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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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모든 사람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쯤 있다.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따지고 들자면 법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때문에 누구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죄에 연루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그런 비밀을 남보다 잘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싶은 진실이 과연 사실인가.에 있다.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이니까.


535페이지면 결코 훅 책장을 넘길만한 읽힐 분량은 아니다. 보통 이 정도 두께면 사건이 많거나, 캐릭터나 주변 묘사가 많거나..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어느 한 대목은 지루해서 슬쩍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지루한 대목도, 슬쩍 건너뛰고 싶은 부분도 없다.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간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구성은 꼼꼼히 얽혀 있다. 불필요하게 곁다리로 이야기가 새는 대목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치밀하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완벽하게 재미있다.

 

  

 
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했던 네 명의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간다.그 중 두 명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나머지 두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 중인 용의자가 있지만, 그는 다른 범죄는 인정하면서 두 학생에 대한 죄는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사라진 나머지 두 명도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고들 생각하고 있다. 살아있다면 가족들에게 20년이나 돌아오지 않고 숨어있을 이유가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죽은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던 중에, 그가 바로 20년전에 사라진 아이들 중 한명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죽은줄 알았던 아이가 성인이 되어 여태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나머지 한 명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주인공은 20년 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라진 자신의 여동생을 찾기 위해, 사건을 다시 재조사하기 시작한다.


자, 20년전 여름캠프에서 네 명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숨기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크고 작은 인물들 각자의 비밀이 쌓이고, 욕망이 엃겨 엄청난 진실이 드러난다.

 

"사건마다 달라요. 하지만 첫 번째 단계는 항상 같죠. 의뢰인을 읽는 것. 한마디로,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는 거예요. 그들이 진실을 원하는지, 아니면 거짓을 원하는지, 이혼까지 무리 없이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원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모두 진실을 원하지 않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현실이 어떠한 흠도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과감하게 현실을 비틀어버려요. 남편의 부정이 확인되지 않으면 그들은 나같은 사람을 보내 남편을 유혹하죠."


재미있지 않은가. 인간의 본성은 이런 것이다. 대부분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의심해서 불륜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하는 이들이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절박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그들은 진짜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욕망을 위해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도 서슴치않는다는 것. 하지만 누군가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한다는 것.

 

할런코벤도 바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책은 꼭 놓치지 말고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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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위로 - 누구도,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이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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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란, 누군가를 위해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일.

음식이란 단순히 주린 배를 채워주고 미각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함께 먹는 사람들, 나누는 대화들까지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음식이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요리란, 그저 재료들을 조리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떤 맛을 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담느냐가 더 중요하다.

 

연말, 연초에 엄청나게 바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터라, 지난주부터 정신없게 일만 하고 있다. 그래서 종일 물먹은 솜 마냥 축축 늘어져서는 퇴근 무렵에는 바닥까지 붙어버릴 것만 같다. 얼마나 피곤한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것마저 귀찮아질 정도.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다. 어서 퇴근하고 따뜻한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값비싼 스테이크나 피자, 치킨등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은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어서 집에 가서 그냥 찌개랑 밥이랑 마음 편하게 먹고 싶은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이렇게 지친 영혼에 활기를 주는 일종의 위로이다.

 

 
몇 년 전부터 인기있었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나 앤티크, 영화 카모메 식당등... 음식점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음식에 얽힌 사연이란 사람마다 제각각 다양하게 마련이어서, 에피소드는 넘쳐 날 수밖에 없으니, 공감이 가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할테니 말이다. 감동적인 사연도 있고, 유쾌한 사연도 있었고, 다양한 음식들의 향연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 남는 아쉬움은, 왜 우리 나라에는 이런 식당이 없지? 였다. 나도 하루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퇴근하면서, 혼자 단골 식당에 들러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거든. 그런데 우리 나라는 패스트푸드 점을 제외하면 혼자 음식을 시켜 먹기란 여간 눈치보이는 일이 아니다. 어떤 식당은 아예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며, 혼자온 사람을 문전박대하는 곳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책 '맛있는 위로'가 내심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거리 한 곳에 정겹고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심야식당 '루이쌍끄'라니,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한번 가봐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뉴도 그렇고, 단골 손님들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고, 결코 소박해 보이지는 않는 식당이라 조금 망설여지기는 한다. 압구정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아니라 삼청동에 있는 조그만 라멘집이나 우동집이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셰프님, 이것도 인연인데, 요리 잘하는 비결 좀 알려주심 안 돼요?"
"음, 이건 진짜 비밀인데... 일본 영화<카모메 식당>봤어요? 거기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와요. 식당 주인에게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묻자
그가 답하죠. '한 사람을 위해 끓이면 맛이 더 좋아집니다.' 이 음식을 선물하고 싶은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만들어봐요. 그럼 분명 점점 더 맛있어질 거예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할 때의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는 이상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재료 준비부터, 레시프를 정리하고, 만들고, 그 사람이 먹는 걸 볼 때의 그 설레임.. 접시 하나에 담을 음식을 위해 한시간씩 장을 보고, 두시간씩 요리를 해야한다는 걸, 해보지 않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는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음식들의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봉골레파스타, 스테이크, 수플레, 쇼콜라 등 평소 집에서 간단히 도전하기는 힘든 프랑스음식과 디저트 대한 레시피들은, 어렵지 않게 요리를 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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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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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악질적인 장난에라도 휘말린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악몽인 것만 같았다. 절대 깨지 않는 악몽.
나와 우미에의 하나뿐인 딸, 저 홍갈색 눈동자. 가여운 요리코, 죽은 우리 딸. 누구보다 사랑했던 딸이 죽어서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관 속에 누워 꼼작도 하지 않는다.

요리코 내 딸, 내가 알았던 요리코, 내가 몰랐던 요리코.

관 속의 싸늘한 몸은 대체 어느 쪽 요리코지?


14년전 교통사고로 아내는 하반신의 모든 기능을 영원히 잃고, 배속에 있던 아들도 잃어버린다. 이제 니시무라 부부에게는 외동딸 노리코만이 행복의 전부이다. 그런데, 17살짜리 딸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살해당했다고 한다. 자, 당신이 니시무라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엄청난 불행을 겪으면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일은 없겠지..싶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 작품의 시작은 딸을 잃어버리고 분노에 차서 범인에게 복수하는 아버지의 수기로 진행된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물론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않고, 피해자의 부모가 복수를 하는 게 옳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저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만큼의 상황에 공감은 되었다는 얘기다. 실패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던 그의 완벽한 계획, 스스로 '페일 세이프' 작전이라 부르는 그 작전은, 만에 하나 실수fail가 있더라도, 다시 안전safe해진다는 의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복수 후에 자살하려던 그는 살아남고, 수기를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된다.

 

재조사가 진행이 될 수록,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보여지는 것 이면의 숨겨진 진실들이다. 완벽해 보이는 '페일 세이프' 작전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고, 남겨진 수기에서 감춰진 비밀이 밝혀진다. 이야기는 촘촘하고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마지막 반전은 쿵.하는 울림을 남긴다.

 

"니시무라씨는 어떤 분인가요?"
"아내를 끔찍히 위하는 남편이에요." 다에코가 현재형 어미에 힘을 주어 말했다. "마치 아내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는 듯 헌신을 다하는 분이라, 그런 사랑을 받는 부인은 행복한 분이에요."
"요리코에게는 어땠나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였죠."
"그게 끝입니까?"
다에코가 순간 실눈을 떴다.
"왜요?"
"니시무라 씨 수기와는 반대라는 느낌이 들어서요. 상냥하고 이해심 많은 남편.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버지.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그랬거든요."


이야기가 아직 중반이 넘지 않았을 때, 무심코 스쳐갔던 다에코와 린타로의 대화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자 문득 이 대목이 다시 떠올랐다. 단순히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니시무라에 대한 대화일 수도 있지만, 읽는 순간 뭔가 이질감이 들었던 대목이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이 대화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는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무섭지만,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에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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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과 사이코
스티븐 레벨로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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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2013년 개봉한 앤서니 홉킨스,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히치콕〉의 원작이다. 히치콕의 명성이야 다들 알겠지만 그 중에 <사이코〉는 영화사상 최고의 스릴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이코>에 대한 제작과정이 궁금했다면 매우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다만 히치콕에게도 관심이 없고, 영화 <사이코>도 보지 못했다면, 내용 파악하기가 다소 어려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히치콕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사이코>의 제작비화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의 전체 내용이다.

 

1957년, 전대미문의 살인마 에드 긴 구속

1959년, 에드 긴 사건을 모티브로 보러트 블록의 소설 <사이코> 출간

1960년, 히치콕,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예산으로 촬영을 시작하다.

 

 

이 책은 '미치광이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전대미문의 살인마 에드 긴 구속되는 걸로 시작한다. 영화 <사이코>를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영화보다 실제가 훨씬 더 끔찍스럽다. 그리고 얼마 뒤, 마흔 살의 작가 로버트 블록이 에드 긴 사건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일게 되고, 날것 그대로의 사실들에 매료된 블록이 소설로 구상하게 된다. 바로 위대한 작품 <사이코>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남자주인공의 시점과 여주인공의 시점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와서 이 모텔에 묵는 여주인공을 만들어 냈습니다. 소설에서는 흔치 않은 방식을 취하고 싶었죠. 여주인공을 설정하고, 문젯거리를 부여하고, 독자들이 그녀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호감 가는 인물로 만든 다음, 이야기가 3분의 1 정도 진행됐을 때 그녀를 죽여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맙소사, 이제 어떻해? 그녀가 죽었잖아."

 

살인 에드 긴에 대해 수집한 몇 안되는 사실을 가지고, 블록은 중심 인물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이상심리를 파헤치기 좋아했던 블록은 엽기적인 주인공의 선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수단과 동기를 구상한다. 그리고 특히나 블록은 여주인공이 죽는 타이밍뿐만 아니라 방법에까지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모두에게 유명한 샤워 살인장면이다. 사람이 샤워할 때만큼 무방비한 상태도 없다는 생각에 그 장면을 구상하게 되었다는 블록. 히치콕이 이 작품을 영화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바로 이 샤워실 장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히치콕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는데는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책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불쾌하고, 스릴러 팬들에게조차 충격적일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독창적이라는데는 이견을 달 수 없지만, 영화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 영화계의 평가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콕은 작품의 영화화를 추진했고, 계약, 시나리오부터 제작준비, 촬영, 후반작업과 홍보에 이르기까지 개봉 전 영화의 제작 단계가 모두 이 책의 구성이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에 대한 리포트가 될 수도 있겠고, <사이코>가 만들어진 배경에 이런게 있었겠구나. 하는 단순 흥미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것.

 

"나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싫어합니다. "히치콕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내 소신을 굽히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일을 할 때 선을 정확히 긋습니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질색이에요. 그건 사기 행위니까요......난 그런 사람들은 잘라내 버립니다."

 

서스펜스의 거장이라고 칭송되어지만 히치콕 감독의 소신, 작업 스타일을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사이코>에서 샤워 살해장면은 겨우 3분도 채 되지 않지만, 무려 77번의 다른 앵글이 담기고, 이 씬을 찍는데에만 무려 11일이 걸렸다고 한다. 전체 촬영기간이 겨우 82일이라는 걸 본다면 얼마나 이 장면을 중요하게 촬영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 탄생하게 된 걸테고 말이다. 앤서니 홉킨스가 분한 히치콕 감독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가 되는 것 또한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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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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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해둬라. 세상 일을 안다고 해서 인생이 편해지는 건 없어. 아니, 십중팔구는 인생을 더 어렵게 만들지."
"상관없어요. 저는 알고 싶어요."


언젠가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하는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고서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였는데, 당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더라. 그로부터 무려 10여년 이나 지난 지금, 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단 한 권의 소설!이라는 카피를 걸고 나온 책이 있다. 바로 '마르첼로 시모니'의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이다. 감히 '장미의 이름'에 견줄만한 책이 있을까 싶지만, 고딕풍 지적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오랜만에 머리가 즐거워지는 책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비슷한 장르의 책들이 한참 쏟아져 나온 시기가 있었지만, '지적 스릴러'라는 장르는 말처럼 쉬운 종류는 아니다. 작가가 해당 분야에 대해 엄청난 해박한 지식과 엄청난 자료조사가 밑받침되어어만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꼼꼼한 고증이 없다면, 이야기는 전부 거짓말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각주들을 참고 해가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허구의 세계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잘만하면 독자들이 깜빡 속아넘어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라는 특정한 한 시기에 대한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이므로, 가상의 이야기지만 정말 '진짜'같은 리얼한 세계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는 우리는 태생적으로 수수께기에 매혹되는 독자들이다.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각 장소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책에 대한 수수께끼는 프로방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으로 나타나는데, 꼼꼼한 주석들을 참고해야 하지만 인물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만한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멋지다.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 책임감과 위기를 불러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에 대한 욕망을 포기 할 수 없다면, 바로 이 책에 도전해야한다.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냐시오는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덩달아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우테르 벤토룸>에 대한 집착이 그를 유혹과 두려움에 무감각한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우테르 벤토룸>이라는 희귀도서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욕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을 가지고 있던 비비엔 신부가 가면을 쓴 한 무리의 기사들에게 쫓기다 골짜기로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스토리는 그로부터 13년 후, 비비엔의 친구이자 유골상인인 이냐시오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데,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비비엔 신부의 이름이 언급되고, 귀족 가문 출신의 백작이 희귀도서를 찾아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하면서 이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냐시오와 함께 모험의 여정을 떠나게 되는 윌라름과 우베르토의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다. 두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고, 가지고 있는 사연이 흥미로워 캐릭터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만 윌라름과 우베르토에 대한 캐릭터성은 명확한데 비해, 정작 주인공인 이냐시오라는 인물은 정확히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않고, 일행들에게 말하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 대해서도 조금 언급이 될 뿐 구체적이지 않다. 정의로운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속으로 꿍꿍이가 있는 것 같고,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와 반대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가 왜 그랬는지는 모험의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다. 아하, 이런게 바로 반전의 묘미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는 정말 엄청나다. 치밀하게 구성된 거대한 음모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이 책은 마르첼로 시모니가 구상중인 지적 스릴러의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3부작의 두 번째 소설인 『연금술사의 잃어버린 도서관』이 얼마전에 현지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니, 두번째 작품도 어서 빨리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냐시오와 그의 일행들이 펼치는 또 다른 모험의 여정이 너무나 궁금해서 빨리 두번째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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