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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ㅣ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새도 마음이 힘들어 몸에게 이상한 것을 먹이는 날이 있지만, 이젠 그런 마음에 놓여도 안 좋은 상태 속에 오래도록 나를 내버려두진 않는다. 밥을 잘 차려서 먹는 행위에 기꺼이 쏟을 여력이 마땅치 않았던, 밥보다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았던 시절을 건너서, 밥도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알게 된 지금에 도착했다. 지금 살고 있는 시간, 지금 하고 있는 경험이 꼭 나에게 생산적인 의미로 각인되지 않아도 괜찮았으면 좋겠다. 뮌헨의 내 방에서처럼 매일 밥을 잘 챙겨 먹는 생활만으로 충분한 삶이라 만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다정, p.96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의 두 번째 책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고상하고 천박하게>에 이어 두 번째 책 <우리 같은 방>은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이 함께 글을 썼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로서, 글을 쓰는 동료 작가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방을 가진 이웃으로서 <방>에 관한 이야기를 사계절이 넘는 시간 동안 공들여 써냈다. 두 사람의 결이 매우 비슷해 구분하지 않고 읽다 보면 마치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데, 다행히도 페이지 하단에 다정, 윤후라고 각각 표기가 되어 있다. 두 사람이 쓴 글을 교차하여 읽어도 좋고, 한문학자의 운치 있는 수필로, 시인의 담백한 에세이로 따로 읽어도 좋다.
누구에게나 집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공간이다.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있고, 나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꾸려진 나만의 방은 그 속에서도 가장 익숙하고 공간이다. 책상과 의자, 화분, 책과 각종 잡동사니들로 가득해 낯익은 공간인 방에서 우리는 울고, 웃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감정을 쌓고, 생각을 한다. 최다정 작가는 이사를 자주 하며 거쳐온 보금자리들을 돌아보며 자신이 지금까지 머물렀던 각양각색의 방들이 모두 나름의 문장으로 각인되어 삶의 서사에 일부분 기여했다고 말한다. 서윤후 시인은 좋은 집이나 좋은 음식이 아니라 먹고 사는 일 사이사이로 아무렇게나 붙여 높은 스티커, 존재만으로 충분한 인형 등 의 잡동사니들이 삶을 결정해왔다고 말한다. 각자의 방에서 쓰인 방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듯 닮았고, 솔직하고 꾸밈없는 공감과 다정한 온기로 소박한 기쁨과 이상한 위안을 안겨준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좋아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세공하여 더 많은 풍경을 간직하는 일이다. 반대로 어떤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부연한 마음 자체를 안개처럼 느끼며 사는 일일지도.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여름을 기다려 온 마음을 여러 풍경에서 화답받을 때가 좋다. 바닷가의 출렁임 속에서 의연한 튜브, 시원한 라무네 병에 맺힌 물방울... 늦게 찾아오는 저녁의 어둠과 공원의 풀 냄새, 가로등을 곁에 두고 치는 심야의 배드민턴, 곱게 간 얼음 위로 팥을 얹은 빙수, 매미 울음소리에 찢어지는 지평선과 녹음으로 무성해진 수풀......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이 여름의 기억은, 내가 여름을 변호하기 위해서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 윤후, p.190~191
각자의 방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와 서로의 방문 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컨셉부터 아주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서로의 독자인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에서 각자의 언어로 삶을 정리하고, 가끔은 거실에서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 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살았던 방과 통과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원룸이고, 누군가에게는 전세집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가로 그 형태는 다르겠지만, 한동안 '내 집'이라고 불렀던 장소의 의미는 같지 않을까. 그래서 오래 전에 살던 동네를 가기라도 하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입장하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드니 말이다.
책상의 자리로는 창문 곁이 제격이고,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의자는 방 한편에 두길 추천한다는 최다정 작가는 만약 자신이 다른 주소의 방에 살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방문을 굳게 닫으면서 시작된 것들이 자신을 길러 왔었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난 이후로 방문을 한 번도 닫아 본 적이 없다는 서윤후 시인은 방에서 고요를 수비하며 붙잡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 잡동사니 속에 한 번도 호명되지 못하고 잊힌 물건들을 가끔 꺼내어 내가 너를 잊지 않았다고 인기척하는 것이 예의라는 시인과 과거 어느 한 시기의 나를 돌이켜 보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그때 살던 방의 창문 장면부터 떠오른다는 한문학자의 글은 각기 다른 부분에서 공감할 대목들이 많았는데, 그래서 읽는 내내 밑줄 치고 플래그를 붙이느라 더 천천히 읽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는 라인업이 이미 10권까지 나와 있다. 첫번째, 두번째 책이 좋았으니 그 나머지는 또 얼마나 좋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올해는 매달 이 시리즈를 챙겨보는 재미를 놓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