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읽기 세창명저산책 51
양명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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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란 말.. ’고(故)로‘란 어색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러므로라고 쓴 저자의 책을 만났다. 가끔 철학책을 읽고 싶은 때가 있다. 지난 해 여름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를 읽은 이래 생긴 일이다. ‘비극’과 같은 말일지 모르겠으나 ‘무의미’의 정체를 보는 관점에 따라 추구하는 존재의 힘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말은 “철학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꿰뚫고 자기 방식으로 연결한다“는 말이다. 1913년생인 그는 2차 대전 중 포로가 되었으나 그런 중에도 철학 모임을 가졌다. 양명수 교수의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 읽기‘다. 해석의 갈등이란 삶의 진실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상충하는 것을 말한다. 리쾨르는 ’악의 상징‘에서 현상학의 한계를 제기하고 해석학의 여정에 접어들었고 ’해석에 관하여‘에서 정신분석학을 해석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리쾨르는 ’악의 상징‘에서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합리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를 하는 철학이 상징 언어와 신화로 눈을 둘려야 한다는 의미이고 철학의 기원을 철학 밖에서 찾으려는 의도의 산물로 나온 말이다. 리쾨르는 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가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리쾨르는 현상학은 인간에 대해 악의 가능성까지는 말할 수 있으나 악의 현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리쾨르가 비의지적인 것을 말한 것은 인간 행동이 욕망과 관습, 감정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했음을 의미한다. 의지란 이성적 욕망, 실천이성이다. 리쾨르가 철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 속에서 과오를 저지르는 인간 현실이다. 리쾨르는 헤겔보다 칸트를 좋아했다. 헤겔은 이성의 자기완성을 통한 절대지(絶對知)를, 칸트는 이성의 능력과 한계를 말했다.

 

물론 리쾨르는 상징철학자이며 해석학자로서 칸트의 의무 윤리에 갇히지 않는다. 자연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앎을 통해 인간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현상학 전통을 중시할 때 리쾨르는 해석학을 현상학에 접붙인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리쾨르가 말하는 인간의 자기 이해는 의식보다 깊은 존재의 힘에 이끌린다. 리쾨르에게서 언어는 구조주의와 달리 언어에 갇히지 않는다. 돌고 도는 낱말의 의미차이로 언어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리쾨르의 철학은 현상학적 해석학이라 불린다. 그러나 의식과 자기이해를 동일하게 보는 현상학과 결별한 하이데거를 취함으로써 의식철학에서 벗어났다. ’해석의 갈등‘이 말하는 갈등을 일으키는 학문들은 정신분석학, 정신현상학, 종교현상학, 신학 등이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정신현상학은 절대정신을, 종교현상학은 거룩한 존재를, 신학은 사랑의 신을 존재의 힘으로 제시한다.

 

리쾨르는 사람은 언어를 통해 언어 덕분에 자리를 잡고 자신을 내밀며 자신을 이해한다고 썼다. 리쾨르는 특별히 이중 의미를 지닌 언어, 곧 겹뜻을 가진 언어에 주목한다. 의미의 기원이 되는 힘은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숨기기 때문이다. 일차 언어를 풀어서 그 속에 감추어진 이차 의미를 찾는 것이 해석이다. 리쾨르가 말하는 자기 정체성이란 적어도 직업이나 가족사항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생명과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어떤 근원적 힘들과 얽혀서 생성된 인간의 모습들을 가리킨다. 리쾨르는 합리적 전통을 포기하지 않지만 이성의 바탕이 되는 존재의 힘에 다가가고자 한다. 존재의 힘을 드러내면서 감추는 언어, 그것이 상징이다.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징이 불러준다. 주체가 그렇게 상징에 이끌리며 생각해 진리를 자기 나름대로 아는 것이 해석이다. 해석을 통해 생각하는 믿음 안에서 진리를 알게 된다.

 

해석을 통해 아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해석 이전에 전이해가 있다. 그 전이해가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믿으면서 해석하여 전이해가 구체적인 자기 이해가 된다. 믿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주체의 바탕이 되는 거룩한 존재와의 교통을 인정하는 것이다. 거룩한 존재와의 교통도 해석과 반성을 통해서 일어나는 고백이라 해야 한다. 정리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힘은 존재의 힘이고, 존재의 힘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무의미를 이기고 살게 하는 힘이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무의식에 들어 있는 충동과 욕망에서 의미의 기원을 찾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역사의 완성을 향하는 객관 정신에서 의미의 기원을 찾고 종교현상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거룩한 존재 또는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데서 의미의 기원을 찾는다. 의미의 기원이 되는 힘은 감추어져 있으며 말로 다할 수 없기에 상징으로 표현된다. 리쾨르가 말하는 존재란 삶을 가리키기도 하고 삶의 바탕을 이루는 존재의 힘을 가리키기도 한다.

 

리쾨르는 인식론과 방법론을 건너뛰고 바로 존재 이해에 귀속된 자기 이해를 말하는 하이데거를 수정한다. 나의 해석 작업을 통해서만 나는 이미 어떤 이해 안에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안다. 한계가 있는 각기 다른 해석 방법론에 따라 밝혀지는 각기 다른 존재의 힘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가리켜 리쾨르는 조각난 존재론이라 했다. 리쾨르는 구조주의가 사상이 되고 철학이 되는 데 반대한다. 진리를 인간 주체와 연관지어 보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리쾨르가 언어의 신비를 말한다면 구조주의는 언어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한다. 리쾨르는 구조주의적 언어관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철학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간 언어의 핵심은 빠롤 즉 말의 사건에 있지 않고 말하기 이전의 잠재적인 언어구조 곧 랑그에 있다. 랑그는 공시적(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늘 똑같이 작동되는 구조)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 의하면 통시가 공시에 종속된다. 이는 체계가 변화에 앞선다는 말이고 사건과 변화란 체계 안에 무질서가 끼어든 정도 즉 체계 안에서의 변동에 지나지 않는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언어는 차이로 이루어진 기호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리쾨르는 언어에 내재와 초월이 있다고 보았다. 내재는 폐쇄된 체계 내에서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언어의 뜻이다. 구조주의는 언어의 내재적 의미효과를 말한다. 리쾨르는 구조주의가 언어를 경험 과학으로 만드는 반면 해석학은 명상에 가깝다고 보았다. 해석이란 재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해석을 통해 찾는 의미에는 역사가 들어 있다. 해석학적 지성에는 공시가 아닌 통시가 중요해진다.

 

사건을 이야기하는 공동체의 언어 사건 자체가 이미 해석이다. 우주론적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 곧 통시라고 할 수 있고 현상학적 시간은 일종의 공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상학에는 구조주의와 정반대의 측면이 있지만 시간을 말하자면 공시적인 면에서 같다. 구조주의는 랑그와 빠롤을 반대로 보았지만 리쾨르는 빠롤 안에 랑그를 통합시켰다. 구조주의가 의미의 단위를 낱말 차원에서 찾는다면 리쾨르는 문장 차원에서 찾는다.

 

말이 무한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낱말의 사전적 의미다. 말이 무한한 의미를 갖는다면 아무것도 뜻하지 않게 되며 상징의 풍요로운 의미효과도 없다. 최소의 객관적 질서 없이 의미심장한 세계는 불가능하다. 랑그의 환경 속에서만 빠롤의 사건이 발생한다.(멋진 말이고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말은 정주(定住)와 유목(遊牧)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정주 없는 유목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리쾨르는 구조주의를 해석학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보고 해석학 안에 구조주의를 통합한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구조주의와 언어 현상학을 통합한다. 관념론적 현상학이 아니라 언어 현상학이다. 리쾨르에게 주체는 언어와 함께 등장한다. 선험적 환원을 통해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선험적 환원을 통해 공시적인 랑그의 세계가 생긴다. 랑그는 주체 바깥이다. 리쾨르에게 주체는 랑그가 아닌 빠롤과 함께 탄생한다. 리쾨르는 주체는 언어로부터 출현하지 않으며 다만 언어와 함께 출현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말하면서 주체가 되는데 말하는 인간은 세상을 지시하면서 동시에 자기를 지시한다. 랑그가 빠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면서 주체가 탄생하는 것과 같다.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랑그는 언어행위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무의식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표상과 언어가 터져 나오게 하는 충동의 힘을 가리킨다. 리쾨르는 욕망의 의미론을 가지고 프로이트를 철학 안으로 끌어들인다. 데카르트는 사물을 의심해서 의식의 확실성을 확보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의심했다.

 

의식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깨어있는 것이고 나 곧 에고는 욕망을 이긴 현실을 대변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사회현실이 내 욕망을 이긴 전리품일 뿐이며 나를 알려면 내 욕망을 알아야 한다. 억압 때문에 생긴 무의미가 있는 곳에 의미가 있다. 현상학은 모든 것을 나의 의식으로 환원하는 반면 정신분석학은 모든 것을 무의식의 힘으로 환원한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현상학과 달리 나를 아는 것이 과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나를 세우기는 했지만 나를 손에 넣지 못한다.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나는 이드, 초자아, 현실이라는 세 주인을 섬긴다. 칸트는 인간 내면에 주어진 선험적이고 무조건적인 도덕법을 이성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감성적 욕망을 버리고 이성 능력으로 순수하게 도덕법에 대한 존경심만으로 행동할 의무를 주장했다. 정신분석은 분석이기보다 해석이다. 욕망이 현실에 부딪혀 억압되고 억압된 욕망이 이드와 초자아로 분배된다. 리쾨르는 윤리를 존재욕망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성 욕망보다 더 근원적이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프로이트가 이룩한 도덕의 비신비화를 거쳐 다시 거룩의 상징이나 문화 상징에서 존재의 힘을 찾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프로이트가 말한 표상이란 언어화되지 않은 생각 등을 말한다. 해석이란 드러난 것을 통해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무의식은 표상과 정서와 증후를 통해 의식에 노출된다. 프로이트가 강조한 것은 의식이 무의식에 결정된다는 것이지만 리쾨르는 의식이 무의식을 결정하는 면도 있다고 보았다. 경험적 실재론이란 물리적으로 경험되는 충동의 실체를 가리키고 선험적 관념론이란 분석자의 해석 모델을 가리킨다.

 

칸트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앎이 경험과 함께 생기지만 경험에서 나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의식적 분석 모델에 의해 충동의 실재가 의미 있게 밝혀지는 것이다. 충동의 경제학으로 보면 죄의식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싸움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원죄를 프로이트의 경제학 모델이나 발생학 모델로만 풀 수 있을까?”라고 말한 뒤 원죄는 물려받은 인간 사회의 문화와 관습 속에서 죄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 상태를 말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고발하는 상징 언어라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힘을, 헤겔은 정신의 힘을 말한다. 정신이 표현된 문화와 작품을 해석하는 문화 해석의 결과로 의식은 자기를 이해한다. 시대정신을 이해하며 자기를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의 문화 형태의 의미는 나중에 밝혀진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 이해는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의식의 직접적 자기 이해를 부정하는 점에서 정신분석과 정신현상학은 같다. 리쾨르는 정신분석학은 주체의 고고학으로, 정신현상학은 주체의 목적론으로 부르며 둘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했다.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과거를 치유하는 것이기에 미래가 없다면 과거도 없다. 반성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표현하는 상징이다. 리쾨르의 해석학에서 생각하는 주체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나를 바탕으로 나를 생각하고 나를 통해 나를 찾는 주체를 문제로 본다. 리쾨르는 주체 없이 진리를 말하는 것을 비판하는 만큼 선험적인 나를 상정한 자명한 실체를 상정하는 것도 비판한다. 리쾨르는 데카르트가 확실성과 정체성을 혼동했다고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생각하는 내가 누구인지까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의식이 나의 정체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리쾨르는 데카르트의 직접적 자기 인식을 인식이 아닌 느낌으로 보았다. 자기가 누군지 외부적 요소를 끌어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다. 직관을 거쳐 표상이 된 외부적 경험 자료들을 통각하여 개념의 틀로 찍어나올 때 비로소 인식이 생겨난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나는 존재한다는 확신과 나는 누구인가의 의심이 양립하기를 바란다.

 

리쾨르는 후설 현상학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1) 의미 기술. 2) 주체가 의미 생산자라는 점. 3) 선험적 환원 등이다. 현상학에서 말하는 현상이란 의미의 세계를 가리킨다. 리쾨르가 볼 때 현상학의 말하는 주체는 언어 과학을 수용하지 못한다. 현상학은 객관적인 랑그의 세계를 모른다. 현상학에서는 주체가 세상뿐 아니라 언어까지 지배한다. 현상학의 시간은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라 위아래로 흐르는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흐르면서 전통이 축적되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에 응집된 시간이다. 진리는 오직 현재이며 이는 신을 영원한 현재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관과도 통한다. 리쾨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 11권에서 추구한 시간을 서구의 현상학적 시간의 효시(嚆矢)로 보았다. 모든 인연을 끊고자 하는 불교의 찰나라는 시간도 현상학적 시간이다. 빠롤은 주체가 공시적인 랑그를 가져다 상황과 시간에 맞게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현상학에서는 말 곧 빠롤을 공시적인 것으로 본다. 현상학에서 언어의 여러 요소는 매번 독자적인 표현행위를 하려고 경합한다. 기호의 의미가 객관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사용될 때 뜻을 가지게 된다. 이는 현상학적 주체가 의미의 창시자일뿐 아니라 언어의 지배자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리쾨르는 언어의 객관적 언어값인 랑그를 인정하고, 주체가 언어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상학과 달리 내가 언어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구조주의와 달리 언어가 나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말하고 말을 해석하면서 나의 정체가 형성된다. 이것이 해석학적 주체다. 리쾨르는 후설의 선험적 환원을 언어로의 환원으로 정의한다. 존재와 언어와 생각이 나를 이룬다. 직관을 통한 자아 인식이란 없다. 해석 없이 확실한 자기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념론의 꿈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나의 욕망을 알아야 하는데 칸트는 욕망을 일부 감춘 표상적 세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셈이다. 칸트는 도덕적 인간을 인간의 정체성으로 보고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보는 셈이다.

 

반성이 해석이 됨으로써 해석학은 철학이 된다. 반성 이전에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면서 주체가 태어난다. 후설에게서 나는 의미의 생산자이고 하이데거에게서 나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자이다. 내가 묻지만 나는 묻는 대상에 의해 이끌려 묻는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대상화해서 인식하고 통치하는 주체를 설정한 것이며 그러한 주객관계에서 실체적 자아의 확실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나는 존재가 현현(顯現)하는 자리로서 현존재이지만 존재를 묻는 자로서 나이다.

 

내가 묻지만 물어지는 것이 나의 물음을 유발했다. 리쾨르가 사용하는 존재하려는 노력이란 말은 스피노자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리쾨르가 말한 악이란 자연재앙,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고통과 불행, 인간의 죄 등이다. 현상학은 악을 자유의지의 산물로 말하지만 그러나 살다 보면 악이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리쾨르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층의 언어가 인간의 잘못을 말하기 위한 상징으로 쓰였다고 보았다.

 

잘못이 금기를 어긴 것이면 의 상징이고 흠을 표현하기 위해서 물리적 접촉이나 오염과 관련된 상징 언어들이 동원된다. 근원적인 잘못을 신과의 인격 관계 훼손에서 찾을 때에는 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도덕과 법을 어긴 개인의 잘못을 따지는 의식은 허물 차원이다. 흠과 죄와 허물의 상징이 일차 상징이라고 한다면 신화는 이차 상징이다. 비극적 세계관이란 죄와 고통을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세계관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와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악의 원인을 신에게 돌리지 않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인류사상사에서 자유의지란 개념을 처음으로 확실하게 사용한 학자가 아우구스티누스이지만 모든 악이 자유의지에서 나왔으며 따라서 악의 극복도 자유의지의 책임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설명한 사람은 칸트다. 존재의 힘을 사람의 의식 밖에서 찾는 리쾨르의 해석학은 악과 구원의 비의지적 차원을 찾는다. 첫 사람 아담의 죄가 유전되었다는 말은 상징이다.

 

죄에 대한 윤리적 세계관과 함께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모두 말하고자 한다. 원죄론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원론적인 영지주의와의 싸움, 그리고 도덕주의자인 펠라기우스와의 싸움이 있다. 죄는 나의 책임이지만 나의 책임이라 할 수 없는 비극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개념적으로 모순인 원죄론은 악의 문제에서 신의 선하심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악을 고발하며 신의 은총을 희망한다. 죄를 짓는 데 대한 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묻거나 생물학적인 유전을 말하는 것은 원죄론의 관심이 아니다.

 

죄를 타고난다는 말은 상징적 표현으로 세상의 구조 악 속에 사는 한 죄지을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 구조 악을 만든 것은 개인들이다. 죄의 깊이를 말하는 것은 구원의 은총을 말하기 위한 방편이다. 죄의 고백의 언어와 믿음의 희망의 언어가 원죄론이라는 상징 언어에 들어 있다. 현상학은 설명하지 않고 기술한다. 상징해석학은 신화를 사실로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펠라기우스나 칸트, 마르크스, 니체처럼 신화를 윤리로 바꾸는 합리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꿈을 해석하듯 신화도 해석해야 한다. 인간은 선에 대해 무지하다고 하는 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칸트가 잇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 우연성보다는 비극성에 더 관심을 가졌다면 칸트는 인간의 뿌리 깊은 악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유의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리쾨르의 해석학은 신화를 사실로 보지 않는 비신화화를 포함한다. 그러면서도 신화에 들어 있는 인간의 자기 이해를 살리려고 한다.

 

증언하는 말이 글이 되었다가 그 글이 독자에게 그를 위한 말씀이 될 때 성서의 해석학적 과정이 끝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뢀이 인간의 삶을 해석하지만 인간의 실존 이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뢀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성서는 신의 말이면서 인간의 말이다. 사도 바울이나 중세의 학자들은 전자를 강조하고 현대의 비판적 지성은 후자만 강조한다. 리쾨르의 상징 해석학은 삶과 성서의 해석학적 순환을 인정한다.

 

리쾨르의 해석학적 순환은 전통 신학에서 볼 때는 철학으로 보이고 현대의 비판적 지성에서 볼 때는 종교적이고 신비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해석의 순환이란 믿음과 이해의 순환이다. 믿으려면 이해해야 하고 이해하려면 믿어야 한다. 믿음이란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존재의 힘에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존재의 힘은 신화라는 상징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믿으려면 신화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 루돌프 불트만은 믿음과 이해의 해석학적 순환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서를 이해할 수 있지만 성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해석 작업을 거쳐야 믿음의 대상이 드러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불트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결단과 무관한 하나님 이야기는 모두 신화라고 본다. 칸트가 인식이 아닌 의지와 관련해서만 신을 말한 것처럼 불트만은 실존론적 결단과 관련해서만 신을 말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말씀을 듣는 자의 주관적 결단에 의해 밝혀지지만 그 이전에 텍스트의 객관적 의미를 거쳐야 한다. 곧바로 실존으로 가는 것은 언어의 객관적 의미를 무시한 너무 성급한 해석이론이다.

 

리쾨르는 독일 신학자 불트만의 사상에 주목하며 ’이미‘와 ’아직 아님‘의 변증법이 가져오는 긴장과 희망을 복음의 핵심으로 본다. 칸트는 신에 대해 알 수 없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존재의 힘에 이끌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진리를 이해하고 자기를 이해하는 지성이 믿음과 희망의 지성이다. 저자는 도덕성을 향한 의지의 노력 없이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칸트가 볼 때 거짓 신앙이고 거짓 종교라 말한다. 그리고 교회는 인간의 뿌리 깊은 악이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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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날에 눈이 내렸다. 3월에 눈이 내린다는 샤갈의 마을을 생각하게 함인가? 가볍게 흩날리는 눈 같은 음악이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메르카단테(Mercadante)의 플롯 협주곡 e minor 3악장이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들으려고 mer까지 치니 merry christmas가 자동으로 완성된다. 


소문자로 시작해서 그런가 하고 대문자로 시작해도 Mer에서 여전히 merry christmas가 완성된다. 기분으로는 성탄절이라 하고 싶은 시간이다. 궁금한 것은 몇 단계를 거쳐 성탄절 기분이 난다고 했지만 결국 눈이 내린 것을 보고 성탄절 기분이 난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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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운동 기념일이 다가오네요. 신채호 - 박자혜 독립운동가 부부가 생각나요. 남편은 성균관 박사까지 지낸 유학자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독립운동가이지요. 궁녀 출신의 아내는 3.1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베이징 엔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열혈 여성이지요. 남편은 아홉 살에 자치통감을 공부하고 열 네 살에 사서삼경을 마친 천재였죠. 자치통감은 세종이 사랑했던 책입니다.

 

세종실록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임금이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말하기를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강(講)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하니 유관(柳觀)이 아뢰기를 "책의 수효가 너무 많으니 두루 다 보지 못할 듯합니다."..

 

중국 북송의 사마광이 군왕의 통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은 역사서 자치통감은 총 294권이지요. 어떻든 세종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자치통감을 바로 읽지 못했지만 평생 그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지요. 자치통감은 홍종우에게 암살당한 김옥균이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책입니다.

 

3.1절 하루 전인 2월 28일 명동 해설을 합니다. 중앙우체국 앞의 홍영식 동상에서 안소영 작가의 ‘갑신년의 세 친구’를 이야기하며 김옥균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이어 명동성당 건너편 이회영 생가터에서 이회영 선생과 신채호 선생의 인연(단재가 이회영 선생의 부인인 이은숙 여사의 중매로 박자혜 여사와 재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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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 근대적 패션의 풍경 살림지식총서 150
김주리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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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그리고 경성(京城)을 화두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근대인의 자율성과 개성의 각인은 패션과 함께 한다고 말하는 김주리 교수의 ‘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를 읽는다. 1932년 5월 신동아에 실린 방인근의 ‘모뽀. 모걸’은 흥미롭다. 모던 보이 M은 시골 아내가 보기 싫어 결혼한 이후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내가 친정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R에게 부탁하여 젊은 여학생을 소개받는다. M은 진고개 어느 조용한 식당에서 여학생 H를 만나는데 그녀의 짧은 치마, 비단 양말, 핸드백, 칠피 구두, 전기로 지진 곱슬거리는 트레머리에 반하며 곧 결혼을 한다. 그런데 첫날밤에 H가 난데없이 쪽진 머리와 무명 옷 차림으로 M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사실 그녀는 M의 옛 아내였다. 남편이 여학생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와 4년간 공부한 뒤 R 내외의 도움을 받아 연극을 꾸민 것이다. 동일인이라 해도 신식여인과 구식여인 사이에는 도저히 같은 존재로 인식할 수 없는 확연한 구분의 논리가 존재한다. 근대 패션은 그러나 일제의 식민 지배 원리가 구사한 근대의 전략이다.

 

패션은 다수가 선호하는 일반적인 양식이지만 변화를 전제로 한다. 식민지 경성에서 유행은 삶의 풍속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881년 서광범이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요코하마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은 후 양복은 빠른 속도로 지식층 남성의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코트, 넥타이, 셔츠 모양, 칼라, 바지통, 멜빵, 모자, 구두, 지팡이, 커프스를 포함한 총체적 외양의 변화를 의미한다.

 

양복과 넥타이는 일부의 패션이 아니라 대부분 월급쟁이들의 보편적 외양, 하나의 레벨이 되었다. 쉽게 정착된 양복과 달리 여성의 양장은 정착에 진통을 겪었다. 원래 모던이라는 말은 현재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이지만 1930년에 사용된 모던이란 말은 고유명사로서 1920년 이후에 등장한 특정한 역사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미국식 스타일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부 소비계급의 문화적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모던 걸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아직 아무런 새로운 것도 갖지 못하고 외모의 새로움만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식과 함께 온갖 묵은 곳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창조의 도정에 있는 존재로도 이해된다. 식민지 경성의 모던 걸에 대한 비판은 사치성에 중점이 두어졌다.

 

1920년대 이래 잡지에서 빠지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경성 암행기 류의 기사다. 박태원의 고현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로가 잘 정비된 근대 도시를 산책하듯 걸으며 풍속을 기록하는 것으로 백화점, 특히 진고개의 일본 백화점을 풍경으로 한다. 진고개는 일본의 대 백화점인 히로다, 미쓰코시, 미나카이, 조지아들이 들어서서 일본식의 친절함으로 무장하고 조선의 자본을 모조리 긁어모으는 휘황찬란한 별천지로 각인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매혹과 활기를 느꼈다. 저자는 ‘날개’를 통해 드러난 이상 시인의 새로운 날개란 유행의 첨단을 걷는, 퇴폐적이지만 동경에 가득찬 몸부림인지도 모른ㄷ다고 말한다. 이상이 발견한, 진고개를 헤엄치듯 입 벌리고 지나가는 모던 걸, 모던 보이를 흔히 혼부라당이라 한다.

 

진고개를 걷는 일은 이국(異國) 즉 식민 본국의 수도인 동경에 대한 동경(憧憬)으로부터 기원한다. 사람들은 진고개에서 깨끗한 근대의 이미지를 보고 깔끔하고 청신(淸新)한 마네킹의 자태에 매료되었다. 지식인들은 진정한 근대를 찾아서 기대를 품고 동경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이상 역시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동경에서 진정한 근대의 면모를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동경에서 발견한 것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가 진고개에서 느낀 것은 환상이었다. 1930년대 대부분의 경성인들은 초가집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일본인과 서양인의 문화주택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외국 유학파인 부르주아들이 그들을 모방해 황금정 일대에 문화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가난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사치스러운 개인, 이는 경성의 거리를 활보하던 식민지 패션인에 대한 단적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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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 봬도 탐조 회원이다. 하지만 완전 초보인 나는 새에 대해 나름 잘 알면서도 겸손한 매너로 "저도 완전 초보예요."라 말하는 분 때문에 와~ 안전 초보예요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탐조 회원이 아닐 때는 서슴없이 탐조(探鳥)니 ornithology(조류학)이니 하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새 세계에 탑승한 이래 지식도 없으면서 탐조나 조류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교보문고에 가서 "조류 책 코너는 어딘가요?"라고 할 수 없어 다르게 말했다. 문제는 "새 관련 책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대뜸 "새는 어디에 있어요?"라고 물었다는 점이다. 책을 파는 곳이기에 당연히 새에 관한 책일 수밖에 없는데 직원은 "조류 책 코너요? 알파벳 I 코너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새는 어디에 있나요?"라는 내 선문(禪問) 같은 말에 직원은 극히 모범적인 답을 한 것이다.

 

'서울해법'의 저자인 건축학부 정성홍 교수는 자신의 책은 개별 건축물의 특이성이나 건축가가 구사하는 어휘보다 도시건축의 공통문법에 집중한 책이라 설명했다. 이 말을 위해 저자가 선택한 말은 개체성을 드러내는 빠롤보다 집합적 의미인 랑그라는 말이었다.(참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당분간 나는 새에 관한 책 가운데 빠롤이 아닌 랑그에 더 비중을 둔 책을 읽을 것이다. 가령 가와카미 가즈토의 '조류학자라고 다 새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나 '조류학자 무모하게도 공룡을 말하다' 같은 책을 읽으려 한다.

 

이 분의 말인지 모르나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대멸종을 이겨낸 공룡인 새(공룡 즉 새)라는 말이 머리를 맴돈다. 그래도 개별 새들도 개별 공룡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2020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작인 조혜은의 '새'에 의하면 지구에 사는 새의 종류는 8600종, 우리나라에 사는 새의 종류는 700종이다. 내가 아는 새는 몇 종이나 될까?란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

 

이상(李箱) 시인이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연 것은 일제 강점기에 친구 구본웅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김상옥 의사(義士)의 최후를 보고 날렵하고 신출귀몰하기에 붙은 그 분의 별명인 제비란 이름을 권유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이상 시인의 제비 명명(命名)이 비상(飛翔) 충동과 무관한 것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런 단정은 새를 무조건 비상 충동과 관련짓는 것 만큼 설득력이 없다.

 

새로부터 비상(飛翔)이 아닌 새로운 키워드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해답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읽는 수밖에 없다. 영문학자 도정일 교수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을 소환해 본다.

 

"나무들은 아름답고 나무가 있는 세계의 강물은 푸르러 그 강에 들어갔다 나오는 백조의 날개가 푸른 잉크빛으로 물들지 모른다는 서정을 그들(시인들)은 펼칠 수 있었다. 모더니스트의 시대까지 갈 것 없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시인들은 '풀잎 하나가 우주를 들어올린다'(정현종)는 빛나는 상상력을 풀잎의 감성에 실어 띄워보내지 않았던가."('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350 페이지)

 

최근 나온 동 저자의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에 위의 이야기와 공명할 '생태문학의 딜레마' 란 챕터가 있다. 기대된다. 다시 책 이야기로 귀환했다. 그저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새와도 친해지기 위해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서정을 펼칠 수 없는 시대라지만 그럴 여지는 있으리라. 주된 문제는 내 감성이 무디다는 것이다. 어제 분명 효연재(曉然齋)에서 본 직박구리에 아, 하고 감탄했지만 감성은 살아 있으나 상투적이어서 문제다. 새롭게 보는 눈을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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