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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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앨리스 먼로의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와 마지막 작품집인 <디어 라이프>에 이어 세 번째 소설집 <런어웨이>를 읽었다. 이 작품집은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던 <떠남>을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한 책으로 기존 번역서에는 없는 '허물', '반전', ''이 추가 수록 되어 있다.  앨리스 먼로 단편의 특징이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속한 공간의 사물들, 나와 가장 가까운 세계에 대해 이보다 더 꼼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밀한 그림 같은 묘사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주변 상황에서부터 마치 카메라처럼 정교한 묘사를 통해서 점점 더 그 인물에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라, 장편만큼이나 묵직한 감동을 준다. 예전에 김연수 작가가 장편은 일상의 삶에 가깝고, 단편은 일종의 여행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될 거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빵집 아들이었는데, 그것에 비유를 하자면 일년 내내 손님이 없다가 크리스마스 시즌 때에만 손님들이 북적 이는 빵집이 있다. 장편이라면 평범한 날들 속에 매일 손님이 없는 걸 계속 보여주어서, 클라이막스 인 크리스마스 때 감동을 주는 것이고, 그에 반해 단편은 절정인 크리스마스의 풍경만 딱 때어서 얼마나 흥겨웠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단편에서는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더 많고, 생략을 통해 상징화된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장면의 선택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길이는 짧지만 그만큼 밀도가 높은 이야기들이라서, 첫 번째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그 맛이 더 향기로운 것 같다.

 

수록된 첫 번째 작품 '런어웨이'부터 마음을 쿡쿡 찌르는 묘사가 돋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들 말이다. <실비아는 물기를 머금은 햇살이 얼굴을 내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비아는 이 웃음이 콸콸 흐르는 시냇물처럼 온몸으로 쫙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비아는 그 키스를 폐경기에 나타난다는 열감처럼 그녀의 내면에서 어마어마한 열을 내뿜으며 꽃잎을 활짝 피운 눈부신 한 송이 꽃으로 여겼다> 는 대목들 말이다. '런어웨이'는 남편의 정서적 학대와 삶에 찌들어 도피를 꿈꾸는 칼라라는 여성과 그녀가 실비아라는 여성과 교류하는 감정에 대한 스토리이다. 단순히 인물의 사소한 행동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대목들이, 저런 빛나는 묘사로 인해 그 순간,   찰나의 인물이 되어 볼 수 있는 감정이입이 되도록 만들어준다. 웃음이 시냇물처럼 온몸으로 퍼진다.라니. 어쩜 이렇게 절묘한 표현을.. 이라며 감탄하면서 읽었다. 유려하고 단단한 문장들은 생생하고, 아름답게 가슴으로, 머리로, 귀로 삶을 체감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았던 작품은 '반전'이었는데,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고 나온 극장 앞에서 친절을 베푼 한 남자에게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신기루처럼 작은 꿈을 꾸었던 로빈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혼자 연극을 보러 다니길 즐겼는데, 그 이유는 비루하고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연극이 끝나면 그녀는 시내까지 걸어가 강을 따라 걷다가 너무 비싸지 않은 식당이 나오면(대개는 샌드위치 집이었다), 카운터 자리의 높은 의자에 앉아 혼자 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면 집으로 가는 7 40분 기차를 잡아탈 수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 몇 시간으로 그녀는 자신이 돌아가려는 보잘 것 없고 불만족스러운 삶이 일시적인 것일 뿐이고, 그런 삶을 견디는 것도 전보다 덜 힘들 거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 그런 인생, 모든 것 뒤에는 기차 창 밖을 통해 보이는 햇빛을 받아 더욱 찬란히 빛나는 광채가 있었다. 여름 들판을 비추는 햇빛과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연극의 여운 같았다.        - '반전'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극장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만다. 집에 갈 티켓도, 돈도 한 푼 없던 그녀에게 나타나 따뜻한 저녁을 제공해주고, 선뜻 차비까지 빌려주는 한 남자. 돈을 갚고 싶다는 그녀에게, 그는 일년 후 같은 날 같은 옷 차림으로 자신의 가게에 와 달라고 말한다. 그때 다시 만나서 그 동안 있었던 일도 들려주고 했으면 한다고.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그 날은 그녀에게 새겨지고, 일년 후 세탁소에 맡긴 그날의 초록색 드레스를 찾지 못해, 비슷한 다른 옷을 서둘러 구해 입고 간 그녀는, 그러나 결국 그와 재회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되돌아서 오고 만다. 일년 내내 기다렸던 시간이었는데, 기다리는 것이 아까워 결국 그날의 연극이 끝나기도 전에 나왔건만 말이다. 왜 그날 그와 그녀의 재회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먼 세월이 흐른 뒤에 알게 된다. 여기엔 일종의 깜짝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는데, 글쎄, 세상에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진실을 알게 된 그녀가 "조금만 뒤늦게 갔더라면. 아니, 조금만 일찍 갔더라면. 연극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연극을 아예 보지 않았더라면. 머리 따위 매만지지 않았더라면..."이라고 후회하는 순간에 이르자, 어쩐지 씁쓸해졌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나. 매 순간 후회와 회한이 남아 반성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게다가 어쩐지 행복한 일은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야 겨우 생기는데, 불행한 일은 <하루 만에, 단 몇 분 만에 파국을 맞이>하고 만다. 로빈이 가졌던 마음이 무모한 믿음이 아니었다고, 그날, 그 순간이 무대 위에서 만들어진 다른 세상의 일이었던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번 작품집에는 모든 이야기가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되어 있다. 단편이지만 줄리엣이라는 공통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우연', '머지않아', '침묵'의 세 편도 그렇다. 줄리엣은 기차에서 우연히 낯선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우연), 그의 아이를 안고 친정에 방문하고(머지않아), 그가 죽고, 애지중지 기른 딸과 연락이 두절되면서(침묵), 그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칼리파레오스. 예쁜 볼. 이제 생각난다. 그녀가 기억의 바다에서 낚아 올린 호메로스의 단어가 낚싯바늘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러자 별안간 모든 그리스어 단어들이 떠오른다. 6개월 동안 벽장에 꽁꽁 처박아두었던 것을 이제야 발견한 기분이다. 그 동안 그리스어를 가르치지 않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 '우연' 중에서

 

 

한때는 보물 1호였던 것도 일상에 치이다 보면 어느 순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이 우리이다. 당시에는 잊어버린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삶이란 언제나 그런 식이다. <벽장에 처박아두었다가 때때로 다른 것을 찾으려고 뒤지다 보면 기억이 나고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문득 떠올린다. 자신의 과거를, 자신이 한때 별처럼 빛나던 한 때를, 아 내가 이런 시절도 있었지. 라고 자조하면서. 살아 가다 보면 내 인생의 앞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울 만큼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일도, 기쁨에 겨워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벅찬 일도, 모두 지나간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연'에서 이어지는 스토리인 '침묵'에서는 에릭이 죽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던 줄리엣이 어느 날 문득, 그의 부재를 온몸으로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앨리스 먼로는 그 순간, 그녀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놓았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세상에서 그와 함께했던 기억은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이런 것이 애도로구나. 시멘트 한 포대가 쏟아져 들어와 순식간에 몸이 굳어버린 느낌이다.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다. 버스에 오르고, 버스에서 내리고, 집까지(대체 왜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반 블록을 걸어가는 일이 마치 절벽을 오르는 것만 같다>라고. 이토록 문장을 보자마자 와 닿는 묘사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곪아터진 상처와 흉터, 여인이면서 사람이기도 한 하나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 우리의 머리 속에서 매일 같이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이지만 한번도 제대로 입 밖으로 표현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콕 집어 글로 새겨놓은 문장들은 죄책감과 후회조차 삶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으로 보인다. '반전'에서 로빈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 "이건 말도 안 된다고요. 난 받아들일 수 없어요."에 바로 이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과 '우연'에서 하필이면 줄리엣이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누군가에게 퇴짜를 놓은 날 그가 기차에서 몸을 던지는 잔인한 상황, 바로 그런 것들이 삶의 유일한 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읽고 나면 언제나 지나간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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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이상용 1 - 승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선수
최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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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야구는 삶 자체만큼이나 큰 우주이니까 좋든 나쁘든,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야구의 영역 안에 있다>라고.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두 세시 간짜리 야구 경기 안에서 모두 일어난다는 것이 키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수백만 가지의 이유 중에 말이다. 야구에선 매 순간이 '선택'이다. 사소한 선택 하나가 그날의 경기 결과를 바꾸기도 하고, 한 선수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실제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네 삶과 닮은 야구가 너무 좋다. 시즌 권을 구매해서 경기장에 가고, 전국 곳곳으로 원정경기 관람을 갈 정도로 야구라는 스포츠에 푹 빠져 있다. 그래서 야구에 관련된 책도 참 많이 읽었고, 가지고 있는 편인데 집에 있는 종류만 대충 어림잡아도 스무 권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 속에 한 권 추가하게 된 것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최훈의 <클로저 이상용>이다. 스포츠 동아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인데, 평소 신문이나 웹을 통해 만화를 잘 보지 않는 나 같은 독자라면 이렇게 단행본으로 보는 것이 최고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이름, 최훈 작가의 카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클로저, 즉 마무리 투수이다. 대표적인 이미지로 올해 일본으로 진출한 삼성의 오승환 선수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선발 투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야구 경기를 조금만 지켜본 적이 있다면, 그 선발만큼이나 중요한 보직이 바로 마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선발이 8이닝을 호투해도, 마지막 1이닝을 막지 못해 역전패 당하는 경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 선수의 별명인 돌부처만큼이나 감정 변화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뒷 문을 튼튼히 사수할 수가 있다. 극중 10년차 베테랑 선수인 이상용은 느린 구석 덕분에 제대로 된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여전히 2군에서만 뛰는 선수이다. 프로선수의 세계는 냉정해서 사실 1군 선수가 부상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잠깐 2군에 내려와 있기는 하지만, 실제 2군에만 있던 선수가 1군에 올라와 뛰어난 능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 거기다 신입도 아니고, 10년차 선수라면 뭐. 그의 선수 생활은 아마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2군 선수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라면.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능력이 있다. 선수 개개인의 스탯을 마치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있고, 그에 따라 게임의 흐름을 보는 눈이 있는 것이다. 감독이든 선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의 이런 능력을 알아봐 주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2군 투수코치가 1군으로 올라가면서 드디어 그에게도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는 그 기회를 살려 1군에서도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될 것인가? 앞으로 출간될 시리즈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그곳은 바로 관중들로 꽉 찬 야구장이다.

 

폴 오스터도 그렇지만, 또 야구 광 팬인 작가 중에 오쿠다 히데오가 있다. 그는 야구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전국을 돌며 야구장을 다니는 걸로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었다. '야구장 습격사건' '야구를 부탁해'인데,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들만큼이나 흥미롭다. <내게 필요한 건 야구장, CP컴퍼니 옷 그리고 여행. 승패 따윈 아무래도 좋아. 온 힘을 다해 뛰는 선수가 있고 그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는 팬이 있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야구선수가 되어야지. 누가 다시 한번 나를 낳아줘>라는 그의 멘트를 보고 있노라면, 큭큭 웃음부터 나오지만, 아마도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있고, 그 팀이 승리하면 정말 기쁘지만, 사실 승패보다는 경기를 하는 그 순간의 희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구장 특유의 공기, 선선한 바람,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머리 싸움하는 프런트, 응원가와 응원단장을 따라 하는 그 동작들.. 지금처럼 야구 시즌이 아닐 때는 손꼽아 3월의 시범경기 일정만 기다릴 정도로.. 야구 팬들은 경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열기를 기억할 것이다. 티비 중계로 보는 야구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진짜는 경기장에서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야구를 계속 보면서 규칙들이 눈에 들어보고, 선수들의 포지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경기의 흐름 같은 것이 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정말 아름다운 것은 공격이 아니라 수비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포지션이 '유격수'인 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말이다. 엄청난 투수의 제구력도 팀 내 동료들의 '수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실점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날려서 팀의 실점을 막아내는 순간, 그럴 때 그들의 아낌없는 수비 동작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 때가 있다. 마무리 투수도 어떤 의미에서는 공격보다는 방어이다. 더 이상 실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뒷문을 잘 틀어 막아서 승리를 유지하거나, 혹은 연장전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거니까 말이다. 그들의 공 하나로 다 이긴 시합이 역전패로 끝날 수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시합이 연장전을 넘어 역전승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클로저 이상용>이라는 이 작품이 더욱 재미있는 것이고, 최훈 특유의 유머 감각과 심플한 캐릭터들이 그 몰입 도를 더해준다. 작년 10월 시즌이 끝나고 나서 이제 언제 야구 보나.. 암담했었는데, 벌써 다음달이 3월이다. 야구가 그리운 이들이라면, 3월초 시범경기를 앞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뜨거운 야구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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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 지음, 박세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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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소가 온다》 를 흥미롭게 읽은 이들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 이카루스의 스토리를 통해 선택과 도전이라는 2014년의 화두를 던진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지금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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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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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신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이다. 믿음과 의심 사이의 그 조그만 간격은 사실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사소한 행동, 말투들이 쌓여 오해를 만들고, 견고하게 쌓인 세월을 넘어 믿음을 깨트린다. 그리고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간다. 외모는 점점 부모를 닮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한 소녀가 유괴당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열 다섯 살 자신의 아들일 때,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토머스 H. 쿡은 아버지가 경찰의 수사망과 마을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맞서 아들의 무죄를 증명해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보여지는 정황 증거들로 인해 가족들조차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작년에 출간되었던 윌리엄 랜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에서도 유사한 설정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내 아들이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으니 부모는 당연히 자신의 아들이 무죄라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과 증거들은 모두 아들이 살인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면, 그래도 계속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두 작품의 설정은 유사하지만 감정과 관계에 치중하는 방식이므로, 윌리엄 랜데이의 서사로 풀어나가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윌리엄 랜데이는 지방검사 출신인 이력대로, 작품 속 공판 과정을 실제 법정을 보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 있게 그려낸다.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 리얼하고, 세세하게 재판 과정을 보여 줌으로서, 피고 측과 원고 측이 어떤 입장으로, 어떻게 재판에 임하는지를 보여준다. 법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디테일로 탄탄하게 플롯을 구축하고, 사실에 입각한 현실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은 사건의 전개 과정보다는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감정의 변화와 미묘한 심리에 더욱 주목한다. 그러니까 단어 자체보다는 행간으로, 말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만들어내는 분위기에서 보여지는 침묵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 그의 작품은 물위로 돌을 던져 잔잔히 파동이 이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궁금증이 서서히 증폭되면서, 사건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서정적인 묘사와 의미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적확한 표현들은 잔잔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그 어떤 파도보다 더한 감정의 물결을 선사한다. 그래서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독자들은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가족 사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 단란한 가족 사진을 하나 떠올려보자. 평범한 어느 집에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가족 사진 말이다. 사진이란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기 위한 장치이다. 영원히 간직할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체크하고, 밝게 웃는 표정을 짓는다.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도 십 여년 전에 찍은 가족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다. 사진 속에는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도 계시고, 지금보다 많이 정정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도, 훨씬 어려 보이는 파릇파릇한 나와 동생의 모습도 있다. 사람들이 사진 속에서 짓고 있는 미소가 거짓일 수도 있다고 물론 나도 생각한다. 행복이란 그렇게 순간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현재 불행하다고 해서 그 감정이 지속되는 것은 아닐 텐데 굳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에릭은 아버지의 파산과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가족이 지탱해온 안정된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무렵에 찍은 가족 사진 속 그들의 미소는 거짓이 되는 것이다. <행복의 불빛 바로 너머에 사나운 짐승들이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는 그의 생각은 고스란히 그의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로 이루어진 두 번째 가족에게도 이어진다. 비극은 그렇게 소리 없이, 스며드는 것이다.

한적한 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에릭, 대학 강사인 메러디스의 중학생 외아들 키이스, 이들 가족의 삶은 평화롭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녀 에이미가 실종된다. 하필 그녀를 제일 마지막으로 만난 게 키이스였고, 결국 그가 유괴 용의자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기 시작된다. 아르바이트로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키이스는 사건이 벌어진 날 밤 에이미의 집에 갔었고, 그날 저녁 이후 에이미가 사라진 것이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은 키이스에게 의심 어린 시선을 던진다. 아버지인 에릭은 아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추호도 아들을 의심하지 않는 아버지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지만, 사건 당일 밤 아들의 불확실한 행적에 조금씩 의심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들에 대해 나만큼 아는 이는 신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고 싶었으나, 실상 그러지 못하는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 것도 거칠게 없다고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기는 하지만, 사실 그들이 창조한 불가사의한 존재인 아이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의 외모를 닮고, 말투와 습관을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만들어지는 자아와 내면은 고스란히 환경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이 커가는 것을 볼 때 부모들은 매 순간 놀란다. 분명히 나와 점점 닮아가는 내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 자신이기도 하고,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불가해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부모의 입장에 서보지 못한 나조차도 에릭의 마음 속에서 시작된 오해와 의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심은 산()이다. 그게 내가 아는 한 가지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 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사소하게 시작된 의심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오해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가족을 그려내는 토머스 H. 쿡의 유려한 문장들은 처연하고 슬프다. 소재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들로 문장과 단락을 만들어서 빚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더 매혹적이라는 말이다. 분명 사건이 일어나고,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있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이 충분히 조성이 되는데,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독자들은 사건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그들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캐릭터의 내면적인 부분에 대한 탁월한 묘사는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사실 의심이란 씨앗은 단순하지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한번 시작된 의심은 절대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 사실을 알았던 순간으로부터 되돌아갈 수가 없다. 연인들의 헤어짐도, 친구들과의 다툼도, 부부 간의 신뢰가 깨어지는 것도 모두 단 한 순간이다. 화해를 하고 그 순간을 모면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작된 그 씨앗은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의심이 시작되면 언제든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심을 산()으로 비유한 것처럼, 그것은 오랜 세월 쌓아온 신뢰와 구축된 관계들을 차례차례 부식시켜 바닥에 이르게 만들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메러디스는 점점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워져 가고, 키이스는 더욱 반항적이 되어 간다. 실종, 유괴에 대한 유죄판결 유무보다는 키이스가 의심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들 가족을 변화시키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키이스가 에이미를 죽였을 거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마음의 오염은 씻겨질 수가 없으니까. 서두에 언급했던 윌리엄 랜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에서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혐의를 벗는다고 해도, 의심으로부터 시작된 비난을 결코 피할 수는 없다. 자신의 아들이 '무죄'라고 결국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무고하다'는 얘기는 아니 말이다. 부모라면 자식의 결백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 증거도 없는데 범인으로 의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라면 자녀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가능성에 대해 진위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우선 부정할 방법부터 찾게 마련이니까. 이 작품의 결말은 실제 밝혀진 범인과 사건의 해결에 대해 독자들에게 제대로 한 방을 던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거기까지 이르는 그 과정이 나는 참 슬프고, 무서웠다. 이런 일은 사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벌어진 사실보다는 그 진실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해석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가족이란 사랑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그 사랑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믿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하는 그것. 믿음에는 그렇게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라는 건데, 사실 어디 우리 삶이 그렇게 되던가 말이다. 누구나 가끔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하다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진실한 믿음은 결국 상대방에게 전해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존재는 다름 아닌 가족이다. 숨쉬고 있는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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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라지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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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마는, 엄밀히 말해 대부분의 추리, 스릴러 작품들이 구축하고 있는 서사는 그것 자체로 생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는 사실과 그것을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재구축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범주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이것이 바로 할런 코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이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영원히 사라지다>가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물론 이 작품이 코벤의 최고 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최고의 페이지 터너 임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음 장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일명 히치콕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돋보인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의 글 솜씨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

"앞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뒤를 돌아봐야 한다."

 

'반전의 제왕'이라는 호칭답게 전체 58장의 챕터가 진행되는 내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반전과 폭로는 한마디로 아찔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 자체가 이 작품을 이루는 서사의 핵심은 아니다. 이미 <식스 센스>급의 반전에 단련되어 있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실상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평범한 우리의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숱한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의 문제. 배신과 질투와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가족 간의 믿음과 비밀, 연인 간의 신뢰와 사랑에 대한 팽팽한 긴장과 싸늘한 관계의 반복에 대한 것이다. 영웅이 아닌, 잘난 것도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에게 닥친 말도 안되게 복잡한 상황은 자연스레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반전은 이야기 자체로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어준다. 이 배반의 재미는 이야기 전개의 가능성이 독자에게도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지금까지 전혀 나오지 않던 설정이 등장한다면 그것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뜬금없지 않나, 생뚱 맞은 것 같은데. 라는 느낌부터 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 얘기는 반전이 깜짝 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서사가 탄탄히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코벤의 작품이야말로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은 흐릿한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곳곳에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없애보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둔다. 적지 않은 이들이 새 인생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이곳, 활기 넘치는 밤의 소굴은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손상된 상태이다. 극복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렇게 견디며 평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상처는 영구적인 것이다.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의 균열이 깨지면서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하신 말씀 때문에 갑자기 윌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11년 동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형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하며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1년 전 그가 한 때 좋아했던 이웃집 여자 친구 줄리 밀러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여자를 살해한 범인으로 바로 그의 형인 켄이 지목되고, 언론보도와 대대적인 경찰수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무려 11년 동안. 만약 형이 살아 있다면 가족에게 연락을 했을 거라고 믿었던 그는, 자연스레 형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죽어가는 어머니가 네 형이 살아있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현재 그의 여자친구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그를 사랑한다는 쪽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말이다. 당황한 그는 친구인 스퀘어즈와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서고, FBI가 찾아와서 살인사건 현장에서 그녀의 지문이 발견됐다고 말한다. 이게 다 무슨 소리 인 걸까? 그리고 이어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들은, 자신이 그 동안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다. 과거의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워낙 롤러 코스터처럼 달려가는 스토리라서, 구구절절 상세한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치밀하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완벽하게 재미있다는 것.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지루한 대목도, 슬쩍 건너뛰고 싶은 부분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간다. 따라서 인물들 간의 관계와 구성은 모두 꼼꼼히 얽혀 있다. 곁다리로 이야기가 새는 대목이 전혀 없다. 물론 수많은 반전을 설득력 있게 전개 하기 위한 복선들이 지나치게 간단한 플롯에 비해 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스퀘어즈의 존재는 지나치게 만능이라 너무 이지 고잉이고, FBI의 존재나, 마피아, 유령의 존재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고 있지는 못해 중반보다는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끝내주게 재미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모든 설명이 이치에 닿는다는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무의미할 것만 같은, 하찮은 뭔가를 우연히 깨닫는 것. 누구라도 그냥 지나쳐버릴 만한 작은 사실들. 모든 것이 굉장히 잘못됐다는 깨달음이 찾아드는 섬뜩한 순간.

 

할런 코벤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따지고 들자면 법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그 실수 때문에,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 발목을 잡아, 스스로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개인적으로 코벤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했던 네 명의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간다.그 중 두 명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두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주인공은 2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라진 자신의 여동생을 찾기 위해, 사건을 다시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 20년전 여름캠프에서 네 명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숨기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크고 작은 인물들 각자의 비밀이 쌓이고, 욕망이 얽혀 엄청난 진실이 드러난다.

이렇듯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가 코벤 작품의 키워드라면, 그는 대체 왜 이런 플롯에 유독 관심이 많은 걸까? 이유는 바로 그가 인간을 읽을 줄 아는 작가라는 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끝까지 읽고 나서 지루하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소설의 경우를 한번 떠올려보자. 문장이 평범하다던가 이렇다 할 매력이나 흡인력이 부족하다던가 아니면 캐릭터가 생생하지 않다던가 등등. 하지만 근거를 제시하려 할 수록 이유를 분석하려 할 수록 결국 문제는 인물에 대한 공감 부족이 아니었던가. 우리를 만족시키는 작품이 되려면, 극적인 재미라는 장치 외에 삶에 대한 진실과 가치를 담고 있어서, 정서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벤의 작품은 거의 언제나 완벽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하나 할까?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누구나 자기 옆에 있는 누군가의 진심에 대해 한 번쯤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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