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식사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박찬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들 내뱉고, 듣게 되는밥은 먹었니?” "언제 밥 한번 먹자." 는 대사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족에게는 그것이 안부이고, 기운없는 누군가에는 격려,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걱정, 호감이 가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근한 손짓의 의미도 되니 말이다. 특히 누군가에게 직접 요리를 해준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일상처럼 가족에게 밥을 해주는 걸 포함해서 말이다.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어한다. 남자친구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도 한다. 이건 요리를 못하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평소 집에서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던, 요리는 커녕 밥조차 할 줄 모르던 그녀들이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고 싶어하는 걸까.

 

우스갯 소리겠지만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로 어른 들이 하는 말이긴 하지만, 남자의 심장은 위장 바로 옆에 있다는 얘기. 그러니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어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라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장을 보고, 재료를 고르고,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하는 그 모든 단계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쌓이는 일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너무도 쉬운 일상적인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요리를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고, 음식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먹는 간단한 요리만 해도, 직접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해서 완성시키기 까지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요리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도 말이다.

 

 

★한 아이와 세 명의 아버지

 

여기, 무려 세 명의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자이데란 인물이 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인 유디트는 그 중 누구도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럼 대체 자신들이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이 세 명의 남자와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자이데는 돈 많은 글로버만으로부터, 맛있는 요리를 하는 야콥으로부터, 못을 똑바로 펴는 라비노비치로부터, 벙어리가 되어 메모를 쓰던 메나헴 백부로부터, 어루만져주는 나오미로부터, 소리를 질러대는 오데드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의 역사에 대해 알게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야콥이 있고, 그는 무려 29년에 걸쳐 자이데를 네 번의 식사에 초대한다. 그렇게 이들의 식사가 이어지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 대해 듣게 된다.

 

살아 있는 아버지가 셋이고 죽은 어머니가 한 사람인 어린아이 자이데는 사생아였지만, 아버지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버지들을 어떤 언어로든 '아버지'라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이데가 억지로 어른스런척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어린 아이일 때는 아이스럽게, 청년 일때는 청년스럽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에 맞게 커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바로 세명의 아버지가 그에게 만들어준 환경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어머니를 사랑했던 세 명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삶의 부분들을 순서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29년에 걸친 네 번의 식사

 

 

"요리사는," 야콥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결국은 중매쟁이란다."

"고기와 소스를 이어주는?" 내가 물었다.

"아니다.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을 이어준다." 야콥이 말하며 앞치마에 두 손을 닦고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맛있냐, 자이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물었다.

"아주 맛있어요."

"그럼 중매가 성공했구나. 에스, 메인 킨드(먹어라, 내 아들아)."

 

 

우리는 밥상 혹은 식탁에 둘러앉아 함게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고, 감정을 쌓고 관계를 만들어간다. 가족이란 매일매일 '같은' 음식을 '함께' 먹는 사이란 말도 된다.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렇게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세명의 아버지 중에 한 사람인 야콥은 자이데에게 다양한 요리를 해준다. 스테이크, 크레플라크, 양고기, 이탈리아 디저트까지.. 이렇게나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주고는, 자신의 몫으로는 항상 같은 요리만 한다. 오믈렛과 블랙 올리브와 코니지치즈를 곁들인 채소 샐러드. 이 대목에서 어쩐지 그의 성격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바로 이런 사람이라 29년 동안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한 여인을 사랑할 수 있었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야콥이 요리를 하고, 자이데에게 음식을 권하는 풍경을 묘사한 글을 읽고 있는내내 로즈메리와 포도주, 올리브, 마늘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첫번째 식사

우리의 첫 번째 식사 때 야콥은 쉰다섯이었고 나는 열둘이었으며, 우리 둘다 매우 부끄러워했었다.

 

10년 뒤, 두번째 식사

우리의 두 번째 식사는 내가 제대한 직후였고, 나는 즐거웠고 비웃고 있었으며, 야콥은 나이보다 늙어 보였다.

 

12년뒤 세번째 식사

이번에 나는 서른이 넘었고, 그는 일흔이 넘었다. 나는 손에 세 번째 식사 초대장을 들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것은 인쇄된 초대장으로 다소 화려했다. 나는 그가 이 단 한 장의 초대장을 위해 인쇄소로 갔을 것임을 안다. 애정과 동정과 흥분이 나를 가득 채웠다.

 

♤야콥이 죽은 몇 주 뒤, 네번째이자 마지막 식사

야곱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네 번째 식사는 1981, 그가 죽고 몇 주 후에 있었다... 봉투 안에는 네 번째 식사의 요리법이 들어 있었다.

 

야콥이 없지만 그의 존재와 함께 하는 마지막 식사에선, 자이데가 야콥의 요리법을 보면서 음식을 만든다. 요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그였지만, 야콥의 설명은 단순하고, 따라하기에 쉬웠고, 양념과 채소는 이미 손질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이데는 금방 자신감을 얻어, 튀김을 하고, 칼질을 하고, 저으면서 물기를 짜고, 섞고, 끓이면서 야콥을 기억했다. 증기와 기름 방울이 서로 섞이지 않는 것처럼, 기쁨과 애도의 마음은 서로 섞여들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처음으로 직접 요리를 한다. 마지막 식사에 해당되는 장은 그래서 쓸쓸했지만 따듯했고, 마음이 아팠지만 행복하기도 했다.

 

 

★한 여인과 세 명의 구애자

 

있잖냐, 좀 전에 내가 네게 해준 얘기가 바로 그거다, 자이데. 어떤 커다란 이유가 있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사랑의 크기와 이유의 크기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때로는 그녀가 하는 한마디면 충분하고. 때로는 양귀비 줄기 같은 허리선만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때로는 그녀가 '일곱' 또는 '열셋' 이라고 말할 때의 입술 모양만으로 충분하지.

 

 

...언젠가 너는 작은 한 가지 때문에, 예를 들면 그녀의 눈 때문에,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때 누군가 와서 말할 것이다. 너는 그 여자의 눈 때문에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함께 살아야 하는 건 그 여자의 전체라고. 아니란다, 자이데. 네가 그녀의 눈과 사랑에 빠지면, 너는 또한 그녀의 눈과 함께 살게 되는 거란다. 그리고 그 여인의 나머지 모든 것은 그 드레스를 보관하는 옷장과 같지.

 

 

수 십년에 걸친 식사에서 야콥은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자이데에게 말을 한다.야곱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무조건적'이어서 더운 안타깝고, 아름답다. 그는 친구가 되는데 뭐 대단한게 필요한게 아니듯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주 작은 이유면 충분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여인의 눈썹 하나에 평생 사로잡히기도 하는 법이라고, 자신이 유디트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냥 '운명'적인 거였다고. 미움을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단 한 사람만있어도 충분하다고. 그건 바로 그가 상대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없는, 뭐든지 베푸는 사랑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1930년대 팔레스타인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람냄새 나는 진짜 '삶같은 이야기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뭉클하게 펼쳐진다. 유디트를 사랑했던 세 명의 남자, 모셰, 야콥, 글로버만은 각기 살아온 삶도, 성격도, 개성도 모두 다르다. 모셰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부인 토니아를 사고로 잃은 뒤 삶의 의욕을 잃고 망가져있다가, 아들 오데드와 딸 나오미를 돌봐줄 여인을 부르게 되고, 그녀가 바로 유디트이다. 야콥은 절세미인인 레베카를 부인으로 두고도 첫 눈에 유디트에게 반해 사랑에 빠져 부인을 떠나게 만들고, 고독한 삶을 산다. 소장수 글로버만은 처음에는 유디트가 굉장히 싫어하고, 무시했지만 그와 일주일에 한 번씩 술을 마시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그리고 모셰의 가족, 메나헴백부, 바트셰바 백모의 이야기, 유디트의 첫 남편 이야기, 새를 키우는 알비노, 야콥에게 요리를 포함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노슈아까지. 아주 작은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도 그 몫의 스토리는 매우 탄탄하며, 그들은 모두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하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아마도 포스트잇을 제일 많이 붙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밑줄 긋고 싶은 페이지가 너무 너무 많았다. 이스라엘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메이어 샬레브. 그의 문장력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뜻을 내포한, 누구나 알 만한 단어지만 누구도 쉽게 쓰지 못하는 표현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그 단어들은 한 자, 한 자가 모여서 마치 병풍을 펼치듯 눈 앞에 페이지를 이미지로 만들어내곤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자이데가 한때는 나무였던, 상처투성이 그루터기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상처투성이 그루터기를 본다. 한때는 나무였던, 까마귀들이 그 꼭대기에 둥지를 짓고, 오데드도 그 위에 집을 짓고, 야콥이 사랑의 쪽지를 붙여놓던, 그리고 소 장수 트럭이 나무 속살에 차를 박아 세우던 나무의 그루터기다. 이제 모셰가 그 그루터기에 앉아 못을 곧게 펴고, 내 상상력은 그 잘려버린 과거가 풍성하게 자라도록 한다. 다시 가지들이 무성해지고, 굵어지고, 나뉘고, 다시 잎들이 바스락거리고, 가지들이 길게 자란다. 그리고 나는 벌써 그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의 예감을 듣고, 고개를 숙이고, 나무가 쓰러져 쿵 하고 넘어가는 것을 기다린다.

 

 

이 장면처럼 마음에 쏙 드는 문장들은 자꾸 페이지를 멈추게 만들었고, 그러느라 책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 두꺼운 책을 마음 깊이 음미하는 시간이 좋았다. 단어를 꼭꼭 씹고, 행간의 의미를 헤아리면서 천... 읽는 것이 그렇게나 행복할 수가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플롯! 허를 찌르는 마지막 한 수!!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이라 읽는 내내 머리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가장 큰 장점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명확한 플롯으로 스토리가 한 방향으로 직진한다는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수많은 정보와 치밀한 구성, 탄탄한 문장들. 정말 신문기사처럼 엄청난 정보를 독자들에게 안겨주는데 그걸 멀리서 `구경`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시키는 특이한 경험. 실제 내가 사건 현장이 있는 것처럼, 마치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연쇄 살인범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김영하식 코미디. 어쩐지 이 짧은 소설 전체가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피식 웃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 남아 있는 건 찝찔한 슬픔의 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책 속에서 과거의 나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친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쓰쿠루에게 어느 날 전하는 그 문장.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마음이 덜컹거리는 걸 느꼈다. 담백한 어투, 느긋한 목소리, 군더더기 없는 문장...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를 지나서도 여전히 근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