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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아이 1,2 / 덴도 아라타/ 현대문학

 

<영원의 아이>, <애도하는 사람>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덴도 아라타의 작품이다.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과 현대인의 정신적 어둠을 주로 다루어 온 작가라서 처절하고, 가혹하지만 냉혹하게 그려내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작가 스스로.. 이번 작품부터 ‘작가로서의 중기中期의 시작’이라고 명명했다고 하니, 더욱 궁금한 신작이다.

 

 

 

 

불로의 인형 / 장용민 / 엘릭시르

 

작년 <궁극의 아이>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한중일 3국에 걸친 역사와 불로초 전설을 토대로 한 팩션 스릴러라 더욱 스케일이 커진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을 것 같다.

 

인형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나고, 한국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펼치는 서스펜스와 스릴의 향연. 이천 년에 걸친 인형과 불로초의 비밀, 3국의 역사에 얽힌 사연들이 벼락같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작품 설명만 보아도, 장용민이 얼마나 이야기꾼인지 짐작이 간다.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 / arte(아르테)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 코맥 매카시의 계승자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데이비드 밴의 첫 소설이다. 강렬한 문체, 코맥 메카시의 <더 로드>를 연상시키는 삶과의 무서운 투쟁, 한 작품에서 다양하게 시도한 문학적 실험, 글쓰기의 무의식과 문학의 치유력을 믿는 작가의 강한 신념이 고스란히 배어난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궁금해진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오롯이 담긴 <자살의 전설>은 2007년 그레이스 팔리상 수상을 시작으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비롯해 전 세계 12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11개국에서 '올해의 책'에 40회 선정됐다. 프랑스에서만 25만 부가 판매되는 등 유럽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제목만큼이나 전설적인 데뷔작인 셈이다.

 

 

사랑에 난폭 / 요시다 슈이치 / 은행나무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장편소설로 부부관계, 사랑, 결혼,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불륜'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므로 얼마전에 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신간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재미도 있겠다. 요시다 슈이치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 묘한 긴장감과 미스터리한 분위기, 스미듯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아마도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다.

 

 

 

 

 

 

그림자 / 카린 지에벨 / 밝은세상

 

프랑스 심리스릴러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카린 지에벨의 대표작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에는 항상 관심이 간다.

 

프랑스 독자들은 전통적으로 스릴러에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적 색채를 가미한 로망 폴리시에Roman Policier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로망 폴리시에는 사변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고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 구조로 되어 있는 작품인데, 카린 지에벨은 그 중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작가라고 하니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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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4-09-0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이라는 작가도 처음 보네요. 전 이상하게 '자살'이라는 단어에 끌려요.. 그렇다고 뭐 음침하게 생각하실 건 없고요, 제가 알고있는 지인은 말했죠. 문학을 읽을 수록 선택할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피오나 2014-09-02 21:5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인터뷰를 읽어보니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더라구요. 문학을 읽을 수록 선택할 것은 '자살'밖에 없다는 얘기는 어딘가.. 쓸쓸하네요. ^^;;
 
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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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무 실망하고 화가 나서 화조차 내지 못하던 사람의 눈빛과 태도를 보았다. 나는 엄마가 평생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걸, 엄마보다 더 아버지를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화를 삭이느라 애쓰는 엄마의 등덜미에서 보고 한동안 숙연했다.

그랬다. 엄마는 미움도 사랑이며 어떤 삶이든 한 덩어리의 사랑이라고... 당신의 슬픔과 고독과 소외, 그리고 미움 뒤에 숨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수줍게 알려주었던 게 아닐까. 

                                                                                     -미움 뒤에 숨다

아빠의 장례식을 계기로 딸과 엄마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미움 뒤에 숨다>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엄마를 학대하며 제왕같이 살았던 아빠. 늘 화를 내는 아빠와 매를 맞는 엄마를 보면서 살아왔던 자식들은 엄마의 참혹함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엄마의 자식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정신적 유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아빠가 그들에게서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엄마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자식들은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미워했고, 없어지기를 바랬고, 죽기를 바랬었다. 소설가인 화자는 그런 아빠를 오래도록 잊고 살았고, 무려 6년 만에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의 양면과도 같다고. 그러니 미움과 사랑이라는 개념은 어느 한 쪽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게 아닐까.

소설가 아내의 삶의 방식은 그와 너무도 달랐다. 어린 자식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새우처럼 잠이 든 모습을 보는 건 다반사였다. 소설가의 관심은 온통 사회와 다른 인생들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면 늘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고 면피가 되는 건 아니었다. 생활은 독서의 시간에 있지 않았다.

"엄마가 참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가 정이라도 붙일까봐 늘 긴장해서 사람을 밀어내고. 이해하기 힘든 직업인데..."

아빠가 독백처럼 말했다. 모두들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화가 아빠의 한쪽 어깨에 몸을 기댔다.

"엄마도 참 힘들었을 거다. 사랑해야 할 피붙이를 두고.... 다른 삶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 유명할진 몰라도 자신은 늘 춥고 불안하고 슬펐을 거다."

아빠가 느리게 말했다. 정화도 정애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사위들은 고개 숙인 채 들었다.

"사람이 죽어야 이해를 하게 되니 참 야속하다만 나도 니들 엄마 많이 괴롭힌 사람이다. 모욕하고.... 모욕했다."

아빠가 무겁게 말했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저마다 무심하거나 생각에 잠겼다.

                                                                                         -고독의 해자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에서는 소설가인 엄마가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수도, 혹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여성 소설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고독의 해자>에서 엄마는 쓰던 소설이 끝나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바뀌어 맛있는 것도 해주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지만, 그런 날들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를 다니거나, 엄마의 공부방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 상태로 글을 쓰는 일이 더 많았다. 자식들은 어린 날의 그 마음에서 도무지 나이를 먹지 못했다고 당시의 엄마에 대해 서운함을 잔뜩 가지고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외칠 만큼의 상처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어느 덧 두 딸 모두 성인이 되고, 엄마의 일흔 다섯 번째 생일을 위해 따로 적금을 들고 오래 전부터 선물도 준비하고 편지도 쓰면서 자매들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엄마는 일주일 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다. 장례식을 위해 자식들이 모이고, 이미 30년 가까이 다른 가정을 꾸려 살고 있던 아빠도 모인다. 아빠가 소설가인 그녀를 아내로 선택할 때는 소설가라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 문학을 하는 여자는 적어도 속물은 아닐 테고, 여리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여자일 테니 라면서. 하지만 결혼을 한 뒤, 아내는 곁에 있어도, 웃어도 속마음은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구와도 사무적이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맺었고. 10년 쯤 지날 때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참을 수 없는 원인이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죽었다는 부고를 듣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미워하고 괴롭히고 경멸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말이다.

대체 소설가란 무엇일까. 자신이 살아내지 않은 타인의 인생을 쓰는 일은 일상적인 생활마저 포기하고, 혼자만의 고독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 어가 벽을 둘러야만 하는 것일까.

사진에는, 어디에도 불행은 없었다. 불가피한 불행, 그러니까 장례식 같은 것 말고는 불행을 사진으로 남기진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진과 사진 사이에 든 시간들, 생활들, 삶의 갈피를 기억할 수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여자와 남자가 아내와 남편으로 역할이 정해진 뒤에 관습적으로 제도적으로 균형이 흔들리던 것, 그것으로부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던 것, 제도화된 자아를 잃지 않으려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남성성에 절망하던 것까지. 행복했던 순간을 찍은 사진들에 잡히지 않는 삶에는 그런 것들이 찐득하게 깔려 있었다. 나만 아는 것. 나만 증언할 수 있는 것.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들. 그래서 부득불, 이 사진이 소중했다.                                                          -이별은 나의 것

 

이 소설집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저마다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가슴에서 바람소리가 들린다거나,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공허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힐링을 하게 도와줄 치유제가 타인이 될 수도, 여행이 될 수도,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그것을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찾기를 원하는 것 같다. 자기치유를 통해 결국에는 상처와 아픔과 슬픔, 그리움들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구원되기를 말이다. 어쩌면 인생은 일장춘몽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못견디게 괴롭던 상황도, 미치도록 아팠던 이별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도 결국엔 지나가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 슬프거나 아픈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아프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언젠가는 결국 이해하게 될 거야. 지금 많이 어두울수록, 나중에는 그만큼 더 환한 날이 올 거야.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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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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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단편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모파상 단편모음집이다. 책에 실린 단편이 무려 63편이나 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작품이다. 1880 6명의 젊은 작가가 쓴 단편모음집 <메당 야화> <비곗덩어리>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 작품집의 첫 번째에 수록되어 있다. 이후 모파상은 약 300편의 단편소설과 기행문, 시집, 장편 소설 등을 발표했는데, <벨아미> <여자의 일생>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파상의 진가는 단편에서 더욱 빛난다. 특히 이 모든 것들이 대부분 10여 년에 걸쳐서 집필된 거라 짧은 시기에 엄청난 양의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아. 그날부터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조심해, 쥘리. 너도 조심해. 우리 여자들이 연약하다는 걸, 너무나 쉽게 굴복한다는 걸,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걸 너도 알아야 해! 아주 하찮은 일로도 마음이 약해지고, 갑작스럽게 감상적인 기분이 찾아들 수 있어. 손을 뻗어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은, 어느 순간이 오면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런 욕망 말이야.

                                                                                                               -'달빛'중에서-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는 너무도 분별이 넘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서 종종 차갑게만 느껴지게 행동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부인이 "여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나 좀 안아 줄래요?" 그러자 남편은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를 띠며 "경치가 마음에 드는 것이 포옹을 할 이유가 되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그녀는 젊은 변호사와 사랑에 빠지고, 자신에게 애인이 생겼음을 동생에게 고백한다. 언니의 고백에 동생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거라고 말한다. 외롭고, 상처받은 마음에 달빛의 분위기에 취해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그러니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다고 말이다. 어쩜 이렇게 짧은 이야기 속에 단순하고도 명쾌한 삶의 진실을 숨겨 놓았을까. 이런 것이 바로 단편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왜냐고? ! 이 친구야, 생각 좀 해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11년 동안 임신만 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지옥 같았겠나! 그 젊음, 아름다움, 성공에 대한 희망, 빛나는 삶에 대한 시적 이상을 모두 생식의 법칙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닌가! 멀쩡한 여자를 아기 낳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고약한 생식의 법칙 말이야!

                                                                                              -'쓸모없는 아름다움' 중에서-

 

백작부부가 마차를 타고 산책을 나가면서 나누는 대화는 매우 충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너무도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백작 부인은 "지난 11년 동안 당신이 내게 부과한 모성이라는 가증스러운 형벌의 희생양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제는 그저 사교계의 여자로, 다른 여자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막내 아이를 낳고 석 달밖에 안 됐는데 여전히 아름답고, 미모가 망가지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또 임신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백작에게 말이다. 그녀는 겨우 서른 살인데 결혼 생활 11년 동안, 자식을 일곱이나 낳았다. 백작은 내가 당신의 주인이니,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하라고 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꽉 막힌 남자이다. 성 잘 내고 온갖 난폭한 짓을 할 수 있는 독재자 남편에게 선언하는 백작 부인 뿐만 아니라, 오페라 극장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두 친구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통쾌함이 엿보인다. 보석 같고 진주 같은 부인이 백작에게 후손을 만들어 주기 위해 11년이라는 세월을 흘려 보낸 것이 고약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짧은 스토리의 결말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끝나지만,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는 작품집이라 읽기 전에는 그 엄청난 분량에 난감하지만, 굉장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긴 했다. 모파상의 다양한 단편은 소재와 주제에 따라서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 파리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도시와 대조적인 시골 생활의 삶을 다룬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다룬 이야기로 분류된다. 모파상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묘비명에인생의 온갖 것들을 탐했으나 그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의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욕심도 많고, 매우 솔직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매력을 발견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모파상의 작품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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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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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서른한 개 다리 가운데 가장 투신자가 많아 한때 '자살대교'라고 불리기도 했던 마포대교 위, 누가 봐도 저 사람 저러다 투신자살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한 남자가 있다. 나이는 쉰 살이 넘어 보였으나 막 산골에서 걸어 내려온 소년 같은 인상의 한 남자.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다. 투명인간이라니? 그는 어떻게 투명인간이 된 걸까? 이 작품은 김만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큰 머리에 비해 가느다란 몸통에 유난히 길어 보이는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나 유독 몸이 허약했던 만수는 말도 늦고 매사에 이해가 더디지만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하다. 재미있는 것은 숱하게 화자가 바뀌면서 여러 명의 등장 인물들이 등장해 만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만수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타인의 입으로만 들려지는 한 인간의 삶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퍼즐처럼 한 조각씩 맞춰진다. 그의 가족을 비롯해 친구, 동료 등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김만수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챕터가 따로 나뉘어 진 것도 아니고, 인물 별로 화자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처음에는 스토리를 따라잡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만수야, 나는 점쟁이들을 믿지 않고 관상을 보지도 못한다만 그래도 네 얼굴이 유난히 크고 훤해서 멀리서도 잘 보이기는 한다는 건 알겠다. 그러니 너는 웃어라. 소문만복해라, 웃는 집에 만복이 들어오고 일소일소 일노일로라, 한번 웃을 때마다 하루 젊어지고 한번 화낼 때마다 하루씩 늙어지나니 네가 웃음만 잃지 않으면 평생 없는 복도 받아가며 살리라.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 없느니라.

 

타고난 영특함으로 집안의 희망이었던 큰형 백수, 어리숙하고 바보 같았던 둘째 만수, 영리하고 악착같았던 셋째 석수, 큰누나 금희, 여동생 명희, 막내 옥희까지 육남매이다. 농사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와 누이들, 늘 만수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동생.. 만수의 가족들은 어려웠던 그 시절 사람 냄새 나는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던 시절의 스토리는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도 낯선 시절이지만, 성석제 작가 특유의 입담은 마치 영상을 보고 있는 듯 생생하게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준다.

 

명석함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자상한 큰형은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고엽제로 인해 목숨을 잃고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면서부터 어려운 일들이 이들 가족에게 시련이 닥친다. 변두리 단칸방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누이들, 연탄가스 중독과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에다 상경 이후 무능력한 술꾼으로 전락한 아버지를 대신해 만수는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

 

만수는 관리직으로는 특이하게 생산직들하고 사이가 좋았다. 나도 인상 좋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만수 역시 늘 웃는 얼굴인 게 사람 좋은 하회탈을 연상케 했다. 그런 점 때문에 노무부 창립 멤버가 되면서 사년제 대졸 직원보다 빨리 승진해 과장대리가 되었을 것이다. 승진을 하고도 전처럼 여전히 생산직 사원들하고 형, 동생하며 지냈다. 구내식당에서 생산직들하고 섞여서 같이 밥을 먹고 식사 뒤에 족구도 같이 했다. 공장장도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만수는 뭐든지 한가지를 열심히, 성실하게 하면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사장마저 공장을 버려도 마지막까지 공장을 지키려 하고, 답답해 보일 만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사장대신 떠안게 된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 끝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매몰찬 외면뿐이었다.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 좋던 그가, 가족을 위해서 모든 걸 끝없이 희생했던 그가,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일하며 잠은 십 년 동안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자본 날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던 그가, 제대로 된 밥상을 마주하는 경우는 일년에 몇 차례가 될까 말까 한 그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까.

 

가끔 살다 보면 팍팍한 세상살이에 투명인간이라도 되고 싶은 경우가 생긴다. 보통은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을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저 끔직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사라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극중에서 만수는 입고 있는 옷 밖으로 드러나는 신체의 일부분, 그러니까 손이나 목이나 얼굴이나 머리카락 등은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므로 그것에 과학적인 근거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저 스스로를 투명하다고 믿는 것뿐일 수도 있다. 죽는 게 낫겠다, 혹은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서 새로운 생을 개척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을 때, 혹은 다리 위에서 투신을 했을 때 투명인간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는 게 아무리 끔찍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죽는 것 또한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생을 포기하지는 말자. 만수의 마지막 말,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 한 적이 없어요."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한번만 더 가보자. 한번만 더 만나고 한번만 더 맛보고 한번만 더 듣고 한번만 더 안아보자

그렇게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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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전자 전쟁 -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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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 신입생인 나는 옥스퍼드 대학의 춥고 칙칙한 교실에 앉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에릭 스빈헤다우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교수가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불쑥 들어서더니 뚜렷한 벨기에 억양으로 물었다. <이 커피 보이나?> 물론 <당연히 보입니다>라고 대답해야 마땅하겠지만 의문이 들었다. <무슨 속셈이지?>

하지만 교수의 다음 말은 경제학 수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커피는 보이지만, 콰테말라 농장도 보이나? 유럽연합 관세는? 커피 노동자들의 급여 명세서는 어디 있지?> 교수의 <속셈>은 분명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람과 법률, 취합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다들 제 앞가림만 하려 들고 이윤이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데, 물론 돈 버는 일 자체가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그 돈을 우상으로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을 착취하지 말고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자신을 고립시키지 말고 섬이 되지 말라.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라고 말이다. <문화 유전자 전쟁>이라는 제목 뒤에 붙은 소제목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에서 보여지듯이 이 책은 문화 유전자 전쟁의 최전선인 경제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경제학과 행복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래서 돈이 곧 전부이자 주인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경오염과 이상 기후, 끊임없는 소음과 정서적 고문 속에서 하루 3,000개의 광고 메시지가 우리 뇌에 자신도 모르게 주입되고 있는 세상이다. 유명 상업 광고의 패러디 광고로 유명한 '애드버스터스'지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칼레 라슨은 이 책에서 경제학을 점령하자고 제안한다.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도전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조지프 스티글리츠, 조지 애컬로프, 만프레드 막스네프, 허먼 데일리, 데이비드 오럴 같은 여러 경제학자들의 글과 어우러진 이 책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주류 경제학의 사상과 개념을 낯설게 드러내며,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생명과 진보,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경제학은 극대화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한계 안에서 효용을 극대화하고 성장을 극대화하고 소득을 극대화하고 생산을 극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자본가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고삐 풀린 극대화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대로입니다. 지구는 규제를 벗어난 이 모든 경제 활동을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는 심각한 생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극대화만을 추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최소한 극대화에 조건을 내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경제학을 처음부터 다시 사고해야 합니다.

인류의 엄청난 소비 문화 덕분에 지구의 환경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도, 누군가는 이렇게 문화 유전자 전쟁을 펼치려고 하고, 누군가는 라떼 거품이나 쪽쪽 빨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지 말이다. 특히나 우리의 소비가 GDP에 기여하는 사례를 매우 놀랍게도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준다.

 막힌 도로에서 휘발유를 허비하고 배기가스에 콜록거리다 결국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교통 체증은 GDP에 기여한 셈이 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박살 나고 보험료가 인상되고 거기다 사고 때문에 심각한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면 GDP는 훨씬 증가할 것이다. 부상을 입어서 몇 주 동안 입원해야 한다면 GDP는 더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날 아침에 값비싼 이혼 수속을 밟고 저녁에 집이 화재로 내려앉아 법률 비용이 발생하고 보험금을 받고 가재도구를 새로 샀다면 GDP 관점에서는 최고의 하루일 것이다.

대기 오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구급차, 감옥, 벌목으로 인한 자연의 유실, 도시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경찰차, 텍사스 저격수의 소총, 연쇄 살인마의 나이프, 폭력을 조장하는 티비 프로그램 모두 GNP에 합산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 시의 아름다움, 공직자의 청렴, 재치와 용기, 공감과 애국심 등은 하나도 GNP에 합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보다 GNP GDP가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많은 것이 합산되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많은 것이 제외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말을 걸며 모든 것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흑인 아이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세계 인구 성장그래프가 나오고, 다음 페이지는 오늘 돈 좀 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너무 멋지다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의 캐리커처와 함께 기울기가 급해지는 [종의 소멸] 그래프가 등장하는 식이다. 이는 20년간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표방해 온 [애드버스터스]지가 즐겨 써온 전략이라고 한다. 현란하게 펼쳐지는 도박적인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경제적 사유 방식에 균열을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책이고,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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