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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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인 올리브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공동주거 프로젝트-셰어하우스에서는 가족이 아닌 10명의 싱글이 한집에 모여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셰어 하우스란 다수가 한 집에서 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 화장실, 욕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 캐나다 등의 도심에 많으며, 국내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셰어하우스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맞추어 <셰어하우스>, <나는 셰어하우스에 산다> 등의 책도 발간되어 신개념 주거양식인 셰어하우스가 일종의 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자면 대학교 앞 하숙집이나 고시원, 실버 타운도 셰어하우스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으니,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주거형태도 아닌데다, 갈수록 1~2인 가구가 증가하고 전, 월세값 폭등 등의 이유로 아마 앞으로 더 많은 형태의 셰어하우스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 집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거하는 형태의 주거 문화가 모든 이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전셋값, 월세 등의 부담을 줄이려는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확실히 경제적으로는 이점이 많은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쾌적한 공간에 보증금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과 안전문제나 정서적인 차원에서도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1인 싱글 가구 453만 명의 시대에 접어드는 요즈음, 그러니까 1인 가구가 현재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2035년경에는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셰어하우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혼자 살기 싫어서라고 하니, 이건 뭐 1인 가구 시대의 역설이기도 하다. 최근 보도된 뉴스를 보자면 전국적으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임대 전문업체도 30여 곳에 이르고 있고, 개인 사업자까지 합치면 현재 2000여실인 셰어하우스 규모가 내년엔 5000여실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입주자는 주로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고, 이 중 10%가량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아마도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장기간 함께 살면서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목적이라 젊은 층에 더욱 어필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셰어하우스"의 실상을 실제 거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생전 모르는 타인과 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사 분담부터 소소하게 부딪힐 수 있는 많은 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셰어하우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다 이런 독특한 주거 형태가 생기게 된 사회적 배경부터 셰어하우스가 어떤 유형별로 나뉘어져 있는 지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1인 싱글 가구인 이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셰어하우스에서 지낸 경험을 토대로 <21세기형 마을 공동체 사회>라는 라이프 스타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환경을 스스로 재구축하고 다시 '타인과 서로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타인과 사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수고하며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도 익숙하다. 21세기형 마을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일을 어디까지나 꿈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고, 함께지만 똑같지 않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셰어하우스! 친구보다 가깝고 가족보다 자유로운 셰어 메이트라는 새로운 친구 형태! 가족이든 가족이 아닌 타인이든 새로운 방식으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셰어하우스라는 이색적인 주거 형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1인 주거시설의틈새 상품으로 등장한 셰어하우스가 일본의 경우처럼 좀 더 확산되어 혼자 사는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누어줄 수 있는 주거 형태로 자리잡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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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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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저자 나카노 교코 교수의 매혹적인 명화 해설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리스신화를 다룬 명화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성서를 주제로 한 명화에 초점을 맞추어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담은 구약에서부터 수태고지와 세례자 요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최후의 만찬 등을 다룬 신약 이야기를 나누어 성서의 주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시점을 바꾸면 선악이 뒤바뀔 수 있다. '삼손과 들릴라'에서도 거한 삼손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들릴라는 악녀 취급을 받았다. 만약 들릴라가 유대인이었다면 적을 사로잡은 장한 투사라며 그녀를 칭송했을 것이다. [구약성서] '외전'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짝을 이룬 것처럼 실려 있어 흥미롭다.

바로 유딧 이야기다.

유딧은 수많은 소설과 희곡,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등장했고 그녀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달라졌다.

바로크 시대의 남성 화가, 알로리가 그린 유딧을 보자.

 

같은 시기에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도 유딧을 그렸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남성 화가의 그림에서는 살인의 리얼리티를 추구하지 않고, 유딧의 미모를 찬미하기 위한 그림처럼 보인다. 여성 화가의 그림에서 유딧은 진정한 영웅의 풍모다. 범행 현장의 피와 땀 냄새까지 느껴지는 듯 실제로 남성의 목을 버걱버걱 뼈까지 깍아 낼 것만 같은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남성이 생각하는 '좋은 녀석'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전혀 매력 없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여성이 생각하는 '멋진 여성'도 남성에게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고 해설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배경과 의미를 읽어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들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그림에는 숨겨진 사연들이 있어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기 예수의 탄생 에피소드를 다룬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등장 인물들이 화가의 후원자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마치 유명인과의 기념 촬영을 위해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마리아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명화를 소개하며

남성의 기호와 여성의 자아도취가 뒤섞여 그녀가 젊은 여자이고 창부였으니 아름다울 것이라고 이미지가 증식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저자의 돌직구가 유쾌하기 때문에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영화 "E.T.", 예수를 배반하는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 이야기는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예수의 열두 제자들의 이야기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 마리아 막달레나 이야기는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를 끌어와 해석하고 있어,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준다. 나카노 교코 식 명화 읽기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거침없고 스토리가 풍부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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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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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을 대하는 내 심정의 많은 부분은 내 인생의 그 시절과, 나쁜 습관도 모자라 멍청한 이론을 믿었으며 그나마 가끔 있었던 생산적인 침묵의 순간을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한 막 등장한 작가에 대한 평범한 향수에 젖는 것인 듯싶다. 젊은 친구들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결국 변화하리라는 것, 완성된 인물의 스틸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화, 움직이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토머스 핀천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소설가로 꼽히는 작가라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그의 작품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길고 복잡한 문장과 지나치게 함축적인 단어들은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를 상당히 더디게 만들어주었다. 초기에 쓴 다섯 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것이라고 하며, 데뷔 장편이 나온 이듬해에 발표된 「은밀한 통합」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모두 핀천이 대학생 시절에 쓴 작품들이라고 하니 거장의 풋풋한(?) 초기 작을 만나는 기쁨도 느껴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작가 서문이 무려 삼십 페이지 가까이 될 정도로 굉장히 긴데, 아무래도 습작 생 혹은 신인작가 시절에 쓴 수십 년 전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여야 하는 작가의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는 그의 초기 단편들이 결합투성이에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처럼 밝히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그의 소박한 바램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긴 작가 서문에서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가급적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작가 서문을 읽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작은 첨언'이라 칭하는 작가 서문은 작품 만큼이나 토머스 핀천이라는 작가의 성격과 작품 색깔에 대해 알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니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리조가 공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래, 향수병이라도 걸린 거야?" 러바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이슬비> 중에서

이번 작품집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는 "죽음, 고갈, 권태, 획일화, 무질서, 파국, 단절"을 폐쇄회로, "쓰레기 폐기장, 엔트로피, 미국 교외, 묵시록적 종말" 등의 메타포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슬비>는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청춘의 이야기인데, 러바인은 도망치듯 군대에 들어와 반복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 안주하려는 인물이다. 핀천은 그의 삶을 폐쇄회로와 같은 고립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우랜드>의 플랜지 역시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려 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인물이다. 즉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거나, 혹은 별 의미 없이 반복적이고 단절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인물들인 셈이다. <엔트로피>는 핀천 문학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엔트로피 개념을 문학적으로 처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후 핀천 소설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섯 편의 작품 중에 가장 난해(?)하다. 죽어가는 새를 살리려는 칼리스토와 아래층에 살며 친구들과 며칠째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멀리건의 모습이 번갈아 보여진다. 파티가 상징하는 무질서와 혼란, 온실이 상징하는 질서, 규칙 등의 갈등이 대비되는 이야기이다. 

"새가 죽어가." 자기만의 세계를 물 흐르듯 거니느라 넋이 나가 있던 소녀는 온실을 가로질러 가서 칼리스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둘은 그렇게 가만히 일분, 그리고 이분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새의 심장박동은 끝까지 우아함을 유지하며 점점 약해지다 마침내 정적에 이르렀다. 칼리스토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계속 안고 있었어." 그 믿을 수 없는 일에 무력감을 느끼며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몸의 온기를 나눠주려고 말이야. 생명을, 혹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새에게 전달해주려 했어.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열 전달이 중단되기라도 했나? 더 이상..."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엔트로피> 에서

소설집 제목인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여기 실린 다섯 편의 단편과는 상관없이 붙여졌는데, 작가로서 정점에 이른 중년의 소설가가 젊은 시절에 쓴 치기 어린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과거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기나긴 작가 서문에서의 자기 고백이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겸손인지는 이 작품집을 읽는 독자 각각의 몫일 것이다. 핀천이 대학 시절에 쓴 앞의 네 편과 달리 마지막에 실린 <은밀한 통합>은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의 작품이라 그런지 읽기에 조금 수월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의 네 편도 핀천의 독특한 색깔을 맛보기에는 무리가 없지 싶다. , 끝까지 읽어내려면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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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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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미스터리하고 매혹적인 제목만큼이나 멋진 표지가 돋보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다. 비채가 워낙 예쁜 표지를 잘 만들기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 그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일본 원서 표지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어쩜 이렇게 제목의 느낌을 잘 살려내면서도 분위기 있는 표지를 만들었는지, 책을 읽기도 전부터 내용이 궁금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몽환화가 실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식물의 총칭인지 그 뜻을 알게 되면, 이 멋진 표지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언젠가 정유정 작가님이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었다. 꾸준하게 죽을 때까지,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일정하게 발표하는 것. 이라고. 한 두 작품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의 텀이 길게 있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그것도 일정의 수준으로 말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작가들의 목표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생각했었다. 대박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라도 매번 출간할 때마다 그만큼의 화제와 판매량을 가져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만 큼 국내에 많은 작품이 번역된 작가도 드물다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종류의 작품들이 출간된 작가이다. 나도 거의 출간된 대부분의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거의 언제나 만족감을 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의 속도감과 몰입 감 또한 여전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속도감과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성장하고 달라지는 지에 대한 감동, 스릴 넘치는 트릭과 반전, 모든 퍼즐이 짜맞추어졌을 때의 재미까지.. 취향에 따라 특별히 좋았던 작품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별로이다. 이 작품은 좀 수준이 떨어진다. 재미가 없다. 라는 평은 웬만해서는 내릴 수가 없는 작가라는 얘기다. 85년 데뷔 이후 해마다 평균 세 편이상의 작품을 탈고한 다작 작가라는 점에서 보자면,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처음 연재가 끝나고 수 차례 개고를 거쳐, 장장 십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노란 나팔꽃은 금단의 꽃이라는 이야기야.”

“금단…….”

소타는 리노와 얼굴을 마주했다.

“내가 나팔꽃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의 영향이야. 삼촌이 다양한 변화 나팔꽃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나도 흥미가 생겼지. 하지만 삼촌은 어느 날 내게 말했어. 어떤 꽃을 피워도 좋지만 노란 나팔꽃만은 쫓지 마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몽환화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몽환화?”

“몽환夢幻 꽃이라는 의미일세. 그 뒤를 쫓으면 자기가 멸하고 만다고, 그렇게 얘기했어.”

담담한 말투의 다하라의 말에 소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팔꽃에 없는 색상인 노란색. 그러나 에도 시대에는 노란색 나팔꽃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에서 이 작품의 미스터리가 출발했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란 때론 놀라울 정도라서 언젠가 존재했던 것이 현재 사라졌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바로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색다른 역사 미스터리를 완성시켰다. 작품의 서두를 여는 두 가지 프롤로그는 어찌 보면 뜬금없다 싶을 만큼의 강렬함을 준다. 주택가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상사건이 벌어지고,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프롤로그는 결국 전체 이야기의 직조에서 중요한 짜임새를 엮어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리노의 사촌인 나오토의 자살소식으로 시작한다. 상갓집에서 리노는 오랜만에 할아버지인 슈지를 만나 근황을 묻는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잘했던 그녀는 큰 슬럼프 없이 큰 시합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냈고, 전국대회 우승도 놓치지 않았으며, 국제 대회에서도 선전하던 유망주라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연습 중이었다. 그런데 원인불명의 현기증 때문에 결국 수영을 포기했던 과거가 있다. 할아버지는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리노에게 말하고, 그녀는 그걸 계기로 자주 들러서 슈지가 키우는 꽃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걸 도와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그 어떤 증거도 흔적도 찾을 수 없었고, 점점 독거 노인의 외로운 죽음은 미제 사건처럼 되어 가지만, 리노는 할아버지 집에서 없어진 화분을 발견하고는 사건의 진상을 찾아보기로 한다. 소타는 원자력을 전공했지만 2011년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세상의 이미지가 너무 나빠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태이다. 그의 동기들은 대부분 원자력발전과 관계없는 회사로 취직을 준비하지만, 몇 년씩이나 공부했던 것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에 가려니 허무한 그는 상실감이 크다. 원자력을 미래의 에너지로 생각하고 청춘의 시간을 온전히 바쳤던 그에게 대학원까지 온 것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집에 내려와있는 그가 우연히 리노를 만나게 된다. 리노는 경찰청 관료인 형 요스케를 찾아왔고, 안 그래도 가족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의문이 있었던 그는 형의 비밀을 풀어보겠다고 리노와 함께 할아버지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리노와 소타가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굉장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 어딘가 닮았어요. 열심히 자기가 믿은 길을 선택했는데 어느새 미아가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리노와 소타 외에 사건을 추적하는 또 다른 축인 형사 하야세에게도 분명한 동기가 있다. 그는 불륜으로 별거 중인 상태라 아들에게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내내 미안했다. 바로 그런 아들이 슈지 할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꼼짝없이 소매치기로 몰려서 경찰서에 갈 판국이었는데, 슈지가 진짜 범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정의를 주장해서 그를 구해준 것이다. 하야세의 아들은 그것을 두고두고 고마워했었고, 사건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아버지에게 꼭 범인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하야세 입장에서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 사건의 범인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들 주요 캐릭터의 이런 부분이 극에 몰입하는 힘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추리소설 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살인이란 것이, 사실 현실에서는 터무니없이 부자연스러운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발한 트릭과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에만 몰두하는 줄거리는 도무지 현실감이 없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는 항상 평범한 인물들이, 각자의 개연성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그래서 멋들어진 문장을 쓰지도,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독자들에게 최고의 페이지 터너, 즉 속도감을 줄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서스펜스도 스릴도 수수께끼도, 리얼리티가 없으면 실감도 감흥도 일지 않는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말처럼, 현실에 밀착하지 않는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실감을 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복잡한 트릭과 엄청난 반전 보다는 가족과의 관계와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사회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이 작품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공감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중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작가라 칭송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몽환화>는 그 정점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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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2]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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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작가의 작품은 <기다림>으로 처음 만났었다. 당시에 김연수 소설가의 번역이라서 읽게 되었는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속의 절제미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멋진 추락>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하진의 매력은 '정확한 문장'에 있는 것 같다. 작가가 먼저 중국어로 생각한 다음에 정확한 영어 단어로 문장을 써서 애매한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정확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속에 인생이 있고, 세상이 있고, 삶이 펼쳐지는 진짜 사람냄새 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스무 차례 이상 교정을 하며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하진은 영어가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단순하면서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야말로 정련된 문장으로 유명하다. 모국어로 썼으면 훨씬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영어로 글을 쓰는 모험을 강행했던 작가의 이력처럼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도전이 이민 1세대 작가들의 문학적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품 속에 자연스레 삶의 무게가 담기는 게 아닐까 싶고 말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서술적인 문장, 평범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오로지 서사에 충실한 것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특징인데, 이번 신작 <자유로운 삶>은 그 정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총 두 권의 분량이 천 페이지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하루를 견뎌내는 난우의 일상이 전부이니 말이다. 어떤 과장이나 스릴, 반전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외로운 한 남자의 고군분투하는 삶이 펼쳐질 뿐이다.

 

권을 갱신하는 사소한 일로조차 엄청난 장애에 부닥쳐야 하는 중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당신이 중국인이라면, 하찮은 관리마저 당신을 괴롭히고 삶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어디를 가든, 권력자는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싶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22년 전 미국 시인 친구와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콩에서 온 이민자인 작은 식당 주인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조롭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시를 써왔다는 사실에 감동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희생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라고 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지불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말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주인공 난우는 너무도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이민은 커녕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절대 추측해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유학온 중국인인 난우는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이후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까지 미국으로 건너오게 한다. 조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그에게, 미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결국 그는 대학원 과정을 그만두고, 야간 경비원부터 버스 보이, 요리사 등으로 밤낮없이 일해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오랜 꿈도 현실에서는 그저 환상, 사치에 불과하다.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 뭔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뭘 생각할 힘도 없었으니까. 이렇듯 이민 1세대의 삶은 매 순간이 전쟁 같을 수밖에 없다.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타국의 언어를 써야 하고, 자유롭지만 외국인에게 그다지 호의롭지 않은 여러 상황들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가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매일 십수 시간의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만큼은 부모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꿈과 희망은 모두 포기하고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야 하는 그들의 버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는 건 왜일까.

 

가끔은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펜을 잡을 때마다 정신이 멍해졌다. 침울함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머지않아 이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든, 맞서 싸워야 했다. 시를 다시 써야 했다. 이제 그가 영어로만 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었다. 그는 급격한 변화에 위축당해 있었다. 사실을 깨닫자, 그는 더욱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아직은 온 마음을 바쳐 다시 시작할 정도로 동기 부여가 안 된 상태였다. 요즘, 그는 글을 쓰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은, 어떤 날은 그저 견뎌내거나 또 어떤 날은 그저 흘려보내 기도 하거나 별 의미 없는 하루들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되면 어느 순간 내 인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극중 난우가 그의 염원인 시인으로 결국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삶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꿈을 접어놓고, 포기하고, 던져버리곤 한다.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하고 싶어도 인생이란 좀처럼 여유를 내주지 않으니 말이다.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고통과 좌절 속에 기어이 그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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