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이 일본어 첫걸음
레이쌤(김하경)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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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져본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배우고, 제2외국어로 일본어, 프랑스어 등을 배워 왔지만, 정작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과 마주하게 되면 얼음처럼 굳어서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장 생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 외국어 공부를 매일 꾸준히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나 일본어는 한때 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했었기 때문에 언제나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을 그만두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고 말이다. 손을 놓은 지 오래 되어서 히라가나부터 다시 봐야 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는데, 마침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일본어 기초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귀여운 일본어 입문서'라는 설명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왜냐하면 헬로키티랑 함께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탄생 50주년을 맞은 산리오의 대표 캐릭터 헬로키티와의 콜라보로 탄생한 이 책은 페이지 곳곳에서 헬로키티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한가득 맛볼 수 있다. 게다가 헬로키티 책꾸 스티커가 포함되어 있어 나만의 책으로 마음껏 꾸며볼 수도 있다. 헬로키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예쁘고 귀엽고 친근한 캐릭터와 함께 시작하는 일본어 공부라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았다. 




20일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일본어를 처음 시작하는 입문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장에 QR코드를 스캔하면 저자 동영상 강의를 보거나 mp3 파일을 들을 수 있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그리고 발음을 익힌 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하루 분량은 4장씩인데, 그날 배울 두 문장을 차근차근 설명해준 뒤, 조금 더 확장해서 표현을 알려 주고, 배운 내용을 문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문장을 소리내어 말하고, 직접 써볼 수 있는 페이지도 별도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함께 수다 타임'에서는 일본어 표현과 문화 등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누구라도 '혼자서' 기초를 탄탄하게 쌓을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 하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싶었던 초급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헬로키티와 함께 하루에 딱 두 문장만 배우면 되도록 심플하게 구성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쉽게 구성되어 있지만 혼자서 공부하기는 어렵다면, 저자인 레이쌤의 핵심 강의가 무료로 제공되니 강의를 활용하면서 학습해도 좋을 것이다. 




영어든 일본어든 그리 쉽게 시작해지지가 않는 것이 사실인데, 어렵게 시작한다고 해도 꾸준히 지속하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일본어는 한국어와 기본 어순이 같아서 쉽게 느껴지지만, 한자를 외워야 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시작해볼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귀여운 헬로키티가 가득해 책만 펼쳐도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일본어를 처음 시작하는 학습자의 눈높이에 딱 맞춰서 만들어진 책이라 초보자들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다. 


일본 여행을 가거나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일본어 단어들이 귀에 꽂히곤 하면, 다시 한번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자주 먹게 된다. 이 책과 함께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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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 숲의 말을 듣는 법
김용규 지음 / 디플롯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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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숲의 말을 듣는 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절박함을 가늠하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헤아리며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도 이분법적인 사고와 인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열, 선악, 미추, 피아, 성패 등. 그렇게 사물과 생명, 그리고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바라 보려는 시선이 만연합니다. 단면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이 고질적인 습관을 거둘 때에 비로소 숲의 그윽한 말이 들려오 기 시작합니다.               p.43


숲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는 충북 괴산에 ‘여우숲’이라는 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인문학 공부 모임을 갖고, ‘여우숲 생명학교’ 교장으로 100회 이상 대중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10년 넘게 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등) 양성기관에 출강하며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왔다. 이 책은 숲을 거울 삼아 인간 실존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인간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탐구해가는 '숲으로 인문학하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숲에서 주로 먹거리를 보고, 어떤 이들은 숲을 돈을 벌기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등산이나 캠핑 등의 취미활동을 하거나 휴양하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숲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을 바라본다. 


가을에 발아하는 냉이는 왜 굳이 서릿발을 견디고 북풍한설과 동토의 시절을 모두 견딜까. 차라리 완연한 봄날을 골라 온기 가득하고 포슬포슬해진 땅에서 발아하는 것이 사는 데 훨씬 수월했을텐데 말이다. 우리가 봄나물로 먹는 냉이는 쏟아지는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까지 다 견뎌낸 풀들인 것이다. 냉이뿐만 아니라 서리가 내릴 즈음 꽃을 피우는 산국, 속을 비우고 어린줄기마저 녹색으로 칠하는 오동나무 등 자연은 저마다의 삶의 조건들을 불평불만없이 껴안는다. 도망치지도, 미루지도 않고, 주어진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숲에는 이렇게 풀도, 나무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보편적인 질서가 가득하다. 저자는 숲을 거닐기 시작하면서 숲을 만나는 일이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일이자, 자신과 타자를 사랑할 힘을 되찾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20년 넘게 숲을 탐구하며 알게 된 모든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숲이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숲은 미생물로부터 동물, 식물까지 다양한 생물이 서로 얽히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 공동체입니다. 특히 숲의 형성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식물은 바닥의 아주 작은 풀이나 양치식물로부터 거대한 높이로 자라는 교목에 이르기까지, 서로 생과 극의 관계로 이리저리 얽히면서 수직의 공간 구조를 형성합니다. 그 생명의 탑을 수직으로 살펴보면 이른 봄꽃들의 사연을 읽어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p.164


버드나무는 풍부한 물의 조건을 잃으면 시들어 죽게 되고, 소나무는 다른 식물이 더 높게 자라서 자신을 덮어버리면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된다. 키가 작은 냉이 역시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키가 큰 풀들이 자신을 뒤덮으면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들에게는 빛이 커다란 숙제인 셈이다. 반면 암석 지대를 서식지로 삼고 살아가는 식물에는 토양이나 수분이, 바닷가에 사는 식물에는 염분과 거센 바람 따위의 숙제가 놓여 있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 극복해야 할 숙제를 안고 태어나고, 그것을 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삶도 이러한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삶에 숙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숙제가 없기를 바라서일 것이라고 말이다. 민들레는 척박한 땅에서도 온갖 숙제를 풀어내고 기어코 꽃을 피워 자신을 증명한다. 우리도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를 극복해 나가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숲이 겉으로 보기엔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 못지않게 치열한 생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무도 풀도, 이끼도 지의류도, 참새도 까치도... 모두 저마다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내고,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절박함을 가늠하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헤아리며 마주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속 깊이 와 닿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포슬포슬한 흙을 밟고 천천히 숲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숲의 말을 듣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숲 산책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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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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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아버지는 언어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도서관에서 눈알이 빠지도록 고되게 일해서 피곤했다. 아버지는 침묵에 싸여 집으로 돌아온다. 잔뜩 쌓인 책, 서늘하고 들큼하고 퀴퀴한 공기, 통로에 하나씩 달린 조명으로는 밀어낼 수 없는, 어깨 위를 맴도는 어둠에서 온 침묵이 아버지에게 배어든 것 같다. 버드는 아버지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엄마 얘기를 묻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p.23


검열과 침묵이 일상이 된 근미래의 뉴욕,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배척된다. 이는 미국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으로 미국답지 않은 생각과 미국에 이롭지 않은 이념, 미국적이지 않은 얼굴은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된다. ‘PACT'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집에서 쫓겨나 재배치되었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PACT'가 상황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든다고, 그에 반하는 것은 비애국적인 행동이라고 배우고, 믿으며 살아왔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 버드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는다. 발신인 주소도 없이, 오직 그림으로만 채워진 종이 한 장이었지만 버드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자신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어머니라는 걸 알아본다. 버드는 편지 속 그림을 보며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PACT'는 십 년도 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고, 기록적인 속도로 선포되었다. 이후로 파괴적 시위는 과거가 되었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곳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나 행진, 폭동처럼 교실에서 배운 파괴 행위는 아니었지만, 뭔가 새롭고 이상한 행동이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기묘한 행동, 신고할 필요도 없는 해괴한 짓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누가 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부 ‘PACT'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버드는 의문의 편지를 받고 얼마 뒤, 거리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돌려달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그 문구는 아시아계 출신 무명 시인이었던 어머니가 쓴 구절 중 하나였다. 어머니도 어디선가 시위를 조직하고, ‘PACT'에 맞서 싸우기 위해 뭔가 하고 있는 것일까. 버드는 편지를 단서 삼아 왜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 어머니를 홀로 찾아 나서기로 한다. 버드는 과연 어머니를 찾아내 숨겨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탁자에 펼쳐둔 노트를 내려다본다. 줄지어 적힌 다른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 그들의 기억과 후회, 실패와 사랑,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냥 삶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기쁨과 저울질하지 않고 단순히 그 위에 덮어씌우는, 끝없이 이어지는 죄의 목록. 두 가지 목록이 서로 섞이고 합쳐지면서 모든 작은 순간이 사람을, 관계를, 인생을 모자이크처럼 이루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버드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엄마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 그녀도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               p.380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설레스트 잉의 신작이다.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는 대단히 영리하고, 굉장히 놀라운 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예리한 문장, 탄탄하게 짜임새 있는 구조, 페이지를 바삐 넘기게 만드는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질문들까지 묵직한 울림을 남겨 주었다. 인물들의 대사, 사소한 행동,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 그들이 품고 있던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서 뒤에 이어질 사건의 단서가 되고, 복선이 되었다. 마치 티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이 전개되는데, 인물 한 명 한 명의 사연들이 모두 공감되고, 이해되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혹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랜 만에 만나는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궁금했다. 


이번 작품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디스토피아로 인종, 공동체, 화합의 문제를 깊숙이 탐구한다. 셀레스트 잉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유일한 아시아계 학생이었고, 비교적 평범하게 보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조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인, 경계인으로서의 감각을 간직해왔고, 팬데믹이라는 위기가 덮쳤을 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팬데믹 이후 더욱 선명해진 아시아계 차별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이 작품은 시대를 관통하며 깊은 울림을 남겨 준다. “젠더에서 인종으로, 《시녀 이야기》의 충격을 다시 쓰다”는 평가처럼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미국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추방하라'는 오직 미국인만을 위한 미국, 이라는 설정은 바로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한 통찰과 시대성을 담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나날이 견고해지는 분리의 장벽 앞에서 소설은 언어와 이야기만이 되살릴 수 있는 힘과 기억이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적 외피를 통해 오늘날 사회 곳곳에 스며든 폭력과 고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 아름답고,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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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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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둘러보니 고기를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시대가 달라진 거죠. 담배도 안 피우고, 카페인 음료는 점점 많이 마시고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아직도 섹스는 하나 모르겠군요. 모든 게 재미없고 시들해졌어요. 개인이 지구에 남기는 흔적에 대한 담론이 줄기차게 이어졌죠. 런던으로 주말여행을 떠나거나 아우토반에서 야간 근거리 드라이브를 하는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리는 사람이 없어졌단 말입니다.            p.11~12


채식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어 육식이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 된 세상. 동네에서 정육점들은 자취를 감췄고, 레스토랑들은 일제히 메뉴를 채식으로 바꿨으며, 마트에서는 정육 코너를 다른 코너들과 분리시키고 죽은 동물의 모습이 유해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고기를 즐겨 먹었던 주인공 ‘나’는 주변의 압박과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기를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의 문제라면, 고기를 먹는 것이 매순간 주변사람들의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채식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나날이 계속된다. 


믿을 수 없이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 냉장고에 있는 소시지 한 토막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고, 급기야 환각을 바라보기도 한다. 거리를 걸으며 포크와 나이프 없이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흡입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사람들의 얼굴, 나무 위에 앉은 새들... 사방에 모든 것이 고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고기 종류가 아닌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반시간만 지나면 다시 허기가 졌으며, 계속 배가 고팠다. 그렇게 밀려오는 폭력의 환상과 싸우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티가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식사시간은 우울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작 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와 은밀하게 활동하는 육식지하조직의 수장이 그에게 접근해오면서 채식과 육식이라는 양 극단의 광기를 경험하게 된다. 




모든 게 실상은 더 복잡하죠. 베르트가 말했습니다. 갑자기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다고 해서 축산업계의 근면한 노동자들이 나를 위해 고기를 생산해내는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에요. 내가 그러기로 결심해도, 이미 많은 동물이 나를 위해 마구간에서 도축될 날을 기다린다고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한 명 더 생겼다고 캡티브볼트라든가 그런 걸 그냥 꺼버릴 수 있나요. 그러니까 불쌍한 동물들을 도살한 다음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거죠. 모든 게 그저, 내가 갑자기 그것들을 먹기에는 너무 선량해졌다는 이유만으로요.                 p.77~78


'나'는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의 블로그에 방문해 채식주의 초기의 어려움과 대응법, 어떤 문제를 어떤 식으로 가장 잘 피할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행복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읽는다. 그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채식주의는 사흘도 넘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메일로 연락을 했고, 그는 이겨내야 한다고 격려하는 답장을 준다. 덕분에 '나'의 절망은 차츰 흐릿해지고 예상 밖의 환희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톰 두부를 직접 만나 현재의 기분과 간질병과 흡사한 자신의 발작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톰 두부는 마치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처럼 '나'의 이야기에 연민을 표해가며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글을 써보라는 그의 조언대로 그의 블로그에 올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육수맛내기69’라는 수상쩍은 닉네임을 가진 자는 '나'에게 불교계와 제약산업, 무기산업, 포르노산업, 콩과 두부 산업체가 거대한 ‘채식 카르텔’을 이루어 왜곡된 채식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육식지하조직에 들어와 함께 육식주의를 되돌리자고 제안한다. 기대감에 들떠 그들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던 서사가 결국 살인과 유혈극으로 이어지게 되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그가 살인 용의자로 심문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극중 무자비한 공장형 축산의 폐해와 환경 오염에 대한 일장연설은 채식주의에 담겨 있는 불편한 부분을 도발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작가는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날카로운 풍자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어떤 가치를 지향하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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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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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리기는 마법의 명약이 아니다. 나는 이제 달리기로 인생이 주는 진정한 슬픔에 면역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내가 다시 일어설 수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날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덕에 내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했고,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경험, 진정한 사랑을 향해 전진했고, 내가 불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나는 무조건 위험과 두려움부터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기가 나를 불행에서 해방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p.46~47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달리기를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전 세계 100만 부가 판매되며 영국 전역에 ‘러닝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수의 매체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던 저자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맞이한 파경을 겪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불안장애가 악화되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마비된 것만 같았고,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고, 인생이 완전히 박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달리기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힘든 일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잠잠해졌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으며,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종아리는 불에 덴 것만 같았고 심장이 너무 뛰는 바람에 숨 쉬기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무력하게 울기만 하던 자신이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달린다.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달리기라는 행위로 발현된 것이다. 처음부터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기에, 낡은 레깅스와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9초 거리에 있는 어둑한 골목길이 시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야 하고 한적해서 자신을 비웃을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3분 정도 달린 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달리는 게 재매있지도, 기분이 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뭔가가 온갖 핑계를 짓눌렀고, 이틀날도, 그다음 날도 느릿느릿 몇 초 달리다가 멈춰서 쉬기를 반복했다.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었고, 나아질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2주 동안 그 어두운 골목을 터덜터덜 달리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은 본래 만만치가 않아서 끊임없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우리를 비틀거리게 한다. 내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러너로 산다고 항상 인생에 햇살이 비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명언이 난무하진 않았다(그런 명언 따위는 불쏘시개나 되라지).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때도 있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내게 희망이 생겼고, 걱정, 공황, 불길한 예감, 우울증이 항상 내 삶을 쥐락펴락하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가슴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서 지그시 압박을 가하지만 않아도 우리는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p.357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렇듯 체육 시간을 싫어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등산이라도 가지 않는 한 딱히 일상에서 운동 비슷한 거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일상에 치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을 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제 나이를 좀 더 먹었고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전히 달리는 것도 땀 흘리는 것도 싫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달리기의 기쁨이라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화끈거리고, 덥고,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을 질끈 묶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왜 안 돼? 달린다고 손해 볼 거 있어?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질구질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우울에 맞서고자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누구나 살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고, 그때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달리기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그 행복이란 것이 단순히 달릴 때 생기는 몰입, 쾌감, 기운을 통해서만 얻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달리기를 통해 겁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힘껏 지면을 디디면서 뇌를 지치게 하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공포증과 두려움이 서서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자, 지금 삶이 힘들고 막막하다면, 걱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중이라면, 달리기를 통해 삶이 바뀌고 공황과 불행에서 해방된 이 이야기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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