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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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아버지는 언어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도서관에서 눈알이 빠지도록 고되게 일해서 피곤했다. 아버지는 침묵에 싸여 집으로 돌아온다. 잔뜩 쌓인 책, 서늘하고 들큼하고 퀴퀴한 공기, 통로에 하나씩 달린 조명으로는 밀어낼 수 없는, 어깨 위를 맴도는 어둠에서 온 침묵이 아버지에게 배어든 것 같다. 버드는 아버지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엄마 얘기를 묻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p.23


검열과 침묵이 일상이 된 근미래의 뉴욕, 미국 전통문화 보존법 ‘PACT’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배척된다. 이는 미국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으로 미국답지 않은 생각과 미국에 이롭지 않은 이념, 미국적이지 않은 얼굴은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된다. ‘PACT'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집에서 쫓겨나 재배치되었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PACT'가 상황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든다고, 그에 반하는 것은 비애국적인 행동이라고 배우고, 믿으며 살아왔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 버드는 어느 날 편지를 한 통 받는다. 발신인 주소도 없이, 오직 그림으로만 채워진 종이 한 장이었지만 버드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자신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어머니라는 걸 알아본다. 버드는 편지 속 그림을 보며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PACT'는 십 년도 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고, 기록적인 속도로 선포되었다. 이후로 파괴적 시위는 과거가 되었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곳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나 행진, 폭동처럼 교실에서 배운 파괴 행위는 아니었지만, 뭔가 새롭고 이상한 행동이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기묘한 행동, 신고할 필요도 없는 해괴한 짓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누가 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부 ‘PACT'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버드는 의문의 편지를 받고 얼마 뒤, 거리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을 돌려달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그 문구는 아시아계 출신 무명 시인이었던 어머니가 쓴 구절 중 하나였다. 어머니도 어디선가 시위를 조직하고, ‘PACT'에 맞서 싸우기 위해 뭔가 하고 있는 것일까. 버드는 편지를 단서 삼아 왜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 어머니를 홀로 찾아 나서기로 한다. 버드는 과연 어머니를 찾아내 숨겨진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희미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탁자에 펼쳐둔 노트를 내려다본다. 줄지어 적힌 다른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 그들의 기억과 후회, 실패와 사랑,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냥 삶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기쁨과 저울질하지 않고 단순히 그 위에 덮어씌우는, 끝없이 이어지는 죄의 목록. 두 가지 목록이 서로 섞이고 합쳐지면서 모든 작은 순간이 사람을, 관계를, 인생을 모자이크처럼 이루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버드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엄마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 그녀도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               p.380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설레스트 잉의 신작이다.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는 대단히 영리하고, 굉장히 놀라운 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예리한 문장, 탄탄하게 짜임새 있는 구조, 페이지를 바삐 넘기게 만드는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삶에 대한 질문들까지 묵직한 울림을 남겨 주었다. 인물들의 대사, 사소한 행동,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 그들이 품고 있던 생각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서 뒤에 이어질 사건의 단서가 되고, 복선이 되었다. 마치 티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이 전개되는데, 인물 한 명 한 명의 사연들이 모두 공감되고, 이해되는, 그래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혹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랜 만에 만나는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궁금했다. 


이번 작품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디스토피아로 인종, 공동체, 화합의 문제를 깊숙이 탐구한다. 셀레스트 잉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유일한 아시아계 학생이었고, 비교적 평범하게 보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조금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인, 경계인으로서의 감각을 간직해왔고, 팬데믹이라는 위기가 덮쳤을 때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팬데믹 이후 더욱 선명해진 아시아계 차별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이 작품은 시대를 관통하며 깊은 울림을 남겨 준다. “젠더에서 인종으로, 《시녀 이야기》의 충격을 다시 쓰다”는 평가처럼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미국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추방하라'는 오직 미국인만을 위한 미국, 이라는 설정은 바로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한 통찰과 시대성을 담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나날이 견고해지는 분리의 장벽 앞에서 소설은 언어와 이야기만이 되살릴 수 있는 힘과 기억이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적 외피를 통해 오늘날 사회 곳곳에 스며든 폭력과 고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 아름답고,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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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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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둘러보니 고기를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시대가 달라진 거죠. 담배도 안 피우고, 카페인 음료는 점점 많이 마시고요.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아직도 섹스는 하나 모르겠군요. 모든 게 재미없고 시들해졌어요. 개인이 지구에 남기는 흔적에 대한 담론이 줄기차게 이어졌죠. 런던으로 주말여행을 떠나거나 아우토반에서 야간 근거리 드라이브를 하는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리는 사람이 없어졌단 말입니다.            p.11~12


채식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어 육식이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 된 세상. 동네에서 정육점들은 자취를 감췄고, 레스토랑들은 일제히 메뉴를 채식으로 바꿨으며, 마트에서는 정육 코너를 다른 코너들과 분리시키고 죽은 동물의 모습이 유해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고기를 즐겨 먹었던 주인공 ‘나’는 주변의 압박과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기를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할복할 것이냐의 문제라면, 고기를 먹는 것이 매순간 주변사람들의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채식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나날이 계속된다. 


믿을 수 없이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 냉장고에 있는 소시지 한 토막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고, 급기야 환각을 바라보기도 한다. 거리를 걸으며 포크와 나이프 없이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흡입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사람들의 얼굴, 나무 위에 앉은 새들... 사방에 모든 것이 고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고기 종류가 아닌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반시간만 지나면 다시 허기가 졌으며, 계속 배가 고팠다. 그렇게 밀려오는 폭력의 환상과 싸우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티가 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식사시간은 우울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작 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와 은밀하게 활동하는 육식지하조직의 수장이 그에게 접근해오면서 채식과 육식이라는 양 극단의 광기를 경험하게 된다. 




모든 게 실상은 더 복잡하죠. 베르트가 말했습니다. 갑자기 내가 채식주의자가 된다고 해서 축산업계의 근면한 노동자들이 나를 위해 고기를 생산해내는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에요. 내가 그러기로 결심해도, 이미 많은 동물이 나를 위해 마구간에서 도축될 날을 기다린다고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한 명 더 생겼다고 캡티브볼트라든가 그런 걸 그냥 꺼버릴 수 있나요. 그러니까 불쌍한 동물들을 도살한 다음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거죠. 모든 게 그저, 내가 갑자기 그것들을 먹기에는 너무 선량해졌다는 이유만으로요.                 p.77~78


'나'는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의 블로그에 방문해 채식주의 초기의 어려움과 대응법, 어떤 문제를 어떤 식으로 가장 잘 피할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행복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글을 읽는다. 그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채식주의는 사흘도 넘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메일로 연락을 했고, 그는 이겨내야 한다고 격려하는 답장을 준다. 덕분에 '나'의 절망은 차츰 흐릿해지고 예상 밖의 환희와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톰 두부를 직접 만나 현재의 기분과 간질병과 흡사한 자신의 발작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톰 두부는 마치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처럼 '나'의 이야기에 연민을 표해가며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글을 써보라는 그의 조언대로 그의 블로그에 올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육수맛내기69’라는 수상쩍은 닉네임을 가진 자는 '나'에게 불교계와 제약산업, 무기산업, 포르노산업, 콩과 두부 산업체가 거대한 ‘채식 카르텔’을 이루어 왜곡된 채식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육식지하조직에 들어와 함께 육식주의를 되돌리자고 제안한다. 기대감에 들떠 그들의 활동에 적극 가담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던 서사가 결국 살인과 유혈극으로 이어지게 되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그가 살인 용의자로 심문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극중 무자비한 공장형 축산의 폐해와 환경 오염에 대한 일장연설은 채식주의에 담겨 있는 불편한 부분을 도발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작가는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날카로운 풍자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어떤 가치를 지향하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사유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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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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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달리기는 마법의 명약이 아니다. 나는 이제 달리기로 인생이 주는 진정한 슬픔에 면역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고통에 대처하는 기술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내가 다시 일어설 수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날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덕에 내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했고,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경험, 진정한 사랑을 향해 전진했고, 내가 불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나는 무조건 위험과 두려움부터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기가 나를 불행에서 해방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기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p.46~47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달리기를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전 세계 100만 부가 판매되며 영국 전역에 ‘러닝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수의 매체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던 저자는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맞이한 파경을 겪고,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불안장애가 악화되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마비된 것만 같았고, 희망을 모두 잃어버렸고, 인생이 완전히 박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달리기였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뛰어본 적 없었던 그녀는 힘든 일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삶에서 벗어나 가장 간단하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잠잠해졌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으며, 불안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종아리는 불에 덴 것만 같았고 심장이 너무 뛰는 바람에 숨 쉬기조차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무력하게 울기만 하던 자신이 달리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계속 달린다.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은 달리기라는 행위로 발현된 것이다. 처음부터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기에, 낡은 레깅스와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9초 거리에 있는 어둑한 골목길이 시작이었다. 집에서 가까워야 하고 한적해서 자신을 비웃을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3분 정도 달린 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달리는 게 재매있지도, 기분이 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뭔가가 온갖 핑계를 짓눌렀고, 이틀날도, 그다음 날도 느릿느릿 몇 초 달리다가 멈춰서 쉬기를 반복했다.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었고, 나아질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2주 동안 그 어두운 골목을 터덜터덜 달리면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은 본래 만만치가 않아서 끊임없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우리를 비틀거리게 한다. 내 인생도 예외가 아니다. 러너로 산다고 항상 인생에 햇살이 비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명언이 난무하진 않았다(그런 명언 따위는 불쏘시개나 되라지).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때도 있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내게 희망이 생겼고, 걱정, 공황, 불길한 예감, 우울증이 항상 내 삶을 쥐락펴락하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가슴 한복판을 차지하고 앉아서 지그시 압박을 가하지만 않아도 우리는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p.357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렇듯 체육 시간을 싫어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등산이라도 가지 않는 한 딱히 일상에서 운동 비슷한 거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일상에 치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을 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제 나이를 좀 더 먹었고 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전히 달리는 것도 땀 흘리는 것도 싫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달리기의 기쁨이라니,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화끈거리고, 덥고,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신발 끈을 질끈 묶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왜 안 돼? 달린다고 손해 볼 거 있어? 


이 책은 단순히 달리기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질구질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불안과 우울에 맞서고자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치열한 생존기에 가깝다. 누구나 살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고, 그때 다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준다. 저자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달리기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그 행복이란 것이 단순히 달릴 때 생기는 몰입, 쾌감, 기운을 통해서만 얻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몰랐던 가능성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또한 달리기를 통해 겁내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힘껏 지면을 디디면서 뇌를 지치게 하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각종 공포증과 두려움이 서서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자, 지금 삶이 힘들고 막막하다면, 걱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중이라면, 달리기를 통해 삶이 바뀌고 공황과 불행에서 해방된 이 이야기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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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만에 프리토킹 - 시원스쿨 NEW 왕초보탈출
송연수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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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 공부는 기초가 정말 중요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되도록' 익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 영문법부터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학창 시절 내내 달달 외웠던 문법들이 실제 해외에 가서나, 외국인과 대화할 때 도움이 되어 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어, 영어 공부에 관련된 책은 손에서 놓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관심있게 챙겨보고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은 '100일 만에 프리토킹'이라는 제목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프리토킹이라니... 영어로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누구나 꿈꾸던 상황일 것이다. 100일 이라는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되든 안되는 일단 100일 정도만 투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보면 이 책을 집필한 엘바 선생님의 강의를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는 쿠폰이 있다. 그래서 시원스쿨에 회원 가입을 하고 무료 강의부터 들어보았다. 수강기간 5일 동안 이것저것 강의를 골라서 들어 봤는데, 정말 쏙쏙 귀에 들어오는 강의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눈동이 학습법'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잘한 문법은 신경 쓰지 말고, 우선 어순에 맞게 키워드를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어 연결을 하면서 의미에 맞게 문법을 다듬어 주면 되니, 우선은 눈덩이를 굴려 점점 크게 만드는 것이 시작이다. 누가-어쩐다(주어-동사)라는 뼈대(핵심 정보)를 기본으로 거기에 조금씩 살(주변 정보)을 덧붙이면 된다. 




영어는 화자가 말하는 순서에 따라 청자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 정보가 하나씩 이어져 점점 그림이 완성되는 순서로 말한다. 이 책은 한국어 문장을 하나하나 번역해서 말하기보단, 한국어를 그림(상황)으로 치환하고, 그 그림을 영어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저는 주중에는 7시에 일어나요>라는 문장으로 눈덩이 굴리듯 문장 말하기 훈련을 하면 이렇다. I get up (저는 일어나요) -> I get up at 7 (저는 7시에 일어나요) -> I get up at 7 on weekdays (저는 주중에는 7시에 일어나요) 이렇게 그림의 번호 순서대로 이미지를 연상해 보고 단어를 하나씩 추가해서 문장을 확장시키면 된다. 100일 동안 우리말을 이미지로 연상하며, 필요한 단어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 매일의 문장에 컬러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실생활에서 쓸법한 문장들을 끊어 읽기로 영어 리듬감을 익히고, 대화를 통해 실전 감각을 기를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왕초보에게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에서 실제로 자주 쓸법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영어 회화 책이지만, 말하기에 필요한 필수 문법과 표현 또한 쉽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영어 앞에서 매번 자신감을 잃곤 했다면, 영어 공부는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게다가 실전 대화 핸디북과 연계 강의, 원어민 MP3 음원도 제공이 되고, 스스로 문장 훈련을 할 수 있는 미션노트와 학습 단어가 총정리된 핵심 단어 500도 시원스쿨 홈페이지를 통해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기초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영어를 어렵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어순'에 있다. 영어는 '핵심 정보에서 주변 정보의 순서로' 정보를 쌓아가는 언어이고, 한국어는 반대로 '주변 정보에서 핵심 정보의 순서'로 말한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이유는 영어가 '청자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하려는 목적은 '소통'에 있다. 상대방의 말을 내가 알아듣고,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는 즉시 영어로 뱉을 수만 있으면 되는데, 이 책과 함께라면 100일 뒤에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험 공부하듯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술술 영어 문장을 말하게 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엘바쌤과 함께 눈덩이 학습법으로 공부해보자!




#기초영어교재#영어회화독학책#영어말하기책#영어회화책추천#영어왕초보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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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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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트는 이런 태도에 익숙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상관없는 존재,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그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눈에 띄지 않는 것에도 나름대로 이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p.109


대프니는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과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15년 동안 아파트 밖으로 거의 나온 적이 없다. 그리고 일흔 살 생일에, 자신에게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자식이나 손주도 없었으니 자신을 사랑하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이제 세상과 교류하고, 친구를 사귈 때가 온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까칠하고 호탕한 성격의 70세 할머니 대프니가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75세 할아버지인 아트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이다. 여전히 활력 넘치고,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불러 주는 곳이 거의 없다. 에이전시의 대표는 그의 전화를 피하고만 있었고, 요즘 하는 일이라고는 밤새도록 페이스북에 접속해 딸 케리를 몰래 추적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아트는 거리에서 광고지를 하나 발견한다.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고 싶은가요? 

만델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에 가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무료로 식사와 음료를 먹을수도, 따뜻한 복지관에서 몇 시간 보내는 것도 난방비를 아끼게 해주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랜 친구인 윌리엄을 설득해 함께 복지관으로 향한다. 19살인 지기는 혼자 딸을 키우게 된 미혼부 고등학생이다. 2학년 무도회때 여자친구와 관계로 아이가 생겼고, 지기의 엄마가 아기를 키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는 새출발을 위해 전학을 가고, 지기만 홀로 남겨졌다. 요즘은 만델 복지관의 유아원에 카일리를 보내는 동안 몇 시간이라도 자유 시간이 생긴 참이다.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아기를 돌보며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가 않다. 리디아는 젊을 때 잘나가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였으나 결혼, 출산과 함께 경력이 단절된 53세 전업 주부 중년 여성이다. 딸들이 둘다 대학에 가고 난 후, 텅빈 집에서 다른 여자가 생긴 듯한 남편과 함께 산다. 그리고 오랜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아니게 된 것이 바로 복지관에서 노인 사교 클럽을 운영하는 거였다. 그런데 모임 첫날 복지관의 천장 일부가 무너져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수십 년 만에 구한 첫 유급 일자리를 잃어 버릴 위기에 처한다. 




"죽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동네 노인들과 불 시합을 하다가 죽는 걸까요, 아니면 파차 클럽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죽는 걸까요? 우린 시인 딜런 토머스의 말을 기억해야 해요."

"뭐라고 했는데요?" 아트가 물었다.

"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라. 날이 저물 무렵에 노년은 불타고 날뛰어야 한다."                p.480


나이를 먹고 가장 서글픈 일중 하나는 겉모습은 늙었지만, 마음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 여기 꺼져가는 불빛에 분노하는, 무력하고 어두운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은 젊은 세대에게 기대기보다 상황을 주도하고, 신기술에 능숙하고, 누구보다 삶에 자유롭다. 아침과 저녁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고 타고난 패션 감각으로 무장한 까칠하고 호탕한 대프니,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뜨개질로 동네 곳곳을 뒤덮어 ‘제2의 뱅크시’라는 뉴스를 몰고 다니는 루비, 가죽 바이커 재킷 차림에 머리를 연보라색으로 물들이고 거리의 무법자처럼 이동 보조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애나, 늘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려 그들을 도와주는 연기 경력 50년의 무명 배우 아트, 아트의 70년 지기 친구이자 전직 파파라치였던 윌리엄... 이들은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운영되는 노인 사교 클럽에서 만난다. 


"당신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이런, 당신은 내가 의심한 대로 무례하군요."


노후된 시설로 인해 복지관을 보수하는 대신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노인 사교 클럽이 해체되게 두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고령의 노인들이 유쾌하고, 통쾌한 인생 반란극을 보여준다. 어느새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이 곧 철거해도 이상하지 않은 낡고 허름한 주민센터를 지키기 위해 사수하기 위해 한바탕 대소동을 벌인다. 사실 주민센터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 노인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19세 미혼부, 말을 하지 못하는 5세 어린이, 이민자, 경력 단절 중년 여성 등 삶이라는 무대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이 등장해 불완전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며 결국 구원하는 서사는 뭉클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비호감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다. 기세 넘치는 노인들의 끝내주는 인생 노하우는 덤이다.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단하게 부셔버린, 스웩넘치는 노인들의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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