보여주지 못했다. 저자는 화석은 아주 빨리 매몰되고 오랜 동안 암석화되어 만들어진다고 즉 화석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말이 맞다고 말한다. 화석은 만들어지기가 참 어렵다.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의 대부분은 바다 생물이다. 육지 생물은 매몰되거나 혹은 죽었다 해도 다른 생물에 묻히거나 부패한다.

 

저자는 교회가 진화론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때문에 외면 받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사건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교 세력과 신교 세력의 갈등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을 가진 사람들과 코페르니쿠스적 우주관을 가진 사람들의 대결 구도로 본다. 저자는 에너지 보존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등을 들어 빅뱅이론의 모순을 지적한다.

 

빅뱅이론은 최초의 초고온 , 초고밀도의 특이점 또는 시원물질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기보다 그런 점을 설명하려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사학(地史學) 5대법칙(동일과정의 법칙, 지층누증의 법칙, 동식물군 천이의 법칙, 부정합의 법칙, 관입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일하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는 지질학적 과정이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의미다.

 

이 법칙은 격변설에 반대되는 법칙이다. 대부분의 지질학적 과정은 소규모로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퇴적은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하지만 화산쇄설물은 다르다. 동일과정설은 지질현상은 무조건 느리게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느린 현상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도 과거에도 같은 방식과 같은 속도로 일어났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다.

 

화석은 순식간의 매몰과 긴 시간의 암석화 과정을 거친다. 저자는 공룡 멸종 시기와 일치하는 지층에서 지구에서는 희귀한 원소인 이리듐층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빅뱅이론은 최초의 초고온, 초고밀도의 특이점 또는 시원물질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기보다 그런 점을 설명하려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사학(地史學) 5대법칙(동일과정의 법칙, 지층누증의 법칙, 동식물군 천이의 법칙, 부정합의 법칙, 관입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일하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는 지질학적 과정이 과거에도 일어났다는 의미다. 이 법칙은 격변설에 반대되는 법칙이다. 대부분의 지질학적 과정은 소규모로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퇴적은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하지만 화산쇄설물은 다르다.

 

동일과정설은 지질현상은 무조건 느리게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느린 현상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도 과거에도 같은 방식과 같은 속도로 일어났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약점과 한계가 있는 불완전한 과학을 보고 모두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6천년 지구설(기독교 신자들 일부의 믿음)과 45억년 지구설을 조화시키기 어려워 성숙 지구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충분히 기능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잠정적으로 45억년 지구설을 믿는다는 저자는 지구 나이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결론짓는다. 주님의 뜻을 모르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저자는 굳이 에베레스트산을 노아 홍수 때 생긴 것이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노아 홍수는 있었지만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그랜든캐넌의 퇴적층이 빠른 시간에 쌓이고 협곡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해서 그것이 노아 홍수 때 만들어진 것이라 볼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암석도 열과 압력을 받으면 얼마든지 휘고 늘어난다. 저자는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굳이 멀리까지 하나님의 창조 또는 심판 현장이라고 보러 가는 것은 참 안타깝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 현장은 그냥 뒷동산에도 있다고 말하며 저자는 자연의 웅장함과 하나님의 권능은 즐기되 노아의 홍수는 잊으라고 말한다.

 

‘지질학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쓴 신앙 - 과학 사이에서 조화를 이룬 책들 가운데 돋보인다. 이는 내가 지질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 다음에 데이비스 영,랠프 스티얼리의 ‘성경, 바위, 시간 - 지질학적 증거에 기반한 지구 연대 논쟁’을 읽을 계획인데 그대가 크다. 이 책도 전공자가 쓴 책이다.

 

나는 저자의 책을 통해 물의 신비로움을 알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구체화하기 어려운 개념을 과학적으로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왜 억지를 부릴까? 나중에 하나님께 여쭈어보라.”(230 페이지)

 

저자는 저절로 이 세상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보다 누군가 초월적 존재가 있어 만들고 운영한다고 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으로 증명되어야 할 일이라면 굳이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232 페이지) 저자는 지질학이 성경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내 주변, 지구 그리고 이 우주에 가득찬 질서라고 말한다.(244 페이지) 저자는 매일 은혜를 경험한다고 말하며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조금은 참고 관조할 힘이 생겼다고 한다. 하루 하루 매 시간 살아 있음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니 사실 눈물이 난다. 하나님께 책을 바친다는 말이 대단원을 이루는 책이다. 많이 배우고 느끼게 한 은혜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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