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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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핑은 신신라이를 잡지는 못했지만,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는 것을, 뱀이 두더지를 집어삼키는 것을, 작은 새가 벌레를 포위해서 섬멸하는 것을, 개미가 소나무 껍질을 갉아먹는 것을, 벌이 들꽃의 심방에 침입해 탐욕스럽게 꽃가루를 빨아먹는 것을 목격했다. 만물 사이에도 학살과 능욕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지닌 채 이루어지고 있었다.

 

룽잔진의 가축들은 도축업자 신치짜를 보면 지금 자신들이 쬐는 햇볕이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었다. 신치짜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칼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참마도가 그의 아내를 죽게 하고, 그의 양아들을 살인자로 만든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신치짜의 양자인 신신라이에게 강간을 당하고는 삶이 많이 바뀌게 되는 난쟁이 안쉐얼은 수명을 점치며 비석을 새기는 일을 했다. 안쉐얼은 사법경찰 안핑의 외동딸이었는데, 신치짜가 가축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라면 안쉐얼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 그녀가 비석에 누구의 이름을 새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쉐얼이 신신라이에 의해 몸이 망가진 뒤로 더는 하늘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며, 그녀가 인간 세상으로 추락한 징조를 찾기 시작한다. 하룻밤 사이에 신에서 마귀의 대열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 해가 뜨지 않았으면 말세도 없었겠지요. 인간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 안핑은 그 직업 때문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사람을 죽이는 그의 손이 닿은 물건에 원혼이 들러붙어 있기라도 한 듯, 그의 손이 닿는 것을 모두들 꺼려했던 것이다. 그의 아내 조차 그의 직업을 알게 되고는, 아이를 낳자 마자 이혼을 요구하고 떠나 버렸을 정도이다. 유일하게 그의 손을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가 있었으니,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20년째 수발을 들고 있는 장례식장 염습사 리쑤전이었다. 그녀 역시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꺼려 하는 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로 그 손을 통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자신들의 손과 관련된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사형장과 장례식장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란 으스스하고 피비린내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곳에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았다. 이들 외에도 장애인 친구를 돌보며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탕메이를 비롯해서 각각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만 무려 40명에 이르는, 정말 중국의 대륙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서리에게도 열렬히 낭만적인 일면이 있었다. 나뭇잎 살결에 스며든 서리는 그것과 입 맞추어 가을의 형형색색 잎들이 꽃처럼 활짝 피게 했다. 서리에 금빛으로 물든 소나무 침엽은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금바늘을 떨어뜨렸다. 서리에 촛불처럼 새빨갛게 물든 하트 모양의 백양나무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새빨간 하트 잎을 떨어뜨렸다... 이 시기에 룽산 산꼭대기에 서서 뭇 산들에 눈을 돌려 온통 물든 숲들을 바라보면 산속 모든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은 이 소설 외에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수많은 인물들에게 각각의 이야기를 부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체 이야기 17장에 남긴 개별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 만으로도 각각 따로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그렇다고 단편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고, 모두 다른 주인공으로 쓰여 있지만 그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 설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고도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이 거대한 중국 현대 사회 속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래서인지 470페이지 정도의 그렇게 두껍다고는 할 수 없는 분량을 읽어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야기가 지루하다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용 전개가 빠르고, 다양한 매력의 인물들이 쉴 틈 없이 등장해 눈길을 사로 잡지만,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와 밀도가 느껴져 후루룩 그냥 읽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츠쯔첸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작가 후기에 밝히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들이기에 이렇게 생생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2년 가까이 공들여 쓴 작품이기에 어떤 단어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불필요한 묘사나 늘어지는 대목 없이 완성된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이다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모두 중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 도시화와 환경 파괴, 사형 집행 방식의 변화와 장례제 개혁, 불임 수술, 사법기관의 가혹 행위, 불법 장기 매매, 영웅 만들기와 선전 선동, 매관매직, 참전 병사 대우 등과 관련한 역사 청산 문제뿐만 아니라, 죄악과 양심, 도덕과 인간 존엄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구조와 시적인 문장을 통해서 그려지고 있다. 츠쯔젠은높고 높은 산과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 이러한 경관은 나의 문학적 이상에 딱 들어맞는다. 그것은 바로 소인물에게도 높이 솟음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그리고, 그들의 선함과 악함, 분노와 격정을 보여주면서 비로소 '문학적 허구의 삶'이 아니라 '진짜 피가 돌고 땀이 흐르는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 동안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꼭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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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보다 따뜻한
와일리 캐시 지음, 홍지로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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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그런 건 안 믿어서요. 저희는 기독교 가정을 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라일 아주머니. 그런 옛날 방식은 믿지 않아서요. 옳지 않아 보이네요."

 

"옳지 않아 보인다고? 너 태어났을 때 네 궁둥이 때려준 게 누군데?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하냐'가 중요한 거야. 나 같으면 내가 스토브에 물 끓이는 동안 저기 눈밭에 구멍이나 파겠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마셜의 외곽, 그곳은 목사 챔블리스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믿음만 있으면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시고 불을 얼굴 앞에 들어 올려 화상을 입는지 시험하는 등 무모한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중 많은 수가 화상을 입고 중독되었지만,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의사를 찾아가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성경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극단적 기독교 근본주의 교회에서 신처럼 행세하는 목사와 맹목적으로 믿는 신도들. 그곳에서는 오래 전 그 말도 안 되는 예배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11년 뒤, 또 한 소년이 교회에서 진행된 예배 과정에서 죽게 되고 그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마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세 명의 각기 다른 화자를 통해 들려진다. 노부인 애들레이드 라일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목사 챔블리스 맞섰던 사람이다. 그녀는 챔블리스가 마을에 온 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챔블리스에게 그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교회를 나왔고, 그로 인해 거의 평생을 간직해온 친구들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시는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챔블리스를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 채, 다만 그를 더 용감하고 무모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마약에 매달리듯 종교에 매달리곤 하며, 한 번 붙잡은 종교는 놓으려 들지 않으며 살아왔다. 마치 종교가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 같아서, 종교를 가진 뒤에는 이 산간벽지의 작은 교회들이 시키는 짓은 무엇이든 하려 들었고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져 신앙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자기 아이들을 내다 버리고, 남편과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이루었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결백하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죽인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야, 그 애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었으니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가 된단다." 고모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교회 안에서 크리스토퍼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

두 번째 화자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홉 살 소년 제스이다. 어느 날 자폐증을 앓으며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제스의 형 스텀프를 치료하겠다며 엄마가 교회로 데려가면서 그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제스는 어른들이 엿보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에 단짝 친구인 조 빌과 함께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엿보러 간다. 그곳에서는 말 못하는 스텀프를 신앙의 힘으로 치유하겠다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서운 광경에 겁이 나 숲으로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형 스텀프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세 번째 화자는 마을의 보안관 클렘 베어필드이다. 그는 목사 챔블리스를 오랫동안 주시해왔지만, 그 동안은 애써 무시해왔다. 하지만 스텀프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챔블리스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아들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목사에게 의지하는 엄마 줄리, 슬픔과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의 아빠 벤 그리고 오랜만에 마셜로 돌아온 할아버지 지미의 위태로운 관계,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제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잘못된 신앙이란 무지와도 같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사이코패스 살인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의 광기가 아닐까. 집단이 휘두르는 신앙에의 맹목적인 믿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광기의 일종이다. 와일리 캐시는 이 비극을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그려내면서, 아름답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코맥 매카시가 다시 쓴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 것 같다는 엄청난 평이 자연스레 수긍이 될 수밖에 없는, 대단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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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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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시를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 나만 해도 벌써 이 계절에 시집을 몇 편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시 초보자인 내가 느끼기에 소설, 에세이보다 시가 좋은 이유는 바로 '여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의 빈자리, 풍경의 테두리, 단어의 부재, 그 속에서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자유.

특히나 이번에 만난 책은 내가 사랑하는 그 '여백'이 아주 극대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름하여 '시그림책' 이란다. 시인 함민복의 「흔들린다」와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 한성옥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장석주 시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들은 말을 모으는 자들이 아니라, 말을 버려서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의 바닥에 닿으려고 말을 지우고 빈자리를 만들면, 그 말의 빈자리에 시가 들어선다"고. 이 말만큼 시를 간결하고도 핵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와닿았던 말이었다. 함민복 시인은 “시인은 삶을 옮기는 번역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시는 자본주의 시대에 소외된 개인의 삶을 육화해 가난을 일으켜 세우는 긍정의 힘을 노래해 왔다. 이번 작품 <흔들린다>에서 그는 커다랗게 자란 참죽나무의 가지를 치는 과정에서 목도한 생(生)을 노래하고 있다.

 

 

수채화처럼 보이다가도, 수묵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간결하고 투명한 느낌의 그림들의 분위기는 지금 이 계절을 닮아 쓸쓸하면서도 가슴 한켠을 시리게 만든다. 마치 정말 숲에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구름 한점 없는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흔들림의 과정을 겪어 왔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고, 내면의 욕심때문에 흔들렸던 적도 있을 테고, 혹은 대의를 위해서,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등등의 수많은 이유로 우리의 생은 그렇게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심을 잡고,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살아 나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시 한편을 나뉘어 그림을 곁들인 페이지에 조금씩 뿌려 놓은 것이 하나의 책이기 때문에, 뭔가 텍스트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겨우 시 한편으로 어떻게 책을 만들 수 있지? 싶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냥 그림으로만 읽을 수도, 오직 한 편의 시만으로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시그림책'이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고요한 산의 정경에서 시작해서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치고, 어둠에 휩싸인 세상이 보인다. 집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의 푸르름은 가지가 베어지고, 점점 더 시간을 견뎌가면서 모습을 달리한다.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튀우는 일이었구나

 

 

이 책은 여백도 많고, 글자도 많지 않아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고, 앉은 자리에서 금새 다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지만, 어쩐지 책장을 덮고 나서 여러 번 다시 들춰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시를 소개하면서 그림을 곁들이고 있는 책은 많지만, 이렇게 시 한 편을 오롯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드는 그림이 함께하는 책이 또 있었던가 싶다.

흔들리냐, 나도 그렇다.

아프냐, 나 역시 그렇다.

가끔 바람이 부는 쪽으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떤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을 때,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가족들에게 시달리고, 친구에게 실망하고,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가 당신에게 바로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다. 조금 쉬어 가고 싶은 순간, 이 책을 읽어 보자.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느껴지는 휴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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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1-04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석주 시인의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소설은 덧셈이고 시는 뺄셈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피오나 2017-11-05 00:16   좋아요 0 | URL
오.. 소설은 덧셈이라는 생각에도 공감이 되는데요. ^^
 
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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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으로 향하는 인파에 섞여 홀로 터벅터벅 걷는다. 사실 '터벅터벅' 보다는 '터덜터덜.' 서글픈 영화에 전염되어 나도 서글픈 기분이 넘치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인생을 보내게 될까.

인생이란 뭘까.

10대 무렵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 이런 밤에는 어쩐지 불안하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는 오랜 만이다. 이 책은 마흔과 오십 사이에 서 있는 작가 자신의 일상에서 포착한 어린 아이 같은 순간을 담고 있다. 누구나 내면에 그런 아이 같은 모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공감 백퍼센트를 불러 오는 마스다 미리의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다. 마스다 미리는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란 존재들은 모두 그 모습 그대로 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어린 시절 빵집으로 달려가던 길의 작은 웅덩이가 무서워 걷던 모습, 중학교 입학식 날 교복을 입고는 어색해 했던 모습.. 그 아이들 각자가 자신과 닮은 얼굴로 어른인 내 안에서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이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 대학 시절의 나,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던 시절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남편과 만나 사랑에 빠졌던 내 모습을 거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현재의 나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떠올려 보면 비슷하면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내가 가장 어른의 생각과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속의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마스다 미리의 글을 읽다 보면, 내 안의 그 '아이들'에게 자꾸만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 어른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마흔의 한가운데에서 어른의 전성기를 보내며 '어른들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페루 요리를 먹고, 친구들과 함께한 어른들의 소풍에 대해서도, 애프터눈 세트를 처음 먹으러 간 날 홍차를 무려 다섯 잔씩이나 마셨던 일과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 일 등등... 정말로 소소하고, 평범하고,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그런 글들이다.

 

 

"일 년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어."

연말이면 어른들이 그 말을 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상했다. 어린 나는 일 년이 엄청나게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리고 나도 "세월이 너무 빨라."라는 말로 서로의 쓸쓸한 기분을 조용히 공유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라고 가장 처음 느꼈던 순간은 바로 커피를 좋아하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꼭 한약처럼 시커멓고, 쓴 냄새가 나는 그걸 엄마가 매일 같이 마시는 게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너도 어른이 되면 이 맛을 알게 될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쓴 커피가 더 이상 쓰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제 내가 어른이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마스다 미리는 어릴 때 어른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열심히 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고 끼어들면 "애들은 몰라도 돼."라며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그 비밀들이, 사실은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고. 그래서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대의 자신을 만나러 간다면 가르쳐주고 싶다고.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 터라 큭큭 대며 웃고 말았다. 마스다 미리의 글들은, 그녀의 생각들은 어쩜 이리 공감되는 대목들이 많을까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아이 없는 싱글 여성의 삶을 멋지게 살고 있는 그녀라 그런지, 나이에 비해 일상의 모습과 생각들이 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어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그녀의 소녀 같은 마음과 행동들이 참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재에 대한 걱정들이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옅어진다고나 할까. 그녀의 긍정 마인드가 내게도 전염되는 기분도 들고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읽는 것일테고 말이다. 나도 언젠가 마흔이 되고, 오십이 가까운 나이가 될 텐데.. 그 시기가 되었을 때 그녀처럼 즐겁고 씩씩하게, 긍정적으로 일상을 보내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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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요일 스페셜 (시요일 APP 1년 이용권 + 특별 한정판 시집 5종) 시요일
고은.신경림.백석.김수영.신동엽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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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아침을 시와 함께 시작하고 있다. 시요일 애플리케이션 덕분이다. 사실 매달 수십 권의 책들을 읽어대면서도 ''라는 장르는 어쩐지 어렵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하루에 한 편씩 앱으로 시를 받아 보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시라는 것이 공감하기도 쉽고,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한편씩 그날에 어울리는 시를 손안에 배달해준다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 아닌가.

 

 

시요일은 창비에서 만든 시 큐레이션 전문 앱 서비스이다. 3 3천여편의 시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원하는 시를 검색할 수 있으며, 분위기와 주제에 어울리는 좋은 시를 엄선하여 추천해 주는 기능도 있다. 게다가 시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공유 기능을 통해 누군가와 나눌 수도 있다. 앱 다운로드는 무료이며, 오늘의 시·테마별 추천시·시요일의 선택 등 일부(라고 하기에는 꽤 많은) 콘텐츠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전체 콘텐츠를 이용하고 싶을 경우 기간별 이용권을 결제하여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용권 가격도 책값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이 아니라 너무 좋다.

 

 

시요일 홈페이지 https://www.siyoil.com/

시요일 앱 다운로드(구글 플레이 스토어) http://bit.ly/2piIvMf

시요일 앱 다운로드(애플 앱스토어) http://apple.co/2nYtI9f

시요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iyoil/

 

시요일 서비스 내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시요일 특별판 시집 5종 세트>이다. 신경림 『농무』, 백석 『외롭고 쓸쓸하니』,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고은 『만인보 1』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림 『농무』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백석 『외롭고 쓸쓸하니』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고은 『만인보 1

너와 나 사이

여기에 머나먼 별빛이 온다

부여땅 몇천리

마한 쉰네 고을마다 변한 진한 마을마다

나와 너 사이 만남이 있다

 

시요일 앱은 무엇보다 나처럼 시가 어렵게 느껴졌던 초보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훌륭하다. 우리는 누구나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할만큼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모바일 화면을 들여다 보면서 보낸다. 그 시간 중에 잠깐, 하루에 오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 당신에게 배달되는 시 한편을 읽어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루, 하루가 쌓이면서 당신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건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살면서 누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고, 기대했던 일에 실망하기도 하고, 막막한 절벽 앞에서 주저 앉아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지쳐 있을 때, 곁에 사람이 있어도 문득 외롭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가 바로 당신에게 ''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매일 무료로 ''를 배달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요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다. 지금 당장 구글 플레이 스토어 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시요일' 앱을 다운로드 해보자.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싶을지도 모르겠다. 시 애플리케이션은 아마도 <시요일>이 세계 최초일테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시를 찾고, 읽고, 선물할 수 있다니 말이다.

 

사람에게 치이고, 세상에 실망할 때마다 시를 읽어보자. 그 무엇으로 마음이 달래지지 않을 때마다, 화가 나고 억울해서 울고 싶을 때마다 시를 한편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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