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독서중독 -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밤에는 글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즐거운 기록
김우태 지음 / 더블: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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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책 중독자로 살아온 지 저도 어느덧 삼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지냈고, 대학생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지금도 책은 변함없이 가장 가까운 친구이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면 가끔 그 속에 빠져서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방향 감각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제대로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어쩌면 그렇게 지나치게 책에 중독되어 있는 나에게 색다른 관점의 가이드를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책과 만났지만, 이제는 게임중독자에서 독서중독자로 거듭났다고 하는, 낮에는 양계장 김씨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김씨로 살아가는 독서중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분명히 한글로 쓰여 있는데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책들이 있다. 보통 철학 책들이 그렇다. 한 문장씩 독파해 나가다 보면 자꾸 오리무중에 빠지고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에 ''자가 계속 달리게 된다. x........이럴 때 방법은 없을까?

힘 빼고 여러 번 읽어보자. 한 문장, 한 글자 힘 빡 주고 읽지 말고 느슨하게 읽는 거다. 뜻이 안 들어와도 상관없다. 내 눈에 단어들, 문장들을 눈에 익혀둔다는 정도로만 읽으면 된다.

그는 평생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사람, 중고등학교 때 읽은 책은 교과서가 전부이고, 술과 담배, 텔레비전과 게임이 유일한 친구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책을 만나게 되고, 그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돈보다 책이 좋아지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회사업무에 치여 책 읽을 시간이 없어, 1년쯤 안식년을 갖고 책만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게 꿈이다. 30년간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게임중독자가 어떻게 책 중독자가 되고, 이렇게 책까지 출판하는 작가가 된 걸까. 저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독서활동과 독서방법, 그리고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잡생각들을 늘어놓으며 이야기한다. 당신도 책을 읽어 보라고. 독서광이 된다는 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어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두꺼운 책은 찢어서 읽으면 되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빠르고 느리게 읽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며, 문제는 제대로 읽었느냐 라고 말한다.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하는 것은 아니며, 책을 읽다 보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려운 책을 읽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르다며 독서초보의 책 읽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신변잡기처럼 그저 편안하게 늘어 놓는 이야기 속에 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고, 책을 읽으면서 확립한 나름의 독서 방법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이 책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거나, 뛰어난 직관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매 페이지마다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안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무려 32살이 되어서야 책과 만나게 된 이 사람도 있지 않은가.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책에도 80 20의 법칙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물론, 문장 하나하나에 혼신을 불어넣는 문학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은 예외로 한다. 한 문장을 가지고 석 달 동안 고민하는 게 문학작가들이다. 문학작품에 80 20의 법칙을 적용해서 읽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고,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줄 한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문학작품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하자.

전체의 20프로가 나머지 80프로를 대표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매우 그럴 듯 하다. 이는 전체의 20프로는 핵심이고 나머지 80프로는 껍데기라는 뜻이다. 이런 책일 경우 핵심만 파악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그 내용만 발췌해서 읽으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소소하게, 독서중독> 역시 마찬가지로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아마도 책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독서 초보들이라면 처음부터 찬찬히 정독해도 좋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웬만큼 책 좀 읽었다 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에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어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그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지친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제일 처음 책을 사랑했던 순간과, 책과 만났던 잊지 못할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몇 년 전에 70대 할머니가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21개월 만에 필사해 화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되었던 필사는 평일에는 3시간, 주말에는 6시간까지도 했다고. 필사한 200자 원고지를 세로로 쌓으면 무려 일 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라고 말이다. 당시에 태백산맥 전 권 필사를 마친 사람은 전국에서 6명이라고, 그들의 필사 완성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정도라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했다고 한다. 1152일에 걸쳐 했다고 하니, 3년이나 되는 시간이다. 물론 그가 필사를 하게 된 이유가 태백산맥 문학관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채로 필사본이 영구 보관된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기어이 해냈다는 데 대단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책 중독에 빠져 살아온 나라도 전혀 도전하고자 생각도 못해봤던 그것이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사랑하면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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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마음에 들고, 공감합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나 작가의 책을 읽으면 특정 분야의 책만 읽었던 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

피오나 2016-11-28 21:4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아직도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답니다^^;; 골고루 읽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핫

cyrus 2016-11-28 21:47   좋아요 0 | URL
저는 피오나님이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만두님 이후로 장르문학 리뷰를 꾸준히 남기는 알라딘 유저가 많지 않거든요. 한 분야의 책만 본다는 일이 나쁜 점은 아닙니다.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

피오나 2016-11-28 21:50   좋아요 1 | URL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ㅎㅎ 장르문학만 편애하는 게 맞습니다ㅋㅋ 초등학교시절 셜록 홈즈를 만난 이후로 여태 그러네요. 물만두님 만큼 리뷰를 많이 올리지는 못했지만^^;;
 
소설 시그널 2
이인희 지음, 김은희 소설 / 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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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소설판 2부는 홍원동 연쇄살인사건부터 시작해, 극중 박해영 경위 형의 죽음과도 연관되어 가장 큰 비중이었던 마지막 사건 인주 여고생 성폭행사건, 그리고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재한 형사 실종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 무전기가 내게 들어온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해영은 무전기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며 트럭 안에서 자신을 찾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박해영 경위님, 박해영 경위님." 한밤중 폐기물 더미 안 낡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던 자신의 이름.

' 11 23분이지? ? 왜 하필 나였던 거야, . 아까 안치수 계장은 이 무전기가 15년 전 실종된 이재한 형사님 차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래, 이재한 형사님 실종사건, 그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어. 왜 나인지, 왜 이 무전이 시작됐는지.'

극중 인주 여고생 성폭행사건으로 보여지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실제 현실에서도 매우 끔찍하고 분노에 떨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고등학생 44명이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자 중학생들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가해자들은 1년 가까이 피해자들을 성폭행하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협박까지 했다. 경찰 조사 당시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 학생 부모들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유발하고 책임을 묻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었고, 피해자들에게는 경미한 처벌만이 내려져 공분을 산 사건이다. 이것을 소재로 영화 '한공주', '돈 크라이 마미'가 만들어졌고, 이재익 작가의 소설 '41'도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극중 주인공인 박해영 경위의 형을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게 만들어, 주인공이 이 사건을 반드시 파헤치게 만드는 동기로 부여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만들어진 가해자와 그것을 방조하는 경찰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같은 사건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각도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만큼 당시 사건의 처참함을 드라마적인 부분을 극대화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 경찰이 해야 되는 일 아니냐는, 지나치게 강직한 성격의 이재한 형사를 통해 사법부의 비리와 없는 자들이 가져야 했던 억울함과 있는 자들을 향한 분노를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죽어서 돌아왔어요. 15년을 기다렸는데.... 선배님 죽는다고요!"

미래에 있다는 수현에게 무전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재한은 허탈했다. 죽는다는 말에,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잠깐 무너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바꾸면 된다."

타임 슬립이라는 다소 평범한 소재로 드라마 <시그널>은 시간의 비틀림에 대한 정교함과 다른 시간 속을 사는 인물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 치밀한 이야기 구조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시그널>이 끝나서 아쉬웠던 수많은 사람들, 그래서 속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소설판 <시그널>은 대체 불가능한 선물과도 같다.

<시그널>은 그것이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게 만드는 위대한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극중 수현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뭔지 밝혀진 사건은, 내 가족이 왜 어떻게 무 슨 이유로 죽었는지 알았으니까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 묻을 수 있지만,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다고.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그날 그 순간에서 영원히 멈춰버리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수많은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다행이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인해 현실 속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일명 '태완이법' 국회 통과와 더불어 최근 경찰에서 전담 수사팀 직제화와 수사인력 확충을 실시하는 등 미제사건 해결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미제 전담팀 수사 인력도 증원됐다고 하니 말이다. 실제로 몇몇 대표적인 미제사건이 원점부터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으며, 전담팀이 검찰로부터 수사, 재판 기록을 넘겨받아 재검토 하고 있다고 하니, 부디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에서와 같이 한번쯤은 해결이 되어 남겨진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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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그널 1
이인희 지음, 김은희 소설 / 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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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과거로부터 무전을 받는다면, 어떨까. 사실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신선할 것이 없다. 그 동안 숱한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어떨까. 1989년의 경찰과 2015년의 경찰이 서로 무전으로 통신을 하며, 미제 사건을 풀어나간다면..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명의 경찰이 같은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부터 굉장히 흥미로워진다.

"박해영 경위님....나는 이게 마지막 무전일 것 같습니다."

"그게...무슨..."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무전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그땐 경위님이 날 설득해야 합니다. 1989년의 이재한을......"

해영이 의아한 얼굴로 듣고만 있었다.

"과거는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자체 최고 시청률 15%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에 오른 드라마 <시그널>이 소설 형식으로 다시 쓰여졌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탄탄한 구성과 명대사들로 유명했기에, 그 감동을 과연 소설 지문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 만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브라운관에서 느꼈던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결과 탄탄한 플롯의 치밀한 구성까지 고스란히 활자화되었고, 드라마에서는 그저 시청자로서 '짐작'만 해야 했던 인물들의 심리까지 직접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정도라면 드라마를 통해서 이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던 독자들이라도, 소설 자체만으로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실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사용했던 걸로 유명했다. 첫 번째 사건이었던 김윤정 유괴사건은 1997년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사건, 그리고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은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대도사건은 대도 조세형 사건과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바탕으로 꾸며졌고, 홍원동 연쇄살인 사건은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2005년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가져왔다. 극중 마지막 사건인 인주여고생사건은 2004년 모두를 경악케 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소설로 만들어진 <시그널>은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김윤정 유괴 사건,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과 대도 사건이 다루어지고, 나중에 이재한 살인 사건과도 연결된 신다혜 자살사건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과거는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무전이 시작된 이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은 바꿔야 할 과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던 해영은 결심했다. 죽은 사람들을 살리고 범인을 잡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해영은 정리해놓은 자신만의 수사 기록을 화이트보드에 반으로 나눠 적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과 변해버린 수사 기록을. 1차부터 10차까지 원래 기억하고 있던 무전 전의 범행들과 현재의 수사 기록을 확인하며 바로 옆에 바뀐 부분을 적어나갔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로 인해 경찰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프로파일러 박해영 경위, 그는 우연찮게 경찰서를 나오다 탑차에 실려 있는 폐기물 포대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무전을 듣게 된다.

"박해영 경위님, 박해영 경위님 거기 있습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해영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목소리로 인해 오랜 시간 미제로 남았던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두 남자 간의 무전 통신. 1989년 과거에 있는 이재한 형사와, 2015년 현재에 있는 박해영 경위.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두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보다, 과거에 벌어졌지만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을 그것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부분이 굉장히 매혹적이다. 현재 박해영 경위의 상사인 터프하고 무뚝뚝한 차수현 팀장이 과거로 가면 이재한 형사를 짝사랑하던 수줍고 어리 버리한 신참이 되는 것도 흥미롭고 말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교차 진행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역시 변한다는 타임 패러독스에 부딪히게 되면서 복잡해진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반드시 바뀌는데, 과거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바꿔야만 하니 말이다. 박해영, 이재한, 차수현.. 이들은 어떻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미제 사건들을 해결하게 될까. 대체 이 무전은 무엇 때문에 시작된 걸까. 그렇게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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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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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송나라, 당시의 유교는 사람의 신체에 칼을 대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술을 기피했으며, 학자들조차 의학을 경멸했고, 행정가들은 수술을 미개한 학문으로 여기는 시절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시절에 과학적 수사 방법과 검시법을 체계화해서 역사상 최초의 법의학서인 <세원집록>을 집필한 인물, 송자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이유로 죽은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고인의 아버지가 말을 더듬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걸 처남이 봤어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누군가가 목을 졸랐습니다."

가족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는 목 양쪽으로 난 붉은 멍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송자가 법의학 저서를 집필하고 법관으로 있을 때의 과정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가 어떻게 세상의 천대를 이겨내고 그곳에까지 도달하기의 스토리를 펼쳐내고 있는데, 그의 삶에 얼마나 장애물이 많고 첩첩 산중의 고난과 역경이 거듭하는지 매 순간이 클라이 막스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새롭게 그의 삶에 등장하는 이들 역시 결국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혹은 그를 배신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들이 펼쳐지고, 매번 절벽 앞에 서 있는 사람 마냥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삶을 살아내는 송자라는 인물은 굳은 심지로 오로지 정의롭거나,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천재형이 아니라 사람들을 쉽게 믿고, 그만큼 속고 배신당하는 어리석음도 가지고 있으며, 가끔은 비겁한 모습도 서슴지 않고 보여주는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렇게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서 더욱 감정 이입이 쉬워지는 부분도 있으며, 그만큼 그가 겪는 그 모든 부당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 당시가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누군가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 믿고, 용의자를 잡으면 증거가 없어도 자백을 할 때까지 때리고 혀를 뽑아 고문하던 시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런 시절에, 현대의 과학 수사법과도 유사한 방식으로 시체를 검시하고, 증거를 수집해서 범인을 찾아내고,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놀라움도 주었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함께 주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대적 배경은 모든 사건에 특별한 제한을 두게 만들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들은 웬만한 대하 사극 못지 않은 스릴과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모두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시체 판독가라고?" 형부 내상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시체를 읽는 사람입니다. 제 수제자입니다." 밍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를 가리켰다.

........ "당신과 같은 전문가가 놓친 것을 저자가 포착할 수 있다는 말이오?"

"아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칸 내상은 마치 자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밍 교수를 쳐다보았다.

중국 최초의 법의학 저서인 <세원집록>을 집필한 송자. 그는 법관으로 있을 때 청렴하게 법정을 펼쳐 간악한 자를 엄징하고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저서에 기술된 법의학 검험에 관한 것은 근대 과학 원리와도 부합되는 점이 많아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시체 읽는 남자>는 이런 송자의 인생을 재구성한 팩션으로 스페인의 역사소설가인 안토니오 가리도의 작품이다. 중국의 역사 속 인물을 스페인의 작가가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독특했고, '세원집록'이라는 책 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송자라는 법의학자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작가 역시 자료조사 과정에서 송자의 일생이 수십 권의 책에서 발췌한 서른 개의 문단에 불과했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의 정치와 문화, 사회와 법, 경제와 종교, 군사와 성 영역을 총 망라한 자료 수집으로 인해 매우 리얼하게 현실에 충실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송나라로 시간 여행이라도 떠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사' 위주인 작품보다는 작가 고유의 문체나 문장이 돋보이는 상징적인 작품이나 감정의 흐름과 인물의 정서에 치중하는 작품에 더 관심이 많지만, 이 작품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다. 그만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와 머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역사적 배경과 정보, 그리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주는 매력이 굉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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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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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10 15일 파리, 검은 실크 스타킹과 실크 레이스로 장식된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여우털로 소매와 옷깃을 장식한 발까지 늘어지는 긴 모피 코트를 입고, 펠트 모자와 검은색 가죽장갑까지 착용한 한 여인이 감방을 나와 처형 부대가 대기하는 장소로 향한다. 그녀는 눈을 가리지도, 묶이지도 않은 채 침착한 모습으로 자신을 처형할 군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두 명의 병사들이 몸을 곧추세우고 총을 어깨에 바짝 붙이는 순간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던, 여전히 태연했고 두려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던 그 여인은 그렇게 총살되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녀의 이름은 마타 하리, 죄목은 스파이 혐의였다.

죄가 없다? 어쩌면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겁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이 도시에 첫발을 디딘 이후로 죄가 없던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정부 기밀을 원하는 자들을 조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저항할 수 없으리라 여겼지만 결국은 내가 조종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이용한 것이라고는 상류사회 살롱에서 떠도는 풍문들뿐이었지만 나는 스파이라는 죄명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마타 하리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아름다운 미모로 유럽의 사교계를 오가던 무희였던 여자가 어떻게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정보를 판 이중간첩 혐의를 받게 되었을까? 생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떳떳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품위를 지켰던, 팜므 파탈의 대명사 마타 하리, 나는 그녀에 대해서 뮤지컬 작품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파리 물랑루즈의 유명 댄서로서도 신비롭고 관능적인 무희였고, 유럽 각국의 최고 권력자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실제로 이중 스파이였는지 여부와 별개로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어도 좋을 만큼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매혹적인 무희이기도 했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터라 한 여자로서의 삶도 매우 궁금했고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마타 하리를 독립적인 삶을 택했고 남성 중심 시대에서 여성의 권리를 표명했던, 20세기 첫 페미니스트였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권위자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란 이유로 그녀에게 죄를 전가했다고 말이다. 그는 실제로 제네바에서 유엔평화대사로 활동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랑과 여성의 권익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작가가 그려내는 그의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해서 마타 하리를 그려내면서도 소설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누구나 쉽게 그녀의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안드레아스 부인이 내게 정확히 이런 표현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우리 인생은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계획되어 있노라고, 태어나 공부하고 남편감을 찾기 위해 대학에 가고, 비록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남자일지라도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도록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늙어가고, 거리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척하지만 사실은 '너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어' 라고 말하는 마음의 목소리를 잠재우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했고, 누군가는 그녀를 시기했다. 마타 하리는 고위 관료들과도 친분을 쌓으며 두터운 인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중 스파이 의심을 받게 되자 그들은 모두 등을 돌렸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걸 가졌을 때 항상 다정했고 자신을 돕고자 했던 친구들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주리라 믿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그늘 아래 확증도 없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감옥에 갇힌 순간에도 그녀의 영혼이 여전히 자유로웠다는 데 그녀의 가치가 있다. 물론 마지막까지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였지만 총살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죽는 이유는 말도 안 되는 간첩 혐의 때문이 아니라 항상 꿈꿔온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고, 꿈에는 언제나 비싼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을 쓰면서 대화 일부를 만들어냈고, 일부 장면들을 삽입했으며, 사건의 순서를 약간 바꾸었고, 서사와 관련 없다고 판단한 것들을 생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 쓰인 내용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다. 오직 사랑만을 갈구했고, 언제나 스스로이기를 원했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여인. 마타 하리가 실제로 스파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비밀이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문서에는 그녀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녀가 한때 유럽을 들끓게 한 뇌새적인 미모를 가진 만인의 연인이었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 이 작품은 그녀의 일대기라고 부르기에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허구의 소설이라고 단정짓기에도 애매할 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마타 하리라는 한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여전히 권력에 의해 무고한 삶이 희생되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혹은 우리 여성들에게), 삶의 어느 순간에도 진정한 나로 살고자 했던 그녀를 통해서 우리들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잃어버리지 말자고 말이다. 마타 하리같은 여성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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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1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과 마타 하리의 실제 삶을 묘사한 책을 안 봐서 모릅니다. 코엘료가 마타 하리를 ‘20세기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치켜세운 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초‘라는 말만 넣지 않았으면 부정할 수 없는 평가라고 생각해요. ^^;;

피오나 2016-11-15 12:37   좋아요 0 | URL
하핫. 그거야뭐 개인의견차이니까요. cyrus 님께서 생각하는 20세기 첫 페미니스트는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cyrus 2016-11-15 13:52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ㅎㅎㅎ

물론 제 의견도 꼭 맞다고 볼 수 없어요. 제 생각에는 버지니아 울프인데, 사실 지금 딱 생각나는 20세기 페미니스트가 울프 뿐입니다. ^^;;

피오나 2016-11-15 18:15   좋아요 0 | URL
오호..버지니아 울프도 있었군요!! 멋진 의견이십니다^^