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 지구, 인간, 문명을 탄생시킨 경이로운 운석의 세계
그레그 브레네카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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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멸종을 초래할 만한 크기가 아니라면, 운석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다. 먼 옛날에 생긴 이 암석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주 공간을 떠다녔지만, 먼 과거의 정보를 담고 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즉, 수십억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놀랍도록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 상대적으로 빈약했기 때문에, 운석에는 아주 오래전에 이 암석이 생성될 무렵에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여주는 스냅 사진이 담겨 있다.              p.18~19


137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났고, 46억 년 전에 태양계가 생성되었으며, 공룡의 시대를 거쳐 그들이 멸종하고,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우주의 역사에 대해 읽다 보면 항상 궁금했었다. 그런데 대체 과학자들은 저 먼 과거의 일들에 대해 어떻게 알아낸 걸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들려 준다. 주인공은 바로 '우주에서 떨어진 돌, 운석'이다. 영화나 SF 소설에서 지구를 파괴시키는 존재로 종종 등장하곤 하는 운석은 사실 수십억 년 동안 축적된 정보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태양계의 탄생부터 우주 전체에 걸친 물리적 환경의 생성과 진화에 대해 알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창'과도 같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우주화학자 그레그 브레네카는 이 책에서 천문학, 화학, 물리학 등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물체인 운석이 지구와 우리의 문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원전 465년경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운석이 우주에서 날아왔음을 타당하게 논증했을 때부터 시작해 허공을 떠돌던 바위나 어딘지 모를 화산에서 튀어나온 돌덩이라는 오해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을 거쳐 운석이 지구 밖 우주에서 왔다는 주장이 과학이자 정설로 자리잡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근대 과학의 역사를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 한 가지는, 달을 탄생시킨 충돌 직후 지질학적 시간으로 아주 짧은 기간에 지구는 복잡한 유기 분자가 전무하던 상태에서, 약 40억 년 전의 암석에 잘 보존된 흔적을 남길 만큼 충분히 많은 생명이 넘치는 상태로 변한 것이다. 이러한 도약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유기 화합물 중 일부는 초기 지구의 환경에서 생겨났을 수 있지만, 과연 생명을 시작하게 할 만큼 충분한 양의 유기 물질이 만들어졌을까? 외부의 도움이 없이 그 과정이 충분히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생명은 우회전성 대신에 좌회전성을 스스로 선택했을까? 아니면 손 방향성은 사용 가능한 구성 물질을 바탕으로 사전에 정해져 있었을까? 그 답에 대한 단서가 운석에 들어 있다.              p.199~200


공룡을 한참 좋아하던 시절에는 왜 공룡이 멸종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상당히 궁금했었다. 약 1억 7500만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 집단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만약 공룡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할 수 있었을지,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보며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기도 했었고 말이다. 몸무게가 100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동물들이 어슬렁거리며 지구를 돌아다녔는데, 지질학적 시간으로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이 지나고 나자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나, 일반인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기도 하다. 공룡이 멸종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소행성 충돌일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달을 탄생시킨 충돌도, 그리고 공룡을 멸종시키고 포유류가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만들어 인류를 탄생시킨 것도 모두 '운석' 때문이다. 운석 덕분에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은 그 밖에도 운석에 관한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운석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수많은 과학적 정보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그것 외에 운석이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기까지 겪었던 여정 또한 아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의 무대는 인류가 존재한 기간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운석이 우주에서 날아와 가끔 생명을 죽이는 암석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사실 운석에 대해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기 전에는, 할리우드 재난영화 속에서 인류를 멸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존재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운석이 지구, 그리고 인류와 맺는 관계의 방식은 출돌과 대멸종 외에도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49억 년 우주를 품은 운석의 경이로운 세계가 궁금하다면, 지구와 인간, 문명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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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동물병원 5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5
권용찬 지음, 이연 그림, 최영민 감수 / 서울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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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 하나인 '쪼꼬미 동물병원' 다섯 번째 책이다. 여러 동물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사람과 동물의 세계를 더 가깝게 연결해준다는 컨셉으로 병원을 찾은 소동물 친구들의 치료 이야기를 담아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생 탐험 편'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에는 병원 밖으로 나가 야생 동물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아이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이 시리즈는 1권부터 계속 챙겨 읽어 왔다. 사실 소동물을 다루고 있는 책이 그리 많지 않은데, 정말 많은 종류의 소동물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흥미진진한 시리즈이다.


1권에서는 펫테일 게코,와 고슴도치를 시작으로 미어캣, 골든햄스터 등 10종의 동물 친구들이 등장했고, 2권에서는 역대급 예민킹 쪼꼬미인 다람쥐 '짱아'를 시작으로 아마존 청머리 앵무새, 엄청나게 작은 비어디드 드래곤, 돼지코거북, 피치스롯도마뱀, 슈가글라이더 등 10종의 소동물 친구들이 나왔었다. 3권에서는 다리가 부러진 참새 '콩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기니피그, 토끼, 모란앵무, 상자거북, 아홀로틀, 해달까지 10종의 동물 친구들을 만났었고, 4권에서는 차코뿔개구리, 오란다, 페넥여우, 주머니여우, 피그미하마, 왈라비, 레서판다 등 10종의 동물 친구들이 등장했었다.  




5권에서는 세계 동물 보호 협회가 지원하는 학술 토론회 초청장을 받고, 선생님과 함께 하루가 조수로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다. 각 지역의 희귀 동물들을 만나 볼 기회가 생겨 기대하며 떠난 하루와 선생님은 우선 남극의 세종기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턱끈펭귄'으로 조는 것 같으면서도 깨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조는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격이 까칠한 펭귄이라 더욱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잠수를 못 하게 된 웨들바다표범을 만나 원인을 찾아 도와주고, 거대한 피라미드가 보이는 이집트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무료 이집트코브라! 맹독을 가지고 있는데다 굉장히 까칠해서 더 오싹한 동물이었다. 


하루는 외국의 학회를 따라 다니다가 자신처럼 동물병원 일을 돕는 친구들도 사귀게 된다. 서로 기억에 남는 동물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귀여웠다. 그 외에도 긴팔원숭이, 볏도마뱀붙이, 고슴도치, 호스필드거북, 검목상어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쪼꼬미 시리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습 만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어 더 친근하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되는 동물의 사연이 학습만화로 소개되고, 각 장의 마지막에 해당 동물에 대한 실제 사진과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만화로 꾸민거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만화 자체도 재미있지만, '하루'의 쪼꼬미 일지가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동물들은 특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세대에 걸쳐 적응하고 진화한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동물들은 자연의 다양성을 지켜 주는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물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동물을 사람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생명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동물에 대한 정보와 병원 이야기를 만화로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물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다음 번에는 또 어떤 동물들이 등장할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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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여우전 - 구미호, 속임수의 신을 속이다
소피 김 지음, 황성연 외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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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이러니하네." 석가가 매섭게 그녀를 노려본다. "나도 매분 매초 조금씩 내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래요?" 김이 빠진 하니는 혀를 차며 말했다. "신들에겐 유머라는 개념이 없나 봐요?"

"구미호에겐 신을 도발하는 게 아주, 아주 위험하다는 사실에 대한 개념이 없나 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펜을 내려놓는다. "나한테 말할 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언젠가 형사님 커피에 독을 타버릴지 모르니까."                    p.134


인간과 요괴들이 뒤섞여 사는 기묘한 도시, 신신시. 이곳에는 구미호, 해태, 도깨비, 귀신 등 많은 크리처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 가고 있다. 속임수와 배신의 신 '석가'는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신의 왕국인 옥황에서 쫓겨났다. 형이자 천계의 왕 환인은 석가에게 크리처의 법칙을 어기는 초자연적 존재들, 간단히 말해 망나니들을 제거하는 것을 거래 조건으로 내걸었다. 석가는 지금까지 10,052명의 망나니를 저승으로 보냈고, 2만명을 채워야 이승에서 받는 형벌이 끝난다. 한편, 1452살의 은퇴한 구미호 김하니는 한때 '주홍여우'로 악명이 높았지만,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살아있는 구미호 중 가장 많은 사람을 잡아 먹었고, 보통 여우보다 힘이 세 배나 세다고 알려진 주홍여우는 이제 도시의 전설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지만, 하니는 커피를 싫어했다. 그리고 인간의 세계인 이승을 혐오하는 석가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였다. 하니가 일하는 카페에 석가가 와서 커피를 주문하는데,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로 명령을 내리며 그녀를 열받게 만든다. 결국 도저히 참지 못한 하니는 커피를 붙잡아 그에게 거칠게 들이밀고, 얼음과 커피가 쏟아져 석가의 얼굴과 옷을 다 적셔버린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못마땅해하며 앙숙이 되어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하니는 자신을 쫓아와 치근덕거리는 남자 두 명을 처리해버리고는 그들의 간을 꺼내 아직 간을 맛보지 못한 어린 구미호 소미에게 갖다 주는데, 그 일로 석가 형사가 주홍여우를 쫓게 된다. 하니는 그를 방해하기 위해 그의 조수를 자처하고 나서는데, 그렇게 성격도, 처지도, 스타일도 극과 극으로, 서로를 참아줄 수 없는 석가와 하니가 한 팀이 되어 사건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바뀔 가능성도 있지." 그가 짙은 갈색 머리 한 가닥을 기다란 손가락에 말아 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한다. 하니가 이런 상황을 즐긴다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이가 될까, 하고 고민한다. 그를 속이고 있으면서도 그가 신경 써 주는 상황이 즐겁기도 하니까. 그녀는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자백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녀가 구원받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다.     p.409


1888년에 남자 오백 명 모두가 영혼과 간을 잃었다. 그 때 너무 과식한 관계로 주홍여우는 이후로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 왔는데, 자신을 먼저 공격한 남자들을 가만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석가와 하니는 이승을 파괴하려는 요괴 어둑시니와 수많은 남자들을 죽였던 전설적인 존재 주홍여우를 함께 추적하게 된다. 하니는 참아주기 힘든 신과 함께 일하면서 그를 자신과 소미와는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도록 조종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급기야 환인은 석가를 불러 주홍여우와 어둑시니를 죽이면 그 대가로 이승에서의 형을 감면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하니는 체리 타르트와 핫초코처럼 경이로운 것들이 존재하는 인간 세계를 사랑했다. 그래서 석가가 어둑시니를 죽일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하지만 석가는 다시 신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주홍여우를 죽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석가는 점점 자신이 하니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 얼굴에 커피를 내던진 구미호, 짜증나게 밉살스러운 구미호 김하니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하니도 점점 밀려오는 죄책감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석가를 분명히 속이고 있었고, 덕분에 그는 사기꾼 여우를 절대로 잡을 수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가 될까, 액션 판타지가 될까. 이 작품은 한국 신화를 재해석한 판타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소피김의 작품이다. 섹시하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신과 아름답지만 발칙하고 건방진 구미호의 만남에서 오는 달콤 살벌한 케미와 이승의 존재와 저승의 존재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흥미로운 설정, 로맨스와 판타지를 사랑스럽게 섞은 작가의 능수능란한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도깨비>, <구미효뎐> 등의 작품을 좋아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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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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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장소들에 처음 갔을 때는 놓친 게 많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간다면 어떤 것을 받아들이든 간에, 전체적인 경험에서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다른 장소들에서 밤을 보낼 것이고, 날씨도 다를 것이며, 그 사이 내가 읽은 책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 여행 이후 얻은 깨달음들과 내가 살면서 한 실패들도 분명 예전의 인식을 바꿔 놓을 터였다. 아무리 여러 차원에서 엄밀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곳을 아무리 여러 번 여행한다고 해도, 한 사람이 한 장소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p.48~49


배리 로페즈는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풍광을 발견하고, 서른 권 가까이 책을 펴냈다. 이번에 만난 <호라이즌>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장편 논픽션으로 남극과 일흔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탐사 하며 보낸 오랜 세월을 자전적으로 돌아보는 책이다. 무려 9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얻은 평생의 경험과 배움을 집대성한 이 책은 세상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력히 일깨워준다. 청명한 여름밤에 반사 굴절 망원경을 설치하고 머리 위 밤하늘의 세계를 탐험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이따금 보이는 새나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고래를 관찰하고, 저녁 어스름이 다가올 즈음 길고 검은 대열을 이루어 바다 표면을 스치듯 날아 서식지로 돌아가는 새떼의 모습의 쌍안경으로 좇는 삶이란 어떨까. 배리 로페즈에게 여행이란 겉으로 명백히 보이는 것과 미묘하게 감춰진 것들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잊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고,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이 깔려 있는 패턴들을 경험하는 과정이었다. 





남극 대륙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무언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 빙관에서 소행성의 조각을 집어드는 일, 남극 뮤온 및 중성미자 감지 간섭계 프로젝트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는 남극점의 블루 라이트 터널을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지나가본 일, 크로지어곶의 거대한 펭귄 서식지, 미라가 된 물범의 이마에 손을 대어본 일. 이런 일들은 내가 다른 곳에서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위안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경험을 존중하고 흡수하고 싶었고, 누구든 그 경험이 필요할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p.804~805


일반인이 살면서 남극에 가볼 일이 과연 있을까. 북미 대륙의 절반보다도 넓은 땅덩이인 남극 대륙, 그 대륙의 한가운데 남극점은 연 평균온도가 영하 50도에 이르며, 기온이 영하 40도 위로 올라가는 약 3개월 반의 하절기 동안에 운행 가능한 비행기로 대원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약 3킬로미터 두께의 얼음 평원 위에 자리해 기압이 낮으며, 수분을 거의 품지 못하는 극저온의 공기는 매우 건조한 사막 환경과도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인 셈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남극 대륙에 할애되어 있다. 햇빛이 약해 희미한 그림자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지만, 공기 자체는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만큼 투명한 곳이다. 남극에서 운석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특히나 흥미로웠는데, 소행성대에서, 화성에서, 달에서 온 조각들이 남극으로 떨어져 발견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해빙 밑에서 하는 작업 또한 흥미로웠다. 두께가 2미터나 되는 단단한 얼음이 뒤덮고 있음에도 그 아래 수심 약 20미터까지는 놀랍도록 빛이 잘 든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 속에 빙산이 휘저어놓지 않은 영역에는 생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베리 로페즈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캐나다의 북극권에, 갈라파고스 제도에, 아프리카 케냐에, 남극횡단산맥의 어디쯤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의 글은 내가 앞으로도 살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체험하게 해준다.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구 곳곳의 풍경과 사람, 역사, 생물학, 인류학 등을 토대로 세계를 탐구하는 이 경이로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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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리더란 무엇인가 - 하버드 케네디스쿨 역사 리더십 수업
모식 템킨 지음, 왕수민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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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가 리더를 만드는 게 아니라, 리더가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리더십은 절대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리더십은 수단만 있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자질도 아니거니와, 이것이라고 딱 잘라 가르쳐줄 수 있는 공식도 아니다. 역사를 대강만 훑어도 진정으로 중요한 리더는 위기가 닥쳤을 때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세상에서건, 마키아벨리의 세상에서건, 우리의 세상에서건, 심지어 신이나 운이 리더를 만드는 데 관여하기 마련이라 믿는 사람의 세상에서도.              p.49


역사학자 모식 템킨의 하버드 케네디스쿨 강의 ‘역사 속 리더들과 리더십’을 기반으로 쓴 <다시, 리더란 무엇인가>를 어크로스의 600P 클럽으로 읽었다. 매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리딩 가이드를 통해 미션과 필사를 하며 차곡차곡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지금 우리 눈앞의 현실을 보자면, 희망을 상상하기 힘들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리와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용기 있게 싸움에 나선 이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완전히 놓치는 않게 되는 것 같다. 


대공황시대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여성 참정권 운동의 쌍두마차 캐리 채프먼 캣과 앨리스 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미라발 자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과 맬컴 X, 로버트 맥나마라, 마거릿 대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리더들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리더의 실질적인 대응 방식, 리더가 권력이 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그 반대의 경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리더가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리더의 이상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리딩 가이드에 수록된 미션 질문들이 이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분열이 심화되고 경제가 주저앉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투사형, 반란자형, 성자형 중 어떤 리더십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오래 고민해보았다. 과연 이러한 시국을 타개해 줄 새로운 리더가 등장해 줄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간절한 마음이 되었다.





우리는 리더십을 으레 긍정적인 무언가로 생각하길 좋아한다. 리더십은 하나의 대의를 상징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변화와 변혁을 이뤄내기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판에 박힌 생각일 뿐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번지르르한 이면에는 살벌하고 변치 않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대의가 현실에서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 변모를 갈망하는 이유,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의 현실이 비루하거나, 점점 더 비루해지고 있어서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은 인간 자신, 더 정확히 말하면 권력자들이 행한 선택의 결과로 빚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p.312~313


사람들이 위기와 재난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인물을 찾는 일은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자기들 리더들 때문에 누차 낙담하는 일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다. 우울하기만 한 오늘날, 과거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시절을 이끌 리더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리더가 역사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역사가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저자는 리더십을 둘러싼 두 오랜 논쟁에 주목한다. 리더가 역사를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과 역사가 리더를 만들고 제약한다는 마르크스 같은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어떤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 사유해보는 시간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리더십의 본질과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켰는지를 주로 살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이 그런 리더를 어떤 식으로 만들고 제약을 가했는지를 살펴야 할까? 


역사에는 암울하고 힘겨운 순간들이 가득하다. 여러모로 볼 때 지금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순간들에 행해지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 역사 속 리더들과 그들의 리더십을 통해 진정한 리더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두 역사의 한 지점을 다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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