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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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대지는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네. 우리는 정복된 괴물이 족쇄를 차고 있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그곳, 그곳에서는 괴물 같은 존재가 자유로이 풀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 그곳은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았고, 그곳의 인간들은...... 그래, 그들은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니었어. 글쎄, 그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지. 그들이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야. 그 의심은 천천히 찾아왔어. 그들은 울부짖고 뛰어오르고 빙빙 돌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를 전율케 한 것은 그들이, 우리처럼, 인간성을 지니고 있을 거라는 생각, 이 사납고 격정적인 소란이 우리와 먼 친척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네.                 p.86


조지프 콘래드 사망 100주기를 맞아 새롭게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Heart of Darkness’다. 기존에는 지금까지 ‘암흑의 핵심’, ‘어둠의 심연’, ‘어둠의 속’ 등 각기 다른 뉘앙스의 제목으로 번역돼왔다. 황유원 번역가는 ‘어둠의 심장’이라고 제목을 번역했다. ‘Heart of Darkness’는 소설의 무대로 짐작되는 ‘콩고 내륙의 빽빽한 초목’을 가리키는 동시에, ‘인간의 광기’, 즉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을 모두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에 ‘어둠의 심연’보다는 ‘어둠의 심장’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번역뿐만 아니라 작품과 연관된 다양한 텍스트를 부록으로 수록해 가장 충실하고 완전한 판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이번 책은, 가장 최신의 《어둠의 심장》이자 소설의 명성만 들었던 사람들, 난해하다는 소문에 읽기를 망설였던 사람들, 어둡지만 심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기꺼이 나아갈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템스강에 정박한 쌍돛대 유람선 넬리호에서 몇 사람이 앉아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가 진 뒤, 강물 위로 땅거미가 내리고 강기슭을 따라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말로 선장이 자신의 과거 경험담에 대해 말을 꺼낸다. 그는 인도양, 태평양, 중국해를 6년 정도 실컷 경험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도를 아주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에서 무역을 하는 커다란 회사에 대해 알게 되고, 친척들의 도움으로 무역회사 소속으로 콩고 강을 오가는 증기선 선장이 된다. 떠나기 전 지도의 정중앙에 표시된 치명적일 만큼 매력적인 강을 보고 설레이는 것도 잠깐, 관련 서류 작업을 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뭔가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음모에, 뭔가 상당히 잘못된 일에 휘말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불길한 암시에도 불구하고 콩고라는 미지의 장소에 대한 가한 호기심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만일 궁극적 지혜가 그런 형태로 찾아오는 것이라면, 인생은 우리 중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수께끼인 셈이지. 나는 하마터면 판결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얻을 뻔했지만, 어쩌면 내게 아무런 할 말도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굴욕감을 느꼈네. 커츠가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내가 단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세. 그에게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거든. 그는 그것을 말했네. 내 스스로 삶의 가장자리 너머를 슬쩍 들여다본 이후로, 촛불의 불꽃은 볼 수 없어도 온 우주를 아우를 만큼 광대하고 어둠 속에서 뛰는 모든 심장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그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p.167~168


말로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커츠'라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것이었다. 커츠는 원주민에게 막대한 양의 교역품을 끌어내어 그 지역 무역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로 무성한 소문을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말로가 커츠를 만나기 위해 가장 어둡고 야만적인 지역으로 향하는 여정이 이 작품의 주요 서사가 된다. 먼저 사업장으로 가기 위해 콩고 강 어귀에 도착해 말로가 마주한 것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흑인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합법적인 기간제 계약이라는 명목하에 병들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 전까지 혹사당해온 것이다. 모든 것이 엉망인 그곳에서 말로는 오지에 가면 커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커츠가 비범한 인물이며,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다. 긴 여정을 거쳐 어둠의 심장부에서 말로는 커츠와 만나게 되는데... 과연 커츠는 무성한 소문과 명성에 걸맞는 인물이었을까? 커츠와 말로의 만남은 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작품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조지프 콘래드는 자신이 직접 콩고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로드 짐>과 <어둠의 심장>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는 유럽의 식민주의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던 콩고에서 목격한 사건들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을 죽이면서 착취했던 당시 유럽인들을 소재로 작품을 쓰기에 이른 것이다. 극중 콩고에 도착한 말로가 발견한 것은 문명인의 어두운 내면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물욕때문에 영혼마저 잃어버리고, 야만적인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무엇이 문명이며, 무엇이 야만인지, 어느 순간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빽빽한 초목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글 사이를 지나 안개 자욱한 강을 건너며 각종 장애물들을 피해 항해해야 하는 힘든 여정처럼 콘래드의 문장들도 밀림처럼 빽빽하고, 숨 막히는 거대한 숲과 닮아 있다. 분명 행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표 하나 없는 글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흑의 정글처럼 묵직하고, 수수께끼로 가득한 미로처럼 모호한 부분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을 훼손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지에 초목이 만발하고 커다란 나무들이 왕이나 다름없던 태초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여행, 공기가 뜨끈하고 빽빽하고 묵직하고 둔탁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숲을 지나 식물과 물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세상의 압도적인 현실이 빚어내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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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익스프레스 - 길고 쓸모 있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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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그저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책과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보통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공간인 책의 여백에서 이루어졌다. 프랭클린은 열심히 밑줄을 치고 메모를 남기는 여백의 거주자였다. 그의 독서는 폭넓고 현명했다. 지혜로 가득한 책을 선택하면서도 자신만의 지혜를 잃지 않았다. 회의적이지만 열린 태도로 책을 읽었다. 어릴 때부터 가능성주의자였던 그는 창조적 재능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성격적 특성,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독서가 곧 경험이었다.            p,52~53


에릭 와이너의 신작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를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리딩 가이드를 통해 미션과 필사를 하며 차곡차곡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는 다채로운 시간이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기였다면, 이번 <프랭클린 익스프레스>는 필라델피아부터 파리까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기를 담고 있다. 


100달러 지폐의 얼굴로 유명한,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프랭클린에 대해 잘 몰라도 상관없다. 전작이 소크라테스에 관한 책이 아니었듯이, 이 책 역시 벤저빈 프랭클린에 관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삶을 추구하는 방법, 쓸모 있고 유의미한 삶을 위한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인생 철학은 무엇일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에릭 와이너는 삶의 중요한 이정표(60세라는 나이)를 앞두고 겁에 질려 있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 노년의 문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안과 걱정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는 바로 그때 벤저민 프랭클린을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달러 지폐 위의 얼굴로만 알고 있던,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프랭클린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프랭클린과 그가 살던 시대를 향해,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프랭클린을 대표하는 키워드인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고, 프랭클린이 말한 오자 개념에 대해 알아보았다. 에릭 와이너와 함께 떠나는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여정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프랭클린은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선물하고 수집하고 사랑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미국 최초의 관외 대출 도서관을 세웠고, 1790년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미국에서 가장 대규모의 개인 장서를 집에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그는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책과 대화를 나눴다.




직관에 반하는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을 도운 사람을 도와주고 싶지 않나? 꼭 그런 건 아니다. 프랭클린이 발견하고 최근의 다른 연구들이 입증했듯이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왜일까? 인지부조화가 한 원인이다. 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기란 어렵다. 그러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마음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긴장감을 가라앉힌다... 우리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그럴 기회를 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p.387


이처럼 프랭클린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은 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던 어린 시절부터 혼잡한 교차로 근처의 모퉁이에 있는 작고 녹음이 우거진 벤의 묘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쓸모 있고 유의미한 삶을 위한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인생 철학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프랭클린에 대해서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고, 시간 관리와 자기 계발의 아이콘이라는 점 외에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다독가였다는 점만으로도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프랭클린에게 습관은 전기만큼이나 강력한 힘이었다고 한다. 습관은 선한 사람이 선한 행동을 하고 나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원인이라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선하거나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습관과 선한 습관 모두 오랜 시간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형성된다." 라고. 그는 의도가 아닌 행동을 강조했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의향이 아닌 결과였기 때문이다. 습관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장을 읽다 보니, 왜 프랭클린이 자기계발이 아이콘이 되었는지 너무도 잘 이해가 되었다. 




프랭클린 시대의 청교도인들은 실수와 오자를 '죄'라고 칭했고, 이 죄는 자기 처벌적인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프랭클린에게 오자는 그저 실수일 뿐이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발생하기 마련이고, 바로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삶은 펜이 아닌 연필로 쓰인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프랭클린이 살던 시대를 생각해 보았다. 프랭클린은 습관처럼 책을 읽던 어린 시절부터 습관의 힘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는 매일의 일정을 완벽히 통제했고, 의도가 아닌 행동을 강조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의향이 아닌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프랭클린은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덕 있는 사람을 환영하는 미덕 연합당을 창립한다던가, 자기만의 열세 가지 미덕 목록을 작성한다던가 하는 식이었는데, 열세 덕목에 대해 오늘 날의 시점으로 점검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책이 우리를 태우고 수 세기를 넘나드는 타임머신이라면, 책이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이 우리의 인생을 구할 수 있다면, 에릭 와이너와 함께 떠나는 프랭클린의 삶에 대한 여정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 복잡하고 미로 같은 세상 속에서, 정답 없는 삶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당신에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건네줄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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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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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어떤 절의 주지스님이 가르쳐줬어. 세상에는 운과 불운이 있는데."

"불운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행운을 붙잡기는 힘들어. 다만 잃기는 쉽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이 되면 돼. 남에게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인간한테서는 운이 달아난대."

"명심할게."

나나오는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느긋해 보이도록 유의하며 방을 나섰다. 나서자마자 걸음이 빨라졌다.           p.123


나나오는 중개업자인 마리아의 소개로 호텔에 머물고 있는 투숙객에게 그림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하려는 중이다. 일명 '무당벌레'로 불리는 나나오는 참극이 벌어졌던 열차 안에서 맨손으로 살아남은 탓에 킬러 업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운이 없어서 매번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어째선지 말썽에 휘말리곤 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림을 서둘러 건네주고 가려는데, 그림 속 인물과 다른 사람이 방에 있었고, 어쩌다 보니 그가 제 발로 미끄러져 대리석 탁자에 머리를 부딪치곤 죽어 버리고 만다. 더 이상 이 수상한 일에 엮이지 않도록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쫓기는 여성이 도와달라고 요청하질 않나, 오래 전에 악연이 있었던 업자와 마주치질 않나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과연 나나오는 오늘 안에 무사히 호텔을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는 킬러가 등장하는 여타의 추리, 스릴러 장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위트와 유머에서 비롯되는 재미와 인간적이고 소심한 킬러가 만들어 내는 좌충우돌 소동이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사람이 죽는 일과는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다'는 나나오는 '그러면 끝'인 일을 하는데도 어째선지 늘 말썽에 휘말리곤 한다. 분명 간단한 일이라고 해서 시작한 건데, 이상하게 시체가 등장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고, 쫓고 쫓기는 난투극이 벌어지곤 하니 말이다. '넌 불운해도 너무 불운해'라던가 '잘 들어, 넌 운이 없어'라는 말을 남에게 듣든, 스스로에게 경고하든 그는 불안과 너무도 가까운 남자다. 어린 시절부터 자잘한 불행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고, 커다란 불운도 수없이 겪었으며, 일을 하면 전혀 상관없는 시체가 우르르 나오고 그걸 처리하느라 생고생을 한다. 이번 일도 원래는 선물을 배달하는 일을 하러 왔을 뿐, 호텔방을 찾아가서 전달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일이 생기고, 호텔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의 불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깜짝 놀란 소다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요?" 하고 목소리를 높이자 콜라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매화나무가 옆에 있는 사과나무를 신경 써서 어쩌자는 거야?" 하고 대꾸했다고 한다. "매화나무는 매화꽃을 피우면 돼.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으면 그만이고. 장미꽃과 비교한들 아무 의미도 없어." 라고.

나나오는 이야기가 엇나갔다고 지적하고 싶은 한편으로 자신이 소다가 들려준 콜라의 말을 곱씹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p.218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 이은 킬러 시리즈 신작이다. <마리아비틀>이 영화 '불릿 트레인'으로 만들어지고 나서 후속작에 대해 오래 고민하던 이사카 고타로는 ‘수직 공간에서 이뤄지는 탈출 살인’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이번 작품에서 추격은 20층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무당벌레는 과연 1층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이 중심 서사인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냉혹한 살인청부업자들과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어수룩한 전직 수학 교사 스즈키의 쫓고 쫓기는 하드보일드 느와르를 보여주었던 1편, 생사를 헤매는 아들을 위해 놓았던 총을 다시 잡은 남자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기묘한 킬러 콤비 등 여러 인물이 절묘하게 얽히는 액션 활극을 보여주었던 2편, 청부살인업계에서 은퇴해 떳떳한 가장이 되고자 하는 베테랑 킬러의 꿈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그렸던 3편에 이어 이번에 나온 작품에서는 불운으로 가득한 청부업자가 우연히 호텔에서 벌어지는 소동에 휘말려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러 인물들이 제각각 다른 층의 호텔 방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소동이 벌어지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서사가 매력만점인 작품이었다. 킬러 시리즈를 모두 만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성이 탄탄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스피디한 이야기와 위트 있는 대사, 치밀한 구성과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호텔, 체크인하면 죽는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곳곳에 시체가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지, 이사카 고타로만이 그려낼 수 있는 독특한 탈출 스릴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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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과학 2 - 과학에서 출발해 철학으로 나아가는 1분 드라마 1분 과학 2
이재범 지음, 최준석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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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우리 정신이 시간 여행을 하는 것과 같지요."

기억 속에 있는 경험과 추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때의 향기, 소리, 촉감을 기억하며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과거로 우리의 정신이 시간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p.74~75


여름의 불청객 모기가 생태계에 꼭 필요한 존재라면? 현대인들의 정신 질환이라고 여겨지는 우울증이 수십만 년 전에도 있었다면?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시대가 온다면?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우리의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책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는 점을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설명해주고, 겨드랑이에 털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화학적인 이론을 통해 알려 준다. 사라지지 않는 과학계의 거짓말을 리스트로 정리해 보여주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알고리즘'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그야말로 과학이라는 창을 통해 일상 전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유튜브의 과학 채널 ‘1분 과학’을 운영 중인 과학 크리에이터 이재범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에서 공부하던 때 우울증을 앓다가 처방받은 항우울제로 상태가 곧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후 과학의 경이로움에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이번에 나온 2권에 수록되어 있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약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된 기분이 들었고,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가상의 세계에서 살았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알약 하나로 바로 행복해지는 경험이라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가상의 세계와 진짜 세상에 대한 사유가 그를 과학의 세상으로 이끌었다니 그또한 놀라운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과학의 세계를 만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름 없이 전기로 500km를 달리며 운전자 없이 스스로 운전을 하고 주차까지 하는 자동차를 상상하지 못했다. 기술의 발전은 멈출 줄 모르고 인간이 만든 기계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로봇들 중 하나는 언젠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점을 싱귤래리티, 혹은 '특이점'이라고 말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날이 온다는 것을 의심하는 과학자는 별로 없다.                 p.148~149


구독자 90만 명의 유튜브 교양 과학 채널 ‘1분 과학’의 두 번째 책이 다. 누적 조회 수 9000만 회를 돌파하며 '과알못'도 빠져들게 만드는 꿀잼 과학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1분 과학의 대표 에피소드를 만화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시리즈이다.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과학 이야기라는 점과 요점만 콕콕 찝어서 만화로 보여준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1권에서 커피, 고양이, SNS 같은 생활 속 주제부터 유전자, 시간, 진화 등 무게 있는 주제까지 다양한 과학 이야기를 들려 주었었다면, 2권에서는 모기, 우울증, 사랑에 관한 이론부터 인공지능, 신, 가상의 세계에 관한 철학까지 다루며 시의성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이번 2권에서는 특히나 미래를 다루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로봇들에 대해서, 증강현실과 종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종교를 증강현실 게임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상당히 새로웠는데, 각 종교별로 지켜야 하는 규칙과 최종 목표, 그리고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존재와 믿음에 대한 부분은 진짜 설득력이 있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1분 과학 채널은 '과학 채널을 가장한 철학 채널이 아니냐’는 말이 많을 정도로 과학 이야기의 범주를 넘어선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과학과 철학을 이렇게 함께 읽어 낼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게다가 최신 과학 이론을 굉장히 단순화시켜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과학 공부의 문턱을 낮추고 싶거나, 과학이라는 분야를 폭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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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엔딩 클럽 티쇼츠 2
조예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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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찾아와 놓고 죄송하지만, 제발 누가 좀 구해 주세요...... 간절하게 빌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실에서도 없는 기적이 이곳에서 벌어질 리 없었다. 달리면서 양옆을 돌아봤다. 듬직하기만 하던 수림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울었다. 거친 욕설을 지껄이며 "괴물 미친 새끼."를 연발했다. 우리가 엔딩을 얕봤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죽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가만히 앉아서 닥쳐 오기를 바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p.83~84


모든 학교에는 괴담이 있게 마련이다. 보름달이 뜨는 날, 별관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괴담도 그중 하나였다. 제미는 괴담이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건 가정 불화로 인해 막막한 자신의 앞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또 가상 화폐 투자 실패로 오천만원을 잃었고, 엄마는 너 죽고 나 죽자고 외치며 칼을 들고서 아빠에게로 간다. 엄마의 행동은 순전히 위협용이었고, 아빠가 비명을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쯤 되면 제미는 자리를 피한다. 왜냐하면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 시작하면 그 공간에서 제미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날은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해져 간단한 세면도구와 복대형 전기장판까지 챙겨 집을 나온다. 기숙사에 있는 우등생 친구 연준에게 하루 신세를 지기 위해 학교로 향했고, 기다리다 생물실 실험대 밑에서 깜박 잠이 들고 만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실제 괴담 속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끔찍한 게 다 진짜일 리 없다고, 꿈이었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다가 제미는 그 세계가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나아질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라리 괴물에게 잡아먹혀 다시는 이쪽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야겠다고 '초승달 엔딩 클럽'을 만들게 된다. 다음 보름달이 뜨기까지는 한 달가량이 남았고, 차근차근 끝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학교 대나무숲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데뷔조에서 떨어지고 절망한 아이돌 연습생 환희와 학교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수림까지 초승달 엔딩 클럽의 멤버가 된다. 세 사람은 '죽고 싶다'는 공통점으로 모여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 한다. 마침내 디데이가 되었고, 그들은 계획대로 그곳에 도착하지만, 젤라틴 괴물을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만다. 죽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이들의 엔딩은 어떻게 될까. 





정말 우리가 다녀온 붉은 생물실이 죽은 화문이 만들어 낸 저주의 공간이라면, 그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열쇠 역시 그쪽 세계에 있을 테다. 그리고 화문은 나에게 구해 달라고 말했다. 그건 스스로는 멈출 수 없다는 말이었고, 또한 멈추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화문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도망친 세상에 갇혀 버린 기분을. 족쇄 같은 모든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작은 아이를 이제는 편하게 해 주고 싶다고.                 p.136


위즈덤하우스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짧은 청소년 문학 시리즈 '티쇼츠', 그 두 번째 작품이다. 박서련 작가의 <퍼플젤리의 유통 기한>에 이어 이번에는 조예은 작가가 <초승달 엔딩 클럽>을 선보인다. <스노볼 드라이브>, <만조를 기다리며>, <적산가옥의 유령>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조예은 작가는 언제나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도 긴 여운을 남겨주는 서사를 보여주었었다. 호러라는 장르적 요소를 매우 섬세하게 풀어내며 조예은표 새로운 호러 소설을 만들어내곤 했던 작가라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누구나 가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답답한 현실 앞에서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결국은 평범하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조예은 작가는 그런 십대들의 마음을 사려깊게 헤아려 괴상하지만 어딘가 뭉클한, 무섭지만 이상하게 다정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죽으려고 괴물을 찾아갔으면서, 어쩌다 보니 괴물을 구하고 싶어 계획을 세우게 된 이 작품 속 친구들처럼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이 아무리 절망스럽더라도, 불투명한 미래의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다. 혼란스럽고, 걱정도, 고민도 많은 청소년들이 조예은 작가가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조금은 위로 받기를, 응원이 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티쇼츠'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가벼운 판형과 두께로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 할만한 주제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라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다. '독서가 좀 더 보편의 취미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책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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