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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ㅣ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평점 :
성형수술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도 있을까? 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넷 사이트에 성형수술을 많이 한 성형괴물을 찾아냈다며 누군가 글을 올리자, 당사자는 그들을 고소하고 경찰서에서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돌아가 다시 인터넷 게시판에 모여 자신들을 엿 먹인 성형괴물을 처단하자면서 그녀의 신상을 공개한다. 주소며 지도, 사진까지 첨부된 게시물에는 수십 건의 댓글들이 달린다. 그리고 실제 그녀는 잔인하게 살해되자, 주도적으로 게시판에서 그녀를 비방했던 16살 중학생 소년이 용의자로 검거된다. 대부분의 형사들이 소년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지만, 소년을 심문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성호는 범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후 주간파 게시판에 성호의 신상이 털리고, 용의자였던 소년이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그는 수사에서 제외되고, 진도 삼보섬에서 일어난 여성 세 명 실종사건 관련해서 지원을 하러 내려가게 된다. 삼보섬에서 일어난 연쇄실종사건은 굿에 정통한 무속인, 운림산방의 관리 여직원, 해안가 펜션 여주인이 실종된 사건으로 범인이 보낸 편지까지 도착했지만, 지문감식, DNA 채취까지 했으나 진전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가장 힘든 점은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가 저지른 범죄를 일에서 백까지 머릿속으로 재현해보고 나서 왜 그렇게 했는지를 곱씹어보아야 했다. 범인이 잡힌 후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같은 범인의 개인 사에 공감하면서 진술을 이끌어내야 했다. 범죄와 범인에게 가장 근접한 그림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성호는 필적 감정을 위해 함께 요청이 된 국립민속박물관의 여도윤 학예사와 함께 삼보섬으로 내려간다. 삼보섬에서의 프로파일링, 수사 과정은 특별히 줄거리 요약을 할 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 중간중간 성호가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서 특정 아이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며 못되게 굴던 남자아이 홍태기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동료처럼 보이지만 종종 이상한 행동이나 대화를 하는 여도윤 학예사와 인터넷 상에서 정의실현친구로 통하는 유정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자, 이들 두 사람과 성호의 과거 어린 시절이 이 작품의 키워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김성호의 직업을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부분에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초반 주간파 사건 조사 시에만 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정작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삼보섬에 내려가서 실종사건을 조사할 때는 그다지 프로파일링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로 만든다고 하니,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이번 작품에서 스토리를 이렇게 풀어나간 이유가 짐작이 되긴 한다. 시리즈의 시작에서 주인공의 배경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건 공식 같은 거니 말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그때 이전의 기억은 거의 잃어버린 주인공에게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만 남아 있다면 그의 과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과거와의 연결 선이 열리고, 드디어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아쉬운 1편 보다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2편이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으니, 아마도 이번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김재희 작가의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수많은 삽질과 뻘짓의 연속, 그게 바로 경찰이었다. 셜록 홈즈 처럼 하나의 사건에 초 집중하여 단시간 안에 명쾌하게 해결하는 수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건 하나마 다 수백 장의 조서를 꾸미고 필요 없는 공문이 숱하게 오가고 나서도 범인을 놓치는 게 바로 현실이었다.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개최한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의 강의를 듣고 이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도 여름추리소설학교에 참석한 적이 있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서 소설을 구성한 부분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가 던지는 화두는 범죄자는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 되는에 대한 논란으로 이는 범죄학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생물학적인 뇌 이상 혹은 유전적인 이유로 타고 태어난다는 <범죄 유전설>과 사회적인 영향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범죄 환경설>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니 양쪽 모두 어느 정도는 추정일 뿐이라고 한다. <범죄 유전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긍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괜찮지만 부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나치가 받아들여 유태인 말살 정책으로 변모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범죄 성향이 애초에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거라면, 처음부터 사이코 패스, 짐승으로 만들어져 태어나는 거라면 어딘지 좀 섬뜩하긴 하다. <범죄 환경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는 성선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 다만, 사회적인 환경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빈곤과 실업 등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이 범죄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로 가면 범죄 방지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들을 사회현상으로 이들이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건지, 분자생물학과 연관 지어 유전적 질환 쪽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는 물론 없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최종태 작가의 <모베상>도 떠올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등장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김재희 작가가 던지는 화두와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두려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지킬과 하이드 처럼, 평범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악의 영역을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