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에 숨어둔 도둑 세 명이 있다. 쇼타는 인원감축으로 인해 회사에서 해고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살고 있다. 고헤이는 돌연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실업자 신세이다. 아쓰야 역시 백수로, 두달 전까지는 부품 공장에서 일했으나, 사고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그만둬버렸다. 이들 세명은 저금해둔 돈도 없고, 통장도 바닥나고, 집세도 두달이나 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막다른 길에 다다른 시점에서, 도둑질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갑자기 차 배터리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하룻밤 머물 공간이 필요한 그들이 숨어든 곳은 바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수십년전에 운영되던 잡화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편함에 고민을 상담하는 편지가 오고, 그들이 장난삼아 보낸 답장에, 다시 사연의 주인공이 편지를 보낸다. 빈 집에 편지를 보내는 이는 누구이며, 인적하나 드문 곳인데 답장을 넣어두면 바로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바로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과 가게 뒷문의 우유 상자는 과거와 이어져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과거의 누군가가 그 시대의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넣으면, 현재의 지금 이곳으로 편지가 들어온다는 것.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싶은 의문 조차 들지 않도록, 인물들의 삶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이 신비로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수십년전, 실제 나미야 잡화점이 운영될 당시에서는 아이들의 장난 가득한, 엉터리 편지들로 시작이 됐었다. 일종의 놀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미야 할아버지는 장난편지에도, 엉터리로 지어낸게 뻔한 얘기에도 성의있게 답장을 해주었다. 하다못해 백지로 보낸 편지에도 말이다. 어느 날은 서른 통이나 되는 편지를 장난처럼 보낸 이에게, 일일히 답장을 하려고 하자 참다 못한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이건 어떻게 보건 못된 장난질이에요. 진지하게 대해주는 게 바보짓이죠."
하지만 늙은 아버지는 전혀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딱하다는 듯이 다카유키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아직도 뭘 몰라."
내가 뭘 모르느냐고 짐짓 불끈해서 따지고 들자 아버지는 서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돼."
왜 사람들이 나미야 잡화점에 자신의 고민을 적어서 보내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음 한 구석의 구멍을 메워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아무런 대가없이, 정성스레 대꾸해주는 나미야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끙끙대던 고민을 꺼내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워낙 좋아해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모두 보았고, 또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웬지 선뜻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 편지를 주고 받는 다는 설정때문이었는데, 에피소드 나열식의 이야기에 별로 흥미가 없었던 탓이다. 단편집 혹은 에피소드 나열식의 이야기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만 그만큼 깊이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랄까. 이번 작품은 그런 나의 우려를 괜한 걱정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할까. 다양한 사연들이 전개되고, 실제 편지 원문과 답장 원문이 게재되어있음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달토끼, 생선가게 예술가, 길 잃은 강아지 등등의 필명으로 이어지는 고민 상담과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별개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 각각의 인물들이 사연에도 충분히 공감이 되고, 그들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묘한 운명에 감탄하게 된다고 할까. 게다가 단순히 과거에 운영되었던 고민상담의 사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도둑 삼 인방이 우연찮게 개입되어 과거의 그들과 편지를 주고 받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달라지고, 또 그 결과가 현재의 도둑 삼 인방에게 영향을 준다.
별 생각없이, 장난처럼 아무 뜻 없이 보낸 자신들의 답장때문에, 과거의 한 인물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결국 그들도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은 놈들한테, 쭉정이 백수인 우리한테..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준 이의 진심을 느낀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불그레한 눈에 눈물이 글썽이던 그 때에, 마지막 답장이 도착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이런 기적을 믿지 못해서 테스트하려고 넣어둔 백지 편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답장이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 이건 뭐.. 나는 그냥 이 작품에 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감동이란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울컥하게 되는 감정이니 말이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라고 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어떤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서 과거의 편지가 현재의 누군가한테 오고 거꾸로 현재의 누군가가 우유 상자에 넣은 편지는 과거의 누군가에게 배달되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바로 지금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든다. 그렇다면 나의 가슴 속 구멍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따뜻한 조언을 해주실 것만 같다. 말도 안되는 환상이란 걸 알지만서도,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진짜 기적은 바로 이런게 아닐까 싶다. 나미야 잡화점에 들러서 나도 행복을 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