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어디까지 내려가 봤니? - 해수면부터 심해까지 바다 동물과 누비는 여행
자눔베르토 아치넬리 지음, 줄리아 차파로니 그림, 김여진 옮김 / 런치박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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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깊은 해구인 마리아나 해구라는 것이 있다. 북태평양의 서쪽 대양에 위치해있는 이 해구의 가장 밑바닥의 깊이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을 넘어설 정도이며, 수압은 지상의 기압보다 무려 천배가 넘는 다고 한다. 아직까지 탐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라 신비로 둘러싸인 장소이기도 하다. 


2012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잠수정을 타고 이곳을 탐험한 일은 인류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는데, 사실 심해 탐험은 우주 탐험보다도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높은 산을 정복하고, 우주선을 타고 달에도 다녀왔지만, 지구 내부의 탐험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 땅속, 그리고 빛조차 닿지 않는 바닷속은 사실 1만 미터만 들어가도 매우 위험하다. 인간의 몸이 견디는 압력의 1,100배나 높기 때문이다. 기압이 0인 우주에서는 우주복으로 견딜 수 있지만, 심해에서는 그조차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심해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있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바다가 지구 면적의 70프로를 넘게 차지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바다는 5프로도 안된다니 그래서 더욱 궁금한 미지의 세계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바로 그렇게 바다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시켜준다. 게다가 무척 아름다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일반적인 가로 형태가 아닌 세로 형태로 되어 있다. 왼쪽에 바다의 깊이를 의미하는 미터 표시가 되어 있어, 책 장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점점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푸른 빛깔의 해수면에서 시작해 캄캄한 어둠 속의 에베레스트산의 높이(8,848미터)에 맞먹는 깊이의 심해까지 도달하는 여정이다. 깊이 별로 구분하는 표해수대, 중심해수대, 점심해수대, 심해저대, 초심해저대 별로 각각 서식하는 다양한 해양 생물들도 만날 수 있다. 수천 대기압이 넘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는 생물들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북극곰이 헤엄치고, 연어와 정어리가 노닐고, 벨루가와 범고래를 만날 수 있는 깊이에는 햇빛이 아주 잘 들어서 바다가 밝은 느낌이다. 수심 200미터가 지나가면 이제 햇살은 만나볼 수가 없다. 수온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고, 표면의 바닷물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얼음 벽을 만난다. 




이집트의 스쿠버 다이버가 2014년에 332.35미터까지 잠수하는 신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는 15분 만에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지만, 바다 표면까지 올라오는 것은 16시간이 걸렸다. 지나치게 빨리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혈액 속에 녹아 있던 기체가 다시 기화되면서 위험한 공기 방울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1000미터부터 시작되는 첫 심해층은 염도가 낮고, 빛이 사실상 거의 들지 않는 곳이다. 수온도 낮고, 먹이도 찾기 힘들며, 우주처럼 고요한 곳이라 이 영역에서는 생물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이렇게 깊은 곳에 사는 생물들은 그들이 사는 환경만큼이나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몸집이 아주 큰 생물들도 있고, 입만 크고 몸집은 작은 생물도 있다. 4000미터 아래 심해저대에서 바다는 정말 바닥도 없이 하염없이 내려간다. 어둠과 침묵만 칠해진 수직의 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초심해저대라 불리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데스라 불린다. 실제로 이 해저대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딱 세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해수면에서부터 무려 1만 1000미터 아래에 있는 깊은 골짜기인 마리아나 해구에 도달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책을 통해서 바다의 깊숙한 곳까지 천천해 내려가며 각각의 해수대별로 그곳에 사는 대표적인 어류 78종을 만났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마치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영역부터 완벽한 침묵과 고독만이 있는 해저까지 구석구석 살피는 경험은 그야말로 놀라운 '체험'과도 같았다.


2024 볼로냐 라가치상 "THE SEA" 부문 대상을 수상한 책답게 매우 아름다운 그림책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그림과 다채로운 바다의 빛깔들을 통해 바다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었다. 호기심많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좋고, 바다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에게도 너무 멋진 책이다. 책 속에 몸을 싣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가보자. 잠수복 대신 이 책 한 권이면 된다. 최종 목적지는 해저 10,920미터에 있는 마리아나 해구이다. 해양 생태계를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는, 독서로 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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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어디까지 내려가 봤니? - 해수면부터 심해까지 바다 동물과 누비는 여행
자눔베르토 아치넬리 지음, 줄리아 차파로니 그림, 김여진 옮김 / 런치박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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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생태계를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는, 독서로 할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여행을 경험하게 해주는 놀라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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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트 영매탐정 조즈카 2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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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신사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는 해결편이에요. 모든 단서가 제시됐습니다.”

익숙한 그 모습을 보고 마코토는 납득했다.

아무래도 보고서에 적을 내용이 단번에 늘어날 것 같다.

히스이는 양손 다섯 손가락을 맞대더니 그 끝이 마코토를 향하도록 내밀었다.

“범인은 자명. 하지만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과연, 당신은 탐정의 추리를 추리할 수 있습니까?”              p.108 


한 IT 벤처기업의 대표이사 겸 사장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욕조에 들어갈 때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머리를 부딪혀 욕조 물에 빠진 상태로 익사했다. 사건은 사고사로 처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초등학교에 불법 침입을 시도하던 남자가 3층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전교직원이었던 그는 여러 학교에서 불법촬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직 형사가 운영하는 탐정회사의 직원이 권총으로 자살했다. 건너편 건물에 목격자가 있었지만 정확하진 않았고, 현장에는 그 어떤 흔적도,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세 사건 모두 무난하게 종결될 예정이었다. 조즈카 히스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안경 너머의 애교 섞인 갈색 눈망울. 크고 빨간 안경테는 완벽한 용모를 차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랑스러움을 매력적으로 드러낸다. 프릴 혹은 레이스로 장식된 블라우스에 짧은 스커트, 완만한 웨이브를 그리는 긴 흑발 머리, 누구나 한 눈에 아이돌이나 아나운서 같은, 텔레비전 속에나 존재할 법한 인종이라고 생각할 법한 인물이 바로 서양 인형처럼 아름다운 여성, 조즈카 히스이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데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와서 친구도 거의 없고, 나이대에 맞는 일반적인 경험도 부족해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소녀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영감이 있어 죽은 존재를 보거나 사람의 기운 같은 걸 느끼는 능력으로 경찰의 수사에 협조해왔다. 덕분에 경시청이 다루는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일부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안다고 해도, 물적 증거가 있어야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조즈카는 사건 현장을 둘러본 뒤, 대부분 범인이 누구인지 간파하지만, 단서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논리적 사고 과정을 거쳐 기소에 필요한 증거를 찾기 위해 애쓴다. 





"선생님, 그럴 수는 없어요. 더는 아무 말 마세요."

나나코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왜...... 난 옳은 일을 했어. 모두를 지켰다고! 그런데!"

나나코는 눈을 떴다. 에리를 응시하며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아니에요, 선생님! 틀렸어요. 아시겠어요? 이 세상에 옳은 살인 같은 건 없어요! 옳음이란 거품처럼 덧없고 허망한 거예요! 독선적인 살인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요!... 허울뿐이더라도 믿어야 해요! 아시겠어요? 아시겠냐고요! 사람의 생명은 단 하나뿐이에요! 내세도, 부활도, 전생도 없다고요!"                  p.248~249


2020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에 빛나며 전례 없는 미스터리 차트 5관왕의 신화를 기록했던 <영매 탐정 조즈카>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자와 사코는 주로 라이트 노벨 작품들을 써왔는데, '영매탐정 조즈카' 시리즈 역시 캐릭터 설정부터 표지이미지까지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정말 제대로 된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맞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캐릭터와 서사의 부조화에서 오는 독특함이 오히려 신선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작품이었다. 전편은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 범인을 지목하는 미소녀 영매와 추리소설가이자 경찰의 자문탐정이 그에 대한 근거를 찾아내서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작품은 ‘도치서술inverted’ 형식으로 진행되어 더욱 흥미로웠다. 범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범인을 밝혀놓고 시작하는 서술 방식이다. 범인이 어떻게 범행을 저지르는지 그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조즈카에게 추적당하는 범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영능력이니, 심령현상이니, 오컬트 같은 것에 관심이 있거나 믿지는 않는다고 해도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바라고 있지 않을까. 설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이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사후 세계가 있기를 바란다거나, 억울하게 죽은 이의 영혼이 가해자를 찾아내도록 도와 준거나 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물론 영매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다니,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거나, 영시로 범인을 특정한 다음 그 정보를 토대로 분석해 과학 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논리를 이끌어내거나 법적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 진다. 그 어떤 트릭과 꼼수도 현실을 넘어서는 영능력 앞에서는 헛수고가 될테니 말이다. 아무리 철벽같은 알리바이를 만들고 극악무도한 사건을 우연한 사고로 위장하더라도 조즈카의 초월적 능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전작에서는 살인 현장에 머물러 있는 희생자의 영혼과 접속하거나 사건이 벌어지던 순간을 카메라처럼 포착하기도 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논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 보다 본격미스터리다운 면모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영매탐정 조즈카' 시리즈는 촘촘하게 짜여진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재미와 함께 시종일관 본격 미스터리와 라이트 노벨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분위기로 독자들과 밀당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 지루할 틈 없이 두툼한 페이지가 금방 넘어간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작품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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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코끼리 스콜라 어린이문고 42
김태호 지음, 허지영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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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시가 온통 눈보라로 뒤덮인 어느 날, 물러나던 추위가 갑작스럽게 변덕을 부리자 보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파트 단지 너머 공원을 바라본다. 어제 공원에서 계속 쫓아오던 강아지가 생각나서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미는 다움이를 불러내 공원에 산책을 가기로 한다. 보미와 다움이는 굵어진 눈발에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공원에서 눈이 소복이 덮인 동그란 덩어리를 발견한다.


그것의 정체는 얼어 죽은 개처럼 보였다. 몸이 이미 차갑고 딱딱했다. 하지만 보미는 동물 변원에 한번 데려가보자고, 배가 아직 따뜻하다는 데 희망을 건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이미 늦었다는 말만 할뿐, 할 수 없이 보미는 축 늘어진 강아지를 집에 데려와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기적처럼 강아지가 약한 숨을 토해 내더니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강아지라기엔 어딘가 생김새가 이상했다. 



"이 녀석은 강아지냐 코끼리냐?"

할아버지가 달코를 안아 들고 물었다.

"달코끼리...... 이름은 달코야."               


온몸이 보송보송한 흰 털로 덮여 있고, 크기도 두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라 얼핏 보면 강아지 같아 보이지만, 길쭉한 코 모양과 둥글납작 커다란 귀는 꼭 작은 코끼리 인형처럼 보이는 존재. 강아지 같은 코끼리의 이름은 '달코'다. 동그란 달처럼 빛나는 모습때문에 달을 닮은 코끼리, 달코라고 이름을 붙였다. 꽁꽁 얼어붙은 채로 발견한 존재가 기적처럼 살아났으니 보미와 다움이는 달코를 잘 보살피며 키워 보려고 한다. 하지만 코끼리는 60에서 70년을 살고, 몸무게는 1,000킬로그램이 넘게 자라는데다 하루에 200에서 300킬로그램 정도 먹고, 또 먹은 만큼 엄청난 양의 똥을 싼다고 하는데... 과연 아파트에서 무사히 키울 수 있을까. 




보미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달코가 있던 장소에서는 메말랐던 생명이 따뜻한 빛을 품고 되살아났다. 누렇게 메말라 죽어 가던 작은 화분 속 식물이 연한 녹색의 잎들을 피워내기 시작했고, 시들시들 죽어 가던 할아버지의 비닐하우스 속 양배추들도 파릇파릇한 잎을 단단히 모으고 살아난다.  


한편, 다움이의 엄마인 강해라 시장은 도시를 대표할 만한 새프로젝트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달코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코끼리는 코끼리인데 강아지처럼 흰 털로 덮인 작고 귀여운 코끼리라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완벽한 캐릭터라고 생각한 것이다. 강해라 시장은 달코를 동물원에 데려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고 하고, 부시장은 다음 선거를 위해 달코를 이용하려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는데... 과연 보미와 다움이는 잡혀간 달코를 무사히 구출시킬 수 있을까. 




‘달코 프로젝트’로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강해라 시장, 달코를 앞세워 차기 시장 당선을 노리는 부시장, 온라인 세상에서 보이는 것만 믿고 이러 저리 휩쓸리는 시민들까지. 탐욕스러운 어른들에 맞서 달코를 구출하려는 두 아이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동물병원 의사와 트럭을 운전하는 보미의 엄마 등 선한 어른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 기후, 인간성 등 많은 것이 파괴된 사회에서 우리가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 곁에서 어른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탐욕에 맞서는 두 아이의 모험이 사랑스럽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생태, 자본주의, 인간성을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 덕분에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잠시 자연과 맞서 달리는 속도를 조금만 늦춰보면 어떨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연이 스스로 회복해낼 수 있도록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건 어떨까. 달코가 지나간 자리에는 메말랐던 생명이 따뜻한 빛을 품고 되살아난다. 생명을 살리는 신비한 코끼리 달코와 함께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지구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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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괴이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조영주 외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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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카페에서 일할 때였다. 누군가 내 귓가에 '정말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기분. 영감이 아니라 누군가 진짜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는 그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길 뿐이라는 생각...... 예전에는 이런 게 다 내 기분 탓이라고, 원래 글에 홀리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 여겼지만 이 녹음은 뭔가 이상했다. 나는 이게 기분 탓인가 확인하기 위해 엄마에게 의견을 물었다. 엄마는 "또 헛소리를 한다"고 하면서도 일단 녹음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말했다.

"너 원래 혼잣말 많이 하잖아. 한 말 또 하고 또 하잖아.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 조영주, '영감' 중에서, p.39


작가인 '나'는 데뷔전 카페에서 10년간 일한 전업 바리스타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가 커피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고, 오늘도 한 출판사의 편집자의 소개로 실력자가 운영한다는 카페를 소개 받는다. 고풍스러운 목조풍의 인테리어에 중년 여성 바리스타가 있는, 추리소설의 한 장면 같은 카페였다. 카페의 사장이 추리소설 덕후라는데, 카페의 한쪽 벽면에 동서고금을 망라한 추리소설이 모두 모여있었다. 이후 종종 나는 그 카페에 들렀지만, 5년이 넘도록 사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가끔 바리스타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게 다였고, 그 기이한 문답은 언젠가부터 쪽지로 변했다. 그들은 쪽지를 통해 소설의 감상문을 주고 받기도 했고, 질문에 답변을 해주기도 했으며,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마침 나는 작가 여섯 명과 함께 '무진 십자가 사건'을 주제로 작품을 쓰고 있는 참이었다. 카페 사장은 그에게 '당시 사건 자료 등을 보며 비슷한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라고 답변을 했고, 나는 카페를 빠져 나오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긴급 수술을 받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된다. 병원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는 영감을 받아 풀리지 않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녹음기를 통해 구술을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다음 날 녹음한 내용을 확인해보니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이중으로 들리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여러 번 확인할수록 두 목소리가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마치 누군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걸 그대로 따라 읊는 듯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대체 영감의 정체는 무엇이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십자가를 등지고 숲속을 바라보았다. 장 씨가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숲이다. 무진의 그곳과는 달리 사방이 꽉 막힌, 절대 고독의 빈터, 장 씨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는 무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다. 어디선가 까마귀 우는 소리가 작은 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삼키며 어둑어둑해지는 공간을 깨웠다. 정신이 들었다.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던 모양이다. 거센 바람이 산을 흔들었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다. 때가 오고 있다. 나는 잡목들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그 공간에서 나왔다.             - 김세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중에서, p.235


오래 전 문경의 폐석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 그대로 한 남자가 발견되었다.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졌고, 양손과 양발에 굵은 대못이 박혀 있는 잔인한 모습에 목격자들은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처형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신 근처에 십자가 설계도와 실행 계획서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이를 근거로 자살로 판단한다. 하지만 여러 정황과 현장의 증거물들을 통해 전문가들은 타살이거나, 죽음을 도와준 조력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봤다. 이 사건은 여러 의문만 남긴 채 미스터리로 남았고,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을 소재로 미스터리 앤솔러지가 탄생했다. 


여섯 명의 소설가가 실제 사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 단편소설을 써냈다. 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작가는 호러, 추리, 미스터리, SF 등 다채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실제 이 소설을 쓰며 으스스한 경험을 한 작가도 있었고, 실제 사건이 가져온 파장보다는 사건 당사자의 시선에서 내적 탐색을 시도한 작가도 있었다. 남자가 죽기 직전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가에 대해 고민한 작가도 있었고, 그는 왜 하필 그런 죽음을 선택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도 있었다. 한 가지 사건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해석하고, 다른 장르로 풀어낸다는 점부터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여섯 소설가의 목소리로 재해석한 ‘십자가 사건’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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