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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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다면 바이킹은 초록이라곤 없는 초록의 섬이나 흙이라곤 없는 돌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떻게 그들은 거기서 또다시 나무의 땅과 포도나무의 땅까지 갈 수 있는 양식을 조달했을까? 감히 내륙으로 들어가 식량을 마련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아이슬란드의 사가에 기록된 것처럼, 985~1011년 사이에 있었던 다섯 번의 원정 동안에 이 스칸디나비아인들은 과연 무엇을 먹었던 것일까? 바이킹들이 그처럼 멀고도 황량한 바다까지 여행할 수 있었던 까닭은 대구를 보존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p.45



포르투갈에 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에 바칼라우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바칼라우는 포르투갈어로 '대구'를 뜻하는데, 보통 소금에 절인 대구를 이용한 요리를 말한다. 구워먹기도 하고, 튀겨 먹기도 하는 등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요리로 활용된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값이 더 저렴한 명태를 더 많이 먹는 편이다. 명태는 대구과에 속하는 어류로 가공한 방법에 따라 황태, 북어, 코다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우리에겐 반찬으로도 익숙한 식재료이다. 


그런데, 이런 물고기가 인간의 전쟁과 혁명을 좌우하고, 역사를 뒤바꿨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분야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마크 쿨란스키가 1997년에 발표한 것으로, 국내에는 2014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최재천 교수의 감수를 더해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마크 쿨란스키는 극작가, 어부, 항만 노동자, 요리사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왔는데,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7년간 밀착 취재하고 고증한 작품이라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당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대구라는 물고기를 통해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과 문화, 역사, 환경 문제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냉장고라는 것이 나오기 전까지 상한 식품은 만성적인 문제였으며 여러 가지 상품의 무역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과거에는 고래에만 사용했던 소금 절임 기법을 대구에 적용하게 되면서,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던 바이킹은 콜럼버스보다 500년 빠르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이는 역사적으로도 아주 큰 발견이다.




고래를 사냥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고래를 구경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자연은 오락과 교육을 위한 귀중한 예시로 축소되는 중이며, 이는 사냥보다 훨씬 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원을 제외하고는 자연이 전혀 남지 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 우리는 상업적 사냥을 포기한 대신 가축용 포유류를 길러 고기를 조달하며, 야생의 포유류는 최대한 잘 보전하려고 한다. 물론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 하지만 1000년에 걸친 대서양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306



대구의 살에는 지방이 사실상 거의 없고 단백질이 무려 18퍼센트 이상이어서 물고기 중에서도 유별나게 높은 편이다. 대구를 말리면 그 살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물이 증발해 결국 농축 단백질이 되는데, 말린 대구는 단백질이 거의 80퍼센트에 달한다. 게다가 대구는 거의 버릴 게 없다. 머리는 몸보다도 더 맛이 좋으며, 부레는 산업용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알, 간, 창자, 껍질, 내장과 뼈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대구는 다른 생선에 비해 커다랗고 번식도 왕성하다. 자연스럽게 대구를 둘러싼 유럽 국가들의 경쟁이 심해졌고, 대구 어획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700년대 영국이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에 시행한 대구 무역 제한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었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어업 기술의 발달로 대구의 수가 줄어들자, 급기야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대구 어업권을 둘러싸고 세 차례에 걸쳐 ‘대구 전쟁’까지 벌인다. 이 전쟁은 세계 각국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대구 요리법도 소개되어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시대별 대구 요리법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중세 시대 프랑스식 조리법과 잉글랜드식 조리법의 비교부터 시작해 대구 머리를 불에 굽는 방법, 차우더 조리법, 푸에르토리코의 토착 요리인 소금절임대구와 쌀 요리, 아이슬란드의 전통 음식인 속을 채운 대구 알집 요리 등 무수한 나라들의 방대한 문헌을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대구 요리법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권말 부록에 '6세기 동안의 다양한 대구 조리법'이라고 별도로 요리 레시피들만 모아서 정리해두기도 했다. 익숙한 요리들도 있었고, 이름만 봐서는 맛을 짐작하기 어려운 신기한 요리들도 있어 대구 요리법을 모아놓은 책으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어종인 대구는 어자원 파괴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구의 산란성을 근거로 무분별한 남획 결과 결국 상업적 멸종 위기를 초래했고, 1992년에는 대구 어업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대서양대구의 개체수는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환경 보존의 중요성은 저자가 이 책의 초판을 쓰던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지금, 이 책이 더욱 시의적절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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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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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물고기를 통해 세계의 역사를 읽어내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 놀라운 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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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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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대표 메뉴인 비프 카레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방금 산 <오토기조시>를 펼쳐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번역한 <삼인법사>를 읽는다. 헌책을 사서 카레집이나 카페에 들어가 책을 펼칠 때의 즐거움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삼인법사>에는 다니자키의 서문이 실려 있었다. 이 이야기는 어설프고 유치하지만 구성이 훌륭하고 애수를 띠고 있어 좋다는 내용이다. 읽기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p.86


<낮술>, <호로요이의 시간>, <우선 이것부터 먹고>, <할머니와 나의 3천 엔>, <도서관의 야식>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하라다 히카의 신작이다. 음식에 대한 묘사를 잘하는 걸로도 유명한 하라다 히카는 소설을 통해서 좋은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이 줄 수 있는 온전한 행복을 만끽하게 해줘서 참 좋아한다. 지킴이 일을 하는 삼십대 여성이 하루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길 수 있는 점심에 맛있는 음식과 거기에 어울리는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그렸던 작품 <낮술> 시리즈 3권을 읽고 반해 버려서 이후 하라다 히카의 작품들은 무조건 챙겨보는 중이다. 밤에만 문을 여는 도서관과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야식이라는 설정의 <도서관의 야식>도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실제로 만들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먹는다는 판타지를 구현시켜줘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신작에서는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도쿄 진보초에 자리한 작은 서점 ‘다카시마 헌책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도쿄 진보초 거리의 헌책방 주인이 된 60대 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의 헌책방을 종종 찾았던 고전문학 전공의 대학원생, 두 사람이 헌책방을 함께 운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평생 홋카이도에서 살았던 산고 할머니는 평소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장사 경험도 없고 도쿄에서의 생활도 낯설기만 하고, 고모 할머니를 걱정하는 엄마의 부탁으로 헌책방을 드나들게 된 미키키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왜 작은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책방을 맡기지 않았을까 서운해한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책방 위층의 출판사, 옆집의 철도 전문 서점, 블렌딩 커피를 파는 카페의 사람들과 책방을 찾는 다양한 사연의 손님들 이야기가 어우러져 맛깔스럽게 잘 차려진 한상 차림의 음식처럼 다정하게 읽는 이를 위로해준다. 삼백 년도 더 된 가게에서 파는 초밥과 향이 진한 짙은 갈색의 비프 카레, 바삭하게 튀겨져 고소한 러시아의 빵 피로시키, 감칠맛과 풍미가 깊은 야키소바 등 하라다 히카가 페이지 위에 재현해내는 음식들은 그 맛과 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현재 제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당신 같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제가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웃는, 눈곱만큼도 웃기지 않은 것에 웃는 당신 같은 사람이요."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분하다.

"적어도 저한테 없는 걸 갖고 계신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센스를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만해! 반복하지 말라고.

"그래서 용건이 뭔데요?"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기가 괴로워 물었다.

"저한테 재미있는 책을 알려주시겠어요?"            p.216



이 작품의 배경인 진보초는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마을과도 같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책 마을이자, 세계 최고의 책 거리라 불릴 만한 서점 수와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서점 한 곳 한 곳이 거대한 서가가 되고, 골목길은 서가에서 서가로 이동하는 통로가 되어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애서가들의 천국이다. 오래된 책들을 진열하고 있는 헌책방들은 비슷해보이면서도 제각각 다르다. 가게의 규모, 책장의 진열 방식이나 조명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무엇보다 어떤 책을 선별해서 진열했느냐에 따라 헌책방의 얼굴도 완전히 달라진다.


한때 빼곡히 진열된 헌책들의 거리, 부산에 있는 보수동 책방 거리를 꽤나 자주 다녔었기에 진보초는 가보지 못했지만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이 된다. 오래전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희귀본이나,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는 책, 혹은 갖고 싶었던 책의 초판본 등 헌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책들의 세계는 애서가들이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리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책, 인기가 없고 오래된 책들을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읽고 싶었던 책을 그렇게 구하게 되면, 그날은 하루 종일 선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이 책은 그렇게 헌책방을 자주 다니던 시절의 향수도 되찾게 해주었다. 




하라다 히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 때문이기도 하다. 산고 할머니와 미키키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교대로 나가 점심을 사 먹고 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와서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책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거나, 찾는 책을 찾아주는 등 대화를 하다가 자신들의 음식을 함께 먹자고 권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초밥집의 게누키스시(조릿대 잎으로 감싼 초밥), 진보초 거리 최고의 비프 카레, 어린이책 전문 북카페에서 파는 따끈파삭한 카레빵, 튀긴 면에 소스를 부어 먹는 방식의 야키소바 등 책에 그림이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치 눈 앞에서 그들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묘사에 배가 고파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실 음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카페에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을 때 책을 함께 하긴 하지만, 혹시나 책에 얼룩이 묻거나 할까봐 그것도 얼른 먹고 나서 책을 펼쳤으니 말이다. 그러니 밥이나 식사가 되는 음식을 먹으면서 책을 읽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헌책이라면 음식을 먹으면서 독서를 하더라도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극중 미키키가 헌책을 잔뜩 취급하는 가게에서 음식을 낸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는데, 책에 가득 둘러싸인 채로 먹는 음식의 맛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여전히 새책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 것은 반대지만, 헌책방과 음식은 꽤나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렇게 음식과 사람, 그리고 헌책방의 소소한 일상들부터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애서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디테일이 가득한 이야기라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어딘가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매일 찾아가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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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
김랑 지음 / 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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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당 있는 집에 살다보니 꽃이야 계절별로 넘치게 많지만... 아침마다 눈 맞추고 말 섞은 아이들을 마구 꺾을 수는 없으니까. 이건 나와 꽃들의 약속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더불어 산다는 건 이런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당연한 애정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먼저 주어야 돌려받을 수 있고, 그건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다. 올 초에 게을렀던 우리를 타박하듯, 뜰 한편에 자리한 장미들에 병이 들었다. 매일같이 사과하고 미안해하며 뒤늦게 목초액을 뿌렸고, 허겁지겁 영양제도 주며 기도했다. 올해만 잘 버텨달라고, 내년에는 절대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나의 기도와 바람이 장미들에게 잘 전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p.93~94


언젠가 SNS에서 여행지를 찾아 보다가 경남 산청에 유럽에 온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민박집이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마리의 부엌이라는 귀여운 이름부터 인상적이었는데, 몸에 좋은 제철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는 동화 같은 숙소라는 소개 문구에 사로잡혀 한 동안 지리산에 여행가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마리라는 이름은 꽃마리라는 야생화의 뜻으로 자세를 낮춰야 볼 수 있는 꽃처럼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자 민박집의 이름도 마리의 부엌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어쩐지 주인장을 만나보기도 전에 상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알록달록한 식용 꽃들로 장식된 음식들과 가지런한 상차림이 너무 예뻐서 언젠가 꼭 가봐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먼저 만나보게 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표지 사진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이 예쁜 책은 지리산에 자리한 아주 특별한 민박집 '마리의 부엌'을 운영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들처럼 열심히 생계를 살아냈지만 도시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이방인 같았다는 두 사람은 10년 전,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지리산 산청에 터를 잡았다. 집 주변에 가득한 나물들을 뜯어 이웃들에게 팔고, 근처 양봉장에서 일감을 얻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여유있고 평화로운 일상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끽해온 느긋한 즐거움을 손님들도 느끼기를 바라며 민박을 시작했고, 직접 채취한 신선한 나물들과 유기농 농사로 지은 쌀과 채고, 그리고 직접 담은 장으로 소박한 밥상을 차려 내었다. 시설도 훌륭하지 못하고, 인테리어라 할 것 도 없으며, 두 주인장도 입에 착착 감기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불편한 민박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마음의 여유를 품고 지낼 수 있게 진심을 다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거두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들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그 속에서 온전해지는 사랑을. 눈을 감고 생각하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광경이 따스한 그림 같다. 시골생활이 만만할 리 없지만, 순간순간을 넘기면 참 아름다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구나 깨닫는다. 솔직히 나에게 여유란 게 생기면 1순위로 그만둘 일은 곶감이지만,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진심을 다해 감 한 알도 허투루 대하지 않을 것이다. 고운 빛깔의 감은 우리에게 꿈이자 묵상이니까.              p.150~151


이 책 속에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들 가족의 소박한 여행기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가족은 매년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30일에서 50일간 장기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딸도 함께 하다 보니 해마다 결석도 많았고, 시험을 못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제 대학에 다니는 딸이 그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 가족의 삶뿐만 아니라 여행에 대한 부분도 기사를 통해 접했을 당시부터 너무 부러운 부분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여행의 풍경들을 직접 만나고 보니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행은 보는 것, 먹는 것, 걷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덜 보고 서툴러도, 사람이 좋으면 결국 다 만족스러운 여행이 된다는 사실. '풍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순간은 영원이 된다'는 문장이 좋아 밑줄을 긋고 오래 기억해두려고 한다. 




진달래, 유채꽃 등을 따서 만드는 화전, 포슬포슬한 쑥버무리, 여름철 노지 깻잎으로 담근 간장들깻잎장,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운 원추리꽃밥, 계절에 따라 제철 재료들로 토핑이 달라지는 더덕순피자 등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의 레시피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차려진 자연밥상 챙겨 먹는 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욕심 부리지 말고 억지 부리지 말고, 없는 것보다 가진 것에 집중하는 삶, 역시 그러하다. 이들 부부가 지리산에서 찾은 행복의 실마리를 조금씩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작은 마당에선 춤추듯 향유하는 꽃들이 피고 지고, 시간과 계절을 달리하며 새들과 벌레들이 울고, 그 속에서 매일 작은 것들을 이루며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떨까. 밥 짓는 일이 무엇보다도 좋다는 아내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느껴지는 선의와 온기, 그리고 소소한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을 즐기고 감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힐링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마음의 충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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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핵심 -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부를 쌓는 방법
다리우스 포루 지음, 박선령 옮김 / 와이즈베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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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과 관련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신뢰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불어나게 하라는 것이다. 굉장히 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돈을 원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평화도 원하는데, 이 두 가지가 항상 공존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서 생활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릴 수 있다. 우리는 재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다 번영해야 한다.               p.16



부자가 되는 방법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재테크, 경제, 자기계발서들이 있지만, 이번에 만난 책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 책의 저자인 다리우스 포루는 '투자는 이론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관리의 문제'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스토아 철학에서 찾는다. 투자 전략에 스토아 철학을 적용하면 주식시장에서도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거다. 스토아 철학의 기본 원칙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에너지를 집중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내면이 평온해질 것이다. 그러면 일관된 태도로 투자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돈이 복리로 불어난다는 건데, 저자는 이러한 깨달음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적용해볼 수 있도록 알려준다. 


스토아 철학이 권하는 것처럼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알게 된다면, 균형 있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삶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2500년 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철학이 바로 삶'이었다. 철학으로 삶을 성찰하고, 삶으로 철학을 살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곧 사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특히나 논리적 증명이나 토론에만 관심이 있었던 다른 철학자와는 달리 스토아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이론을 배우고, 그것을 현실에 쉴 새 없이 적용했다. 말만 번지르르한 철학과 달리, 스토아 철학은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매일 걷는 습관을 기르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려면 날씨가 어떻든, 일이 얼마나 바쁘든 상관없이 매일 걸어야 한다. 비가 온다면 집에 있는 러닝머신 위에서 걷거나 헬스클럽에 가야 한다. 이것이 지속적인 행동으로 습관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에게는 투자 습관이 없다. 그들은 조건이 완벽할 때만 투자하고 싶어 한다... 완벽한 조건에서만 투자하고 싶다는 것은 하늘에 구름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는 29도의 날씨일 때만 산책하겠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습관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행동을 아주 단순화해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p.94~95



자, 그렇다면 스토아 철학이 알려주는대로, 어떻게 해아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될까. 어떻게 해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장기적으로 투자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책에 따르면 그에 대한 대답은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의 핵심 3단계로 1단계 나에게 투자하라, 2단계 손실을 받아들여라, 3단계 돈을 복리로 늘려라, 이다. 1단계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입의 최소 10퍼센트는 투자에 할애해야 하며, 투자가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게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2단계는 단기 손실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진 돈을 다 잃어서는 안되며, 탐욕을 버리고 굳건한 투자 마인드를 지켜야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3단계가 되면 돈이 돈을 버는 단계에 들어선다. 꾸준히 투자를 계속해 왔다면 돈이 스스로 일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원래 세웠던 투자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삶을 즐기면서도 투자할 수 있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면서 혹시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패턴에서 벗어나야 부자가 될 수 있다.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습관이 된다. 저자는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 투자 습관을 기른다고 말하며, 투자가 어쩌다 한 번씩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제시한 길을 따라가 보면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고, 저자는 장담한다. 처음에는 투자와 철학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대단히 실용적이고 현명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철학이 알려주는 투자 테크닉이 궁금하다면, 고대 철학자들의 시대를 뛰어넘는 투자 인사이트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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