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 - 내 아이를 바꾸는 문해력 완성 3단계 프로젝트
김기용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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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문자 해독률은 아주 높지만 문해력은 매우 낮다. 문자 해독률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 문자가 배우기 좋은 것 때문인 점, 남다른 학습 의지 등이 두루 작용한다. 반면 문해력이 낮은 데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점, 학교 졸업과 함께 글읽기에서 멀어지는 것 등이 두루 작용한다.

 

문해력은 개인의 생존은 물론 공동체 생존의 전제다. 그럼 초등학생은 어떤가? 아니 이렇게 묻기보다 초등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리라. 초등 교사 김기용 님의 ‘초등 공부는 문해력이 전부다’는 ‘평생 성적, 문해력이 좌우한다’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초등 시기는 문해력을 키우는 시간이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생각하고 표현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문해력은 모든 학습의 기초다. 서술형 평가 문제가 늘어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남들보다 뛰어난 고차원적인 문해력은 노력과 반복, 실천을 통해 길러진다는 점이다. 올바른 이해는 입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출력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저자는 모르는 단어를 모두 알려고 하기보다 유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년별 특성에 따라 접근법이 다르다. 초등 단계는 그리 길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6년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해력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발생한다. 비문(非文)을 쓰는 어른의 경우 글쓰기 실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창의력이 가장 높은 집단은 명확한 규칙 아래 모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한다. 어휘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초등 시기는 게임을 하기보다 책 읽기를 해야 한다. 게임 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면 책 읽기에 시간을 낼 수 없어 어휘력을 키우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아이들에게는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목표가 있는 과녁 독서가 필요하다. 목표는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관용적 표현이 사고력을 키운다. 저자는 한자를 중시한다. 교과서 단어의 50퍼센트 이상이 한자어다.

 

말놀이하기, 우리 가족 행복 시간 찾기, 가족 일기 쓰기, 아이만의 어휘 사전 만들기, 좋아하는 책 따라 쓰기 등은 어휘력을 기르는 다섯 가지 습관이다. 말을 많이 할수록 어휘력도 자란다. 언변이 좋은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독서량이 많고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저자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말할 것을 권장한다. 저자는 두 명 혹은 네 명이 짝을 지어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유대인 전통 교육방법인 하브루타 대화를 추천한다. 저자는 매일 글쓰기를 추천한다. 당연하게도 글쓰기는 책읽기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글쓰기는 무조건 재미 있게 접근하라고 말한다. 테마 일기 쓰기는 부담 없이 문해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다. 생각을 확장하는 거미줄 글쓰기란 것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쓰기를 말한다. 아이의 자존감은 문해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모르는 문장과 단어를 보아도 도전적으로 읽는다.

 

아이에 대한 믿음 갖기, 아이의 자율성 기르기, 작은 성취감 갖게 하기 등이 필요하다. 1) 올바른 공책 정리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학습 후 10분 후, 1일 후, 일주일 후, 한 달 후 등 총 네 번 복습하면 머리에 오래 남는다. 2) 수업시간에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3) 교과서와 친해지도록 한다. 4) 일곱 구절로 요약해 연습하도록 한다.

 

마지막 장 제목은 ‘아이 스스로 문해력을 키운다’이다. 적절한 보상과 피드백이 필요하다. 자기문해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1)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다. 2) 자율성과 책임감이 높다. 3) 되돌아보는 능력을 갖추었다. 부모는 학습의 동반자다. 비교하지 말고 자기 아이에게 집중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공부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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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 미분부터 이해하면 수학공부가 즐거워진다
장지웅 지음,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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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비로소 고교 수학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하는 저자의 책이다. 저자는 미분을 이해하는 것을 시 이해, 그림 이해와 같은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수학 특히 미분은 기호 이해가 필수다. 책 제목은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이다. 이 개미는 생각실험에 등장하는 가상의 개미 즉 미분 개미다.

 

개미는 산을 오른다. 종(鐘)을 뒤엎어놓은 것 같은 산을 개미가 오른다. 오를수록 즉 위치가 변할수록 개미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경사도에는 차이가 난다. 각 지점에서 접선의 기울기를 계산하는 것이 미분과 관련이 있다. 곡선의 모양을 기울기의 값으로 묘사하는 것이 미분의 언어로 곡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개미가 오르는 산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뾰족하게 생긴 것,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한없이 올라가야 하는 것, 완만하게 올라가는 것, 급격한 내리막길 등등..개미가 넘어야 하는 산의 모양을 그래프라 한다. 미분 수업은 다양한 함수가 주어졌을 때 접선의 기울기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미분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함수 그래프는 곡선이다. 즉 반드시 곡선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직선의 기울기가 음수인 경우도 있다. 내려가는 길이다. 미분 개미는 평행선을 걷기도 한다. 평행선의 기울기는 0이다. 좌표상의 수치를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GPS 개미다.

 

특정 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를 미분계수라 하고 모든 점에서의 미분계수를 모아서 그래프로 표현한 함수를 도함수(導函數)라 한다. 이차함수는 볼록하고 삼차함수는 오르락내리락 한다. 정상을 기준으로 왼쪽면은 미분개미 입장에서 일정한 오르막 경사를 느끼게 하고 오른쪽면은 내리막 경사로 느끼게 한다.

 

상수(常數)를 미분하면 0이 되고 일차함수(직선)를 미분하면 주어진 함수의 기울기 그 자체가 되며 이차함수를 미분하면 직선 모양의 도함수가 나오고 삼차함수를 미분하면 이차함수 모양의 도함수를 갖는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상황을 지수 함수로 표현한다. 미분개미는 왼쪽으로 이동할수록 즉 0에 한없이 가까워질수록 그래프 위를 따라 절벽을 오르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GPS 미분개미의 y 좌표값은 한없이 커질 것이다. 이를 lim(무한대 기호)로 표현할 수 있다.

 

미분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수학, 과학 서적은 미분이란 변화를 다루는 개념이라 설명한다. 미분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이란 일반적인 물리현상을 말한다. 스프링 끝에 매달린 물체는 아래로 잡아당긴 후 놓을 경우 시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다가 멈추게 될까? 매우 뜨거운 강철을 차가운 물에 갑자기 담글 때 강철의 온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까? 비행기 날개 주변의 공기흐름은 어떤 모습일까? 등을 미분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분 관련 문제는 온실 속의 미분 문제와 야생의 미분 문제로 구분된다. 미분을 잘하는 것은 간단한 함수뿐만 아니라 좀 더 복잡한 함수가 주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셜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상태다. 복잡한 형태의 미분 즉 야생의 미분 문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미분 도구를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의 책은 적분까지 다루었다. 미분과 적분은 전혀 관련 없이 보이지만 둘은 놀랍게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분을 설명할 때 수식이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수식을 배제하면 미분의 주변부만 살피는 공허한 작업이 되기에 그 관계를 잘 파악해 최적의 부분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의 책은 미분개미라는 가상의 도구를 사용해 쉽게 설명을 시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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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우아함과 저속함
박진경 지음 / 새라의숲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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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보는 두 개의 시선, 우아함과 저속함’은 밀도 높은 책이다. 저자 박진경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동양미학을 전공한 철학박사다. 우아함은 아(雅), 저속함은 속(俗)의 다른 이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상아폄속(尙雅貶俗)의 아속관을 가지고 있었다. 상(尙)은 높이다, 숭상하다 등을 의미하고 폄(貶)은 떨어뜨리다, 낮추다 등을 의미한다.

 

아는 피지배층을 폄하하고 계도하려는 지배층의 배타적 용어다. 아문화는 지배문화, 속문화는 대중문화를 의미한다. 아는 정(正)으로 통했다. 속은 원래 부정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애초 지방이나 주변 이민족을 뜻하는 개념이었으나 중심인 아에 의해 주변부로 부정되기 시작되었다. 아속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선진(先秦)시기 이후 가치적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아속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했다.

 

잠시 공자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집례와 같은 중요한 일이나 강론은 모두 아언(雅言)을 사용해 했다. 정치적으로 불우했지만 당시로서는 귀족에게만 전수되었던 육예(六藝; 禮, 樂, 射, 御, 書, 數)의 과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제자에게 가르침으로써 3천 명에 이르는 제자를 양성(전호근 지음 ‘고전함께읽기’ 참고)한 공자다.

 

공자는 속을 비하하지 않았고 아와 속을 중요한 미학적, 도덕적 개념으로 대별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속인 대신 소인과 군자를 대별하거나 아악과 정성(鄭聲)을 대별하여 정성으로 대표되는 속악인 신악(新樂)에 대한 불편함 심경을 드러냈다. 공자가 자색[紫]이 붉은색[朱]을 빼앗는 것을 미워하고 정(鄭)나라 음악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하며 말만 잘하는 입이 나라를 뒤집는 것을 미워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성은 정나라 음악이다.

 

‘시경’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텍스트는 민간의 노래를 지배층의 문화로 이끌어낸 대표적인 아속겸비(雅俗兼備)의 산물이다. 공자가 언급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최적을 찾아 시중(時中)을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문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공자는 형식보다 내용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형식은 문이고 내용은 질이다. 인(仁)한 마음의 본질이 예(禮)라는 형식을 통해 조화롭게 드러나는 것이 문질빈빈이다. 문질빈빈은 공자가 군자의 도덕 수양에 관해 거론한 것이었으나 후에 문예에까지 개념이 확산되었다. 문이 질을 이기면 번드레하고 질이 문을 이기면 투박하다.

 

이속위아(以俗爲雅)는 아속관의 놀라운 전환이다. 이속위아는 속을 통해 아를 완성하는 것이다. 아속겸비의 회화는 감상과 실용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를 의미한다. 양명학의 등장과 초기 자본주의의 발현은 예악과 정교사상을 무너뜨렸으며 양명학의 인간 본연에 대한 관심은 자기의지와 체험을 존중하는 개성적 문예풍에 주목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청대에는 문예 전반에서 자득(自得)이 새로운 심미표준이 되었다. 법고(法古)도 결국 창신(昌新)을 위한 기반이며 창신은 자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는 문예인식이 팽배했다. 양명의 심즉리(心卽理)는 철학적 관심이 물(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 지향하는 사물에 있으며 리(理)란 객관적이고 형식적인 도덕법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준칙인 양지(良知)의 창조적 도덕 판단 및 작용에 의해 디양한 사물의 이치가 시의적절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심즉리는 모든 가치가 나의 마음에서 출발하므로 천(天)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人)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하였으며 이것은 인간의 개성과 몸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졌다.(108 페이지)

 

조선 후기가 중요하다. 이 시기는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는 시대였다.(121 페이지) 이 시기는 한양에서 대대로 권세를 누리던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상업의 발달과 함께 물질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성리학적 이념만으로 변화해가는 세계질서를 해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다.(123 페이지)

 

앞에서 자득 이야기를 했거니와 목은 이색(李穡)은 무엇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받고 스승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책에도 있지 않으니 자득해야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득은 요순 이래로 바뀐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후기 문예사조의 아속겸비적 심미의식은 자득과 중화(中和)적 사유로 문예현실을 개혁하고자 한 심미의식이었다.

 

조선 후기 인식의 변화에 미수 허목(許穆; 1595 - 1682)이 미친 영향이 아주 컸다. 그는 선진(先秦)유학 정신으로 조선 유학을 쇄신하고자 했다. 허목은 천문, 지리, 노장 등 박학을 추구했다. 실학의 대두는 문예인식의 저변을 숭고(崇古)적 전아(典雅) 지향의 문예풍토에서 즉물적이며 시대의식이 담긴 개성적 문예의 흐름으로 바꾸었다.

 

성리학의 발전적 접근을 통해 리(理) 위주의 조선주자학의 보편주의에서 기(氣) 위주의 상황주의적 지향으로 나아간 실학의 현실인식에 대한 관심은 필연적인 것이었다.(170, 171 페이지) 박지원은 당시 학자들이 학문의 본질을 망각하고 이기(理氣)와 성명(性命)으로 명분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고 학문의 본질은 실용에 있음을 천명했다.

 

그는 시경과 서경은 매화를 말하며 실(實)만 논했지 꽃은 논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비근한 것으로 참신함을 추구하여 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넓혀나갈 것을 제안했다. 박지원이 깨달은 것은 청나라의 제도에도 명나라의 전통이 섞여 있으며 명의 유제와 이적의 문화는 양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명의 문화조차 원의 문화가 섞여 있어 순수한 중화가 아니었던 것처럼 관념에 있는 고상한 이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 존재하는 것은 혼종 문화라는 것이다.(173 페이지)

 

나종면은 조선 후기 문예의 지향성이 고(古)에서 금(今)으로, 아(雅)에서 속(俗)으로, 법(法)에서 아(我)로 전환하였다고 보았다.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 1693 - 1737)은 문(文)과 도(道)를 분리했다. 그는 문장의 묘란 샘물의 따뜻함과 같고 불의 차가움과 같으며 돌의 결록과 같고 쇠의 지남철과 같다고 보았다.(197 페이지)

 

그는 "...그러므로 함께 물(物)을 보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의 시각을 빌려온 적이 없고 함께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의 청각을 빌려온 적이 없다. 그런즉 유독 식견과 깨달음에 있어서 머리 숙여 고인의 노예가 되라고 한다면 도리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211 페이지)란 말도 했다.

 

하늘은 “형체로 말하여서는 천(天)이라 하고 성정(性情)으로 말해서는 건(乾)이라 하고 주재(主宰)로 말하야서는 제(帝)라 하고 묘용(妙用)에 대해서는 신(神)이라 한다.”는 말을 한 박지원도 주목할 만하다.(206 페이지) 박지원은 주자학이 일구어낸 우주론을 거부했다. 그가 진정 거부한 것은 주자학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정신을 규제하는 이념과 고정관념이었다.

 

창신(昌新)대한 열망은 기(奇)의 추구로 이어졌다. 담헌(澹憲) 이하곤(李夏坤; 1677 - 1724)은 일원 이병연과 겸재 정선이 기이한 곳을 찾아다니며 창작을 했고 이병연의 시는 실제 경치보다 더욱 기이함을 자아냈다고 칭송했다.(홍대용도 담헌이라는 호를 썼다. 홍대용의 담헌은 湛軒이다...澹은 담백할 담이고 湛은 즐길 담, 탐닉할 담이다.)

 

이가환의 아버지이자 성호 이익의 조카인 이용휴는 기를 추구하면서도 기의 절제도 강조했다. 그는 시는 진실로 기해야 뛰어난 것이지만 기에만 힘쓴다면 그 폐단은 두묵처럼 될 것이라 말했다. 진(眞)과 기(奇)는 당대 고법에서 생산하지 못한 참신성을 의미했다. 고금통변(古今通變)은 아속겸비적 심미의식이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 문학의 혁신을 주도하였다면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회화의 혁신을 주도했다.(234 페이지) 속화(俗畵)는 문인화의 상대개념이기도 했고 풍속을 그린 그림이기도 했다.(237 페이지) 동계 조귀명은 윤두서의 풍속화에 대해 속된 그림을 그렸는데 속된 필치가 없으니 이것은 썩은 것을 변화시켜 신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평했다.

 

윤두서가 초기 풍속화로서 과도기적 흔적을 남겼다면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은 풍속화의 난만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어진 제작에 참여하라는 어명을 받았으나 사대부가 기예로써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부했다. 1748년 영조가 숙종의 어용을 그리는 일에 참여를 명했을 때 영조의 노기 어린 질책에도 불구하고 거부한 것이다.

 

그의 화집인 사제첩(麝臍帖)의 사제는 사향노루 배꼽 향기를 의미한다. 귀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부심과 세상에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없는 기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의미한다. 조영석은 아속겸비적 심미의식을 가진 대표적 문인화가다.

 

심노숭(沈魯崇; 1762 -1837)은 물 하나 그리는데 열흘, 바위 하나 그리는데 닷새가 걸리는 산수화에 담긴 허위의식을 꼬집고 이용후생적 관점에서 풍속화를 긍정했다. 그는 리(理)가 지배하는 정태적 세계관으로 예술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실용의 세계, 동태적 세계관으로 예술을 바라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조의 경우다. 정조는 풍속화를 폭넓게 수용하고 장려했다.(252 페이지) 잘 알려진 것처럼 정조는 고동(古銅)의 취미를 속학의 영역으로 보고 질타했다.(276 페이지) 풍속화의 속(俗)과 속학의 속(俗)은 같은 것인데 풍속화는 장려했고 속학은 질타한 것이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 - 1791)이 眞境, 眞景으로 말한 진경산수화는 이상적 산수관과 현실 산수가 잘 융합되어 있는, 아속겸비적 산수화관의 미의식을 보여준다.(256 페이지) 단원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은 60세가 넘어 영조에 의해 영릉 참봉에 제수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진경산수화는 전통산수화의 관념성을 극복하고 실존하는 산수를 재창조했다.

 

겸재 정선이 물려받은 것은 김창협 문단의 천기론적 개성주의이고 아속겸비적 문예관이다. 기질지성의 긍정과 천기의 강조는 기를 더 이상 국한성과 한계성의 부정적 요소로 본 것이 아니라 개별성과 경험의 특수성, 실증적 현실성, 개체의 실존을 담보하고 긍정했음을 의미한다.(279 페이지)

 

조선 전기의 천기는 성정지정(性情之正)을 의미했고 후기의 천기는 성정지진(性情之眞)을 의미했다. 조선 후기의 천기론은 문학, 회화, 서예, 더 나아가 문예전반의 예술 창작론으로 발전했다. 천기는 자연성, 자발성과 연관되므로 의고(擬古; 옛것을 본뜸)풍의 전아한 문예와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발성을 의미하는 천기는 자유를 추구한다.(287 페이지)

 

진(眞)의 추구는 문예를 아와 속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초월한다.(288 페이지) 정조는 속학의 핵심을 소품문으로 지목하여 신문체는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폐단이라고 규정했다.(310 페이지) 정조의 문체반정은 북학과 서학 사이에서 정치적 고민을 전환하기 위한 방편이자 남인을 서학이자 사학(邪學)의 원흉으로 몰아가려는 노론에 대응하고자 한 수단이었다.

 

송대 이후 심즉리를 주장하는 양명학은 즉물하는 모든 대상을 학문과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고 도덕적 세계 너머의 인간을 발견하게 했다.(321 페이지) 실(實)은 양명학과 실학의 핵심어다. 윤두서는 이런 실의 정신을 문예의 핵심으로 삼고 실득의 문화의지로 풍속화와 진경산수화를 개척하였고 우리나라 최초로 자화상을 남긴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자득은 창작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음을 말한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는 명확한 자기인식 없이는 불가능하고 자기인식은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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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모르는 인생을 바꾸는 대화법 - 말 잘하는 사람들의 여덟 가지 공통점
스쿤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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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말하기 법칙을 제시한 책이다. Language라는 단어의 철자를 언어능력과 관계되는 단어들로 설명하는 것이다. l은 logic(논리), a는 analogy(유추), n은 narrate a picture(장면 묘사), g는 good story(좋은 사례), u는 unexpected(예측 불가), a는 ask(질문), g는 gain(이득), e는 empathy(공감)이다. 논리 있게, 그리고 간결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학생들은 예를 들어 설명하거나 유추를 자주 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듣기만 해도 실감 나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머리로 그려보게 된다. 상투적인 말을 늘어놓는 데서 벗어나 같은 내용이라도 포장을 색다르게 해본다거나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자. 제대로 된 질문을 하면 절반은 성공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좋은 질문은 상대방의 불명확한 표현을 명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상대방이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 완벽한 표현은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다. 너무 이성적인 말은 듣는 이가 반박할 수 없게 만들어 그 사람의 기분을 망칠 수 있고 너무 감성적인 말은 듣기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속 빈 강정에 불과해 듣는 사람은 화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간파할 수 없다.

 

이성적인 사고를 감성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말을 꺼낼 때 미리 요약하고 정리해 두지 않으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배 같은 말이 되기 쉽다. 주제를 명확하게 설정한 후 말해야 한다. 아이에게 밥 한 번, 반찬 한 번 번갈아 가며 떠먹이는 것처럼 차근차근 관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를 정하고 북마크를 지정하면 하고자 하는 말의 전체적 윤곽이 잡히고 필요만 말한 할 수 있다.

 

정보의 개수가 3개일 때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깔끔한 전달이 가능하다. 수미상관(首尾相觀)법을 활용하자. 첫 연에서 말한 바를 마지막 부분에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을 돌아보자. 서두에서 그는 “여러분! 오늘 제가 보여드릴 노트북을 한 마디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입니다.”란 말을 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맥북 에어는 세상에서 제일 얇은 노트북입니다.”라고 했다.

 

저자는 PPT에 너무 의존하면 발표 효율도 떨어지고 영감과 창의력도 잃는다고 말한다. 발표 연습이 중요하다. 마지막 부분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가장 마지막에 들은 내용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말해야 한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 일상의 대부분의 소통은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조건하에서 이루어진다. 한쪽은 알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전혀 모르는 상태가 우리가 소통을 잘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지식의 저주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추측하여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편견이다. 지식의 저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영감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는 것이라 말한다. 어떤 일에 관해 계속 생각해야 떠오르는 것이다. 영감(靈感)은 사라지기 쉬워서 아침 이슬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유추다.

 

상대가 유추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은 발표는 단순한 내용의 반복이다. 말을 잘 하려고 대단하고 화려한 수사법을 억지로 끌어올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가 가지고 있는 5가지 감각 체계를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혀를 통해 떠나는 프랑스 여행”이라는 와인 광고 멘트는 어떤가. “이 케이크를 먹으면 봄날 철길을 달리는 녹색 기차를 탄 기분을 느낄 수 있어”는 또 어떤가. “지금 두 손에 어떤 것들을 올릴 수 있을까요? 사과 한 알? 어쩌면 지갑일 수도 있겠네요. 이제 눈을 떠 보세요. 만약 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심장이 콩닥대는 작은 생명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요?”도 훌륭하다.

 

부정적인 장면 묘사도 효과적이고 문제가 개선되었을 때를 상상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논리가 골격이라면 유추와 장면 묘사는 피와 살에 비유할 수 있다. 저자는 집중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Attention은 지불하다를 의미하는 pay와 함께 쓰인다고 말한다. 집중력이 사유재산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함부로 지불하지 않는다. 우리가 청중을 만족시켜야만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집중력을 지불할 용의를 내비친다.

 

이런 특수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중하게 말을 꺼내 상대의 집중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게 해야 한다. 상대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1) 목소리에 변화를 주어야 하고, 2) 상대를 움직이게(동작을 취하게) 해야 하고, 3) 기존 틀을 부수어야 하고, 4) A를 말하기 위해 B를 먼저 말해야 하고(복선을 깔아야 하고), 5) 웃음 포인트를 갖추고, 6) 시한폭탄을 던지고, 7) 자신 있게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

 

저자는 난처한 질문에는 반문하라고 말한다. “여기 브랜드 제품은 뭐 이리 비싸요?”란 질문에 하는 “고객님,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저희 제품 중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같은 것이 적절한 반문이다. 난처한 질문을 받았을 때 급하게 답변하려고 하지 말자. 당신이 생각하는 답변은 질문한 상대가 원하는 답변이 아닐 수 있다. 떠오르는 답변을 주머니에 잘 넣어놓고 반격 혹은 해명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이렇게 반문하자.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한데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이든 상대와 연관짓는 방법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정보를 특별하게 만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익에 호소하고 이성을 배제하라. 제 아무리 논리적인 말이라도 감성적으로 접근한 말을 이길 수는 없다. 공감은 내려놓을 줄 알고 상대방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일종의 대화 기술이다. 판단은 공감을 죽이는 살인이다. 효과적인 충고는 격려로 시작하는 충고, 상대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예로 드는 충고, 구체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충고, 독창적 조언, 상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복한 충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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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 세계와 삶을 공부하는 유연한 협력자로 일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이진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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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은 16년 경력의 인문교양책 편집자가 쓴 책 만드는 것에 관한 "자기 이야기"다. 자기 이야기란 말은 "내가 예전에 이렇게 해 봤는데..."라며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일이 즐거워지고 자신감도 생긴다는 저자의 말에서 나온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잘 팔리는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설명한다.

 

저자는 자신을 소심한 편집자라 말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나 적극적으로 집필 제안을 하지 못하는 편집자란 의미다. 저자는 자신을 생면부지의 필자보다 옷깃이라도 스쳐본 사람에게 연락(집필 제안)을 하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관건은 책을 쓰는 이가 남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가이고 다른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다.

 

저자는 책이 책을 낳는 영화 같은 일은 당연히 더 오래 일한 사람, 더 많은 책을 만들어 본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책에는 편집자와 저자의 인연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저자는 필자의 경험과 생각이라는 넓은 틀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하며 필자 스스로 가장 쓰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마침내 쓸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약간의 자극이나 환기를 할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서둘러 책을 많이 내서 성공의 경험을 나눠 갖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긴 시간 함께 성장해 간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초조나 서운함에 관계를 망치지 않고 오래도록 좋은 파트너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의 책을 통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편집자의 나이, 성별, 경험, 관심사 등이 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편집자에게, 특히나 인문교양 편집자에게 일과 사적인 삶을 분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말한다. 저자는 어떤 분야에서든 실패를 돌아보는 것만큼 큰 배움은 없을 것이지만 실패의 예로 어떤 책을 든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은 편집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공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사람의 행동을 평가했다는 이야기다. 저자가 말하는 실패란 당연히 시장에서의 실패이고 거론한 세 책은 "뒷담화를 하기에 덜 부담스러운 번역서"다. 저자는 아무리 성실하고 꼼꼼한 책도, 심지어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도 상품으로서는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짜 실패의 원인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구도 정답을 말해 주지 않기에 스스로 정답에 가까운 말을 찾고 그것을 믿고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을 통해 좋은 책은 주제의식, 구성, 문장 등이 두루 좋아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러기 위해 편집자는 세상에 대해 저자가 기울이는 것에 못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의 어법으로는 주요 분야의 깨알 같은 지식과 정보를 다 알 필요는 없고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알아채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정도의 소양 정도는 쌓아 나가는 것이 좋다. 저자는 편집자가 놓이는 상황도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해답을 제시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서두에 책을 쓰기로 한 계기, 문제의식이 잘 드러났는가, 본문에서는 그것에 답하기 위한 탐구, 조사, 경험, 만남 등이 설득력 있게 구성되고 배치되었는가, 마지막에는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자기만의 생각, 관점, 혹은 한 걸음 나아간 문제 제기가 분명하게 담겼는가, 이런 것이 어느 정도 갖춰져 한 편의 이야기로 잘 짜여 있다면 문장이 다소 거칠거나 사례가 부족하거나 약간 중언부언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88, 89 페이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오탈자보다 더 문제는 문장이 잘 안 읽힌다, 편집자가 컨셉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팩트 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등의 평을 받는 것이다. 저자는 제목을 여덟 유형으로 나눈다. 1) 구체적 효용(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 생각 비틀기/ 호기심 유발(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3) 문학적, 함축적, 간접적(아픔이 길이 되려면), 4) 이름 붙이기(피로사회), 5) 문제 제기(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6) 저자의 의지, 책의 주장(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7) 저자가 누구인가(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8) 이 저자라면 어떤 제목이라도(열두 발자국) 등이다.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편집에 대한 내용 외에 주요 책들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된다. 저자는 번역서는 얼핏 보면 이미 다 만들어진 책을 언어만 바꿔서 내는 수동적이고 닫힌 일 같지만 알고 보면 편집자의 더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이 필요한 작업이라 말한다.(141 페이지) ”나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반드시 책을 잘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146 페이지)

 

저자는 인문교양책은 생각보다 꽤 많이 트렌디한 분야라 말한다.(146, 147 페이지) 이 말을 접하니 김백철 교수의 ‘왕정의 조건’에서 읽은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탕평군주 정조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홍국영에게 조정당하는 우둔하고 바보 같은 허수아비 군주 내지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임금에 지나지 않았다(36 페이지)는 구절이다. 이는 트렌디의 변화라기보다 우리사회가 민주화된 결과라 생각할 수 있다.

 

저자의 책은 재미 있다. 내가 잘 모르는 편집 또는 출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갈등 또는 어려움 등이 리얼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서로에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뇌 구조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서로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162 페이지)

 

저자는 혹시라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책과 저자가 나의 부족한 설명으로 인해 소홀히 여겨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용을 자꾸 덧대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책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면 쓸데없이 구구절절 늘어놓았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고 한다.(169 페이지) 공감가는 이야기다.

 

책에는 보도 자료, 추천사 등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내용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보도자료나 추천사를 거의 읽지 않고 책을 사는 나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다. 편집자로서의 고민이나 어려움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나는 어느 정도 본문을 읽고 책을 산다. 인터넷에서는 목차나 저자의 말 등을 읽고 산다.)

 

저자는 편집자란 완고한 장인보다 유연한 협력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간 얇은 책을 은근히 얕잡아 보던 지난 날을 깊이 반성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아무리 매끈하게 보이는 글이라도 상당히 긴 노고와 분투의 결과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직접 부딪혀 보아야 어려움도 알게 되고 발전도 이루는 것이리라. 편집자가 아니라도 읽을 만한 유익한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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