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메메드 - 상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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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가장 기다리고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군도>이다. 하정우, 강동원 두 배우의 시너지 효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백성의 시각에서 그려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스토리적인 재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달에 개봉하게 될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극중 하정우 배우가 맡은 역할이 평범한 인물에서 도적떼에 들어가게 되면서 의적으로 변모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적 메메드>와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겠다. 의적이란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층의 핍박을 통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의 울분과 한이 쌓여 만들어낸 영웅 캐릭터라 하겠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그런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나서는 이들이 의적인 것이고, 우리의 홍길동, 일지매, 장길산, 임꺽정 등이 바로 그런 시대가 만들어낸 히어로였다. 의적 메메드 역시 그런 영웅 캐릭터인데, 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가 초인적인 능력이 있는 특별한 인재가 아니라 빼빼 마르고 평범한 청년이라는 점이다.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라거나, 어떤 거룩한 소명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메메드는 친근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라 하겠다.

메메드는 충격에 휩싸였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에 빠져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왔다. 머릿속엔 온통 이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도 넓을 수가 있을까? 물방앗간 마을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그 대단한 지주 압디도 개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랑과 연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메메드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지주 압디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야......"

 

 

매일매일 땀 흘려 일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을 면하기 힘들고, 지주 압디의 핍박과 횡포에 시달리는 터키 민중의 삶은 먼 옛날 우리 민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메메드는 고된 노동과 매질에 지쳐 어머니를 두고 옆 마을로 도망을 치지만, 곧 압디의 수하들에 의해 잡혀오고 만다. 그 일로 메메드와 그의 어머니 데네는 농사를 지은 만큼의 곡식을 배당 받지 못하고 며칠을 계속 굶어야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지 어깨도 다리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키가 작았고, 팔과 다리는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고, 얼굴은 까맣게 탄 상태였다. 그는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지내던 어느 날, 친구인 무스타파와 함께 시내 구경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도시에는 지주 따위는 없었고, 가게와 땅들은 모두 개인 소유라는 것이다. , 자신이 일을 하는 것만큼의 소득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지주 압디의 핍박 아래 살았던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 그에게는 지주가 없는 마을도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탓이다. 재미있는 점은 함께 갔던 친구 무스타파는 너무 고단해서 시내에 갔던 것을 후회하면서 집으로 돌아간 반면에, 메메드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것이다. 별다른 재능 없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주인공이지만, 역시 사고 방식 하나는 남달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말라깽이 메메드라고? 그가 어린 소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용기로 가득한 인물이야.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지주 압디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걸. 그리고 사파베이는 바이바이 마을에서 저질렀던 만행의 대가를 피할 수 없을 거야."

바이바이 마을에서도 메메드와 칼라이즈의 전투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그 소식이 마을에 전해진 것은 저녁때였다.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광장에 나가 환호했다. 마침내 영웅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들은 한층 상기되어 말라깽이 메메드에 대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지어내 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눈에는 메메드가 전설적인 존재로 비쳤다. 사람들이 지어낸 메메드의 무용담은 너무 과장되어 있어서 메메드가 열 명이라도 불가능할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과장된 상상을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시내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메메드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후 연인 핫체가 지주의 조카와 강제로 약혼하게 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주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핫체와 함께 마을을 탈출하려다 압디의 어깨에 부상을 입히게 되고, 그는 그 길로 산적이 되어 마을 전체의 마음을 대변하여 지주 압디에 대항하는 의적이 되어간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메메드가 자신들의 끔찍한 삶을 바꿔줄 수도 있는 유일한 희망이 되는 것이다. 메메드는 그렇게 지주에게 대항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고, 연인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영웅이 된 메메드는 점차 마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게 된다.

야사르 케말은 <한 개인의 이야기를 전할 때, 그를 하늘에 닿아 있는 사람인 양 몹시 숭고하게 그리면 안 된다. 그는 이 지상에 견고하게 발을 붙인 채 남아 있어야 한다. 그는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의 일부분이며 특수한 사회 질서 속에 살고 있고, 그 지역 문화에 고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개인은 그가 사는 특별한 환경의 소산물이다. 때문에 그의 사고를 해부해 보려면 그를 둘러싼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을 거짓으로 묘사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걸 보면 의적 메메드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평범한 그가 의적으로 마을 전체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서사가 구축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천 명의 지주들을 죽인다 하더라도 또 수천 명의 지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테고, 가난한 자들은 영원히 비극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고 했다. 극중 메메드 또한 자신이 지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완전히 타파할 수 없거나, 어느 정도는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며 싸우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없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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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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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의 버즈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현재까지 출간된 시리즈는 두 권으로 로베르토 볼라뇨와 조르주 심농 편이었다. 버즈북buzzbook은 문이 자자하다는 뜻의 buzz book의 합성어로, 중요 작가의 신작이나 저술을 펴내기 전에 '저자나 책에 대해 미리 귀띔해 주는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볼라뇨 편은 가격이 무려 660, 심농 편은 750원이었다. 신작이 출간되기 전에 작가의 삶과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토대로 작품을 흥미롭게 조명하는 시리즈이다. 사실 가격대비 퀄리티가 너무 훌륭해서 이런 시리즈가 작가 별로 모두 다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살짝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그런 버즈북의 심화편 같은 격으로 그의 유작인 <2666>을 기려 가격도 2666원이다. 그 동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이 전 12 17권으로 4년 만에 완간 된 것을 기념으로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은 책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들을 탐독하다가 일정 대목에 이르면, 독자들은 누구나 그 작가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이 충동이 남들보다 일찍 찾아오든 늦게 찾아오든, 이미 너무 늦은 것이 되리라. 볼라뇨는 2003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전기적인 사실들(기본적으로 필자가 위에 소개한 것들과, 때 이른 죽음에 관한 언급들)은 각각의 책 표지에 인색하나마 조금씩 실려 있다. 때로 출판사가 요약한 연보에는 죽음의 원인이 <간 질환>이라고 밝혀져 있다.

 

 

문학은 물론 범죄라는 도덕적 악과 칠레의 정치적 상황 같은 사회적 악, 어둠, 죽음, 역사, 기억, 인간관계, , 행복, 광기 등 인간을 둘러싼 실로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독특한 글쓰기 형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볼라뇨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남미 최고의 작가로 추앙 받으며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너무 이른 죽음 이후 오히려 전세계적으로볼라뇨 열풍을 불러온 그는 사실 1992년에 치명적인 간 질환을 진단받은 상태였었다. 그의 작품 출간 연보를 보자면, 결국 거의 모든 소설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쓰였다는 뜻이 된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이때 그는 필생의 역작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걸작 <2666>을 써 내려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후, 작품 <2666>을 마치기 위해 간 이식 일정을 미룬 건 아닌지 추측이 무성했을 정도이니 볼라뇨가 얼마나 쉼 없는 열정으로 글을 썼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C형 간염으로 인한 간 부전으로 사망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쉰이었다. 병은 그의 말년을 시들게 하고 그늘을 드리웠지만, 일찍 죽게 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볼라뇨의 자각은 문학 에너지의 놀라운 폭발을 일으킨 촉매이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만에, 그에게 문학적 불멸을 안겨준 10여 편의 소설, 수많은 단편과 100여 편의 비평 에세이를 써냈으니 말이다.

 

10대 시절은 에드거 앨런 포만 읽으면서 보냈어요. 훌륭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포. 프랑스에선 보들레르가 포를 번역했고 중남미에선 코르타사르가 포를 번역했죠. 각자 주력 분야는 다르지만, 보들레르와 코르타사르가 프랑스어 권 문학과 스페인어 권 문학에서 각각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상 포는 단편 작가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언제나 이 사실을 생각해야 하죠. 어쨌거나 중요한 건 계속해서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항상 더 중요하니까요.

 

볼라뇨는 읽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소설을 쓰기 위해선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자신은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머릿속에 매우 정교한 구조를 짜놓는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 스타일을 떠올려보자면 전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이렇게 인터뷰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작가, 비평가, 번역가, 그의 주변 인물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로베르토 볼라뇨를 주제로 작가론, 작품론 등의 비평과 더불어 그에 대한 에세이와 그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오마주 작품을 담고 있어, 볼라뇨라는 작가에 대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도 든다. 기존 로베르토 볼라뇨 특집 판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잡지 『시클로코스미아CYCLOCOSMIA 3호의 내용과 국내 필진의 글을 함께 실어 구성이 되었는데,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스페인 작가 에두아르도 라고, 작가 장정일, 서평가 금정연, 그리고 볼라뇨의 작품을 번역한 이경민까지 다양한 필진의 글들은 볼라뇨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도 하지만, 오마주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연보 

1993 40세 소설 『아이스링크』  
1994 41세 소설 『코끼리들의 오솔길』  
1995 42세 시집 『낭만적인 개들』  
1996 43세 소설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먼 별』  
1997 44세 단편집 『전화』  
1998 45세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 출간 1999년 로물로 가예고스상 수상
1999 46세 소설 『부적』 『코끼리들의 오솔길』 개정판인 『팽 선생』 출간
2000 47세 소설 『칠레의 밤』, 시집 『셋』  
2001 48세 단편집 『살인창녀들』  
2002 49세 소설 『안트베르펀』, 『짧은 룸펜소설』  
2003 50세 단편집 『참을 수 없는 가우초』 사후 출간 사망
2004   유작 『2666』 출간  
2010   유고 『제3제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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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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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인 올리브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공동주거 프로젝트-셰어하우스에서는 가족이 아닌 10명의 싱글이 한집에 모여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셰어 하우스란 다수가 한 집에서 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 화장실, 욕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 캐나다 등의 도심에 많으며, 국내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셰어하우스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맞추어 <셰어하우스>, <나는 셰어하우스에 산다> 등의 책도 발간되어 신개념 주거양식인 셰어하우스가 일종의 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자면 대학교 앞 하숙집이나 고시원, 실버 타운도 셰어하우스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으니,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주거형태도 아닌데다, 갈수록 1~2인 가구가 증가하고 전, 월세값 폭등 등의 이유로 아마 앞으로 더 많은 형태의 셰어하우스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 집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거하는 형태의 주거 문화가 모든 이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전셋값, 월세 등의 부담을 줄이려는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확실히 경제적으로는 이점이 많은 주거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쾌적한 공간에 보증금 없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과 안전문제나 정서적인 차원에서도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1인 싱글 가구 453만 명의 시대에 접어드는 요즈음, 그러니까 1인 가구가 현재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2035년경에는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셰어하우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혼자 살기 싫어서라고 하니, 이건 뭐 1인 가구 시대의 역설이기도 하다. 최근 보도된 뉴스를 보자면 전국적으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임대 전문업체도 30여 곳에 이르고 있고, 개인 사업자까지 합치면 현재 2000여실인 셰어하우스 규모가 내년엔 5000여실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한다. 입주자는 주로 20대 후반~30대 중반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고, 이 중 10%가량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아마도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장기간 함께 살면서 안정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목적이라 젊은 층에 더욱 어필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셰어하우스"의 실상을 실제 거주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생전 모르는 타인과 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사 분담부터 소소하게 부딪힐 수 있는 많은 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셰어하우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다 이런 독특한 주거 형태가 생기게 된 사회적 배경부터 셰어하우스가 어떤 유형별로 나뉘어져 있는 지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1인 싱글 가구인 이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셰어하우스에서 지낸 경험을 토대로 <21세기형 마을 공동체 사회>라는 라이프 스타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환경을 스스로 재구축하고 다시 '타인과 서로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는 없을까? 타인과 사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수고하며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에도 익숙하다. 21세기형 마을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일을 어디까지나 꿈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고, 함께지만 똑같지 않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셰어하우스! 친구보다 가깝고 가족보다 자유로운 셰어 메이트라는 새로운 친구 형태! 가족이든 가족이 아닌 타인이든 새로운 방식으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셰어하우스라는 이색적인 주거 형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1인 주거시설의틈새 상품으로 등장한 셰어하우스가 일본의 경우처럼 좀 더 확산되어 혼자 사는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누어줄 수 있는 주거 형태로 자리잡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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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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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시리즈의 저자 나카노 교코 교수의 매혹적인 명화 해설서 두 번째 작품이다. 그리스신화를 다룬 명화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성서를 주제로 한 명화에 초점을 맞추어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담은 구약에서부터 수태고지와 세례자 요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최후의 만찬 등을 다룬 신약 이야기를 나누어 성서의 주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시점을 바꾸면 선악이 뒤바뀔 수 있다. '삼손과 들릴라'에서도 거한 삼손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들릴라는 악녀 취급을 받았다. 만약 들릴라가 유대인이었다면 적을 사로잡은 장한 투사라며 그녀를 칭송했을 것이다. [구약성서] '외전'에 바로 그런 이야기가 짝을 이룬 것처럼 실려 있어 흥미롭다.

바로 유딧 이야기다.

유딧은 수많은 소설과 희곡,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등장했고 그녀에 대한 해석은 조금씩 달라졌다.

바로크 시대의 남성 화가, 알로리가 그린 유딧을 보자.

 

같은 시기에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도 유딧을 그렸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남성 화가의 그림에서는 살인의 리얼리티를 추구하지 않고, 유딧의 미모를 찬미하기 위한 그림처럼 보인다. 여성 화가의 그림에서 유딧은 진정한 영웅의 풍모다. 범행 현장의 피와 땀 냄새까지 느껴지는 듯 실제로 남성의 목을 버걱버걱 뼈까지 깍아 낼 것만 같은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남성이 생각하는 '좋은 녀석'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전혀 매력 없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여성이 생각하는 '멋진 여성'도 남성에게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고 해설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배경과 의미를 읽어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들만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그림에는 숨겨진 사연들이 있어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기 예수의 탄생 에피소드를 다룬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등장 인물들이 화가의 후원자들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마치 유명인과의 기념 촬영을 위해 타임슬립을 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마리아 막달레나를 주제로 한 명화를 소개하며

남성의 기호와 여성의 자아도취가 뒤섞여 그녀가 젊은 여자이고 창부였으니 아름다울 것이라고 이미지가 증식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저자의 돌직구가 유쾌하기 때문에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겐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영화 "E.T.", 예수를 배반하는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 이야기는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예수의 열두 제자들의 이야기는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대표작 "7인의 사무라이", 마리아 막달레나 이야기는 서머싯 몸의 단편소설 ""를 끌어와 해석하고 있어,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준다. 나카노 교코 식 명화 읽기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거침없고 스토리가 풍부해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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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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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을 대하는 내 심정의 많은 부분은 내 인생의 그 시절과, 나쁜 습관도 모자라 멍청한 이론을 믿었으며 그나마 가끔 있었던 생산적인 침묵의 순간을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한 막 등장한 작가에 대한 평범한 향수에 젖는 것인 듯싶다. 젊은 친구들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결국 변화하리라는 것, 완성된 인물의 스틸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화, 움직이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토머스 핀천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네 명의 소설가로 꼽히는 작가라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그의 작품은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길고 복잡한 문장과 지나치게 함축적인 단어들은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를 상당히 더디게 만들어주었다. 초기에 쓴 다섯 편의 단편을 모아 작품을 쓴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84년에 출간한 것이라고 하며, 데뷔 장편이 나온 이듬해에 발표된 「은밀한 통합」을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모두 핀천이 대학생 시절에 쓴 작품들이라고 하니 거장의 풋풋한(?) 초기 작을 만나는 기쁨도 느껴볼 수 있겠다. 재미있는 건 작가 서문이 무려 삼십 페이지 가까이 될 정도로 굉장히 긴데, 아무래도 습작 생 혹은 신인작가 시절에 쓴 수십 년 전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여야 하는 작가의 부담감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는 그의 초기 단편들이 결합투성이에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처럼 밝히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그의 소박한 바램은 책을 읽어나가면서 충분히 그럴듯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긴 작가 서문에서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가급적 책을 끝까지 읽고 난 뒤에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작가 서문을 읽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작은 첨언'이라 칭하는 작가 서문은 작품 만큼이나 토머스 핀천이라는 작가의 성격과 작품 색깔에 대해 알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니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리조가 공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래, 향수병이라도 걸린 거야?" 러바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이슬비> 중에서

이번 작품집에 담긴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는 "죽음, 고갈, 권태, 획일화, 무질서, 파국, 단절"을 폐쇄회로, "쓰레기 폐기장, 엔트로피, 미국 교외, 묵시록적 종말" 등의 메타포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슬비>는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청춘의 이야기인데, 러바인은 도망치듯 군대에 들어와 반복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 안주하려는 인물이다. 핀천은 그의 삶을 폐쇄회로와 같은 고립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로우랜드>의 플랜지 역시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려 하며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인물이다. 즉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거나, 혹은 별 의미 없이 반복적이고 단절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인물들인 셈이다. <엔트로피>는 핀천 문학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엔트로피 개념을 문학적으로 처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후 핀천 소설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섯 편의 작품 중에 가장 난해(?)하다. 죽어가는 새를 살리려는 칼리스토와 아래층에 살며 친구들과 며칠째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멀리건의 모습이 번갈아 보여진다. 파티가 상징하는 무질서와 혼란, 온실이 상징하는 질서, 규칙 등의 갈등이 대비되는 이야기이다. 

"새가 죽어가." 자기만의 세계를 물 흐르듯 거니느라 넋이 나가 있던 소녀는 온실을 가로질러 가서 칼리스토의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둘은 그렇게 가만히 일분, 그리고 이분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새의 심장박동은 끝까지 우아함을 유지하며 점점 약해지다 마침내 정적에 이르렀다. 칼리스토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계속 안고 있었어." 그 믿을 수 없는 일에 무력감을 느끼며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몸의 온기를 나눠주려고 말이야. 생명을, 혹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새에게 전달해주려 했어.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열 전달이 중단되기라도 했나? 더 이상..."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엔트로피> 에서

소설집 제목인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여기 실린 다섯 편의 단편과는 상관없이 붙여졌는데, 작가로서 정점에 이른 중년의 소설가가 젊은 시절에 쓴 치기 어린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과거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물론 기나긴 작가 서문에서의 자기 고백이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겸손인지는 이 작품집을 읽는 독자 각각의 몫일 것이다. 핀천이 대학 시절에 쓴 앞의 네 편과 달리 마지막에 실린 <은밀한 통합>은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의 작품이라 그런지 읽기에 조금 수월한 느낌이다. 하지만 앞의 네 편도 핀천의 독특한 색깔을 맛보기에는 무리가 없지 싶다. , 끝까지 읽어내려면 조금의 인내가 필요하지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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