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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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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작가의 작품은 <기다림>으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김연수 소설가의 번역이라서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속의 절제미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멋진 추락>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정확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속에 인생이 있고, 세상이 있고, 삶이 펼쳐지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스무 차례 이상 교정을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하진은 영어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단순하면서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정련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강행했던 작가의 이력처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도전이 이민 1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게 아닐까 싶고 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서술적인 문장, 평범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오로지 서사에 충실한 것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인데, 이번 신작 <자유로운 삶>은 그 정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 두 권의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일상이 전부이니 말이다. 어떤 과장이나 스릴, 반전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외로운 한 남자의 고군분투하는 삶이 펼쳐질 뿐이다.

 

권을 갱신하는 사소한 일로조차 엄청난 장애에 부닥쳐야 하는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하찮은 관리마저 당신을 괴롭히고 삶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권력자는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싶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2년 전 미국 시인 친구와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콩에서 온 이민자인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라고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불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주인공 난우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이민은 커녕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추측해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인 난우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까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조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그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부터 버스 보이, 요리사 등으로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도 현실에서는 그저 환상, 사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 뭔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이민 1세대의 삶은 매 순간이 전쟁 같을 수밖에 없다.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타국의 언어를 써야 하고, 자유롭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호의롭지 않은 여러 상황들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꿈과 희망은 모두 포기하고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의 버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펜을 잡을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침울함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머지않아 이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든, 맞서 싸워야 했다. 시를 다시 써야 했다. 이제 그가 영어로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에 위축당해 있었다. 사실을 깨닫자, 그는 더욱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온 마음을 바쳐 다시 시작할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 된 상태였다. 요즘, 그는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은, 어떤 날은 그저 견뎌내거나 또 어떤 날은 그저 흘려보내 기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하루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극중 난우가 그의 염원인 시인으로 결국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꿈을 접어놓고, 포기하고, 던져버리곤 한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으니 말이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고통과 좌절 속에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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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한강/창비

 

한강이 풀어내는 1980년의 5월. 무고한 영혼들이 아픔을 겪고, 어느새 그들을 무심하게 잊어가고 있는 요즘같은 시국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그동안의 광주에 대한 조명과는 조금 마음가짐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과거에 관심이 없는, 오로지 현재와 미래만 보고 달려가는 많은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대성당/레이먼드 카버/문학동네

 

2007년에 출간되었던 카버의 대성당을 이미 읽었고, 책도 아직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을 만큼 좋은 책이다. 당시에 카버의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오로지 번역을 소설가 김연수 씨가 했다는 거였는데, 책을 읽다보니 카버의 진면목을 알 수 있어 그 이후에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이번 개정판은 오랜 시간 고심하며 새로 다듬은 번역과 작품에 대한 깊고 풍부한 해설이 특징이라고 하니, 기존에 읽었던 이들에게도, 읽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살인창녀들/로베르토 볼라뇨/열린책들

 

'스페인어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알려진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작품 컬렉션이 드디어 17권으로 완간되었다. 특히나 열린책들의 이 시리즈는 작품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덕분에, 소장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킨다. 볼라뇨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야만스러운 탐정들>이었는데, 그 이후로 작년에 출간됐었던 화제작 <2666>에 이르기까지 독특하고 매혹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마니아들에게 꼭 도전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5년동안 볼라뇨의 전권을 출간한 열린책들에게 감사를 전하고픈 시리즈이다.

 

 

 

 

 

 

모즈가 울부짖는 밤/오사카 고/문학동네

 

'블랙펜 클럽' 32번째 작품으로, 니시지마 히데토시, 가가와 데루유키 주연의 드라마 [MOZU] 원작소설이다. 오사카 고가 1986년에서 2002년에 걸쳐 전5권으로 완결한 '모즈' 시리즈는 현재까지 도합 판매부수 80만 부가 넘는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으로 알려졌는데, 국내에는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는 거라 더욱 관심이 간다. <단 한 장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절묘하게 컨트롤하며 이 소설을 썼다>는 평만큼이나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스피드가 서스펜스의 재미를 톡톡히 줄 것 같다. 숙명적인 계기로 범죄에 발을 담근 살인자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자 경찰조직 내부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본격 수사물이기도 한 이 작품은 '모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풍부하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폭스 밸리/샤를로테 링크/밝은세상

 

전작인 <관찰자>로 탁월한 심리묘사를 선보였던 샤를로테 링크의 신작이다. 그녀의 작품은 추리 소설임에도 범인과 주변인물의 내면 묘사와 범행 동기등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특히 여성독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작중인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 고뇌와 상실감, 고독과 절망, 양심과 죄의식 등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부침이 변화무쌍한 스토리와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고 하니 색다른 추리 소설을 만나고 싶은 이들이나, 캐릭터의 심리변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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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14-06-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모두에게 사랑받은 김연수 작가님 ^^ 스무살, 원더보이 두 권 읽었을 때만 해도 조금 갸우뚱했다가 세계의 끝 여자친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읽으면서 왜 사람들이 김연수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읽고 다시 조금 갸우뚱했다가 최근 꾿빠이 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청춘의 문장들 읽고 완전히 반하게 됐어요. <소년이 온다>는 꼭 선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피오나 2014-06-04 19:40   좋아요 0 | URL
ㅎㅎ 그쵸? 김연수 작가님 팬은 골고루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특히 <밤은 노래한다>가 좋았거든요. 혹시 아직 만나보시기 전이라면, 김연수 작가님의 작품 중에 적극 추천합니다. ^^
 
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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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니까 그 해 겨울, 너희가, 셋이서, 무엇으로 맺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선생님이 눈을 깜작깜작 한다. "어떻게 맺어졌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 무엇이 너희를 덩어리지게 했는지 알고 싶다. 사랑이라고 하면 너무 범속하고."

"담배를 피우면 있지, 조금씩 나를 훼손한다는, 조금씩 나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사실은 좋다." 선생님이 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우리도.... 어쩜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소설가 ''의 제자이자,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후 '소소'에 내려와 사는 여자 ''

형과 아버지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요양소에 계시는, 베이스 연주자였던 떠돌이 남자 ''

간신히 국경을 넘어와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왔던 탈북자 처녀 ''

이 작품은 ㄱ의 집터에서 남자 ㄴ의 데스마스크와 유골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이들 셋은 서로를 '사랑'했다. 이런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소소의 집으로 내려왔을 때, ㄱ은 한동안 혼자 사니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ㄴ이 그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둘이 사는 것도 참 좋다고 깨닫는다. 이후 ㄷ이 그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고 나서는 셋이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질투하고 소유하는 관계도 아닌, 이들 세 사람의 관계가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들은 섹스를 덩어리가 된다.고 표현한다. 서로 소유하지 않고, 그러니까 각각의 내면에 있는 가시가 훼손되지 않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전제된 '덩어리 되기'라나. 한 남자와 두 여자, 세 몸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을 글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이들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남자 ㄴ은 이렇게 말한다.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라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둘 이선 절대 원형을 만들 수 없었던,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완전한 원형 말이다. 죽음에의 강한 끌림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조건도, 욕심도 없이 스스럼없이 끌렸던 것 같다. ㄱ은 어릴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은 기억이 있으며, ㄴ 또한 광주에서 진압군에게 형과 아버지가 모두 살해당했었고, ㄷ은 국경을 넘다가 아버지가 죽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오고, 이겨내고, 지나야 했던 이들이 각자의 선인장 가시를 품고 비로소 '소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ㄱ은 첫 결혼의 실패 이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각자에게 숨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게 1 1의 관계라는 걸 깨닫는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선인장 가시처럼 몸뚱어리 안에 숨겨 간직해야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내가 그 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플롯이란 한마디로 인과론 같은 거 아니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죽는다면 소설은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의 진술에 바쳐지는 것. 그리고 인과론은 당연히 시간의 꼼꼼한 관리로써 미학적 균형을 얻는다. 그게 플롯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는 게 작가라고 여기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야.

물론, 플롯 없이 쓰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더 아프다. 딜레마야. 하기야 뭐, 소설 쓰기만 그런 건 아니겠지. 우리 모두 근본적인 지향은 자유일 텐데, 삶에서나 사랑에서나, 사람들은 플롯을 만들어 씌워 구조화하려고 평생 안달하거든.

 

극중 소설가 ''가 제자인 ㄱ에게 말하는 이 대목은 어쩐지 박범신 작가의 말처럼 들린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 우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플롯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극중 ''의 이야기는 결국 이 작품 소소한 풍경을 쓰고 있는 박범신 작가의 멘트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사랑의 서사 공식에서 벗어나있는 독특하고, 이상하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매혹적인,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정의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이니 말이다. 불가능한 관계를 가지고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키는,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가 발견되어 형사가 수사를 하지만 결국엔 물증도 동기도 찾을 수 없어 완전범죄가 될 수밖에 없는, 자살도 아니지만 범인도 없는 그런 죽음, 우물을 파는 남자와 평화로운 순간에 연탄가스를 피워 죽으려고 했던 여자의 마음은 결코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작가야. 그러므로 나는 평생 늘, 새로운 문장을 쓴다. 그 동안 수십 편의 소설을 썼지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 쓰는 문장으로 이미 써버린 과거의 문장을 계속 엿 먹인다고 상상하면 가슴이 뻐근하다."

박범신 작가의 언제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평범한 플롯도, 인물들의 관계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오로지 그만이 쓸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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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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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은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98년작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당시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원작에 충실하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고전과는 또 다른 섬세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주었었다. 분수대의 키스 장면은 오랫동안 명 장면으로 사랑 받았으며, 두 배우 역시 이 작품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원작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진 버전도 있으며, 그 또한 원작만큼이나 매우 흥미롭다

 

 

어린 핍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성질 사나운 누나와 인정 많은 대장장이 매형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마을 묘지를 찾아갔다가 탈옥수와 만나게 되고 그는 핍을 협박해서 줄칼과 음식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다음날 핍은 누나와 매형 몰래 줄칼과 음식물을 그에게 가져다 주지만, 한동안 죄인을 도와주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어느 날 조의 숙부를 통해 거대한 부자인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양녀인 에스텔라를 만나게 된다.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미스 해비셤의 놀이 상대를 해주며 핍은 에스텔라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쌀쌀맞은 소녀는 그의 신분을 무시하며 조롱한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 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 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보라.

 

 

자연스레 대장간에서 자라면서 자신도 조처럼 대장장이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핍은,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라를 만나면서 현재 자신의 처지에 조금씩 불만을 가지게 된다. 멋진 도시 신사가 되어 에스텔라 앞에서 당당하기를 꿈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부모도, 스스로 자립을 할만한 그 어떤 배경도 없었기에 그것은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나는 이 친구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라는 지시를 받았소".

재거스 씨가 손가락으로 삐딱하게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나아가 이 친구가 즉시 현재의 삶의 영역과 이 집을 떠나서 신사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젊은이로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재 그 재산을 소유한 분의 바람이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밤 런던의 유명한 변호사가 그를 찾아오고, 그의 꿈이 실현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다. 터무니없던 그의 공상이 오히려 한술 더 떠 생생한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그는 새롭게 전개될 앞날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신사 교육을 받고, 비슷한 수준의 이들과 어울리면서 핍은 점점 변해간다. 자신이 사랑하던 조를 사교적으로 미숙하고 어리숙하다는 이유로 불편해하고 창피하게 여기며, 고향의 대장간에도 거의 가보지 않는다. 이제는 에스텔라에게 걸 맞는 위치가 되었다는 자각에 미스 해비셤이 그의 짝으로 자신을 위해 이런 혜택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는 런던의 상류층 속물 청년 들과 어울리며 점점 겉멋이 들어가고 향락과 소비에 찌든 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른다. 아무런 노력 없이, 대가 없이 갑자기 얻은 부와 행운에 현명하게 대처하기에는 핍이 너무 어렸던 탓도 있었겠지만, 누군들 그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스물세 살이 된 핍에게 어느 날 거칠고 험상궂게 생긴 인물이 찾아오고, 그는 바로 어린 핍이 줄칼과 음식을 가져다 주었던 그 탈옥수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핍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 당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핍은 미스 해비셤이 아니라 탈옥수 매그위치가 자신의 모든 꿈을 실현시켜주었다는 것을 깨닫자 좌절하고, 낙담한다. 탈옥수의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유산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부자의 유산은 애초에 성격부터 다른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 그는 에스텔라의 결혼 소식까지 접하게 되어 더욱 비참해진다.

 

, 사랑하는 내 단짝.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장장이, 어떤 사람은 양철공, 어떤 사람은 금세공업자, 어떤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인 거야. 그런 식의 구분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게 생기면 반드시 만족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란다.

 

세련된 도시 청년이 보기엔 평생을 대장장이로 일해온 조가 바보 같고, 어리숙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이 대사를 보면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직업은 없으며, 인간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모두 주인공이니 말이다. 막대한 재산을 통해서 허울뿐인 가짜 신사가 되고 싶었던 핍은, 자신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게 된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핍이 엄청난 재산을 통해 타락을 하다가, 고난을 겪으며 다시 순수한 영혼을 되찾는 일종의 성장 소설인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 특유의 주제 의식과 결합해 깊이 있는 스토리로 감동을 준다. 단순히 위대한 유산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자신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주어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부모들의 유산대로 그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닌 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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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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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집자가 알아야 할 편집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부터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열린책들 편집 및 판면 디자인 원칙, 편집자가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 등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사실 책을 쓱 훑어보기만 해도 다들 알 수 있다.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필수 매뉴얼이라는 것을 말이다. 2008년에 시작된 편집 매뉴얼 집은 해를 거듭하면서 수정, 보완이 되었고, 이는 출판계에 종사하는 신입 편집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어문 규정의 얼개를 전달해주는 교본 역할을 해오고 있다. 스티븐 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라고. 그만큼 편집이란 언제나 100퍼센트의 완성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한글 맞춤법, 외래어 표기, 문장 부호 사용법, 편집 실무와 제작, 납본에 이르기까지..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출간된 책에도 가끔 오자나 탈자가 눈에 띄는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틀리기 쉬운 철자 용례를 보자면,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문서를 작성하거나, 회사 업무 관련 이메일을 쓰거나, 혹은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리뷰를 올릴 때 헷갈리기 쉬운 철자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돼요> <되요> 또는 <결제> <결재> 아직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맞춤법이 틀린 게 아니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발음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 것도 있어 새삼 한글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참 쉽고 간단한 원리지만,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이렇게나 과학적인 규칙을 알아야 하니 말이다.

 

교열 시 순화해야 할 표기 용례를 보면, 국립 국어 원에서 광복 60주년이 되었던 2005년에 일상 언어생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를 순화한 자료집을 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상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순화 해야 하는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다. 순 일본어를 사용하거나, 일본어와 한글이 결합되어 있거나, 외래어를 일본식으로 읽거나, 일본어투는 아니지만 순화 해야 하는 단어까지 말이다.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의 경우는 더 어려워진다.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쓰고, 지명이나 그에 준하는 고유 명사는 외래어에 붙을 경우 띄어 쓰고, 한자어나 고유어에 붙을 경우에는 붙여 쓴다. 컴퓨터에서 문서 작성 시에 자동 띄어쓰기 검열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들 웹 상에 바로 글을 올릴 때 가장 많이 틀리는 경우가 바로 붙여쓰기와 띄어쓰기일 것이다.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 법 등등 외에도 실제 편집자들이 알아야 할 제작의 기초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책의 판형, 본문 편집과 판 굽기, 인쇄 제작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들이 있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매우 재미있을 만한 대목이다. 이 책은 마치 사전처럼 세세한 내용들과 색인 구분이 바로 되어 있어 찾아보기도 쉽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사전에 비해 일반 소설처럼 글자 크기가 크고 알아보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어, 틈날 때마다 들춰보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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