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다 sex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만남이란 어디서나 가능하다'라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제품 광고를 포함한 매스미디어와 교육뿐이다. 전 국민의 30퍼센트는 그 환상을 무비판적으로 믿으며 산다. 10퍼센트 정도는 그런 것은 환상이라고 자각하여 따르지 않고 산다. 나머지는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선 지금은 따를 수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같은 카피는 많은 사람을 기만하기 때문에 악질적이다. '좋은 사람'의 모델 자체가 이제는 소멸되었다.

 

무라카미 류가 2002년에 쓴 이 에세이는, 2014년이 된 지금 읽어도 여..히 유효하다. 종종 언제 보느냐가 결정적인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당신에게 제 시간에 도착했을 때는 그 감흥이 거의 죽고 싶을 정도로 당신의 마음을 흔들지만, 같은 작품을 전혀 다른 시간에 읽게 되면 그냥 시간의 재에 묻혀 흘러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자살보다 SEX>의 한국어 초판이 나왔던 2003년 말경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선정적인 붉은 색 표지가 인상적이었는데, 당시에 나는 그의 꽤 많은 책과 에세이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어쩐지 숨겨놓고 읽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너무도 거침없는 성에 대한 담론과 연애와 여성 론에 대한 그의 열린 이야기는 매우 당혹스러웠고, 이 책을 읽은 뒤로 한동안 무라카미 류의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후 무려 11년이 지났고, 이번에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으로 재 출간되었다. 산뜻하고 담백한 표지만큼이나,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이를 먹은 내게 이 책은 초판으로 읽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년기에 근친상간이 남긴 트라우마, 여성의 스톡홀름 증후군, SM클럽 마니아, 미성년자의 매춘, 주부의 불륜, 신혼여행지에서의 파국 등을 소재로 한 과격한 성 담론은 물론 지금 읽기에도 부담스러운 소재이지만, 11년 전만큼 뜨악 하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가면 류가 영화감독으로서 여행한 일과 겪은 사건들,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 등도 있어 가볍게 읽기에 무난한 에세이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너무도 거리낌 없는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 이런 식이다. 

 

술집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면 꽤 흥미로워진다. 우는 여자가 못생긴 여자라면 이보다 더 보기 흉한 일은 없다. 거기에 뚱뚱하기까지 하면 당장 총살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난다. 예쁜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덮어놓고 덕을 보는 걸까. 울어도 화를 내도 뭘 해도 다 예쁘게 봐준다.

화를 내는 경우라면 이보다 훨씬 더 심하다. 못생긴 여자가 화를 내면 다들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웃을 뿐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화를 내다가는 미움 받기 십상이다. 반대로 예쁜 여자가 화를 내면 정말 무섭다. 이렇듯 세상 모든 것이 차별투성이다.

 

못생긴 여자에 대한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의 시선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평범한 남자들은 그 못생긴 여자를 배려해서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을 하거나 모른 척 하겠지만, 무라카미 류는 속마음을 여실히 까발려서 얼굴이 붉어지게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게다가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는,  <남성 동지 여러분, 여자는 감금당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그러나 감금시키는 일에 성공하여 사랑을 잘 키웠다 해도, 금방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다는 것도 알아 두시 길>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 남자, 참 밉상이다. 전반부 대부분의 글들이 남성 우월주의적으로 쓰여있어 나처럼 여성독자들은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이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이라는 챕터가 그렇다. 도대체 왜 다들 연애를 하고 싶어할까.에 대한 저의를 그는 외롭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니까 말이다. 10개월 동안 어머니의 태내에서 완전한 보호를 받다가, 유아가 되어 어머니의 팔에서 내려오면서부터 살아남기 위한 투쟁과 시련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외로움이란 것과 함께 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니 전화 방에서 낯선 이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쓸모 없는 여자는 거짓말을 잘한다'는 챕터도 역시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고 싶으면 낳으면 되고, 싫으면 아이를 갖지 않으면 된다. 무리해서 결혼을 안 해도 되고, 명품을 좋아하면 죽어라 사들이면 된다>는 무라카미 류 식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발상을 바꾸어보라는 말은 어쩐지 내일부터라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라마키 류가 2002년에 쓴 이 에세이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어쩌면 감추지 않는 것에 대한 솔직한 미덕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들 나쁜 것에 대해서 숨기거나, 감추거나 포장하려고 든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성이란, 섹스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류의 말처럼 끔찍한 외로움때문에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타인의 체온에 기대어 이 생을 버티어 보는 게 더 낫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짜툰 1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1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리스마 군기 반장 뽀또, 새침하고 도도한 아가씨 짜구, 까칠하고 고독한 쪼꼬, 천방지축 막내 포비, 개성 넘치는 네 마리 고양이와 어수룩하고 무심하지만 책임감 있는 그들의 주인의 유쾌한 동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저 동물을 좋아할 줄만 알던 나는..

좋아하는 마음보다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선 준비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찐이를 통해 배웠다.

 

강아지나 고양이, 그 외의 동물들을 키워본 이들이라면 아마 알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순히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것만으로 동물을 키울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견, 유기동물들에 대한 문제 또한 어리고 작을 때 단순히 예뻐할 생각만 했지, 그들이 아프고, 늙으면 귀찮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나도 강아지를 이 십여 년 키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변에 워낙 동물을 아끼는 이들이 많아 공감할 부분이 참 많은 따뜻한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채유리가 가 아기 길 고양이 뽀또와 짜구를 처음 만나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과정부터 세 번째 고양이 쪼꼬, 그리고 막둥이 포비까지 결국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그린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곁눈질로 대충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오랜 기간 고양이와 함께 애정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마음이 짠해지게도 하고, 빙그레 미소 짓게도 만들어준다.

 

특히나 단순히 재미있는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고양이의 생활 습성이나 질병, 함께 살아가는 요령 등 유용한 정보들이 녹아있어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이나 이미 기르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현실의 장벽들 모두,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집에 들이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 혼자 나와 살면서 취직을 하게 되자 어린 고양이 혼자 빈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걱정이 되고, 결국 부모님이 다른 집에 분양을 줘버려 생이별을 하게 되고, 이후 또 우연히 고양이를 친구에게 분양 받게 되지만, 동물을 키울 수 없으니 빠른 시일 내에 내보내라는 집주인의 압박부터 산 넘어 산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통장잔고는 늘 아슬아슬했고, 생활비도 모자란 판에 고양이를 둘씩이나 끼고 살고 있는 그녀를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 누구도 이해해줄 리 만무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웠던 그녀는,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정신이 번쩍 든다.

 

 

 

단순히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라는 소유물이 아니라, 가족인 것이다. 사랑한다면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행동으로 책임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한쪽에선 길 고양이가 너무 많다며 불평과 불쾌감을 호소하고, 한쪽에선 유기되거나 이 집 저 집 내맡겨지며 천덕꾸러기가 되는 고양이들이 있고, 한쪽에선 인위적인 수술 따위를 해서까지 동물을 소유하려 드는 이기적 인간이라며 돌을 던지고...굳이 이해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경험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일에 대안도 없이 돌부터 던지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말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모든 애견 인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동물을 돕는 뉴스나 글에는 동물한테 쓸 돈 있으면 우선 가난한 사람부터 돕지?라는 반응을 보게 되곤 한다.

그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구제한 뒤에야 동물을 도우란 얘긴가?

그건 영영 불가능하잖아?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마다... 가슴이 뛰는 곳은 참 다양하다.

배고프고 약한 이들에게, 멀리 있는 가난한 나라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떤 이는 길 위의 작은 생명들에게 가슴이 뛰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에 우선순위를 매겨, 줄 세울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뛰는 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제발 버려지는 유기 동물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는 어디에서 그런 유기 동물들을 위해 마음 쓰고, 조그만 거라도 돕고, 응원을 보낸다는 사실이 든든할 때가 많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은 현재 코카스패니얼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계신다. 강아지는 어느 새 열살이 훌쩍 넘은 노견이고, 고양이 두 마리는 모두 길 가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셔서 돌보고 계신다. 처음에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앙숙이 아니던가? 신기해했었는데,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가 아주 어릴 때 데려온 터라, 강아지의 분비물을 묻혀서 자신의 새끼처럼 느끼도록 배려해주셔서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들의 북적거리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매달 유기견 협회에 후원금을 보내실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선생님을 뵐 때마다, 나도 이십여년 넘게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내 마음이 진실한지, 나만 위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곤 한다. 가벼운 만화이지만 채유리 작가의 이 웹툰에도 그런 애정의 깊이와 따스한 온기가 담겨져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4-03-17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컥했어요.. 음.. 책임..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니가 사랑하잖아..
그럼 지켜라..


감사해요.. 피오나님.. 여전히 참 좋습니다.. ^^

피오나 2014-03-26 23:51   좋아요 0 | URL
제가 댓글이 너무 늦었죠? ^^;; 지난주부터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죄송해요. ;;;;
새벽숲길님도 애완동물을 키우시는지 궁금하네요. 고야이든, 강아지든... 키워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책임감과 사랑의 의미를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만화였거든요. 사랑한다면, 지켜야죠. ^^
 



p.34 ˝왜 서울에선 친구들끼리 미리 약속을 하지 않는 걸까?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미리 약속을 잡아 확실히 해두고 그 약속을 기대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데. 다정한 약속일수록 연약하다. 정말로 왜 그럴까?˝ 역시 약속은 다정이 아니라 매정해야 지켜지는 법. 저기 담에 봐 하고 손 흔들며 지나가는 친구가 있고, 다이어리 펼친 채 언제 봐. 하고 쫓아가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속는 셈 치고 한번만 더믿어주시라. 돌아보면 그 친구, 내 얼굴일 수 있게 내 용써볼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72 여자에겐 부쩍 늘어난 블랙헤드와 다크서클이 하루 종일 우울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가 우울해도 당신 탓이 아니니 너무 의기소침해지지 말 것. 단, 그녀가 우울해하는 것이 당신 탓일 수도 있으니 너무 마음 놓지는 말 것.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간단하다. 그냥 그녀를 안아줄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2년 봄부터 1986 2월까지 약 사 년에 걸쳐 <스포츠 그래픽 넘버>에 연재한 글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넘버>에서 미국 잡지며 신문, 그러니까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등의 잡지와 뉴욕타임스 일요판을 왕창 보내준다. 그럼 하루키는 뒹굴 거리며 잡지 페이지를 넘기다,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그걸 정리하여 원고를 썼다고 한다. 스크랩북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신문, 잡지 따위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오린 것을 보관하기 위하여 책처럼 만든 것이라는 걸 기억해본다면, 이 책은 말 그대로 하루키의 스크랩북이 된다. 그는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말한다.

이 스크랩북은 문자 그대로 잡탕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맞아,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라든가 "오오, 이런 일이"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가까운 과거 여행'을 즐겨주신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스크랩한 글은 대부분이 어찌 되든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화제뿐이다. 다 읽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거나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책을 읽기에 가장 나쁜 자세와 시간대에 읽더라도 부담없이 아무 페이지나 들춰서 킥킥거리며 웃거나, 과거를 추억하는 향수에 젖을 수 있다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키의 작품은 단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장편 소설의 경우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에세이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준다. 그냥 가볍게, 별 생각 없이 흘려 읽더라도, 혹은 진지하게 읽어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도록 글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1980년대 겪지 않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색다른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될 테고 말이다. 그리고 에세이라는 것의 특성상 저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하루키가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을 세 번이나 본 스타워즈 예찬론자라는 것도 알게 되고, 스티븐 킹의 팬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 '쿠조'는 좀 지루했다는 것도 알게 되니 말이다. 그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펼쳐지는 다소 민망한 기사거리들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한참 스크랩 북이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주로 배우나 가수들의 스티커나 화보, 기사들을 모아서 만드는 거였는데, 누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선 일종의 권력(?) 가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문구점 곳곳에 브로마이드며, 각종 스티커 북이며 사진들이 즐비했고, 잡지의 종류도 천차만별 참 많던 시절이었다. 나중에는 국내 잡지만으로는 모자라서, 수입 잡지까지 구해가며 열심히 스크랩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연예인에게 열을 올리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는 주로 좋아하는 글을 쓰는 기자의 기사를 스크랩하곤 했었다. 지금은 모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신 분이 여기 저기 쓰셨던 글도 있고, 지금은 영화 감독이 되신 분이 평론가로, 에디터로 쓰셨던 기사들도 있다. 그렇게 모았던 글들은 지금도 꽤 많은 분량으로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들춰서 읽어보면 그 시간들이 떠올라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스크랩북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시간을 붙들어 놓는다는 것.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선풍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모두들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가 있었는데.라며 과거를 추억 해야 하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 이만한 선물이 또 어디이겠는가.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처럼 과거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루키의 <더 스크랩>도 같은 명목에서 독자들에게 비슷한 여파를 미치지 않을까 싶다. 책을 구매하면 주는 스크랩북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 같고 말이다. 시간을 멈추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