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계학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소웨토에서 태어난 까막눈이 여자가 자라나서,

어느 날 감자 트럭에서 스웨덴 국왕과 수상을 만나게 될 확률은

45,766,212,810분의 1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까막눈이 여자의 계산에 의한 것이다.

 

다섯 살 때부터 공동변소에서 똥을 치우며 생계를 이어야 했던 놈베코.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잉태된 지 20분 뒤에 사라져버렸고, 현실을 잊어버리려 환각제와 알코올에 의존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일찍 떠나버린다. 공동변소의 관리소장이 해고되면서 어린 그녀가 그 자리를 이어가게 되지만, 까막눈이인 주제에 수에 대한 감각으로 셈을 할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났기에 결국 위생 국 직원의 눈에 거슬리게 된다. 문학애호가인 옆집 호색한과 라디오를 통해 글과 말을 깨우친 놈베코는 강도에게 습격 당해 죽은 호색한의 집에서 수백만 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해 그걸로 빈민촌을 탈출하고야 만다. 그러나 놈베코의 열다섯 번째 생일 다음 날, 그녀가 길을 떠난 지 약 여섯 시간 만에 엔지니어의 차에 치이고 만다.  엔지니어는 브랜디를 잔뜩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했지만, 법정은 그녀가 백인의 차에 치인 죄를 범했기에 운전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끼친 데에 대한 벌금, 훼손된 차체에 대한 수리비를 지불하라는 것으로 판결이 떨어진다. 놈베코에게 다이아몬드는 있었으나 그것은 훔친 것이었으므로 자칫 절도 혐의로 투옥될 수도 있었기에, 그녀에겐 수리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엔지니어가 책임자로 있는 이중 철책으로 둘러싸인 비밀 핵무기 연구소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된다

 

 

이렇게나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이야기에 할애된 분량은 겨우 이 책의 15프로 정도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그러니까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해서 까막눈이에 공동변소에서 똥을 치우던 어린 소녀가, 지금은 연구소에서 청소부로 7 3개월 20일을 죄값으로 일해야 하는 처지인 그녀가, 스웨덴 국왕과 수상을 만나게 되는 걸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상상이 안 될 정도의 상황인데, 이야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굴러간다. 이 스토리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완전히 벗어나면서 전개가 되는데, 기발한 상상력은 우리를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 페이지를 쓱쓱 넘어가게 만들어준다. 킬킬대며 웃다가, 다음 상황이 궁금해서 조바심을 내다가 보면 어느 샌가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는 신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삶에서 밝은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놈베코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저 사기꾼 판 데르 베스타위전이 얼마나 더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재미난 일이 아니겠는가?

따지고 보면 그녀의 현재 삶은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책을 읽고, 복도를 몇 군데 청소하고, 재떨이를 몇 개 비우고, 연구팀의 분석 자료를 읽고, 또 엔지니어가 이해할 수 있게끔 쉬운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그녀의 일과였다.

 

솔직히 공동변소의 우울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자마자 술에 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이고, 손해배상을 받아보 모자랄 판에 억울한 판결을 받고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청소부 일을 해야 죄값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열다섯 놈베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놈베코는 단순히 영리한 것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긍정적인 캐릭터였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의 삶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쑥쑥 흘러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끔은 당황스러울 만큼 그 어떤 것도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놈베코 주변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이한 인물들이 잔뜩 모여 있다. 남아공 최고의 핵 전문가이지만 정작 간단한 수식조차 모를 만큼 멍청했던 술꾼, 둘 중 하나만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쌍둥이 형제 홀예르 1, 홀예르 2, CIA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불안 증에 걸린 미국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짝퉁 사기〉를 일삼는 중국 여자들, 세상 모든 일에 분통을 터뜨리는 소녀, 자신의 태생은 백작부인이라는 환상에 젖어 살아온 감자 농사꾼 등등.. 이들은 핵폭탄을 매개로 서로 얽히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신분적으로 가장 낮은 존재인 까막눈이 흑인 소녀가 있다. 이들의 균형을 맞춰가며, 세계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연구소에서 청소를 하는 놈베코가 핵폭탄 개발에 관여하게 된 계기도 매우 재미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핵폭탄 하나를 그녀가 떠안게 된 상황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사연이 숨어 있다. 물론 그건 직접 책을 읽어봐야만 한다.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급변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요절복통 스토리를 선보였던 것만큼이나, 이번 작품에서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니 말이다. 솔직히 전작보다 이번 작품이 쬐끔 더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놈베코는 최근에 만난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멋진 여성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자신 앞에 연이어 나타나는 불행한 사건들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고, 어쩌면 그리 지혜롭게 헤쳐나가는지 독자들이 그 복잡한 상황에 우울해할 틈도 없이 어려움을 타개해나가는 모습은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세상의 진정한 아이러니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틈에서 어수룩해 보이고, 모자라 보이지만, 실제로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창비

 

찰스 디킨스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 물론 여러 출판사의 버전으로 읽었지만, 창비세계문학으로 표지를 바꿔입었으니 당연히 다시 읽고 싶어지는 욕구!!

 

'창비세계문학' 34권. '단행본 역사상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가진 찰스 디킨스 소설. 찰스 디킨스는 똘스또이, 도스또옙스끼, 버나드 쇼우, 조지 오웰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로부터 '19세기 최고의 문호',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찬사와 존경을 받았으며, 당대 대중으로부터도 유례없는 열렬한 인기를 누린 작가이다

 

 

 

 

백조도둑/엘리자베스 코스토바/알에이치코리아(RHK)

 

<히스토리언>에 이어 두번째 출간되는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작품!!

 

남부러울 것 없는 재능과 명성의 중년 화가가 공격한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 '레다'.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해 인간 여자 레다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순간을 묘사한 이 그림은 왜 한 화가를 미치광이로 만들었을까?
올리버를 치료하기 위해 나선 정신과 의사 말로우가 올리버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면서 시작되는 <백조 도둑>은 이러한 미스터리적 설정에서 출발하여 올리버와 말로우, 그리고 올리버를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심리소설로 나아가다가 19세기말 인상주의 미술 세계에 대한 묘사까지 발전하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온다 리쿠/노블마인

 

열대야가 잠못이루게 하고, 어정쩡한 장마가 불쾌지수를 높여주는 이 계절, 서늘하고 오싹하고, 미스터리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 온다 리쿠의 신작!!

 

다양한 장르의 미스터리를 보여주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 작가 온다 리쿠의 장편소설. 인간이 자신이 가진 최고의 공포를 숨겨 놓는 '무의식과 꿈'을 바탕으로, 신선한 공포의 세계를 보여준다. 온다 리쿠만의 특기로 평가 받는 '아름다운 공포'의 극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146회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고,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민음사

 

밀란 쿤데라의 신작 장편소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무조건 읽고 싶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첫 소설 <농담>에서 시작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 세계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쿤데라 문학의 정점." -「퍼블리셔스 위클리」)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자비/토니 모리슨/문학동네

 

흑인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인종과 성의 문제에 대해 문학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작가, 그녀의 신작 궁금하다.

 

1680년대 아메리카 대륙.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신분제도도 사회제도도 없는 신천지. 흑인과 백인이 대농장에서 함께 노동을 하고, 인종을 불문하고 노예가 될 수 있었던, 아직 인종주의가 발현되기 이전의 시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살아 있는 미국문학의 대모 토니 모리슨이 2008년 발표한 장편소설 <자비>는 바로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진짜 메이저리그다
제이슨 켄달.리 저지 지음, 이창섭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회초 1사 만루의 상황에서 중심 타선인 5번타자, 6번타자가 모두 삼진 아웃 당한다. 그렇게 득점을 실패하고 이어진 1회말, 상대팀은 쓰리런 홈런과 더불어 폭풍의 7득점. 스코어 0:7. 경기는 이제 시작인데 7점차라는 점수는 어쩐지 응원하는 기분을 사그라 들게 만들고 만다. 혹시나 기대했던 선발 투수에 대한 역시 나의 실망감. 경기를 관람하는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펼쳐 들고 만다. 간간히 티비에서 들려오는 중계 소리만 들으며 책 속으로 빠져드는데, 3회부터 조금씩 따라붙던 점수가 결국 5회에 이르러서는 역전이 되고 만다. 맙소사. 결국 이날 경기의 스코어는 0:7에서 10:8이 되고 만다. 이런 게 바로 야구의 묘미다. 예를 들어 수비 실책 남발에, 선발 투수의 제구 난조에, 상대팀의 운 좋은 안타까지 이어지면서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야구는 9회말 끝까지 가보기전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진짜는 9회말 투아웃부터 라는 얘기처럼, 실제 다 잡은 경기를 9회말 투아웃에서 끝내기로 지는 경우도, 마무리투수가 블론 세이브를 하고 연장으로 넘어갔지만 다시 이기거나, 결국 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도 야구 경기에 있어서만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감탄사가 되는 것이다.

 

야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야구장엔 내가 몰랐던 경기 속의 경기가 존재했다. 난 항상 코앞에서 야구를 지켜봤지만 누군가 알려준 후에야 경기장에서 진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 예전엔 야구가 느리고 때때로 지루한 경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야구에 대해 배운 이후론 경기장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펼쳐져서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가 됐다. 이젠 주목해야 할 것들이 수십 가지로 늘어났고, 단 한 번의 타격도 여러 개의 줄거리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결투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야구 팬이자 기자인 리 저지가 선수의 관점에서 야구를 기술하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선수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주목하고, 선수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감독이 평소보다 이르게 내야수에게 전진 수비를 지시한 이유와 3루 코치가 주자에게 3루를 지나 홈으로 뛰게 한 이유 혹은 볼카운트 3볼인 상황에서 주자가 2루를 훔친 이유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16년 동안 선수로 뛰었던 베테랑 포수인 제이슨 켄달은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선수들이 어떤 경기를 펼쳐야 하는지, 야구와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이해하려면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것을 리 저지가 지면에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야구팬들이라면, 꼭 봐야만 하는, 볼 수밖에 없는 책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류현진 선수와 윤석민 선수, 그리고 추신수 선수 덕분에 요즈음은 메이저리그 중계를 정규 방송에서도 편성해서 보여줄 정도이니 책 속 내용들이 더욱 친숙하고, 쉽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야구장 밖에서는 알 수 없는 메이저리그의 생생한 진짜 이야기. 도대체 진짜 메이저리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진짜 프로선수들은 경기를 어떻게 보는 것일까? 홈플레이트에서 포수와 구심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팀원끼리 어떻게 의사 소통하는 걸까? 필드 밖에서 바라보는 야구가 아니라, 필드 안에서 바라보는 진짜 야구 이야기가 그렇게 펼쳐진다. 경기가 시작 되기 전에 어떻게 몸을 풀고, 선수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타자, 주자, 감독으로 나뉘어서 각각의 포지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경기를 잘 풀어가려면 어떤 부분을 공략해야 하는 지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야구는 정말 빨리 진행되지만, 직접 경기해 보지 않으면 - 혹은 필드에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 야구가 얼마나 빠른 스포츠인지 알 수 없다. 타구, 투구, 송구. 필드에서 보면 이 모든 게 완전히 달라 보인다. 야구가 길고, 느리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TV에서 볼 땐 야구는 정말 쉬워 보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내야수들의 능력은 상상도 안 될 만큼 뛰어나다. 터무니없을 정도다. 훌륭한 내야수는 본능이 남다르다. 투구와 타자의 스윙을 읽을 후에 타구가 날아오기도 전에 몸을 움직인다.

선수들은 "상대하기 가장 힘들었던 투수는 누구죠?"라는 질문에 항상 똑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투수요."라고. 상대 투수가 어떻게 경기하는지, 공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르면 그만큼 불리하다는 얘기다. 야구는 철저하게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진행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야구 만큼 기록도 많고, 경기 규칙도 많은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야구는 알면 알 수록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고, 그만큼 더 재미있어지는 신기한 종목이다. 야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것이다. 야구에 흥미가 이제 막 생겼다면, 혹은 야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더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야구에 관련된 책들이 야구를 오래 보아온 소위 선수들에게는 다 그렇고 그런 아는 얘기들을 정리해놓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나 야구 좀 봤다. 싶은 이들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우의 수가, 두 세 시간짜리 야구 경기 안에서 전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매번 신기하기도 하고, 색다른 쾌감을 주기도 한다. 야구에서는 벌어지는 매 순간의 선택.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그날의 경기 결과를 바꾸기도 하고, 한 선수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에서부터 회의 때 이걸 발표해야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야지. 오늘 이걸 입을까. 아니야 저걸 입어야겠어. 이쪽 길이 빠를까. 저쪽 길이 빠를까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벌어지는 우리의 선택.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뒤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모두 스스로의 책임이다. 아쉬운 건 이미 결정된 선택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거. 하지만 야구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킬 묘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선택을 통해 배우고, 그걸 활용해서 멋진 드라마를 새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려면 감독, 코치, 선수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진짜 야구를 만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야구장으로 가보라. 그게 여의치 않다면 시원한 집에서 이 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난 결국 엄마의 바람대로 '시집이나 가서 남편 돈으로 생활하며 편하게 취미로 소설이나 쓰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글쓰기는 아예 포기해버렸다. 글은커녕 내 삶을 지탱하기도 힘들었으니까.

나름 굴곡 많은 결혼 생활에서 겨우 버텨냈다 싶었는데, 마흔이었다. 작년에는 친구들이 마련해준 마흔 번째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대성통곡했지. 이렇게 한 해, 한 해 무의미한 존재로 소멸해버리나 싶었다. 한 해, 한 해 늙어갈 테고, 무능해질 테고, 무감각해질 테지, 싶어서. 

 

송지연,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실연의 아픔으로 썼던 소설 '줄리아나 1997'이 공모전에 당선되어 책으로 출간되지만, 그 이후로는 단 한 권도 쓰지 못한 소설가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에 살림을 꾸리다가 보니 글을 쓰고자 했던 열망은 어느 샌가 사그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흔한 살의 어느 날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고, 그녀는 그 방송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얼마 되지 않아 막을 내리고, 그 쫑 파티에 서 유명한 남성 패션 잡지 <트렌디>의 편집장인 진수현을 만나게 된다. 그 이후 어느 유부녀의 발칙한 비밀일기가 시작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핸드폰도, 인터넷도, 내비게이션도, 케이블 방송도 없던 시절, 그녀는 줄리아나 나이트클럽을 몇 년 동안이나 주름잡았었다. 자칭 타칭 '줄리아나 오자매'라고 이름이 붙은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어림잡아 매주 한 번씩 갔다고 하니 말 그대로 줄리아나 죽순이였던 것이다. 줄리아나 오자매는 모두 이대생이었는데, 송지연과 박은영은 국문학고, 김정아는 법학과, 이세화는 영문학과, 황진희는 비서학과였다. 로펌 대표 아버지에 자신도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인 정아, 광고대행사에서 인정받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은영, 줄리아나에 처음 이들을 인도하고, 제일 먼저 줄리아나를 졸업했던 세화, 미모와 관능으로 남자들을 홀렸던, 현재는 '줄리아나 바' 사장인 진희까지.. 이들 중에 유난히 남자 복이 없었던 은영만 아직 미혼인 상태이다. 학창시절에 좀 놀아본, 화려하게 그 시절을 보냈던 이들일수록 좋은 남자 만나서 착실한 아내로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이들은 모두 20년 후 각자의 삶을 나름 성공적인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그녀들의 인생 역시 가까이서 보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결혼이란 틀에 들어와 14년을 살면서 억울함과 분함이 생겼다. 남편의 희로애락에 나의 희로애락이 맞춰졌고, 남편의 결정에 내 운명이 좌지우지되었다. 남편이 멋대로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들어먹어도 나는 내조 못하는 와이프가 됐고, 남편이 어린 여자랑 바람이 나도 나는 남편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아내가 되었다. 절망과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렀다. 페미니스트도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인 나에게 저항의 기운이 가득 찼다.

하지만 수현을 만나면서 난 희망과 생기가 생겼다. 바람 피우고 들어온 남편을 보고도 생긋생긋 웃어주는 여유도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독립적인 여자로 사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기쁨과 희망을 얻었는데, 그는 나 때문에 집에서 나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수현을 만나면서 스스로의 자존 감을 되찾은 것 같다고 고민하는 지연에게, 정아가 말한다. 핑계 대지 말라고. 아무리 미화시켜도 넌 바람 피우는 거고, 불륜은 합리화시킬 만한 일은 아니라고. 그 만남이 너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은 덜어지겠지만, 너는 그를 만나기 전에도 독립적인 여자였다고 말이다. 물론 수현과 헤어지는 것도, 아이를 버리고 남편과 이혼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연을 포함해서 이들 다섯 명 친구들의 사연을 하나씩 읽어보다 보면 공감이 되는 것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것도 많았던 이유가 다소 전형적인 갈등 전개 때문이 아니었다 싶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들의 이야기이기에 적나라한 묘사도 있고, 막장 드라마에서처럼 비현실적인 인물들도 있다. 한없이 외설스럽게도 느껴지다가 순정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순애보를 보이는 인물 때문에 이들이 40대인지, 20대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잊어버리곤 하는 드라마들처럼,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엔 최고의 페이지 터너 이긴 하다는 것이다.

 

언젠가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진정한 막장 드라마를 보려면 고전 소설을 읽으면 된다고. 그러면서 위대한 고전으로 칭송 받는 몇몇 작품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런 소설이 진정한 막장 드라마의 시초라고 했었다. 무슨 소리냐며 처음엔 갸우뚱하다가 그 작품들의 스토리라인을 떠올려보면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던 기억이 난다. 불륜부터 시작해서 출생의 비밀, 억지스런 우연의 남발 등 소위 현대판 막장 드라마에서 너무도 자주 사용하는 장치들이 우리의 위대한 고전에도 항상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막장과 문학의 차이는 '스토리'가 아니라 '문학적 표현'의 깊이였을 것이다. 엄청나게 디테일한 장면 묘사와 심리 묘사는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어주고, 평범한 스토리에도 문학적인 깊이를 주고 행간의 숨겨진 뜻을 헤아리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줄리아나 1997>은 명백하게 전자이다. 문학적인 표현들은 싹 걷어내고, 티비 드라마 처럼 인물들의 대사와 스토리전개에 비중을 두어 속도감은 최고이다. 그러나 마냥 막장으로 치부하기엔 좀 아쉽긴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군가에겐 '사랑과 전쟁'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섹스 앤 더 시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도가 어떨까. 노골적이고, 솔직해서 트렌디하게 느껴질 수도, 어디서 본 듯한 뻔한 갈등 구조에 심심함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어른들 말에는 무조건 반항하고, 말만 많은 중2 학생들과 열정 넘치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김선영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엄연히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는데 왜 어른인 내가 읽어도 이렇게 공감되고, 재미있을까라는 것이다. 분명히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고,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데도 그들만의 불안과 고통들이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고 나도 이해 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각 세대의 가려움(불안)을 꺼내어 서로가 서로에게 납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해'에 방점을 두고 시작된 이야기라 어른의 시선이지만 담백하게 표현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것과는 상반된 이 아이들의 반응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수인은 눈앞이 아득했다. 어떤 것도 순탄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아이들과도 학교와도 매번 힘든 고갯길을 넘는 것처럼 숨이 가빴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동굴의 아가리처럼 커졌다. 수인은 아이들과 소소한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일종의 염증 같은 거였다. 수인은 꼭 그 정도의 비겁함과 꼭 그 정도의 혈기 방자함, 난관이 닥치면 뒤로 주춤 물러서는 겁쟁이에 소심함까지, 밀어붙이지도 못하면서 비겁하기는 싫고 그게 싫어서 덤빈 이후 다시 비겁해지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자신을 보며 네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찾아온다. 그래, 이게 나야, 하고 그만 두 손 들고 싶었다.

수산나 고등학교에서 성공적으로 도서관을 꾸려가던 수인은 울창한 수풀 속에 방치해둔, 낡은 목조 건물의 도서관이 있는 형설중학교 사서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는다. 새로운 학교에서 기존 선생님들의 텃세도, 반은 강제로 모임에 나온 독서회에 나온 아이들과의 첫 만남도 만만치가 않다. 그녀에게는 상위 1% 엘리트에 속하지만 늘 불안에 쫓기는 연인 율이 있다. 아직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견례를 하고 결혼 날짜를 잡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커플이었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더 나은 스펙을 쌓겠다며 일방적으로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관행에 젖어 있는 새 학교의 시스템과 동료 교사들도,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과의 좌충우돌 학교생활도 그녀에겐 감당하기 벅차기만 하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유일한 어른인 수인이 무작정 이해심 많거나, 완벽하게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려는 뻔한 선생님 캐릭터가 아니라서 무엇보다 공감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인물이라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좋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싶다.

폭력 사건에 휘말릴 때마다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전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도범은 이번에는 부모님을 위해 일진 생활을 정리하려고 한다.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도범을 괴롭혀 일진에 돌아오게 하려는 대호 일당에게 보란 듯이 손가락을 짓찧었다. 새처럼 생긴데다 촉새처럼 말이 많다고 해서 새라는 별명을 가진 세호, 말더듬증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고 가방 속에 망치를 넣어 다니는 해명(해머), 혼자서 겉돌며 책 읽기를 즐기며 책이 자꾸 말을 한다는 이담까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사연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입체감 있고, 현실감 있게 느껴지게 했다. 특히 <왜 자기 이야기의 뒤를 이어주지 않느냐고 말하는 책을 봤어요>라는 이담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충분히 공감할만한 인물이기도 했다. 책이 누가 더 이야기를 붙여달라는 말처럼 들린다는 건, 책을 그만큼 사랑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담이는 제대로 책과 놀 줄 아는 아이였던 셈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자신을 내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밖에서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끄덕 없어요. 밖이 뭐가 중요해요. 안이 중요한 거지. 스스로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밖에서 아무리 채우려고 해보세요, 채워지나, 오히려 불행하고 불안한 자신만 발견할 뿐이죠. 그런 어른들이 희곤이 같은 아이들의 싹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학생들에게도 예측 불허의 인물로 치부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왕따 처럼 구는 특이한 인물인 미술 선생 양희순은 아이들이 또라이 또는 광녀라고 부르는 것처럼 정말 이상해 보였다. 수업을 하다가 혼자 제멋에 겨워 자지러지게 웃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어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꺼내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낯설게 하기의 달인으로 통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수인이 도서관 건물과 교무실 건물을 바꾸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해서 모든 선생님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을 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수인의 편이 되어 주었고,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버려 학교를 떠도는 희손이라는 학생도 편견 없이 바라보며 챙겨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수인의 눈에도 어떤 규범과 제약도 너끈하게 뛰어넘는 에너지 넘치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수인의 어머니는 지독한 가려움을 가장 볼품없는 중닭에 빗대어 말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 겨. 애들도 똑같어.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겄냐... 그애들이 지금 올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가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박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겄냐."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것도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수인은 짧은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만다. 그제야 그들의 행동이, 말이 모두 이해가 되었던 거다. '가려웠구나, 가려운 거였구나.' 하고 말이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막막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마다 이렇게 속 시원히 긁어줄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엄마란 존재밖에 없지 않을까. 살아 있는 것들은 죄 가려운 법이라, 누구나 자신만의 가려운 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 던져도 통찰력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삶의 지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인의 어머니도, 미술 선생 희순도, 그리고 수인과 아이들도 모두 각자만의 가려움을 견디고, 더 멋진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거라고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