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5 - 레 미제라블 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5
박성일 그림, 김난영 스토리 / 주니어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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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영하의 세계문학 원정대'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책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김영하 작가와 함께 세계 문학 작품 속으로 들어가 명작의 교훈과 가치를 느끼고 현재의 관점에서 명작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신개념 학습만화이다.


<셜록 홈즈의 모험>을 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오만과 편견>, <지킬 박사와 하이드/프랑켄슈타인>, <빨간 머리 앤>에 이어 이번에는 <레 미제라블>이다. 김영하 작가와 함께 엄선한 세계 문학 작품들이 계속 이어질 예정인데, 다음 이야기는 <15소년 표류기>라고 하니 또한 기대가 된다. 




사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총5권으로 나왔을 만큼 분량이 엄청난 걸로도 유명하다. 성인 독자가 완독하기에도 부담스러운 분량이라,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쉽고, 재미있게 먼저 접하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성공했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다.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는 청년 장 발장은 벌써 일주일째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였다. 그는 굶주리는 누나와 일곱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19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처음 그에게 선고된 것은 5년의 노역형이었지만, 네 번 탈옥하려다 실패해서 결국 형량이 19년이 된 것이다. 이후 출소했지만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혀 일할 곳도, 하룻밤 머물 곳도 찾기 힘든 상태였다. 그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준 미리엘 신부의 은그릇을 훔쳐 다시 잡히고 말지만, 신부는 그런 장 발장을 용서하고 은그릇을 자신이 준 선물이라고 말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앞으로 정직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어 달라는 신부 덕분에 장 발장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더 흐른 뒤, 사업가에서 시장이 된 장발장을 비롯해 배고픔과 학대 속에서 자란 코제트, 자식을 위해 이와 머리카락까지 판 여성 노동자 팡틴, 법 수호에 목숨을 걸고 장 발장의 뒤를 끈질기게 쫓는 경찰 자베르, 코제트와 사랑에 빠지는 청년 마리우스, 여관을 운영하는 악랄한 성격의 테나르디에 부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김영하 작가와 문학부 친구들이 가상 현실 시스템을 작동해 명작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컨셉으로 진행이 된다. 정직한과 조아라를 비롯해 작가 X를 찾아 미래에서 온 로봇 김영일, 나희재까지 이들 문학부는 <레 미제라블> 속 등장인물이 되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작품 속 캐릭터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면 페널티를 받게 되고,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 카드를 획득하면 프로그램이 종료되어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위대한 세계 문학 작품들을 만화로 풀어내어 부답없이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중간 중간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습 정보, 그리고 문학 작품과 작가에 대한 추가 정보도 수록되어 있고, 다 읽고 나면 마지막에 '김영하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를 통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작품 해설도 수록되어 있다. 작품의 이야기 배경이었던 프랑스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레 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이 주는 감동과 교훈에 대해서 김영하 작가의 해설을 읽다 보면 내용이 잘 정리되는 느낌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문학부 쉬는 시간'이라고 해서 미리엘 주교 집 찾기, 알맞은 대사 넣기, 숨은그림찾기, 다른 그림 찾기 등 재미있는 놀이로 머리를 쉬게 해줄 수도 있다. 작품과 관련있는 내용으로 꾸며 더 재미있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세계 문학의 가치를 찾아내는 재미를 독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실물 가치 카드를 부록으로 받아볼 수 있으니, 수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세계 역사의 중요 사건인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되고, 빅토리 위고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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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빼앗는 사회 -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한국 사회 실패 탐구 보고서
안혜정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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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엇이 실패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의 기준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는 전제와 맥락이 생략되어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는지, 어떤 시간적 프레임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실패로 여겨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갈리는 스포츠나 경연 등에서는 실패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그 외의 맥락에서 우리가 실패라 여기는 많은 일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때로 상대적이며, 나중에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실패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p.67~68


우리는 유독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이는 경쟁적 입시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획일화된 성공 경로를 따르며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패를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결과와 성공만 중시하며 실패를 부정하고 숨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실패에서 배울 기회마저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롯해 학교 안팎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것이다.  사실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실패연구소가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한 것은 일상 속 실패를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거였다. 실제로 학생들이 제출한 '포토보이스' 사진들도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카이스트 학생은 어떤 실패를 경험할까? 부서진 실험 도구, 밤새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기계, 오류로 기괴한 결과물을 산출하는 프로그램 등 그저 보기만 해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포켓몬 초코빵에서 안 귀여운 스티커가 나왔다는 뽑기 실패 사진, 취업 면접을 망친 후 그날 입은 정장 사진, 밤새 연구하고 새벽녘 중천에 뜬 밝은 해, 오늘도 다이어트 실패라는 새벽에 뜯은 과자 봉지 사진까지 다양했다. 학생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실패라는 것의 개념과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실패에서 배운다'라는 말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닌 '배움'이다. 실패연구소의 경험이 보여주듯, 우리는 실패뿐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슌 왕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듯 같은 횟수의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로부터 실질적인 성장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복된 실패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에서 진정으로 배우려면 먼저 그 일을 하는 목적과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과정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실패는 비로소 의미 있는 교훈이 된다.                 p.267~268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보다가 "그런데,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라는 말에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는 대목이 있다. 아무래도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패를 접하는 것이 일반론이니 말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과 실패를 객관적인 기준, 예를 들어 성적,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이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가는 저마다의 목표와 가치, 그들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학생이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실패를 겪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 중 하나는 실패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실패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용인함으로써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각자의 실패 경험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성찰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실패의 경험을 개인적 교훈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준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디폴트라면, 실패가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패하지 않기보다 크고 작은 실패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회복 탄력적 마인드셋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 연구는 문제를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험한다고 해서, 혹은 실패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두가 실패에서 배우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실패연구소가 어렵게 찾아낸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는 법'을 만나보자. 언젠가는 한국 사회도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배우는 분위기로 나아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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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분 한줌영어
강하영(제이미쌤)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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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는 몇 시간 몰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20분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거나, 학원을 수강하거나, 새로운 책을 구입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난 경험 다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만한 영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하루 20분, 쇼츠를 보며 부담 없이 영어회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총 30편의 쇼츠 영상을 두 단계로 나누어 60일 동안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유튜브 채널 <제이미쌤 한줌영어>를 통해 현지에서 바로 통하는 실전 영어 학습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회수 2000만 뷰, 완강률 100% 제이미쌤의 강의가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영어 회화책치고는 얇고 가벼운 편이라 의아했는데, 군더더기없이 꼭 필요한 내용만 담고 있어 오히려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는 책이었다.


INPUT 단계에서는 먼저 쇼츠 영상을 보고 생생한 현지 영어를 체험해보고, MP3 파일을 활용해 원어민 발음을 익힌다. 대화 혹 유용한 표현도 배워보고, 핵심 문법도 익힌 뒤에 OUTPUT 단계에서는 배운 내용을 직접 입으로 말하며 훈련하는 것이다. 빈칸을 채우며 단어와 구문을 익히고,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어민과 똑같이 말하기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키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인 '원 플러스 원'은 영어어일까? 영어 단어(one, plus)로 이루어져 있어서 영어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한국에서만 쓰는 콩클리시 표현이다. 영어로는 '하나 사고 하나를 무료로 받으세요'라는 의미로 buy one get one free라고 한다. 앞 글자를 따서 BOGO라고 하기도 한다. 스타벅스 1+1 쿠폰이 'BOGO쿠폰'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린스, 핸드폰, SNS 역시 콩글리시 표현이다. 영어로는 conditioner, cell phone 또는 mobile phone, social media라고 써야 한다. 


책에 수록된 모든 대화와 예문은 저자가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표현과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100% 현지에서 사용하는 리얼 영어 표현들인 것이다. 일상 영어, 여행 영어, 카페 영어, 식당 영어, 연애 영어로 구분해 우리가 자주 쓰지만 영어로 잘못 사용하는 표현과 해외여행 시 꼭 필요한 각종 심사 및 컴플레인 표현, 그리고 연애할 때 실수하기 쉬운 표현과 감정 표현까지 배워볼 수 있었다. 




해외에서, 혹은 외국인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분명 머리로는 아는데 입이 안 떨어지는 경우 종종 겪어봤을 것이다. 단어와 문법을 알아도 말문이 막히는 것은 '아는 영어'와 '쓰는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암기가 아닌 진짜 회화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그래서 말하기 실력을 실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루 20분씩, 60일 동안 꾸준히 연습하면 머릿속 영어가 실제 대화로 이어지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루 20분이면 공부하기에 정말 부담 없는 분량이다. 쇼츠와 강의만 보면서 60일이면 실전 회화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회사 다니느라 바쁜 직장인들도, 학교 생활로 정신없는 학생들도 부담 없이 해볼 수 있다. 영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경우, 혹은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해외만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였던 이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자, 제이미쌤과 함께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리얼 실전 영어회화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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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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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이상하다. 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혼자였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유럽 북쪽의 숲들을 갈아엎고, 그곳에 금속이 박힌 살덩어리들과 몇 년 뒤에 무고한 산책객들 코앞에서 폭발하게 될 포탄들을 살포했고, 자신이 만들어 낸 그 볼품없는 지진계에 고작 12등급만을 주었던 메르칼리조차 창백하게 질릴 만한 황폐함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젊었고, 나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낮의 아름다움이 밤의 예지에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오늘에서야 헤아린다.           p.42


석공이었던 남편이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다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은 어머니는 아이가 조각가가 되어 미켈란젤로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라고 짓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전쟁으로 인해 죽게 되면서 미모는 열두 살 나이에 한 석수장이에게 맡겨진다. 동생을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공방을 팔아 돈이 마련되면 미모에게 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20년이나 걸린다. 낯선 나라에서 지내게 된 미모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조각가 알베르토 밑에서 도제로 일하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왜소증으로 태어나 난쟁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지만, 아버지에게 조각하는 법을 배워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는 이탈리아의 명문가인 오르시니 가문에 일을 하러 갔다가 평생의 운명이 될 소녀 비올라를 만나게 된다.


오르시니는 너무도 부유한 후작 가문이었고, 미모와 비올라는 같은 사회적 계층에 속하지 않아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비올라가 용기있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한 권씩 빼내어 미모에게 빌려 주었으며, 함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모의 꿈은 위대한 조각가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주정뱅이 밑에서 일하고, 짚 더미에서 잠을 자며, 돈이라고는 있어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비올라는 미모가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 대단한 재능으로 아름다운 뭔가를 만드면 좋겠다고 말한다. 비올라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여자에게는 책 한 권 볼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맹세한다. 그들은 거의 열네 살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자, 과연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 




「떠나자, 비올라. 난 이런 폭력에 신물이 나.」 

「떠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악의 폭력, 그건 관습이지. 나 같은 여자, 똑똑한 여자,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그런 여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습. 그런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그 유일한 비밀이라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더라. 내 오빠들, 그리고 감발레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건 바로 그거야.」              p.595


1951년 어느 날, 이탈리아의 사크라 수도원에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이송된다. 당시만 해도 사크라 수도원은 외딴곳에 있고 방문객 수가 무시해도 될 정도였기에 선택된 장소였다. 피에타상은 삼중으로 궤에 넣어졌는데, 제일 바깥 궤는 금속이고 안쪽 두 개는 목재였다. 그렇게 수도원은 비탈리아니의 작품을 안치한 뒤 지하 저장고의 문을 닫았고 이야기는 거기서 멈춘다. 이후로는 그 작품이 거기 있다는 소문이 돎에 따라서 점점 더 엄격해지는 일련의 보안 조치들이 생겨날 뿐이었다. 피에타 석상은 첨단 경보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하에 감금되어 접근이 불가능하게 된 것일까. 그곳을 드나들 열쇠를 갖고 있는 건 수도원장뿐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그녀는 거기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고 있죠. 그녀를 볼 권리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야.' 대체 이 석상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면, 이 길고 긴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라. 이야기는 피에타를 조각한 석공 미모와 지적인 소녀 비올라와의 우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펴내는 소설마다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2024년 공쿠르상과 프낙 소설상을 수상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데뷔 이래 단 네 권의 소설로 프랑스 주요 문학상 19개를 수상하며 현지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작가이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작품은 지적 장애를 앓는 사춘기 소년의 강렬한 첫사랑을 그려낸 <나의 여왕>이 국내에 먼저 소개된 적이 있고, 이번 작품이 두 번째이다. 이 작품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밀도 높은 서사로 꽉 채우고 있는데, 이렇게 두툼하면서도 페이지가 정말 술술 잘 넘어가는 작품이었다. 마치 고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캐릭터와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해서 눈앞에 쫙 영상으로 펼쳐지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드는 그런 이야기였다. 수도원 지하에 밀폐된 비밀스러운 사연부터 왜소증을 타고난 천재 석공예가 미모와 부자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의 자유를 향한 투쟁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흠잡을 데 없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파시즘이 득세하던 당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태생적 한계와 사회적 난관에도 꺾이지 않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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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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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에 맞게 스타일을 선택하는 피카소의 능력은 하나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스타일을 창조하려는 세잔의 평생 탐구와는 전혀 다르다. 피카소는 활동 기간에 수차례 스타일을 빠르게 바꾸었듯이, 신속하게 구상하고 표현될 수 있는 아이디어로부터 여러 스타일을 종횡하는 그의 예술적 면모가 발현된다는 점을 반영한다. 반면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한 세잔이 보여준, 하나의 스타일에 대한 확고한 천착은 그의 예술의 시각적 특성의 산물이며 그 요원한 목표를 완전히 달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p.30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자 했던 욕망에 사로잡혔던 위대한 예술가라면 불가피하게 자기 삶의 단계와 작품의 질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젊을 때는 미래에 위대해져 있는 자신을 상상하고 기대할 것이며, 나이가 든 상태에서는 자신의 실력이 계속 향상되어온 것을 되돌아보거나, 나이 들수록 능력이 퇴보하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예술가 스스로 구체적인 자기 삶의 맥락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기에 일반성을 지닌다고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예술사들의 작품의 질이 나이에 따라 어떻게 그리고 왜 다양해지는가에 대해 그들의 생애주기를 분석해보면 어떨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W. 갤런슨은 창의성 경제학센터의 학술 책임자로 예술적 창의성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예술가의 유형을 천재에 가까운 ‘개념적 혁신가’와 대기만성형에 가까운 ‘실험적 혁신가’로 구분했다. 실험적인 혁신을 이뤄낸 예술가들은 미적 기준을 중시하며, 시각적으로 경험한 것을 실현하려 한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절차는 잠정적이고 점진적이다. 이 예술가들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주제를 여러 번 다루고, 시행착오의 실험적 과정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점차 다르게 다룬다. 이들은 경력을 쌓아 나가면서 능력치를 서서히 높이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점점 더 나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완벽주의자이다. 반면에 개념적 혁신을 이룬 예술가들은 특정한 아이디어나 감정을 전달하려는 욕구에서 동기를 얻는다. 보통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원하는 이미지와 과정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그림 그리는 행위는 체계적이다. 아이디어가 핵심이기 때문에 개념적 혁신은 보통 즉시 그리고 완벽하게 실행되고, 특정 목적을 달성하면 만족할 수 있다. 





실험적 접근법과 개념적 접근법을 구별하는 예술가들의 인식과 관련된 다른 예시들을 추가할 수 있지만, 여기서 논의된 내용만으로도 현대의 화가,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들이 두 유형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두 유형의 예술가들 간 차이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라 그리거나 쓰는 '이유'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이해는 놀랍지 않다. 두 유형을 구별하는 것의 중요성과 이것이 예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크나큰 영향을 고려할 때,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이 발자크, 스티븐스, 포크너를 비롯해 중요한 현대 예술가들의 선례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p.344~345


개념적 혁신가가 단거리 주자라면, 실험적 혁신가는 마라토너다. 개념적 혁신가 대부분은 젊은 천재들로 활동 초기에 자신의 분야에서 대혁신을 불러오지만, 실험적 혁신가들은 보통 인생 후반기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나이든 거장들이다. 가장 위대한 두 명의 근대 화가인 폴 세잔과 파블로 피카소는 혁신가의 전형적인 두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세잔의 그림 그리는 과정은 항상 경험적이지만 독단적이지 않았고, 일련의 규정을 따르지 않았으며 자연 앞에서 자신의 느낌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의 진정한 목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는 것이었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데 따른 좌절과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오래 살지 못할 수 있는 두려움 등 실험적 혁신가로서의 거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피카소는 예술이 예술가의 발전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발견한 것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결실을 맺게 된 세잔과는 정반대로 피카소는 항상 다르고 예측할 수 없게 변화하는 작업 스타일을 보여줬으며, 자신의 예술에 대한 피카소의 확신 또한 세잔의 의심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런 식으로 방대한 수집과 연구를 토대로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세잔, 잭슨 폴록, 버지니아 울프, 로버트 프로스트, 앨프리드 히치콕과 같은 예술가들이 왜 ‘실험적 혁신’을 보여준 노련한 거장이었는지, 페르메이르, 반 고흐, 피카소, 허먼 멜빌, 제임스 조이스, 실비아 플라스, 오슨 웰스 등이 왜 ‘개념적 혁신’을 보여준 젊은 천재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 또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예술가들이 그림을 만드는 과정, 특정 그림을 그리기 전에 수행하는 것들, 작업을 시작하기 전 계획 등을 통해 예술적 혁신의 두 가지 패턴에 대해 분석하고, 동시대 화가들을 넘어 근대 이전의 화가, 근대 조각가,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등 다른 예술가 그룹에 분석을 적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경제학자이기에 가능한 지점들이다. 최고가 작품 제작 시 연령, 삽화에 가장 많이 실린 작품 제작 시 연령, 회고전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작품 제작 시 연령을 비교해 주요 화가의 전성기 연령을 정리한다거나 뉴욕갤러리 첫 개인적 개최 당시 화가들의 연령 비교를 통해 실험적 예술가와 개념적 예술가의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 한 눈에 보여주기도 하는 식이다. 경제학자와 예술 창의성이라니 너무 낯선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분석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연구가 경제학자만의 독특한 관점을 만들어 냈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숨겨진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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