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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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얼마 전에 탕웨이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중국의 천재작가 샤오홍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1930년대 격변의 중국을 배경으로 샤오홍. 루쉰, 딩링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과 사랑, 우정을 나누었던 그녀는 10년의 시간 동안 100여 권의 작품을 남기었고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천재 여류작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까지 닮은 전혜린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한때 전혜린의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끼고 살았던 적이 있던 터라, 샤오홍의 일대기도 매우 궁금했다.

 

가부장적인 집안의 분위기로 어린 시절 억압받은 삶을 살았던 샤오홍은 항상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연로한 할아버지만 그녀를 아꼈을 뿐,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외로운 신세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라면서 점점 죽을 힘을 다해 낡은 악습과 투쟁하고자 한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라 말하는 고모에게, 자신은 운명에 순응하고 싶지 않다며, 여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 동안 남자의 말만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건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한다.

우리는 평생 그렇게 남의 말만 들으면서 살 수 없어요. 항상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가야만 해요. 우리 세대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세대를 이어 용감하게 일어나 그들에게 저항하기만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고모와 이모는 샤오홍이 하는 말을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 역시 영원히 남자의 말에 복종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해낼 수 없는 일이지만 너라도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샤오홍이 몰래 도망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그녀는 집에서 정해준 약혼자와의 혼사를 거부하고 스무 살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하얼빈에서 샤오쥔을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날 당시 샤오홍은 임신한 상태로 남자에게 버림받아 여관방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샤오쥔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들은 혹독한 가난과 추위를 견디며 사랑을 나눈다. 샤오홍의 삶에서 그녀를 거쳐간 많은 남자들이 있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사람은 샤오쥔과 루쉰이다. 그들 모두 그녀를 문학의 길로 안내했다. 샤오쥔의 영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대문호 루쉰에 의해 문단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샤오홍의 연애 생활보다는 그녀의 작품과 글을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 작품은 작가로서의 뜨거웠던 삶보다는 주로 거침없고 자유로운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계속되는 전란 속에서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글을 써야 했던 그녀가 직접 보고 겪었던 것을 작품 속에 그대로 담아내어 진정 성을 더했고, 당대의 대문호 루쉰, 딩링과 같은 중국의 지성인들과 나눈 우정을 나누며 글을 썼다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진다.

나는 사랑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매번 누군가를 사랑하면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다 쏟아 붓지. 마치 이 생애의 모든 힘을 다할 셈으로 말이지.

 

어릴 때부터 자유연애를 갈망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부모님께 받지 못했던 사랑으로 인한 애정 결핍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 충분히 받지 못했기에 사랑에 대한 갈망이 유난히 강했고, 누구라도 그녀에게 조금의 애정이라도 보이면 달려들어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보상을 얻고자 했지만 상대방이 주는 마음이 진심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기에 상처도 많이 받게 된다. 현실에서는 사랑에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작품에서는 진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묘사해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고 하니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샤오홍은 작가로서의 뜨거웠던 삶뿐만 아니라 거침없고 자유로운 사랑으로 1930년대에 볼 수 없었던 신여성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샤오홍은 글을 쓰는 이유가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많은 고생을 이겨내고,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강인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930년대 항일과 혁명이라는 환란의 중국 역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세계를 따뜻하고 담담하게 탐구한 샤오홍, 그녀의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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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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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읽고도 종이들을 붙잡고 읽는 척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엄마에게서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애정을 갈구하는 외롭고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알기는 아는 걸까?

당신은 자신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 믿음과 의심 사이의 그 조그만 간격은 사실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사소한 행동, 말투들이 쌓여 오해를 만들고, 견고하게 쌓인 세월을 넘어 믿음을 깨트린다. 그리고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간다. 외모는 점점 부모를 닮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 모든 상황에 대해 전부 솔직할 수만은 없다. 그러니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 진짜인지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어느 날, 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온다.

"네 엄마가..... 엄마가 좀 안 좋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주 끔찍한 망상에 빠졌다고, 의사 말로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니엘은 자신이 그 동안 뭔가 놓친 게 있는지, 지난 5개월간 엄마 가 보낸 이메일 들을 살펴본다.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 한 통. 다른 내용은 하나도 없이 그저 다니엘의 이름과 느낌표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근사한 농장 생활, 따뜻한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전혀 이상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뭘 간과했을까 불안하면서, 그 동안 농장 방문을 미뤘던 것에 대한 자책감을 느낀다. 다음날 급하게 여권과 티켓을 챙겨 공항으로 가지만, 엄마가 이미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이어,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미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자식이라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무서운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부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두 분 이서 서로를 대하는 모든 방식이 여름을 나면서 바뀐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은 삼백 페이지가 넘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단계별로 말을 해야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쉽사리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다니엘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조바심이 날만큼. 그래서 결국 실제로 스웨덴의 농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다니엘이 직접 조사하는 것은 후반부 잠깐이고, 엄마가 일기, 편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들려주는 것이 작품의 거의 전부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야기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게 진행되고 있다. 다니엘은 아버지, 어머니 어느 한 쪽의 말만 믿을 수 없기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고, 어머니 몰래 아버지와 연락을 한다. 모자간의 대화 장면은 마치 무슨 첩보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주고 있는데, 솔직히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독자인 내 입장에서 듣더라도, 다니엘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망상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의 망상처럼 보이는 집념이 진짜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한 쪽의 입장만을 알려줄 뿐이다. 진실을 파악하려면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듣고, 제3의 인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가족이란 사랑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그 사랑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믿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하는 그것. 믿음에는 그렇게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라는 건데, 사실 어디 우리 삶이 그렇게 되던가 말이다. 누구나 가끔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하다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진실한 믿음은 결국 상대방에게 전해 전해질 것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진실인지, 망상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도록 쓰여졌다.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다니엘이 스웨덴에 직접 가서 부딪히는 진실은 사실 좀 충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갈등의 주요 플롯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차일드 44>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던 톰 롭 스미스의 이번 작품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스릴과 긴장을 만들어내 역시! 라는 감탄사를 뱉어내게 만든다. 게다가 내년에는 <차일드 44>를 잇는 3부작 <시크릿 스피치> <에이전트 6>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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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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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도 있을까? 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많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터넷 사이트에 성형수술을 많이 한 성형괴물을 찾아냈다며 누군가 글을 올리자, 당사자는 그들을 고소하고 경찰서에서 적당한 금액에 합의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돌아가 다시 인터넷 게시판에 모여 자신들을 엿 먹인 성형괴물을 처단하자면서 그녀의 신상을 공개한다. 주소며 지도, 사진까지 첨부된 게시물에는 수십 건의 댓글들이 달린다. 그리고 실제 그녀는 잔인하게 살해되자, 주도적으로 게시판에서 그녀를 비방했던 16살 중학생 소년이 용의자로 검거된다. 대부분의 형사들이 소년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지만, 소년을 심문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성호는 범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후 주간파 게시판에 성호의 신상이 털리고, 용의자였던 소년이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그는 수사에서 제외되고, 진도 삼보섬에서 일어난 여성 세 명 실종사건 관련해서 지원을 하러 내려가게 된다. 삼보섬에서 일어난 연쇄실종사건은 굿에 정통한 무속인, 운림산방의 관리 여직원, 해안가 펜션 여주인이 실종된 사건으로 범인이 보낸 편지까지 도착했지만, 지문감식, DNA 채취까지 했으나 진전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가장 힘든 점은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가 저지른 범죄를 일에서 백까지 머릿속으로 재현해보고 나서 왜 그렇게 했는지를 곱씹어보아야 했다. 범인이 잡힌 후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같은 범인의 개인 사에 공감하면서 진술을 이끌어내야 했다. 범죄와 범인에게 가장 근접한 그림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성호는 필적 감정을 위해 함께 요청이 된 국립민속박물관의 여도윤 학예사와 함께 삼보섬으로 내려간다. 삼보섬에서의 프로파일링, 수사 과정은 특별히 줄거리 요약을 할 만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무난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그 중간중간 성호가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서 특정 아이를 왕따 시키고, 괴롭히며 못되게 굴던 남자아이 홍태기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동료처럼 보이지만 종종 이상한 행동이나 대화를 하는 여도윤 학예사와 인터넷 상에서 정의실현친구로 통하는 유정열이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된다. , 이들 두 사람과 성호의 과거 어린 시절이 이 작품의 키워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김성호의 직업을 프로파일러로 설정한 부분에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초반 주간파 사건 조사 시에만 직업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정작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삼보섬에 내려가서 실종사건을 조사할 때는 그다지 프로파일링에 대한 것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로 만든다고 하니, 그 첫 번째 이야기인 이번 작품에서 스토리를 이렇게 풀어나간 이유가 짐작이 되긴 한다. 시리즈의 시작에서 주인공의 배경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건 공식 같은 거니 말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그때 이전의 기억은 거의 잃어버린 주인공에게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만 남아 있다면 그의 과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과거와의 연결 선이 열리고, 드디어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소 아쉬운 1편 보다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2편이 더 재미있을 수밖에 없으니, 아마도 이번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김재희 작가의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수많은 삽질과 뻘짓의 연속, 그게 바로 경찰이었다. 셜록 홈즈 처럼 하나의 사건에 초 집중하여 단시간 안에 명쾌하게 해결하는 수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건 하나마 다 수백 장의 조서를 꾸미고 필요 없는 공문이 숱하게 오가고 나서도 범인을 놓치는 게 바로 현실이었다.

작가는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개최한 여름추리소설학교에서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의 강의를 듣고 이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나도 여름추리소설학교에 참석한 적이 있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서 소설을 구성한 부분에 대해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가 던지는 화두는 범죄자는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 되는에 대한 논란으로 이는 범죄학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생물학적인 뇌 이상 혹은 유전적인 이유로 타고 태어난다는 <범죄 유전설>과 사회적인 영향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범죄 환경설>은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니 양쪽 모두 어느 정도는 추정일 뿐이라고 한다. <범죄 유전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긍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괜찮지만 부정적인 유전자 번식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나치가 받아들여 유태인 말살 정책으로 변모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범죄 성향이 애초에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거라면, 처음부터 사이코 패스, 짐승으로 만들어져 태어나는 거라면 어딘지 좀 섬뜩하긴 하다. <범죄 환경설>을 지지하는 쪽에선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는 성선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 다만, 사회적인 환경이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빈곤과 실업 등 사회적인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이 범죄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로 가면 범죄 방지를 위해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들을 사회현상으로 이들이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건지, 분자생물학과 연관 지어 유전적 질환 쪽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는 물론 없다. 그래서 추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최종태 작가의 <모베상>도 떠올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등장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김재희 작가가 던지는 화두와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두려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지킬과 하이드 처럼, 평범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악의 영역을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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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it Rock 1 -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개정판 Paint it Rock 1
남무성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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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평론가이자 로큰롤 키드인 남무성 저자의 <페인트 잇 록> 3부작이 완간되었다. 1권편 기존 출간 작이 재 출간되었고, 2편과 3편은 네이버뮤지에 연제한 웹툰을 토대로 한 것이다. 추천사 중에 "만약 실제로 (잭 블랙 주연 영화) <스쿨 오브 록>이 세워진다면, <페인트 잇 록>은 역사 과목 1종 교과서로 채택돼야 마땅하다"는 문구는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록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의 이야기가 웹툰으로 전개되어 록 초보자들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딥 퍼플, , 메탈리카, 너바나, 라디오헤드 등등.. 록 스타들의 등장은 마니아들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주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록음악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록의 역사와 장르에 대한 이야기라 좀 지루하거나, 못알아듣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이론서처럼 풀어가기는커녕 거침없는 풍자로 직구를 날려주어 록 음악 초보인 내가 읽기에도 편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만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록의 역사라서 더욱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에 자주 거론되는 유명한 뮤지션 들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록 음악 장르를 이해하는데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만화 특유의 재미있는 대사들과 유머들 또한 흥미진진한데, 실존 인물들의 자서전과 뉴스페이퍼, 인터뷰 등의 자료를 최대한 활용한 거라고 하니 웃음 속에 뼈가 있는 셈이다. 전설적인 뮤지션 들의 말풍선은 그들을 친근하게 느껴지게도 만들어주고, 록이라는 어려운 음악 장르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전체 스토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적 변화 속에서 잉태된 록앤롤(Rock&Roll) 60~70년대를 거쳐 록(Rock)으로 성장하고, 전 세계인의 대중음악으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화치고는 글이 지나치게 많긴 하지만 록스타들의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워서인지,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캐리커쳐로 표현된 과거 뮤지션 들이 등장해 당시의 일들을 재현하고 그 사이사이 관련 인터뷰 컷이 삽입되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킥킥대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즈음엔 록이란 것이 무엇인지 그 정신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록의 역사가 이렇게 흘러왔구나 싶은 깨달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책 한번 읽으면 나도 어디 가서 록 음악에 대해 아는 척 좀 할 수 있겠구나 싶다고 하면 오버일까, 싶을 만큼 자신감도 생기고 말이다. 재즈 뮤지션으로 알았던 척 베리가 로큰콜의 기초를 확립하고 이후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팝 음악의 일인자라고만 생각했던 비틀즈 또한 록 음악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되었으니 나같은 초짜에겐 이 책 자체가 신세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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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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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매일 같이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그 순간에 그곳에 있던 나의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녀가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전화해서 재촉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시도 잊을 수가 없는 그 생각과 감정들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이들은 부재의 무게를 이겨내고 살아가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그 순간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겠지만, 시간은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고 우리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조회시간, 지각한 기형이의 너스레에 반 친구들 모두 웃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집에 가봐라.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 살아왔던 태산이는 이제 앞길이 막막하다. 내리막길에 세워둔 트럭의 안전브레이크가 풀려 하필 그곳을 지나가던 아빠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렇다 할 친척도 없고, 다른 형제도 없었던 태산이었기에 아빠가 운영하던 장사 쌀집과 같이 문을 연 떡집 아저씨와 단짝 친구인 기형이밖에 없었다. 아빠가 없는 동네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고, 혼자서는 살 수 없을 거라는 상실감과 공포에 시달리던 어느 날, 우연히 상자 속에서 사진 한 장과 아빠의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해리 미용실이 찍힌 사진과 "태산아. 꼭 여기를 찾아가라."라는 아빠의 남겨진 유언 같은 메세지. 태산은 해리 미용실을 찾아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죽은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는 마음,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 그래서 십육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간 속에서 여전히 살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알 거 같아요. 하지만 그걸 움켜잡고 있지 않아도 우리에겐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거예요.”

처음에는 청소년 소설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출생의 비밀, 숨겨진 가족사인가 보다 싶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그런 플롯이 등장해서 실망했지만, 다행인 건 자극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담백하고 순수하게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이지만, 충분히 어른스럽고 성숙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버지가 남긴 유언 속의 해리 미용실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재미는 뜻밖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남겨진 삶에 대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태산과 과거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해리 미용실 주인 남자의 관계는 우연히 참석한  손으로 말해요동아리 엠티에서 만난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실마리를 풀게 된다. 아무래도 청소년 소설이다 보니 단순한 구조와 우연으로 인한 사건 해결로 인해 다소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대신 아빠대신 태산을 보살펴주는 떡집 아저씨, 아줌마와 갑자기 나타난 오촌 아저씨, 그리고 태산을 아들처럼 걱정하는 담임선생님과 엉뚱하지만 속깊은 친구 기형이 같은 유쾌하고, 훈훈한 캐릭터들이 작품 전체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도 9.11 여객기 테러로 아빠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어느 날 꽃병 속에서 발견하게 된 봉투 속의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아 6개월에 걸쳐서 뉴욕을 헤매 다닌다. 소년은 봉투 뒤에 적힌 블랙이라는 글자 하나에 의지에 뉴욕에 거주하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을 다 찾아가서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기 위해,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의 태산이도 마찬가지로 아빠를 잃고 사진 하나에 의지에 부산에 있는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 자신의 아빠를 아느냐고 묻는데, 문득 오스카가 떠올랐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승무원이었던 친구의 항공기 사고도 역시 9.11 여객기 테러를 자연스레 연상시켰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들이 거기서 왜 죽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남겨진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혼자 추측하고, 상상하고, 지레짐작으로 자책하며 살아남은 자신을 탓하고, 슬픔에 잠기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남겨진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소박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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